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8화
“혹시 스승님과 친한 사람들이 있었나요? 죄송해요, 제가 그걸 파악하지 못했어요. 다음에는 스승님의 친구들은 피해서…….”
“올리븐.”
사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디서부터 저 아이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저 사고방식은 위험했다.
“내가 널 너무 마탑에 가둬 놨구나.”
사라는 무섭게 얼굴을 굳히며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마탑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가렸을 때와 달리 지금은 스승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 다 알 수 있어 그는 너무나 낯설었다.
스승이 제게 이렇게 냉정할 리가 없었다.
“저 미워하지 마세요. 미워하지 마세요, 스승님……!”
그대로 뒤를 돌아 방을 나가려는 사라를 다급하게 잡았다.
하지만 사라는 매정하게 그의 손을 쳐 내 버렸다.
그러자 올리븐은 새파랗게 질린 채 그 자리에 박힌 것처럼 굳어 버렸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스승님. 잘못했어요…….”
올리븐은 더는 그녀를 잡지 못한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가 쳐 낸 손이 화끈하게 아파 왔다. 너무나 지독하게.
사라가 마침내 밀실의 문고리를 잡았을 때 그는 이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던 사라는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뒤를 돌아 올리븐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제자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왔다.
“너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있니?”
“스승님이요.”
“그 외에는?”
“벨루나, 벤야민…….”
“그게 끝이야?”
“네.”
“그럼 나와 벨루나, 그리고 벤야민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
계속된 사라의 질문에 올리븐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뭘 물어보시는지 모르겠어요, 스승님. 제가,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죠? 어떻게 대답을 해야 스승님이…….”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정해진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그럼요?”
“네가 옳은 생각을 가지고 옳은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
사라의 말에도 여전히 올리븐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올리븐은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무엇을 하나 알려 주면 열을 알았다.
상황 파악이 빨랐고, 벤야민이나 벨루나의 심기를 잘 살필 줄도 알았다.
궁금한 것도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사라는 온종일 쏟아지는 올리븐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다가 날을 샌 적도 있었다.
그녀의 제자들 중 유일하게 유들유들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탑에서는 올리븐을 귀여워하는 마법사들도 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대하는 올리븐의 방식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올리븐.”
“네, 스승님.”
“네가 한 짓으로 다른 사람이 다치고 죽었더라면 널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다친 건 나니까, 널 용서할게.”
“어째서, 어째서요? 스승님을 다치게 한 일이 더 용서받지 못할 짓이잖아요.”
“궁금하니?”
“……네.”
사라는 올리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쓸어 주며 말했다.
“그걸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네.”
그는 사라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용서받았다는 생각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과 얘기가 끝나는 대로 너희들을 전부 다 돌려보낼 거야. 그전까지 이유를 알아내면 좋겠구나.”
“……정말 보내실 거예요?”
“그래. 굳이 마탑에 가기 싫다면 여행을 다녀 보는 건 어떠니?”
“전 스승님의 옆에 있고 싶어요.”
“그건 안 돼.”
올리븐은 단호한 스승에게 절망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더 떼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올리븐을 보며 그의 스승은 또 한 번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우선 네가 저지른 일을 수습해 준 공작님과, 너 때문에 놀란 클로드 님에게 사과하고 와.”
“……네.”
스승님을 빼앗아 간 암브로시아 부자 따위 그의 알 바가 아니었지만, 올리븐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올리븐이 밀실 밖으로 나온 건 사라가 나간 뒤로 반나절이나 지난 후였다.
스승의 말을 따르기 전에 마음의 결심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헛것이 보이네.”
힘들게 밀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올리븐은 퉁퉁 부은 눈을 힘겹게 끔뻑이다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지만 눈앞의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였다.
“거기가 아니고, 여기, 네 여기요! 아니지! 거기가 아니지! 몇 번을 말해요?”
“꺄, 벨루나 님 멋져!”
“벤야민 님! 거기 아니라니까요!”
“벨루나 님 이겨라! 루브르 경 반칙 쓰지 마요!”
“화병은 그냥 제가 손으로 옮길……! 아, 깨 버리셨네. 변상해 주세요, 벤야민 님.”
“벨루나 님, 제 손수건을 받아 주세요!”
그는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눈만 끔뻑였다.
벨루나는 암브로시아 기사단을 상대로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었고, 벤야민은 마법으로 공중에 띄운 상자들을 암브로시아 사용인들의 지시에 맞춰서 열심히 옮기고 있었다.
“벨루나 님! 사랑해요!”
“저랑 결혼해 주세요!”
연무장에는 벨루나의 대련을 구경 온 사용인들과 기사들로 북적북적했다.
벨루나는 질끈 묶은 은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마력으로 만든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기사들을 상대로 꽤나 잘 버텨 주고 있었다.
평생 검을 수련해 온 기사들을 상대로 어째서 벨루나가 저렇게 대련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려는 찰나.
쾅!
뒤로 밀리는 순간 벨루나는 마력 검에서 마력을 폭파시켜 거리를 순식간에 벌렸다.
“……대단한데.”
올리븐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사용인들과 기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잘한다!”
“어이, 루브르! 너 이 자식, 지면 주군과 일대일로 대련할 줄 알아!”
기사들은 벨루나에게 쉴 틈을 내준 동료에게 장난스럽게 야유를 하면서도 냉철한 눈으로 대련을 지켜보았다.
지난번 황궁에서 벤야민에게 당한 것이 분했는지 벨루나에게서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대체 왜 저걸 상대해 주고 있는 거지?”
순전히 검만을 사용한다면 기사들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틈틈이 적당한 마법을 사용해 가면서 대련을 이어 가는 벨루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올리븐은 벨루나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연무장 옆에서 기사단에 필요한 짐들을 나르는 벤야민을 바라보았다.
“저건 또 뭐야.”
저기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벤야민은 마법으로 빨랫감은 물론이고 각종 상자들을 한 번에 나르고 있었는데,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종자들은 이번 기회를 아주 잘 활용하려는지 이참에 기사단 숙소까지 뒤엎고 있었다.
“쟤까지 왜 저러는 거야.”
기사단 휴게실 소파까지 벤야민의 마력으로 감싸져 둥둥 떠다니는 걸 본 올리븐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벤야민 님! 저건 저기 놓으면 안 된다니까요!”
“어어어, 저거 부수면 안 돼요! 악!”
“으아아아! 살살 놓으셔야죠!”
파괴적인 마법에 뛰어난 벤야민은 이런 실생활에 필요한 마법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큰 물건은 쓱쓱 옮기는 주제에 아주 작고 소중한 것들은 힘 조절을 잘못한 탓에 콰직, 빠직 잘도 부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해 보겠다.”
“못 하겠으면 안 하셔도 돼요, 아무도 벤야민 님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요.”
“할 수 있어.”
벤야민은 포기하지 않고 또 물건을 옮기는 데 집중했다.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옮겨야 하는 것을 마법으로 가뿐하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종자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격려했다.
“…….”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올리븐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