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0)
190 불타는 밤
창립기념일 행사는 밤을 뜨겁게 해 주고, 찾아온 손님들도 갖가지 선물 보따리들을 풀어냈다.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은 중전기조합이 헛발질했음을 확인 사살해 줬고, 덤으로 그들을 안 좋게 본다는 선물까지 내놨다.
최대근 의원은 앞으로 관수 발주가 꾸준히 이뤄질 수 있도록 입법 활동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누구 또 없소? 이 정도는 선물도 아닌데, 진짜 선물 들고 온 사람 없냔 말입니다.
이번엔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이 준비한 요리를 꺼내 들었다.
“지 사장님이 창립 2주년이라고 2억을 기부했대요. 앞으로 매년 1억씩 늘려 가겠다고 하네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하. 민망하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더 대단한 게 지 사장님이 회사랑 반반씩 내는 걸로 했다고 하더라구요.”
박 사장과 창립기념일 행사에 대한 얘기 나누다 슬쩍 전했던 말인데, 이렇게 대놓고 홍보해 줄지는 몰랐다. 맹세코 홍보해 달라고 로비한 것이 아니다. 박 사장의 요리는, 부끄럽지만 100점 드립니다.
“역시 지 사장님은 인물입니다. 기부가 말이야 쉽지, 자기 돈 선뜻 꺼내 주기가 말처럼 쉽습니까?”
“감사합니다, 의원님. 의원님 후원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저는 지 사장님 없었으면 의정 활동 어떻게 하나 걱정했을 것 같습니다.”
최 의원을 칭찬을 시작으로 칭찬 조리돌림이 이어졌다. 기부한다고 큰돈 썼으면 칭찬 정도는 괜찮잖아?
만찬장은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각자가 저마다 영업 활동을 펼치며 나름의 선물들을 챙겨 가는 모양새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과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은 변압기 사장들과 명함을 건네받으며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변압기 사장들은 대한전력 패밀리와 말 한마디라도 섞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영업 활동의 성과가 있다면 내 덕이니라.
“식사 다 하셨으면, 메인 행사 보러 가시죠. 제가 돈 좀 들였습니다.”
“송인이 온다고 하더라고.”
“송인이 나와? 그럼 노래 한 소설 듣고 가야지. 하하.”
이 지역에서만큼은 조용필, 나훈아 못지않은 대스타 송인. 출연료 500으로 벌써부터 기대감을 주게 한다면 가성비는 최고일 것이다.
“지 사장님. 저는 이따 또 일정이 있어서 이만 자리를 뜨겠습니다. 이거 하는 일이 맨 돌아다니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하.”
“네, 의원님. 찾아와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늘 응원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아 주세요.”
“하하. 그러믄요. 내가 변압기 업계는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국회의원 한 명이 얼마나 도움 주는 일을 해 주겠냐마는 최 의원 존재 자체로도 그냥 든든하다. 비바람 막아 주고 거름 주는 일을 해 주겠지.
최 의원을 배웅해 주고 오는데,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담배 두 개비를 들고 서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니코팅 제공. 역시 김 사장이다.
“아휴, 감사합니다. 딱 식후땡 할 타이밍이었는데요.”
“척하면 척 아닙니까? 하하. 오늘 덕분에 좋은 곳에서 아주 잘 먹었습니다.”
“이제 시작 아닙니까? 밥으로 배 채웠으면 이제 술로 배 채워야 할 시간이지요. 그나저나 사장님들이랑 얘기 좀 해 보셨습니까?”
김 사장이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표정이다. 김 사장 나름의 선물이 마련된 모양이네.
“난퉁전기에서 들여오는 코일 홍보 좀 했지요. 품질 문제없고, 가격 저렴하다는 소리에 사장님들 혹하시더라구요. 옆에서 박 사장님도 협조해 주니까 뭐 당장이라도 거래할 것처럼 그러십디다.”
“거래처가 많아지면 좋은 일이지요. 사장님들 이따가 가실 것 같은데, 그 전에 영업 잘해 보시죠.”
“영업이랄 것도 없습니다. 전기연구원 성적서 있겠다, 무엇보다도 프라임일렉트릭이 사용한다고 하니까 그럼 우리가 써도 되겠네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하하.”
고작 2년 만에 우리 회사가 변압기 업계의 신뢰할 만한 트렉레코드가 됐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쓰는 자재라면 믿을 만하는 말에 기분 좋지 않을 사장이 어디 있겠나!
