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1)
161 비결
난퉁전기의 으리으리한 사무동은 방문자들을 기죽이려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돈 자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중국 문화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죽기는커녕, 헛웃음만 나온다. 자랑할 것이 얼마나 없으면 돈 자랑을 하는가 싶다. 이걸 잘 이용해서 실속이나 든든히 챙겨야지.
난퉁전기 양푸첸 종징리가 우리를 사장실이 아닌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 역시 돈을 제대로 발라 주셨다. 자리마다 마이크와 액정이 배치돼 있고, 일명 회장님 의자가 놓여 있다. 이 정도까지 돈을 쓸 필요 없는 규모 같은데 말이다.
자리에 앉으니 빔 프로젝트가 켜졌다. 홍보 영상이라도 보여 줄 모양이다. 이건 좋아 보인다. 회사에 돈을 들인 만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가 본데,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 시청각 자료를 보여 주는 것이 맘에 든다.
“회사 소개 간략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사장님, 이 회사는 좀 괜찮은 것 같지 않아요? 전에 갔던 회사들은 말로 설명하더니, 나름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요.”
“민희 너도 잘 보고 배워. 우리 회사가 홍보나 마케팅 부서가 없으니까, 네가 고생 좀 해 줘. 우리도 손님들 오면 저렇게 뭐라도 보여 주면 좋은 것 같은데?”
“네에. 박 대리님이랑 같이 만들어 볼게요.”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을 펼친 민희를 뒤로하고 스크린에 투과되는 영상을 지켜봤다. 돈 쓴 냄새가 나는 영상. 유치한 감도 있지만, 볼만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역들과 고위직 공무원 감성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영상에서는 난퉁전기의 여러 생산품을 웅장한 음악과 함께 보여 줬다. 이것저것 많이 만드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코일뿐이다. 코일 빼고는 우리가 직접 제작하는 것들이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저 코일이 믿을 만한 것인지, 믿을 만하다면 얼마나 싸게 수입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만남의 또 다른 목적이다.
5분짜리 홍보 영상이 끝나자, 번듯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PPT를 띄워 놓고 회사 설명을 시작했다. 참 좋아 보인다. 회사에 손님이 찾아오면 비타300 한 병 내주는 것이 다였던 것이 민망할 지경이다.
“민희야, 우리도 저런 거 하나 만들어 놓으면 좋겠네. 학교 다닐 때 피피티 많이 만들어 봤지?”
“보노보노 짤 넣고 글씨 빽빽하게 아주 잘 만들죠. 헤헤.”
이 자식이. 민희 때문에 PPT를 보는데 자꾸 보노보노가 소환된다. 아나.
“난퉁전기가 코아랑 절연지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2년 전부터 코일과 시트 생산을 시작했고, 지금 판로를 넓히는 중이래요. 최근에는 부싱도 생산하고 있고요. 사장님 말씀대로 우리랑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그렇지? 정말 변압기 만드는 것 말고는 다 하는 것 같아.”
“네네, 전력 분야 최고의 기자재 업체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네요.”
“민희야, 우리 ODI랑 태인산업도 그렇게 만들 거야. 난퉁전기가 롤모델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 열심히 보고 배워. 직원들한테도 잘 알려 주고.”
제조업은 분야가 수없이 많지만, 분야마다 자기 영역이 확고하다. 진입 장벽의 높낮이 차이가 있긴 해도,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난퉁전기가 문자님 도움도 없이 영역을 넓히며 회사를 키운 것은 대단한 일이다.
“코아, 절연지, 코일, 시트, 부싱까지. 변압기에 들어가는 자재이긴 해도, 제조 관점에서 보자면 완전 다른 영역입니다. 생산 품목을 이렇게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직원 브리핑을 의젓하게 지켜보고 있던 양 종이 내 질문에 호탕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돈 많이 벌어서 회사 인수하면 된다고 합니다.”
“푸하하. 맞습니다. 그게 정답이네요.”
맞는 말인데, 이렇게 돌직구로 대답할 줄 몰랐다. 내 딴엔 성대하게 포장할 줄 알았는데 그냥 질러 버리네. 회사 성장 비결은 솔직함인가?
