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3화
“…….”
에단은 사라가 만들어 준 아티팩트를 매만졌다.
암브로시아의 힘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클로드에게 이 힘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라 또한 클로드가 이 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적어도, 클로드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니에요, 그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마력을 운용해서 그래요.”
“그렇다고 오 일 동안 깨어나지도 못했단 말입니까?”
“믿지 못하실 건 알지만, 마법사들은 가끔 이럴 때가 있어요. 공작님께서 적응하셔야 할 거예요. 의사나 신관을 불러온다 해도 똑같은 말을 할 거니까.”
“…….”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탑에는 이런 잠자는 공주들이 많아요. 제가 장담할게요.”
사라의 말에 에단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제국에 나타나지 않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제국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개개인인 의사나 신관이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사라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감은 사라의 건강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네 주변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힘을 키워 보거라, 이 괴물 새끼야. 이 어미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다 잡아먹으면서 말이다.’
에단은 그의 어머니가 평생을 두려워하던 이 힘이 사라를 저렇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잔혹하게 빼앗기리라.
저주처럼 외친 어미의 고성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공작님.”
그때 사라가 주먹을 쥔 에단의 손에 제 손을 겹치며 그를 불렀다.
에단은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는 클로드 님이 성장하실 때까지, 곁에 있는 게 목표예요.”
“알고 있습니다.”
“원하는 건 꼭 쟁취해야만 하는 게 제 성격이에요. 제 고집에 몇 번이나 물러서 주셨으니 이건 공작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 아닌가요?”
“그것 또한 맞습니다.”
“그러니 절 믿으세요. 전 괜찮아요. 고작 이 힘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갈 거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어요.”
사라의 말에 에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을 감은 채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아직도 제 손끝에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를 흔들었던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왜 사라가 눈을 뜨기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는지 말이다.
‘토악질 나는군.’
사라가 영영 사라져 버릴까 봐. 암브로시아의 힘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던 그녀가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끔찍하다며 도망칠까 봐.
그 뒤로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미 그녀를 좋아하게 된 클로드에게 큰 상처를 줄까 봐.
자신도 모르게 사라에게 희망을 걸게 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까 봐.
그렇게 그녀가 클로드와 자신을 놓아 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에단이 맛본 구원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 순간 눈을 뜨고 그를 향해 웃어 주는 사라를 보며 깨달았다.
“……이런.”
에단은 짧게 탄식하며 얼굴을 굳혔다.
이번처럼 제 속을 노골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스스로가 간절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의 안에서 자리한 사라 밀런이라는 여자의 존재가 예상보다 컸다는 것이니까.
스스로에게 들킬 만큼.
“혹시 싫으세요?”
충격으로 굳어진 에단의 얼굴을 보며 사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클로드 또한 제 아비가 사라를 거부하려는 걸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클로드가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에단의 옷자락을 잡고 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린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닙, 아닙니다.”
에단은 크게 숨을 내쉰 뒤 제 옷자락을 잡은 클로드의 손을 어색하게 감싸 쥐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가요?”
“나와 클로드에게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아…….”
에단의 물음에 사라는 저를 바라보는 클로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입가에 맺히는 해사한 웃음이 마치 햇살처럼 싱그럽고 환했다.
“누군가에게 반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나는 이미 반해 버렸고, 이 사랑스러움을 알아 버린 이상 어쩔 수 없어졌어요.”
6년. 무려 6년간 클로드를 생각하며 암브로시아의 저주를 끝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미친 듯이 아이와 암브로시아만을 생각해 온 것은 맞았다.
그때 클로드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죄책감에 깊은 안쓰러움을 느꼈던 것은 맞았지만.
진짜 클로드에게 사랑에 빠진 것은 처음 아이를 만나고 눈물 젖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했을 때였다.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가 내 눈앞에 있었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빠져드는 수밖에 없지요.”
