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2)
162 선물 교환식
친목 다지기 겸 공장 견학의 자리였던 난퉁전기 방문이 협상의 자리로 바뀌었다.
난퉁전기 양푸첸 종징리가 코일 품질에 자신감을 보인 만큼, 가격만 매력적이라면 수입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따지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지. 바로 본론이다.
“우리나라 제품들이 0.1미리 단위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
“수출하려고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네?”
“네, 그런 것 같아요. 말을 많이 하는데, 최대한 줄여서 통역할게요. 쓸데없는 말도 많아서요.”
“그래. 잘하고 있어. 핵심만 잘 전달하는 것도 능력이야.”
유민희가 부지런히 통역을 하는데, 그것도 많이 줄인 것이란다.
어쩐지 양 종이 말한 것에 절반 정도밖에 전달을 안 하더라. 우직하게 토씨 하나 안 빼먹고 다 통역했다면, 내가 듣다가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양 종도 참 말 많네.
“아무튼, 양 종징리 말이 우리나라처럼 가격을 세분하지 않고, 1미리 단위로 책정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것이랍니다.”
양 종이 종이 하나를 내민다. 단가표?
“이게 현재 중국 업체에 납품하는 단가인데, 사장님께는 이 단가에서 10프로씩 빼 주겠답니다.”
어디 보자. 내 암산 실력을 믿고 빨리 계산하자. 이 가격에 170을 곱하면? 오호, 가격 한번 섹시하네. 못해도 kg당 700원, 많이 남는 것은 1,500원가량 저렴하다.
예상보다 더 낮은 가격에 애국심이고 IMF고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회사 변압기에 전량 사용하고 싶을 정도다. 변압기 마진 2~3퍼센트가 떨어지는데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 회사 한 달 코일 사용량이 700톤가량 되는데, 공급에는 차질이 없습니까?”
양 종의 자신감 넘치던 표정이 환희로 바뀐다. 우리 회사 물량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콤한 돈 냄새에 이성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몰퍼스메탈 수입량만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많을지 몰랐답니다. 난퉁전기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품에 차질 없도록 하겠답니다.”
양 종이 어떻게든 나에게 코일을 팔겠다는 의지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품질이 국산과 차이 없고, 가격도 싸고. 이제 얘기할 것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조율뿐이다.
“좋습니다. 귀국하면 바로 발주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양 종은 이미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표정이다.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뜻이로군.
“여기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님께 한국 총판 자격을 주세요. 우리 회사가 매번 직접 연락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난퉁전기도 발주 물량만 납품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중간에서 조율해 줄 역할이 필요합니다.”
“아이고, 사장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코일까지 유통을 맡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김 사장에게 난퉁전기 한국 총판을 맡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더니, 양 종이 말도 꺼내기 전에 김 사장이 마다한다.
도대체 왜? 우리 회사 같은 확실한 판매처가 있는 상황에서 총판을 맡게 되면 땅 짚고 헤엄치기일 텐데?
“윈-윈 하겠다는 취지로 제안한 것인데, 왜 마다하십니까?”
“당연히 저야 좋죠. 그런데 제가 자금적으로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저도 장기적으로는 난퉁전기 총판을 맡아서 국내에서 판로를 넓히고 싶은데, 제가 아직 그만한 역량이 없습니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 마세요. 저는 투자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적극 도와 드릴 테니까 이번 기회에 회사 한번 키워 보시죠.”
“아이고, 아이고. 이거 제가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합니까?”
“사장님 덕분에 재미 많이 보고 있으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하하.”
나와 김 사장의 만담에 양 종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민희가 이 상황을 부지런히 전달한다.
상황을 파악한 양 종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쏟아 냈다. 김 사장을 쳐다보며 고개도 끄덕인다. 좋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찾아왔다.
“사장님, 양 종징리가 김 사장님과 총판 계약 체결할 생각이었는데, 때맞춰 잘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판로를 넓혀 준다는 전제로 김 사장님을 재무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 도와주겠답니다.”
“하오하오! 우리 양 종은 호인입니다. 하하.”
