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1)
191 술은 위험해
고스톱 규칙이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르듯, 폭탄주 마는 법도 술꾼들이라면 저마다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납득할 만한 보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 회사 술꾼들은 허여멀건 폭탄주를 내미는 것인가! 소주와 맥주 비율이 서로 바뀐 것 아니야?
창립기념일 불타는 밤답게 술꾼들이 초반부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말로는 처음이니까 이렇게 마셔 줘야 한다고 하지만, 아마 계속 이렇게 달릴 것 같다. 이렇게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하면서는 술 안 마시는 걸 보면 용하긴 하다.
“정수야. 내 술 한 잔 받아야지.”
“아이고, 형님. 저 좀 힘든데요.”
“아유, 엄살은. 소주 조금밖에 안 넣었으니까, 이거 마신다고 안 죽어.”
불신감만 높여 준 공장장의 발언이었다. 이게 소주를 조금밖에 안 넣은 거라고? 아나, 진짜. 너무하네.
“하하. 우리 직원들 모처럼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는 거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어.”
“소주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겁니다. 근데 모처럼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였다 하면 이렇게 마시면서요 뭘.”
“하하. 그래도 이 술 좋아하는 놈들이 일할 때는 술 근처도 안 가잖아. 그게 어디야.”
“하긴, 우리 형님들 대단하긴 하죠. 우리 형님들이야 안 그랬지만, 태양전기 있었을 때 허구한 날 술이었잖아요?”
태양전기 다닐 때 그 징글징글한 꼰대들은 반주 없으면 밥도 안 먹을 정도였다. 공장장이 큰일 난다고 뭐라 하긴 했었다.
끈 떨어진 공장장 말이 꼰대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못마땅한 표정 지으며 말 한마디 없이 점심을 먹는 공장장을 바라보는 것도 참 고역이었다.
음주작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태양전기. 회사가 망하는 것은 사장이 경영을 못한 것이 가장 크지만, 직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직원들만 잘도 모아 둔 태양전기, 잘 망했다!
불쾌했던 태양전기 기억에서 꺼내 준 것은 공장장의 목소리였다.
“그 썩을 놈들처럼 만날 술 처마시고 일하는 짓거리는 절대 못하게 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아무리 술이 좋아도 일과 시간에 술 처마시는 것이 말이나 돼? 우리 회사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그럴 일 없네!”
공장장도 그 시절의 기억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내가 괜히 태양전기 얘기를 꺼내서 기분 상하게 했으니, 술 한 잔 시원하게 원샷해야겠구만. 아휴, 죽겠네.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은 이 무시무시한 테이블에서 분위기 잘 맞추며 넙죽넙죽 잘도 마신다. 강인한 여자 같으니. 던전에 들어가도 공격력 5짜리 나무 몽둥이 하나로 살아남을 사람이다.
난 다른 테이블 돌고 오겠다는 핑계로 이곳을 잠시 벗어나야겠다. 더 있다가는 이 테이블을 내 토사물로 장식할 것 같은 기분이다.
“누나, 여기 잠깐 계세요. 전 테이블 좀 돌고 올게요.”
“아까 보니까 꽤 마신 것 같던데, 걸을 수 있겠어요? 푸하하.”
“제가 술은 못해도 정신력 하나는 끄떡없습니다. 아직 멀쩡합니다.”
가족과 함께 온 직원들이 개인 시간을 즐기러 빠져나가면서 연회장은 우리 어르신 노인네들과 보육원 출신 직원들만이 남았다.
술만 마셔 대는 술꾼들과 달리 청춘들은 게임도 하면서 술자리를 즐기고 있다. 남녀 비율이 극도로 안 맞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는 비율 맞추는 데도 신경을 좀 쓰자.
“혜정이. 너 홍철이랑 결혼할 거라면서?”
“아, 사장님. 네. 오빠랑 둘이 열심히 돈 모으고 있어요.”
“내가 너네 결혼하면 축의금 아주 크게 쏠 테니까 기대해라.”
“히힛, 감사합니다.”
“근데 나 왔는데, 술 한 잔 따라 주냐?”
“아, 죄송해요.”
그만 따르라고 해도 넘치게 들이붓는 술꾼 테이블과 달리 여긴 평화롭다. 그래, 술은 많은 대화를 위해 마시는 것이지.
“됐어. 술은 무슨. 요즘은 여자한테 술 따르라고 하면 큰일 나. 홍철아, 네가 좀 따라 주라.”
“넵, 사장님. 가득 채워 드리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이 새끼. 나를 노인네 취급하네. 근데, 홍철아.”
