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3)
163 삽질
돌아오는 비행기는 인천행 코리아나항공이었다. 국적기, 국적기 하는 이유를 알겠다.
“동방항공 기내식은 밥도 아니었네요.”
“하하. 저도 비행기 많이 타 봤지만, 코리아나항공 기내식이 제일 낫더라구요.”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굳이 나와 함께 귀국하겠다고 같은 비행기를 탔다. 고객 응대가 최고인 사람이다. 영업적인 냄새 하나 없는 모습이 더없이 맘에 든다.
본인 사업이 아닌 월급쟁이였다면 영입하고 싶을 정도다. 뭐, 뭐든 다 가질 수 없는 법이겠지. 좋은 관계 유지하며 서로의 회사 키워 가는 것이 제일 좋겠지.
“사장님, 근데 김포는 무슨 일로 가시는지 여쭤 봐도 됩니까?”
이미 물어봐 놓고 질문을 허락 맡는 이상한 말이 은근 웃기다. 관용적으로 쓰지만, 따지고 보면 우스운 말이 참 많다. 머리 잘랐냐느니, 문 닫고 들어오라느니 하는 말 말이다.
“김포 하성 쪽에 있는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어서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갑니다.”
“네? 보물요?”
김 사장 표정이 ‘이놈 뭐 하는 놈이야’라고 말해 준다. 기내식 접시에 담긴 새우 하나 집어서 먹는 것이 음식에 약이 타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하하. 제가 저번에 변압기 수출 때문에 난징이랑 전장을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네, 그러셨죠. 그거랑 보물이랑……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김 사장에게 적당히 가감해 보물찾기를 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해 줬다. 내가 또라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려 줬다.
“그게 진짭니까?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데요? 뭐 만날 분을 조사하다가 유해가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묻힌 장소까지 알고 계신다는 것이 저로서는…….”
“하하. 사장님은 우리 회사가 창립한 지 2년도 안 됐다는 사실이 믿기십니까?”
“저야 계속 지켜봐 왔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죠.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생각해 보면 믿기 힘든 일이었죠.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군요.”
“하긴 뭐, 사장님께서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자신 있게 말씀하셨겠죠.”
김 사장이 납득은 안 가지만 믿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65년 전 김포 어딘가에 묻힌 중국군 유해를 찾겠다는 것이 창립 2년 만에 매출 2천억 원짜리 회사를 세우겠다는 것보다 더 믿을 만한 얘기일 테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운동 삼아 등산도 할 겸 말이죠.”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김 사장이 의외로 반기는 표정이다. 나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건가? 취향은 존중하지만,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는데…….
“전에 한 부장님이랑 식사하다가, 회사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클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한 부장님이 그러더라구요.”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네요. 뭐 별건 없죠. 대한전력 덕분이라고 했겠죠.”
“아니요. 대한전력이 2할이고, 직원들 고생하는 것이 2할이고, 나머지는 전부 사장님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덕준이 이 자식. 나한테 확실히 감화됐군. 그래도 8할 정도라고 할 줄 알았는데, 6할이라고 해서 좀 섭섭한데?
“하하. 저야 뭐 직원들이 차려 놓은 밥상 받아서 신 나게 먹는 것 말고는 한 게 없습니다.”
“한 부장님이 그렇게 얘기할 거라고도 하더라구요. 하하. 가끔씩 무리하다 싶은 지시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게 대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덕준이는 나를 너무 잘 알아. 이제 예의상 내뱉은 겸손의 말도 줄여야겠다.
“이런 말씀은 좀 그런데, 신기 들린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게 어떤 모습인가 궁금했는데, 오늘 제가 관찰 좀 하겠습니다. 하하.”
나도 그렇지만, 모든 사장들이 그럴 것이다. 잘나가는 회사를 보면서 그 비결이 뭔지 알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안성파워, 금성전기가 어떻게 존경받는 회사로 성장했는지 꾸준히 관찰했고, 난퉁전기 방문해서 양푸첸 종징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김 사장도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비결을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수다.
나를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덕준이도 그저 신기 있다는 농담 섞인 말로 이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우리 회사의 급성장 비결을 알고 싶다면, 스팸 문자도 소중히 생각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을 뿐이다.
“제가 봤을 때는 사장님께서도 매사에 열심히 하시면서 회사 부지런히 키우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야 프라임일렉트릭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죠. 그마저도 사장님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앞으로 사장님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많이 배울 생각입니다.”