나도 도와주고 양 종도 도와주겠다고 하니, 김 사장은 꽃놀이패를 쥔 격이다.
오랜 세월 한-중을 오가며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라면 성과를 받아야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 나에게 재미를 안기라는 뜻으로 내리는 채찍질이니 너무 기뻐만 하지는 말길.
“김 사장님. 난퉁전기 코일 수입 시작하면 전기연구원 시험 의뢰해서 대한전력에 제품 등록부터 하시죠. 대한전력에 등록되면 그 자체로 품질이 보증된다는 것이니까 판로가 넓어질 것입니다.”
“그렇군요. 귀국하자마자 그 부분부터 해결하겠습니다.”
“제가 영업적으로도 많이 도와 드릴 테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당장 창고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우리 관계 회사 중에 도연테크라고 있는데, 거기 박민창 사장님이 코일 쪽으로 영업 아주 잘하십니다. 귀국하면 자리 한번 마련해 드릴 테니까 얘기 잘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총판 하고, 그분이 대리점 하면 되겠네요. 하하.”
김 사장과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는데, 어디선가 씩씩거리는 소리가 난다. 민희가 급히 상황을 전달한다.
“사장님, 저…….”
“응? 양 종 삐쳤어?”
“네, 네. 두 명은 한국 돌아가면 많이 얘기할 텐데, 왜 여기서 둘이만 얘기하냐고 뭐라고 하네요. 농담식으로 얘기한 거니까 크게 개의치는 마세요.”
“하하. 김 사장님. 우리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기서는 양 종이랑 얘기 많이 하시죠.”
다시 대화 주제가 세 사장의 띄워 주기로 옮겨졌다. 양 종의 회사 자랑이 나오면 나와 김 사장은 대단하다를 연발한다. 양 종은 화통한 웃음으로 답한다.
“양 종징리가 볼트, 너트는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그런 것까지 생산하는 거야? 진짜 안 하는 것이 없네.”
“거래하는 업체에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서 시작했는데, 사장님께서 구매 의사가 있다고 하면 아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합니다. 참, 용접봉도 있대요.”
변압기 만드는 것 빼고는 다 한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가격만 좋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볼트 같은 소모품은 가격으로 치면 개당 100원도 안 한다. 변압기 1대에 들어가는 볼트, 너트, 와셔 등을 따지면 만 원 남짓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연간 20만 대가량 만든다고 생각하면 20억 원이 넘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꽤 높은 태산이다.
“가격과 품질이 만족스럽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품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요. 불량이 생긴다면 손해액 전부를 배상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자신 있으니 믿고 써도 된다고 하고, 단가도 아주 만족할 것이라고 하네요.”
양 종이 민희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볼트, 너트, 와셔의 규격별 단가표였다. 이 많은 규격 중 생각나는 것만 살펴봤다.
가장 많이 쓰는 볼트 규격인 M12에 40미리. 툭하면 없다고 한밤중이고 주말이고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난리쳤던 그 규격. 씩씩거리면서 회사 가면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그 규격.
10개에 3위안이면, 얼마냐? 어휴, 국산의 반값도 안 되네. 운반비 감안해도 무지막지하게 싸다.
이 가격에 만들어 내는 중국의 엄청난 가격 경쟁력에 놀랍고, 우리나라 볼트 공장은 다 망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김 사장이 궁금함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품목이 늘어나면 좋은 일이니 궁금하겠지.
“사장님, 가격은 어떻습니까?”
“국산의 반값 수준밖에 안 되네요. 이렇게 싸게 만들고도 이윤이 남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술력이 있어야 만드는 제품은 인건비가 예전 같지 않지만, 볼트나 너트처럼 단순 가공은 아직도 인건비가 말도 안 되게 싸죠.”
“운임도 거의 안 들 거니까 맘 편히 수입하시죠? 국산의 절반 가격이라면 우리나라 업체들이 별의별 수를 써도 못 맞춥니다. 이렇게 인건비 경쟁하는 품목은 이제 경쟁력이 없다고 봐야죠.”