회사 대소사를 직원들에게 진솔하게 알리며 집단 지성의 힘을 이끈 것이 회사 성장을 이끌었다고 고백한 박준희 사장이 생각났다. 회사 일에 무슨 비밀이 그리 많던지, 꿍꿍이로 일관했던 누구와 참 비교됐었지.
“변압기 제조는 생각 없습니까? 코아 제작하실 정도면 변압기 설계도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자재로 승부를 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완성품이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래도 좋은 매물 있으면 사겠다고 하네요. 혹시 생각 있으면 합작사 하나 차리자고 합니다.”
아주 식성이 좋은 사람이로군. 화끈한 투자가 회사 성장 비결인가?
그래도 자재와 완성품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사업이라는 게 돈만 있으면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분야 간의 확연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수출입 물량이 많은 하주가 물류비 아까워 직접 물류 회사를 차리는 경우는 많지만, 성공한 사례는 없다. 해운 회사가 수직 계열화하겠다고 조선소 차리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성공한 사례는 없다.
제조 분야는 좀 다르긴 해도, 자재 회사가 완성품 시장에 뛰어들거나, 완성품 업체가 자재 쪽을 넘보는 경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양 종은 그걸 잘 알고 있고, 난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후훗.
문자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잠시 자만에 빠져 있는데, 민희가 낭랑한 목소리로 날 깨웠다.
“사장님, 양 종징리 얘기가, 우리 회사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하. 뭐 내 덕분인가. 김 사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김 사장님, 그렇죠?”
양 종의 기분 좋은 소리를 김 사장에게 토스했다. 기분 좋은 소리는 쓰리쿠션으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야.
“아휴, 뭐 저야 유통업자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장님께서 그 많은 물량 다 소화하실 정도로 회사를 키워 내셨으니 가능한 일이지요. 사장님께서 난퉁이나 우리 회사 키워 주신 겁니다. 하하.”
“사장님께서 난퉁전기 같은 좋은 회사와 연결시켜 주셨으니 자재 문제가 없었죠. 민희야, 양 종한테는 자재 발주 많이 할 테니 지금처럼 좋은 품질 잘 유지해 달라고 얘기해 줘.”
세 사장의 아가리 품앗이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친밀하지 않지만 좋은 관계이기에 나오는 말들이다. 남자들 세계에서 친밀한 사이라면 이렇게 붕붕 띄워 주는 말을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듣기 좋은 말들과 환담이 오갔다. 시원한 차를 마시고 싶은데, 중국은 죽어도 따뜻한 차만 내놓는다.
수질이 좋지 않고 기름진 음식이 많아 찬물을 절대 안 마신다고 하니 이해는 하지만, 이 더위에 뜨거운 차는 고역이다. 너무 시원해 컵이 미끄러질 정도인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몹시 마렵다.
차가 식을 때쯤 내 돈벌이를 위한 화두를 던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저 인사만 하고 가기는 아깝다.
“양 종, 알루미늄 코일 생산량과 품질은 어떻습니까?”
절연지와 아몰퍼스메탈만 수입하던 내가 알루미늄 코일을 묻자, 양 종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 돈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뛰어난 후각이 회사 성장 비결인가?
“알루미늄 코일, 양 종징리는 환선이라고 부르네요. 환선 생산을 한 지 2년밖에 안 돼서 판매처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설비를 충분히 갖춰 놔서 생산량은 언제든 크게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품질은?”
“표준, 그러니까 국가 표준, 지방 표준 둘 다 만족하고, 정기적으로 시험 의뢰해서 성적서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걱정하지 말라네요. 너무 빤한 대답 같죠?”
민희 말이 맞다. 말로는 누구나 다 품질에 아무 문제없다고 하지. 그 근거를 내놓지 않는다면 난 믿지 않을 테다.
한참을 설명하던 양 종이 직원을 급히 내보냈다.
“직원에게 공장 현장 가서 생산 중인 환선을 들고 오라고 시키네요.”
“그렇지. 실물도 보여 주고 성적서도 보여 주면서 품질에 자신 있다는 소리를 해야지. 그래도 당당한 것 보니까 진짜 자신 있는 모양이네?”
“사장님, 이번 기회에 잘 얘기하셔서 코일 수입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시죠?”