아부는 여전하다. 하긴 뭐 나도 문자님 없었다면, 돈 많으면 다 형님이라는 일념으로 잘나가는 회사 사장들 쫓아다녔을 것 같긴 하다.
“저야 제조업이고, 사장님은 물류라서 도움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회사 경영의 본질은 똑같죠.”
“저는 처음에 좋은 직원들 있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경험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군요.”
말 나온 김에 하는 소리에 김 사장이 초집중하는 자세로 귀를 쫑긋 세운다. 이 양반도 참. 내 말이 진리도 아닐 건데, 침 삼키는 소리까지 내면, 부담되잖아.
“능력 있는 직원만으로는 어렵다 그 말씀이신가요?”
“아니죠. 능력 있는 직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장이 아무리 용 써도 직원들 뒷받침 없이는 한계가 있죠.”
“그렇죠. 근데 좋은 직원이 있어도 아니란 말씀은?”
“좋은 직원이라는 것이 딱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능력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 주고, 후하게 대우해 주니까 그냥 그랬던 직원들도 능력 있는 직원으로 바뀌더라구요. 이게 좀 말장난 같죠?”
“아닙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 딜레마랄까요? 그런 게 있더군요.”
“딜레마요?”
“결국은 돈 아닙니까? 직원들 대우 잘해 주고 싶죠. 그런데 회사가 돈을 잘 벌어야 그렇게 해 주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이게 아다리가 딱딱 맞아서 잘 풀리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회사 문 닫는 거 금방이죠.”
김 사장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어찌 그 맘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우리 회사 성장 비결은 문자님 때문이라고 속으로 소리치고 있는 것이지. 문자님이 없는 당신은 절충점을 찾기 위해 밤잠 설쳐 가며 고민하는 수밖에 없겠지.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 고민 조금이라도 덜게 많이 도와 드리려고 합니다. 사장님께서 좋은 회사 만드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회사는 프라임일렉트릭 없으면 안 됩니다. 제가 열심히 할 테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결국은 낯 간지러운 말로 마무리가 되는군. 아부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음흉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김 사장한테서는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부이지만, 아부가 아닌 진심이라는 느낌이다.
김 사장과 혈맹이라도 맺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표현하기 어려운 메스꺼운 느낌이 착륙했음을 알려 준다.
“차 렌트해서 갈 건데, 시간 괜찮으시죠?”
“그럼요. 성공한 사업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까울 리 있겠습니까?”
타고난 아부꾼을 데리고 문자님이 점지해 준 김포시 하성면에 위치한 봉성산으로 차를 끌었다. 수다 떨면서 가다 보면 1시간 금방이겠지.
“사장님은 김포 가 보셨습니까?”
“김포하면 제가 할 얘기가 많죠. 제가 17사 나오지 않았습니까?”
김포 진입한 김에 지역 얘기를 화두로 던졌더니, 김 사장이 군대 얘기로 받아 버렸다. 말 끊길 걱정은 없겠다.
“17사면 행군할 때 도로로 다닌다고 하던데요.”
“하하. 도심에 있는 부대나 그랬지, 김포 쪽은 그래도 산도 타고 그랬습니다. 저 군 생활할 때만 해도 죄다 논이었는데,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고. 진짜 천지가 개벽했네요.”
“공장도 엄청 많습니다. 김포에 변압기 관련 회사가 많아서 자주 왔었는데, 산골짜기까지 공장이 있더군요.”
“서울에 있던 공장들이 밀리고 밀려서 김포까지 온 건데, 도로도 제대로 안 돼 있고 난개발도 이런 난개발이 없죠. 일 때문에 몇 번 왔었는데, 트레일러 기사들이 김포라고 하면 치를 떨어요.”
“우리 회사는 도로 잘해 놓은 공단이라 문제없을 겁니다.”
다행히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하던 추억으로 빠지지 않은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참 더워지는 6월 하순, 그것도 하루 중 가장 뜨겁다는 오후 3시. 마을 주민들이 양복 입고 삽 한 자루 들고 산에 올라가는 두 사람을 봤다면 간첩으로 오인하고 신고할 수도 있겠다 싶다.
“사장님, 근데 유해가 묻힌 곳을 어떻게 아십니까?”
산길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숨을 헐떡이던 김 사장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냥 믿으라니깐.