“운임이 거의 안 든다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볼트처럼 작은 것들은 컨테이너 채우려면 양이 엄청 많아지지 않습니까? LCL로 하자니 운임이 부담이고 말이죠.”
이제는 운만 띄워도 알겠다. 컨테이너 채울 필요 없이 코일 수입할 때 빈자리에 채워서 오면 된다 이거군?
“꼽사리로 싣고 오면 된다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 절연지는 공간이 안 남고, 아몰퍼스메탈은 중량이 걸리는데, 코일이야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나와 김 사장 대화를 전달받은 양 종이 다시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양 종징리가 그 생각으로 볼트 수입을 권한 것이라고 합니다. 코일 보낼 때마다 소량으로 보내면 서로 좋다고 하네요. 그리고 양 종징리가 사장님께는 이 단가보다 10프로씩 할인된 가격을 적용하겠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군. 지금 쓰는 것에 반값이면 1년에 10억 원 넘는 돈을 아낄 수 있다. 이런 게 무역의 힘이란 말인가?
“좋습니다. 김 사장님! 이것도 사장님께서 맡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볼트 같은 소모품들이야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해 드려야죠. 하하.”
오늘도 선물 두둑하게 챙겨 가네. 오늘 받은 선물로 마진이 못해도 3퍼센트가량 높아졌다. 안 그래도 좋은 마진이 더 좋아지게 생겼다.
나만 좋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 양 종은 매출 증대는 물론, 수출 보조금을 넉넉하게 챙길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김 사장은 사업 확대로 이미 얼굴로 기분 좋음을 표시하고 있다.
김 사장이 기분 좋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협상이 제로섬 게임인 양 상대가 죽어야 내가 이득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무역은 더 그렇죠. 윈-윈이 가능한 거래가 무역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면, 수출은 좋은 것, 수입은 안 좋은 것이라고 배워만 오다 보니 중간재나 완제품 수입을 저도 모르게 꺼렸던 것 같네요. 이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하하.”
“그건 저희 세대 때나 배웠던 것들인데, 사장님은 생각보다 올드하십니다. 하하.”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는 분명히 무역의 중요성에 대해 잘 나와 있었다. 근데 그걸 가르치는 선생이 꼭 사족을 달았다.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해서 나라가 망할 뻔했다, 국산품 애용하는 것이 살길이다 등등 말이다.
남동공단을 둘러보면 이걸 과연 국산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아할 때가 많다.
중국산 철 수입해 볼트, 너트를 만드는데, 설비는 일본산이고, 만드는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다. 외국인 노동자도 인건비 줄이려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
허울만 국산을 뒤집어쓴 제품 비싸게 살 바엔 중국산 싸게 들여오는 것이 천 번 만 번 낫다. 싸게 수입한 자재로 변압기 싸게 만들어 중국에 팔아 돈 버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일 테지. 하여간 옛날 교육 현장에 있는 선생들, 팰 줄만 알지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것이 없었단 말이야.
화기애애한 선물 교환식이 끝났다. 공장 견학도 연기력 충만한 감탄사를 남발하며 잘 마무리했다.
“이제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 오늘은 양 사장이 거하게 쏠 거니까 맘 편히 배부르게 드시죠.”
“양 종 덕분에 제가 재미를 많이 봤는데, 제가 사례해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안 그러셔도 됩니다. 양 사장 돈 많은 분이에요. 그 많은 돈을 사장님 덕분에 벌었으니, 사장님께서는 그저 젓가락만 분주히 움직이면 됩니다.”
난퉁전기와 거래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내가 무슨 돈을 벌게 해 줬다는 것인지 원. 허풍스러운 아부였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나름 거물로 성장했으니 이 정도 아부는 일상으로 받아들여야지.
“양 종징리가 김 사장님 말씀이 맞다고 합니다. 손님 대접 제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민희가 전한 양 종의 말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대한 만찬과 이어진 술자리. 그날 난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술을 최대한 자제했다. 묵주기도 하러 호텔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