“넵!”
“보육원 애들 말이야. 여자애들은 왜 안 오는 거냐? 우리 회사 남자만 너무 많지 않냐?”
“뭐 일이 힘드니까 그러겠죠. 솔직히 할 거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온 애들도 많아요.”
“억지로 끌려온 애들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 도망 간 애들 한 명도 없잖아? 힘들긴 해도 정시 퇴근 보장해 주고, 휴가도 많이 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이 챙겨 주고, 얼마나 좋은 회사냐? 내가 이런 말 하니까 좀 그렇다잉?”
“들어올 때는 모르니까 그러긴 해도, 와서 일하면서는 다들 만족하고 있어요.”
공장, 그것도 중소기업 공장이라는 선입견이 무섭긴 무섭다.
하긴, 나도 저 나이 때는 중소기업 들어가면 인생 나락이라고 생각했었지. 하나, 대기업과 공기업을 바라보던 청년 대부분은 중소기업에 들어온다는 사실.
“혜정아, 애들 만나면 좋은 얘기 좀 많이 해 줘. 너 일해 보니까 어때? 힘들어?”
“네, 쫌. 이번 여름엔 진짜 힘들었어요.”
우리 회사 1기 공채로 여름을 두 번 경험한 혜정이가 이번 여름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저 표정만으로도 이번 여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뼈마디 사무치도록 느껴진다. 근데 왜 자꾸 더 혹독한 여름이 찾아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지 원.
여자 직원들 대부분은 검사부에 배치돼 있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생산부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특유의 꼼꼼함과 섬세함으로 검사 일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도 했고 말이다. 이번 여름을 보내고 나니, 그게 악수가 돼 버렸다. 아주 다이어트 제대로 했을 것이다.
“미안하다야. 천재지변은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헤헤. 그래도 더웠던 것 빼고는 할 만해요. 전기가 무섭긴 해도 일도 배우고, 재미있어요.”
“그렇지? 그럼 여자 애들도 많이 들어올 수 있게 소문 좀 잘 내. 아까 걸스이어 왔을 때 소리 지르는 것 들었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짐승 같은 그로울링을 선사했던 애들이 부끄러웠던지 딴청을 피운다. 미안하다, 나도 그중 하나였어.
“사장님, 그러면 여자 직원 늘어나면 내년에는 총탄소년단 불러 주세요!”
“총탄소년단? 총알 탄 사나이도 아니고, 뭐 하는 애들인데?”
“아, 진짜. 사장님, 요새 제일 핫한 남돌이라구요!”
“그래 뭐, 뭐가 됐건 내년에 불러 줄게. 대신 동생들한테 잘 얘기해 줘.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다른 테이블을 돌아볼까?
이미 덕준이가 한바탕 휘젓고 다녀서 테이블 순회공연 길게 안 해도 될 듯싶다. 알아서 술상무 역할 잘해 주는 덕준이가 대견스럽다.
아니지. 순회공연은 자신이 할 테니, 나는 술꾼 자리에서 죽으란 소리일 수도 있겠네. 덕준이의 행동을 좋게 생각해 주면 감히 친구라 할 수 없지.
테이블마다 돌면서 술 한 잔씩 받다 보니 다시 치사량에 가까워졌다. 슬슬 도망칠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수다쟁이 테이블만 돌고 도망치자.
서로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부서별로 끼리끼리 모이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하겠다.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생산직과 사무직이다. 아무래도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니, 친해져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무직만 모인 곳에 갔더니 괴성들이 터져 나왔다.
“꺄아! 사장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너무 늦어서 안 되겠어요. 우리 방에 가서 더 마셔요. 깔깔깔.”
극성스런 여인네들. 희롱적인 발언도 거침없다. 내가 그런 말 했으면 멍석말이를 당했을 것이다.
“아까 낮에 대접 잘해 드렸잖습니까?”
“그럼 밤에도 대접 잘해 주셔야죠.”
김지연 대리가 술이 얼큰하게 올라왔는지 40대의 거친 입담을 과시한다. 20대인 너네들은 좋다고 박수 치며 웃는 건 뭐냐?
“김 대리님, 괜히 애먼 저 잡고 늘어지지 말구요, 저쪽에 젊은 총각들 많잖습니까?”
“호호. 쟤네들은 아직 더 익어야 해. 태양에 잘 말려야 태양초 고추가 나오죠.”
깔깔깔. 호호호. 젠장. 이성을 잃지 말자.