“제가 나름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지인 중에 육이오 때 중국군 참전 관련해서 박사 논문 쓴 분이 있는데, 그 분께 자문을 많이 구했죠. 유해가 이 산에 묻힌 것은 확실합니다.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좁혔으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럴싸하게 포장했는데, 믿을지는 모르겠다. 굳이 믿음을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내 신기 어린 모습이나 잘 지켜보셔.
문자님이 점지해 준 GPS 좌표와 일치한 곳에 당도했다. 길도 없는 산을 30분 정도 탔더니 땀이 한가득이다. 김 사장 표정에서 이 고생을 왜 한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가 읽힌다. 나는 뭐 말동무도 하고 좋긴 했지만.
“사장님, 계약서 하나 쓰려고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조사한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국정원 같습니다.”
삽질이 힘들어질 때쯤 내 양복 상의를 들고 있던 김 사장이 말을 건네며 쉬게 해 준다.
“아무래도 중국 진출이 처음이라 조사를 많이 했죠. 유비무환이고 지피지기 백전불패 아니겠습니까?”
“철저한 준비가 대박의 비결이었나 봅니다. 하하.”
대박의 비결을 알고 싶은 저 집요한 몸부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니, 그렇게 믿게 해 두지 뭐.
“망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것이 사업 아니겠습니까? 행동은 신속히 한다고 하더라도, 판단은 신중하게 해야죠.”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발굴하셔야 하는 겁니까? 이거 너무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데요.”
“국방부 유해 발굴단에 발굴 신청을 하긴 했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신속 절차를 신청하려면 이렇게 해서 뭐라도 나와야 합니다. 당시 참전 군인 증언대로면 이 근방에 묻었다고 하니까 금방 나올 겁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유해 발굴을 위해서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일단 여기는 아닌 것 같네요. 여기서 너무 시간 보낼 수 없으니까 한두 곳만 더 파 보고 말겠습니다.”
김 사장이 따라오지 않았으면 문자님이 찍어 준 곳을 한 방에 팠을 것이다. 굳이 극적인 연출을 위해 조금 어긋난 곳을 팠더니 힘이 빠진다. 삽 살 때 곡괭이도 한 자루 살 걸 그랬나?
떨어져 썩은 나뭇잎들 사이로 피어오른 하얀 꽃 한 송이가 눈에 띈다. 저거다. 오늘은 저걸로 치겠다.
30cm 정도 파들어 가니 삽이 턱 하고 걸린다. 이렇게 금방 나오는 것인가?
젠장, 칡뿌리.
삽을 직각으로 내리치며 칡뿌리를 잘라 내고는 또 팠다. 이 정도 쳤으면 나올 때가 됐는데, 느낌이 안 오네.
십질, 아니 삽질을 열댓 번 더 했더니, 느낌이 온다. 나온다, 나온다, 나왔다! 아나스타샤.
“사장님, 헝겊 같은 게 나온 것 같은데요?”
“여기 왠지 묻혀 있을 것 같네요.”
삽으로 살살 긁어 대니 천 쪼가리가 자태를 드러냈다. 오랜 세월을 썩지도 않고 잘 버텨 주었구나. 힘내서 삽질에 박차를 가했다. 뼈 하나만 나와라. 그럼 게임 끝이다.
발로 삽을 밟아 밀어 넣는데, 뭔가 걸렸다. 칡뿌리 말고는 쉽게 파였던 땅이었기에 돌덩이는 아닐 것이다. 옳거니!
삽이 붓인 양 흙을 살살 걷어 냈다. 흙이 사라질수록 누리끼리 하면서도 희멀건 색이 도드라진다. 뼈가 확실하렸다!
“사장님! 저건 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 보이죠? 역시 여기 묻힌 것이 맞나 봅니다.”
“이야, 이거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증언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도 생각도 못했우. 문자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구멍을 다시 메웠다. 건재상에서 산 바인더 끈으로 표시까지 확실하게 해 놨으니, 이제 하산이다. 유해 발굴단 재촉할 일만 남았다.
“사장님, 괜히 저 따라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까 보니까 여기가 전류리 포구 근방이던데, 포구 가서 갓 잡은 해산물 한 그릇 하시죠?”
“제가 뭐 한 일이 있습니까? 그냥 사장님 옷 들어 드리고 구경만 했을 뿐인데요.”
“저 힘들지 말라고 말동무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근데 진짜, 사장님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사업 대박 내는 것은 아무나 못하나 봅니다. 하하.”
이제야 깨달았군. 문자님 없으면 안 된다니깐. 내가 거하게 살 테니 상심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