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4화
“배움이 부족한 자에게 교육을 베푸는 것이 미덕이라지요. 그래서 배움의 터로 유학을 보내 주려 합니다.”
“어디로요?”
“폐하께 2황자를 추천했습니다. 아마 그가 좋은 곳으로 형님을 안내할 겁니다.”
“2황자라면, 1황자와 가장 사이가 안 좋잖아요? 서로에게 보낸 암살자만 해도 작은 소국 하나를 건국해도 될 정도일 텐데요.”
“그러니 더욱 1황자의 모자란 점을 2황자가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약점에 대해 누구보다 더 알고 있으니, 그걸 가장 잘 극복할 방법도 알고 있을 겁니다.”
진짜 나빴다.
사라는 에단 암브로시아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가 1황자를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황제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굳이 사라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아직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남아 있는 패는 많았다.
그 사건을 목격한 귀족들과 사용인들, 그리고 기사단.
그들의 심리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사교계에서도 1황자를 몰아세울 수 있었다.
다행히도 1황자는 미쳐 있으니까.
“하지만 1황자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거예요. 암브로시아에 제가 있는 한 말이에요.”
“1황자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별일은 아니었어요, 적어도 제게는. 하지만 1황자에겐 아주 치명적이었죠.”
“그게 무슨…….”
사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클로드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1황자가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사라에게 이를 가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녀가 처음 대마법사라는 걸 황제에게 밝혔을 때는 사라의 나이가 10살이었을 때였다.
사라는 아버지인 밀런 백작의 손을 잡고 은밀히 입궁해 황제와 독대를 하였다.
“폐하께 1황자와 저의 약혼은 포기하라고 말씀드렸었거든요.”
“약혼? 지금 약혼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당시 1황자의 나이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꽉 쥔 그의 주먹 위로 푸른 핏줄이 불거졌다.
“1황자에겐 쓸 만한 귀족이 없어요. 그래서 황제 폐하께선 밀런 백작가를 1황자에게 선물로 내어 주고 싶어 하셨죠.”
“…….”
“그게 선물이 될지, 재앙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걸 계기로 황제는 사라가 가지고 있는 힘이 1황자에게 결코 힘이 되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인 밀런 백작은 크게 분노해 1황자의 치명적인 약점을 모조리 파악해 은밀히 2황자와 3황자 측에 전달했다.
그때부터 1황자는 조금씩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한참 어린 그의 배다른 형제들이 치고 올라올 만큼.
“제가 어릴 때 좀 많이 예뻤거든요. 내심 기대하던 1황자에겐 미안하지만 넘볼 걸 넘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깨닫게 해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 1황자는 그의 인생이 사라 밀런 때문에 꼬이게 됐다고 여겼고, 그녀에게 악감정을 품었다.
제 앞길을 막는 그녀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유모……, 그 무서운 황자님이랑 결혼할 뻔한 거야?”
클로드가 안쓰러운 눈을 하고선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1황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저 작은 머리로 상상을 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결혼 안 하고 쭉 클로드 님 옆에서 살 테니까요.”
“정말?”
“그럼요!”
사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클로드를 꼭 껴안고 아이의 여린 살에 뺨을 비볐다.
그녀의 머리칼이 간지러웠는지 클로드는 까르르 웃으며 몸을 뒤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단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황제는 결코 사라,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요. 1황자가 안 된다면 2황자나 3황자까지 밀어 넣으려 했을 겁니다.”
“보통은 그렇겠죠? 마법사를 확실하게 제국에 묶어 놓는 방법으로 황실과의 결합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1황자는 나이도 많고 인간이 되지 못했지만, 2황자와 3황자는 다르다.
후비로 들어온 황후가 낳은 두 아들은 미인인 어미를 꼭 닮아 인물이 출중했다.
게다가 사라와 또래이니만큼 사실 마법사의 피가 황실에 섞이길 바랐다면 2황자나 3황자를 짝지어 주는 게 현명한 처사였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포기했겠지만, 지금은 황제가 다시 헛된 꿈을 꿀 수 있겠군요.”
제국의 황제로서 사라 밀런이라는 대마법사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에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굳혔다.
“뭐 나쁘진 않죠. 1황자에 비하면 2황자나 3황자는 준수한 편이니까요. 꽤 취향이기도 하고.”
사라는 2황자와 3황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
“……!”
그와 동시에 놀란 두 부자의 시선이 사라에게 향했다.
