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7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7화
다음은 벤야민의 차례였지만, 사라는 그에 대해 에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밀실에서 올리븐이 배가 고프다며 난리를 치고 있다고 베론이 전해 왔기 때문이었다.
‘창피해…….’
제자의 추태야 이미 황궁에서 사고를 쳤을 때 많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가 봐야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론이 열어 준 문으로 서둘러 나갔다.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던 에단은 베론에게 물었다.
“클로드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지금 수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잠깐 가 봐야겠다.”
클로드에게 간다는 소리에 베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베론을 보며 에단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드님과 상의할 게 있어.”
* * *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사라가 음식을 가지고 밀실로 내려갔을 때 올리븐은 바닥에 엎드린 채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마력으로 글씨까지 써 놓았다.
[범인은 벤야민.]초록색으로 빛나는 마력으로 선명하게 쓰인 글씨를 읽으며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올리븐.”
“스승니임.”
사라의 목소리에 올리븐은 파들파들 떨리는 고개를 들어 간절하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처연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배가 고파요…….”
그러다 힘없이 손을 툭 떨어뜨리며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하.”
사라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올리븐의 앞에 맑은 수프를 내려놓았다.
“헉, 밥이다!”
그러자 고개를 번쩍 든 올리븐이 수프 그릇을 잡더니 스푼은 내팽개치고 입술을 대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며칠은 굶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정말 굶은 건 맞았지만.
그래도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회복 마법을 써 주었던 사라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황궁에 그 마력석을 흘린 거니?”
“쿨럭, 쿨럭!”
대뜸 묻는 사라의 말에 올리븐은 사레라도 들린 것처럼 연신 기침을 했다.
여태까지 보인 쇼가 전부 그 질문 하나를 피하기 위함이었는데, 정곡을 찔린 것이다.
“그게…….”
“머리 굴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올리븐.”
봐주지 않겠다는 듯 엄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그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올리븐은 울먹울먹한 시선으로 사라를 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스승님. 로브만 입어 주시면, 아니다 말씀만 글씨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무섭고 낯설어요.”
“네 스승이 그리운 거면 마탑으로 돌아가.”
“스승님!”
그는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이렇게 차갑지 않았잖아요, 저한테 늘 다정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그건 네가 내 자랑일 때의 이야기였단다.”
“지금은 제가 스승님의 자랑이 아닌가요?”
올리븐의 말에 사라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으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올리븐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녀는 다정히 말했다.
“너는 내 첫 번째 제자였고, 내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올리븐은 그녀의 손에 제 뺨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스승의 손길에 그는 기분이 좋았는지 굳었던 얼굴이 뭉근하게 풀어졌다.
“그러니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사라는 매정하게 손을 거뒀다.
순식간에 스승의 온기가 사라지자 올리븐은 길 잃은 강아지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1황자에게 접근해 그 힘을 찾아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스승님…….”
“그걸 이용해서 모습을 감춘 나를 찾아낼 생각에 기뻤니?”
“…….”
사라의 질문이 이어질수록 세차게 흔들리던 올리븐의 눈동자가 점차 짙게 가라앉았다.
“너는 이상하리만치 강해지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 벤야민과 벨루나와는 달랐어.”
미친 듯이 강해지는 데 파고들던 벨루나와 벤야민과는 달리 올리븐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마법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에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으로 더 멀리 가는 법. 마력석에 다양한 마법을 담는 법. 은밀하게 모습을 숨기는 마법. 목소리가 안 나오게 하는 마법.
올리븐은 그런 것에 병적으로 파고드는 면이 있었다.
전에 사라는 올리븐에게 왜 그런 것에만 관심을 갖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올리븐은 이렇게 말했었다.
‘원하는 건 쉽게 손에 안 들어오잖아요. 그럴 때는 수단과 방법을 늘리면 돼요.’
그때 눈을 빛내던 올리븐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올리븐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네 수단과 방법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조차 가리지 않는다는 걸 일찍 알았으면, 널 아끼지 않았을 거야.”
“스승님!”
올리븐은 다급하게 사라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곤 횡설수설하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스승님. 절대 해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황궁에서 그 마력석을 흘린 건 스승님이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스승님이 그걸 발견하면 치우려고 하실 테니까, 그럼 누가 스승님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럼 그걸 왜 3황자에게 흘렸어?”
사라의 물음에 올리븐의 얼굴은 순식간에 희게 질렸다.
“네 스승이 사라 밀런이라는 걸 1황자를 통해 확신했으면서, 굳이 내가 휴게실에 가고 없을 때를 노렸잖아. 그 마력석을 확인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
“…….”
굳게 다문 올리븐의 입술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사라는 저 아이가 저런 얼굴을 했을 때를 알고 있었다.
버림받을까 봐, 버려질까 봐.
집시 무리에서 태어나 부모가 죽자 인적이 드문 숲에 버려졌던 아이였다.
짐승의 특성을 외우고 연구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적으로 만나며 살아남았던 아이였다.
그만큼 머리가 좋았고 재능도 있었다. 저 아이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던 재능에 끌려 사라가 그 숲을 찾았을 정도로.
사라와 마탑에서 생활하게 된 올리븐은 온전히 안심하기 전까지 내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이상 더 내 입으로 얘기해야 솔직해질 생각이니? 올리븐.”
사라의 재촉에 올리븐은 아주 오랜만에 사람의 언어를 뱉어 봤던 그때처럼 힘겹게 대답했다.
“말없이 사라진 스승님이 나빠요. 우리를 밀어낸 스승님이 나빴어요.”
스승이 연구하던 힘이 누군가를 위한 것임은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힘을 봉인하고 억누르고 더 이상 키우지 않고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서서히 지워 나갈 수 있는 방법.
이 힘을 가진 자를 보호하려는 연구였다.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이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구지? 누가 스승님을 필요로 하는 거야?’
계속해서 마탑 밖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던 스승의 모습을 보니 싫어도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 힘을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마탑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올리븐은 스승이 자신을 필요로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온 힘을 다해 스승과 함께 힘을 연구했다.
언젠가 이 연구 결과를 사용해야 할 때가 오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할 수 있도록.
하지만 스승은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은 채 떠났다.
그러니 올리븐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힘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으면 했어요. 제국의 황자라도 죽어 주면 대륙의 공적이 되는 건 순식간이겠죠. 그럼 스승님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고 혼자서는 버거우실 테니까 우리가 다시 필요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올리븐.”
“그런데 스승님이, 스승님이 다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스승님을 해치려던 게 아니에요. 죄송해요…….”
올리븐의 말에 사라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지금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너 설마 지금 내가 다쳐서 화를 냈다고 생각하는 거니?”
“……아니에요?”
그는 천진한 눈을 하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힘을 풀어놓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라가 그것에 대해 화를 낼 거라는 생각 또한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너무 뒤늦게 눈치챈 사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