김 사장이 코일 수입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수수료로 일부 챙겨 먹겠지만, 재고 관리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참 적극적이네. 품질과 가격만 좋다면 안 살 이유가 없다. 이왕이면 김 사장 도움 받으면서 돈 벌게 해 주면 되겠군.
“꼼꼼히 살펴봐야죠. 절연지나 아몰퍼스메탈은 우리가 다시 가공해서 쓰지만, 코일은 완제품 그대로 수입해서 쓰는 것이라 품질이 보장 안 되면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변압기 만들 때 제일 많이 나오는 불량이 유도 불량인데, 대부분 코일과 시트 때문입니다. 꼼꼼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 들어 보니까 중국 내에서 6개 업체 정도가 난퉁전기 코일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품질 문제로 클레임이 들어온 적은 없다고 합니다.”
“양 종이야 당연히 그렇게 얘기하겠죠. 일단 양 종의 얘기를 더 들어 보죠.”
잠시 후 직원이 헐떡거리며 샘플 몇 개를 들고 왔다. 실물이야 아무 문제없겠지 뭐. 아닌데? 이건 너무 조악한데? 이딴 걸 보여 주면서 나한테 품질에 자신 있다고 그리 큰소리를 쳤단 말이야?
“사장님, 양 종징리가 권선 설계가 누르는 설계인지 아닌지 물어봅니다.”
“우리는 누르는 설계지.”
코일은 각선과 환선 두 가지이다. 환선은 생산량이 많아 값이 싸다. 그러나 품질로 따지면 각선이 더 낫다. 크기나 온도, 단락 면에서 각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신 비싸다.
이걸 절충하기 위해 10년 전에 환선을 눌러 각 지게 만드는 기술이 도입됐다. 문제는 품질이 떨어지는 환선은 권선기에서 눌려 나오는 과정에서 에나멜 코팅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국산이 비싼 가격에서도 아직 살아남는 이유일 것이다.
“사장님, 지금 가져온 것이 샘플이 아니고 지금까지 나온 불량품이라고 하네요.”
“불량? 불량품을 왜 보여 줘?”
어쩐지 코일이 좀 구리다 싶더라.
“이게 눌렀을 때 코팅이 유지되는지 시험하다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요, 재작년까지는 저렇게 벗겨진 코일이 종종 나왔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잡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눌러서 권선 감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네요.”
“내가 알기론 중국은 아직까지 눌러 감는 변압기가 없을 텐데?”
“그렇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수출 시작해 보려고 품질 개선에 많은 힘을 썼다고 합니다. 안 누르는 설계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대요.”
“그럼, 혹시 누르는 용이랑 안 누르는 용을 따로 생산하는지 물어봐 줘. 분명히 생산 원가가 다를 것이란 말이지.”
우리나라 수출해 보겠다고 품질 개선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제품군이 나뉘어 있다면 찜찜하다. 생산 원가가 싼, 안 누르는 용을 보내 줘도 우리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구질구질해 보여도 사업은 사소한 것까지 따질 수밖에 없다.
“헤헤. 양 종이 사장님같이 생각하실까 봐, 지금은 전량 품질 개선한 환선만 생산한다고 합니다. 믿고 써도 된다고 하네요.”
안 해도 될 의심을 했나 싶기도 했지만, 안심했으니 됐지 뭐. 꼼꼼하게 체크 안 해서 피해 보는 것보다는 천 번 만 번 낫다.
양 종이 성적서 여러 장을 꺼내 한참을 설명한다.
“1번이 난퉁전기에서 만드는 코일 성적서이고, 2, 3, 4번이 우리나라 업체 성적서라고 합니다. 다 공인 성적서입니다. 성적서 양식이 달라서 한눈에 안 들어오긴 하는데,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제품과 품질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업체 성적서는 또 어디서 구했데? 업체명이 가려져 있지만, 딱 봐도 어느 업체인지 알 것 같다.
오호라, 여기 제품하고 비교해도 안 밀린다? 자신감 넘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 회사 성장 비결을 이제야 알았다.
그건 카리스마도, 솔직함도, 후각도 아닌 기술 개발이었다. 정도 경영하는 회사라는 인식이 머리에 확 들어와 앉았다. 우호 관계를 오래 지속해도 될 좋은 회사로다.
좋은 회사라는 확신이 들어섰다면, 내 대답은 하나뿐이다.
“공급가가 어떻게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