무참히 흔들리는 두 쌍의 눈동자를 보면서 사라는 푸핫 웃어 버렸다.
“농담이에요! 제 관심은 오직 두 분에게만 쏠려 있는 거 잘 아시잖아요?”
사라의 말에 클로드와 에단의 눈이 점차 제 크기를 찾아갔다.
노골적으로 안심하는 두 부자의 똑 닮은 얼굴이 퍽 사랑스러워 보여서 사라는 더 크게 웃었다.
“그럼 약속해. 유모는 쭉 여기 있는 거야.”
클로드는 대뜸 사라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유모가 어디로 가 버리기 전에 약속을 받아 내려는 속셈이었다.
“후후.”
사라는 아이의 조막만 한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며 웃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에단을 빤히 바라보았다.
“……?”
그 강렬한 시선을 느낀 에단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자 클로드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안 하시는 거예요?”
“무슨―.”
“유모랑 약속이요.”
클로드의 말에 에단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지금 그러니까, 사라에게 여기에 평생토록 남아 달라는 약속을 나도 하라는 건가.
그는 잠시 제 손을 바라보다가 클로드의 뜻대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라는 마찬가지로 그에게 웃어 주며 에단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자, 약속!”
클로드는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걸고 있는 사라와 에단을 번갈아 보았다.
그 모습에 사라는 귀엽다는 듯 웃어 보였다.
“…….”
사라와 맞닿은 손가락에 묘한 열이 깃드는 느낌이었다. 에단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철이 없는 아이의 투정과도 같은 가벼운 약속이었지만, 어쩐지 이 약속에 무게를 싣고 싶었다.
* * *
마탑, 자격을 갖춘 마법사들이 모여드는 곳.
자격을 갖춘 자에겐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에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마탑이었다.
평생을 살아도 마탑의 언저리에도 닿지 못할 사람들은 마탑에 대하여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괴수를 기르고 있다더라, 방 안에서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며 눈도 내리더라, 금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다이아몬드로 만든 의자에 앉아 사파이어로 만든 포크로 식사를 한다더라.
하지만 그들의 상상과는 달리 마탑은 그리 특별하지도, 그리 평범하지도 않았다.
“아, 진짜 방 꼴이 이게 뭐야 대체.”
올리븐은 콜록콜록 기침을 내뱉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허공에 떠다니던 뭉친 먼지가 올리븐의 손길을 따라 이리 흔들리고 또 저리 흔들렸다.
바닥에는 그 먼지보다도 더 형태가 커다란 공처럼 생긴 먼지들이 굴러다녔다. 그뿐만 아니라 뿌옇게 가라앉은 먼지들은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눈처럼 흩날리며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나마 거미줄까지는 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까.
올리븐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 안 한가운데에 유일하게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는 마법진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 미친놈 아직도 저러고 있네.”
그곳에는 사라진 스승을 찾기 위해 반쯤 미쳐 버려 짐승처럼 살고 있는 동기가 있었다.
“벤야민!”
차마 벤야민의 방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 올리븐이 방문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벤야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진 안에서 스승께서 남기고 간 메모가 적힌 종이들을 계속해서 읽어 나갈 뿐이었다.
올리븐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벤야민을 보며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제 뒤에서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로 벤야민의 방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동기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저 자식보다 내가 더 미친놈 같아 보여? 아니지, 벨루나?”
“글쎄.”
벨루나라 불린 여자는 올리븐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의 어깻짓을 따라 하나로 말끔하게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은 채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벤야민과 너는 성격만 다를 뿐 머리는 똑같다고 말했었을 텐데.”
“그거 진짜 모욕적인 말이야. 알아 둬.”
올리븐은 양팔로 스스로를 껴안으며 상처받았다는 걸 크게 어필했다.
하지만 더욱 싸늘하게 변하는 벨루나의 얼굴을 보곤 슬쩍, 제 몸을 감싸던 팔을 내렸다.
그러곤 본래의 목적을 상기하며 먼지투성이인 벤야민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마법진 한가운데에 앉아서 스승의 흔적을 핥듯이 보고 있는 벤야민은 살이 조금 빠진 듯했지만 눈빛만큼은 흉흉했다.
올리븐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마법진으로 인해 생긴 파장이 만든 벽을 쾅쾅 내리쳤다.
“야! 언제까지 여기 박혀 있을 생각이야. 네 꼴을 보면 스승님이 잘도 좋아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