“이럴 때 생산직이랑 술도 마시면서 친분을 쌓으세요. 이렇게 갈라져 앉아 있으면 사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에이, 사장님. 걱정 마요. 내가 우리 풋고추 총각들 밥도 잘 사 주고, 여기 누나들도 잘 챙겨 주니까요.”
밥 사 주는 누나들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만 끄덕였으면 좋았을 걸, 굳이 유민희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도 술이 과하게 올라왔군.
“쟤네들이 툭하면 누나 밥 사 달라고 그래서 월급 잘 뜯기고 있습니다. 밥 잘 사 주면 친한 사이 아닙니까!”
“민희 너, 연하는 어때? 쟤네들 중에 맘에 드는 애 없어?”
“전 연하는 취미 없어요. 오로지 연상! 연상인 사장님! 저 어때요? 깔깔깔.”
“민희야, 너 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민희를 박 대리가 타박하지만, 좋다고 깔깔거린다. 낮에도 느꼈지만, 이 테이블 무섭다. 빨리 도망가자.
“박 대리야. 왕언니랑 애들 잘 챙겨 들어가라. 상태 안 좋아 보인다. 그리고 올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좀 잘 해야겠다.”
“네, 사장님. 죄송해요.”
“사장님! 어디 가시게요! 저희랑 밤새 놀아요!”
팔을 부여잡고 이탈을 온몸으로 저지하는 민희를 힘겹게 떨궈 내고 던전에서 벗어났다. 뭉클하지만 두툼한 패드가 느껴졌다. 이 녀석, 많이 집어넣었군. 위험할 뻔했다.
민희 저것이 술 마시면 위험해지네. 남자 냄새 가득한 곳에 있다가 여기 오니 색다르긴 한데, 아무래도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래저래 무서운 곳이네.
무서운 곳보다 더 무서운 곳인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저기 박 사장이 홀로 서 있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누나!”
“어, 정수 씨. 아휴, 힘드네요.”
“많이 마셨어요?”
“우리 회사 직원들도 술 꽤 마셔서 거뜬하다 싶었는데, 여기 분들은 무시무시하네요.”
“하하. 다음에 금성전기랑 우리 회사 술꾼들 대결 한번 해요. 진짜 저 사람들 술이라고 하면 징글징글하네요. 힘들면 나가서 산책 좀 할래요? 좀 걸으면 술 좀 깰 거예요.”
“그래요. 아무래도 여기 있다가는 계속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밖은 여전히 태양이 맹위를 떨친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저번 주부터 폭염에서 풀려나긴 했어도 여름은 여름이다. 그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약간 습한 바닷바람이 열기를 잊게 해 준다.
“밤 되니까 좀 시원해지긴 하네요.”
박 사장이 이제 좀 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두통약이나 생리대 광고에 아주 딱 어울린 만한 표정이다. 두통약 박스째 사고 싶게 만드네.
“근데 누나, 언제 올라가려고 그래요? 지금 가도 도착하면 12시는 될 것 같은데요.”
“아, 모르겠어요. 아까 일어났어야 하는데, 주는 술 마시고 얘기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여기서 술 좀 깨고 올라가야죠.”
“어떻게 올라가려고 그래요?”
“대리 알아보고 안 되면 택시 타고 가죠 뭐. 혹시나 차 놓고 가면 정수 씨가 챙겨서 가져다주세요. 헤헤.”
헤헤? 이렇게 웃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박 사장도 술이 어지간히 들어간 모양이네. 이성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술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난 역시 술보다 담배가 더 좋다.
“제가 술 안 마셨으면 모셔다 드렸을 텐데, 쏘리입니다.”
“괜찮아요. 정 안 되면 숙소 하나 잡죠 뭐.”
“여기 객실 남는 것 있는지 알아볼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술만 깨면 어떻게든 올라갈 거니까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도 돼요. 챙겨 줘서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나도 술을 꽤 마셨다. 이성이 마비될 것 같은 위험할 상황인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박 사장을 보고 있자니 더 위험해질 것 같다. 술김에 그러면 안 된다.
정신 차리고 호텔 주변으로 조성된 산책길을 걸었다.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 여수 밤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산책길이다. 대자연의 기운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기분이다.
에잇. 이 시간에 웬 전화냐? 발신 번호 없는 문자. 문자님! 기념일에 맞춰 이렇게 안부를 전해 주시는군요!
-두드리면 열린다.
이건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돈 되는 옳은 소리만 하시는 우리 문자님이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도 할 때가 다 있네. 뭐가 됐건,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