김 사장의 기분 좋은 멘트는 멈추지 않았다.
“사장님, 거래처 공급 단가야 박 사장님이 결정하겠지만, 일단 얘기 나온 것이, 프라임일렉트릭이랑 똑같은 가격으로 하면 안 되겠다, 요런 얘기를 했지요. 못해도 다른 업체랑 kg당 200원 정도는 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하. 우리 박 사장님 돈 많이 버시겠습니다.”
역시 영업 잘하는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답다. 우리 회사에는 최저가로, 다른 업체는 조금 비싸게 공급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우리 회사야 가격 경쟁력 유지할 수 있어서 좋고, 도연테크는 마진 높아져서 좋고 말이다.
“저나 박 사장님이나 사장님한테는 손해 봐도 괜찮다, 뭐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제 뭐 다 피우셨으면 들어가시죠. 얼른 가서 이빨 좀 털어야겠습니다.”
김 사장의 기분 좋게 해 주는 소소한 선물. 이건 90점 드리겠습니다.
손님들이 건네준 선물은 대박의 냄새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와 우리 회사의 지난 2년이 그랬듯, 앞으로도 탄탄대로를 갈 것이란 향기를 물씬 풍겨 줬다. 사업하는데 매번 대박만 바랄 수 없는 법이지. 이 정도면 창업기념일 선물로 충분하다.
자, 이제 불타는 밤을 위해 올라갈 볼까? 폭식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대연회장은 어느새 공연 모드로 변해 있었다.
체육대회 때 마이크를 잡았던 사회자가 다시 등장했다. 가볍게 레크레이션으로 분위기를 띄워 준다. 다단계사업장에서나 보던 빤한 레크레이션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확 달아오른 분위기. 그 분위기를 이어받아 거금 3천만 원을 투자해 모셔 온 유라유라한 아이돌 걸스이어가 등장했다.
처음에 이상한 품바 같은 복장으로 저건 뭐냐 했는데, 멤버 교체 후 꾸역꾸역 올라오더니 탑티어 자리까지 진입한 대기만성형 걸그룹이다. 내가 그래서 좋아한다. 안 될 애들은 죽어도 안 되지만, 될 애들은 결국 터진다는 진리.
솔직히 2년 전 베수비오화산 터지듯 터져 버린 코크다스 흑구의 초필살애교라는 하드캐리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멤버들 각자가 주는 매력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초창기 이상한 콘셉트와 듣기 힘든 가창력은 생각하기 싫지만…….
걸스이어의 등장에 연회장이 군위문열차로 변해 버렸다. 남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직원 구성상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처음에야 당연히 유라유라한 아영이가 원픽이었지만,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제는 이모가 더 눈에 들어온다. 기계공학과가 아니고 전자공학과였다면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 없는지 물어보고 싶다.
“기대해! 오오오!”
짐승 같은 놈들 미쳤다 아주. 멜빵을 부여잡으며 골반을 흔드는데 나도 미칠 지경이다. 부르길 잘했다!
걸스이어의 영혼이자 마스코트인 빵도 실물이 미쳤네. 누구 하나 거스를 타선이 없다.
“정수 씨, 침 좀 닦아요.”
너무 넋 놓고 보고 있었나 보다. 박 사장의 일침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역시 걸그룹은 항상 옳습니다.”
“다들 늘씬하고 너무 예쁘네요. 저 사람 얼굴 작은 것 좀 보세요.”
감탄하는 박 사장을 쳐다보니, 박 사장도 미쳤다. 그냥 하는 소리로 연예인 처바른다고 했지만, 직접 비교해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20대와 30대라는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3곡과 앵콜 1곡까지 총 4곡으로 짐승들을 미치게 만들고 간 걸스이어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3천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송인 보러 왔다가 걸그룹의 춤사위를 감상한 귀빈들도 체면을 잊고 동심에 빠진 표정들이다.
이어서 경품 추천이 불타는 분위기를 이어 갔다. 직원 대부분이 고루 받아 가며 최고로 고조된 분위기에서 송인이 등장했다. 이미 그 위력을 겪었기에 젊은 직원들도 환호성을 내지른다.
“안녕하세요! 송인이어라!”