사라의 대답을 들은 클로드의 눈에 커다란 기쁨이 가득 차 흘러넘쳤다. 그 커다란 눈망울에 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에 입을 맞추며 사라는 말을 이었다.
“굳이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나도 모르게 흘러가 있는걸요. 저는 그걸 빠르게 인정했을 뿐이에요.”
“…….”
“그러니 공작님께서도 마음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라의 말에 에단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습관처럼 좁혀진 그의 미간을 보며 사라는 잠시 그녀가 너무 클로드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라며 강요를 한 건 아닐까 고민했다.
아직은 어색할 부자 관계를 생각하며 사라가 너무 이른 말이었다며 사과를 하려고 할 때였다.
“사라는 정말 나와 클로드에게 기적과도 같은 사람이군요.”
하, 하고 짧게 웃으며 내뱉는 에단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사라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웃었다.’
에단 암브로시아가 웃었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며 얼음처럼 차갑게 다문 입가에 봄 햇살과 같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뿐만 아니라 늘 형형하게 빛나던 그의 군청색 눈동자에 따스한 온기가 맴돌았고, 휘어지는 눈매를 따라 광채가 빛났다.
그가 사라의 앞에서 처음 웃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끔 예의상 웃어 주거나 한쪽 입꼬리에 걸친 미소 정도는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라는 그가 그녀에게 진심으로 웃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웃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아 버린 사라가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깜빡였다.
에단의 그 환했던 미소는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사라의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박혀 버렸다.
‘이건 반칙이잖아. 클로드 님이 내게 이름을 불러 줬을 때만큼 기뻐.’
아닌 척하여도 그녀를 경계하는 것을 늦추지 않았던 에단이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준 것만 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이 잠깐이나마 제 속내를 보여 준 것만 같아서 사라의 두 뺨에 열이 살짝 올랐다.
“그래서, 공작님. 1황자 측이 어떻게 됐는지는 안 알려 주실 거예요? 설마 암브로시아 공작님께서 제가 잠들었던 5일을 그냥 날려 버리신 건 아니겠죠?”
괜히 말을 돌리는 사라의 물음에 에단은 자잘한 상념은 넘겨 버렸는지 여유를 되찾은 얼굴로 말했다.
“벌룬 후작이 많이 애썼지만, 1황자의 황위 계승권 박탈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저런, 1황자께서 상심이 크시겠어요.”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면서도 사라의 목소리에선 미처 감추지 못한 놀라움이 묻어 나왔다.
1황자의 광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 사라와 클로드에게 칼을 휘두르려 했던 사건은 몇 달 자숙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위 계승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암브로시아 공작이 그것을 황위 계승권 박탈까지 끌고 갔다니, 이건 보통 능력으로는 만들지 못할 성과였다.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되었어요?”
“그저 폐하께 개인적으로 충언을 몇 마디 했을 뿐입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폐하께서 당신의 기분을 살피시기에,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전해 드렸을 뿐입니다.”
교묘하게 사실을 숨기면서도 교묘하게 진실을 말한다.
사라는 에단 암브로시아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황제는 겨우 1황자의 칼질에 사라가 큰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에단 암브로시아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5일 동안 잠들 정도의 타격을 받았으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황제는 사라가 1황자에게 분노하고 있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절 파신 건가요?”
“황제가 죽고 난 뒤 대마법사의 분노가 제국을 향하게 해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에단은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황제가 곧 제국임을 황제에게 넌지시 알려 줬을 뿐입니다. 이를 해석하는 것은 황제일 뿐, 제 일은 아니죠.”
“와, 나빴다 정말. 제가 그렇게 화가 많은 사람은 또 아니거든요.”
“황제가 그리 여기는 걸 정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무서워.”
“칭찬이라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사라는 결국 고개를 내저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로써 1황자는 황위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황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 말이다.
“그럼 1황자는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사라의 물음에 에단의 입가에 또 다른 미소가 떠올랐다.
분명 아까와는 다른, 완전히 다른 의미를 담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