그렇게 창립기념일 밤이 뜨거워졌고, 공식적인 창립 2주년 기념식이 끝이 났다. 행사는 다 필요 없다. 초대 가수와 경품 추천, 이 두 개면 게임 끝이다.
광기 어린 직원들. 미셸 푸코는 근대주의가 광기를 이해하는 담론 체계에 대해 비판했었지. 그래, 저건 광기가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들이 내뿜은 자연스러운 환호일 뿐이다.
체면 집어던지고 침 흘리고 소리 질렀던 나도 미친 것이 아니다. 행사 끝나고 나서 생각하니 좀 부끄럽긴 하네.
직원들은 이제 밤새 달릴 준비에 나섰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토하라!
“강 사장님은 숙소 어디로 잡으셨습니까?”
“여기서 차 타고 30분 정도 가면 오션씨씨가 나와. 내일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니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가서 일찍 자야지.”
“저도 다음에는 라운딩에 합류하겠습니다.”
“그거 좋지.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지?”
“매일은 못 가도 틈날 때마다 가서 부지런히 골프채 휘두르고 있습니다. 하하.”
혁신조합 변압기 사장단과 대한전력 패밀리는 라운딩을 향한 여정을 떠날 준비를 했다.
“박 사장. 자네는 나주로 올라갈 거지?”
“네, 내일 일정 때문에 같이 못하겠네요. 죄송해요.”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지 사장이랑 같이 제대로 돌아보자고.”
골프원정대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박준희 사장은 조금 더 있다 가려는지 내 옆에 서서 원정대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손을 흔들었다.
“누나는 조금 더 있다 가실 거죠?”
“나주까지 1시간이면 가니까 급할 건 없죠.”
“잘됐네요. 저랑 좀 놀아 주세요. 회사 노인네들한테 잡히면 술독에 빠질 것 같아요.”
소주 박스와 맥주짝 옮기는 소리가 무시무시하다.
원래 계획은 내가 노인네들 끌어안고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술꾼들 포텐이 터지며 점심부터 달리는 모습을 보니 무서워졌다. 남은 초대 손님들이 술꾼들을 잘 달래 주길 바라며 도망치고 싶다.
“에이, 사장이 그러면 되나요. 들어가요. 정수 씨 죽을 것 같으면 제가 흑장미 해 드릴게요.”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랄까? 술자리로 뒤바뀐 연회장은 폭탄주 제조 공장이나 다를 바가 없다. 호텔에서 신경 써서 준비한 안주들은 폭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빨리 와. 이거 바로 만든 거라 아주 신선해. 일단 한 잔 마시고 얘기하자고.”
공장장이 나를 보자마자 폭탄부터 안긴다. 폭탄주 색이 꽤 투명한 것이 비율이 엉망인데?
주도 근본주의자들이 모인 이 테이블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살벌하다. 제정신으로는 방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비장함도 느껴진다.
“정수야. 아, 미안합니다, 사장님. 내가 기분이 좋아서 오늘은 예전처럼 편하게 부르고 싶은데, 괜찮지?”
“형님 하고 싶은 것 다 하세요.”
공장장은 이미 나사가 풀리고 있는 모양이다.
태양전기에서 나와 우리 회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개고생했으니, 이 현장이 아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김희철 사장과 셋이서 고기 집에 모여 도원결의를 얘기했을 때 고민했던 그 표정,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쉽지 않은 도전을 함께해 준 이들이 고맙고, 그들에게 과실을 풍족하게 나눠 줄 수 있어서 나 역시 기분이 좋다.
“내가 말이야. 작년에 조용히 넘어가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 그래도 올해는 이렇게 성대하게 행사를 열어서 아주 기분이 좋아.”
“작년엔 뭐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해하시죠?”
“아이, 그럼. 이해하고도 남지. 근데, 우리 쩐주 그 사람은 안 오나? 이런 자리에 그래도 얼굴은 비춰야지 않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나?
까칠하고 살갑지 않은 우리 문자님. 축하한다는 문자 한 통 없을 것이다. 문자님의 근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사업 기회를 찾거나 위기를 조장해야겠다. 그럴 때만 답을 주시는 분이니.
“아시잖아요? 사람 만나는 것 안 좋아하시는 것 말이에요. 말 나온 김에 우리 물주를 위해 거국적으로 건배 한번 하시죠.”
소주 비율이 이성적이지 못할 정도로 높은 폭탄주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켜니 식도와 위장이 난리가 났다. 아, 뜨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