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2)
212 달라진 점
난징변압기 사장실에 ‘하오하오’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오하오’가 협상의 메인 테마였다. 협상이랄 것도 없는 대화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기도 했지만, 서로의 신뢰가 ‘하오하오’를 연발케 했다. 계약서 문구 하나하나 따질 것도 없었다.
“난징변압기 성장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쌓은 신뢰, 앞으로도 지켜 나가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 사장님도 한 말씀 하시죠.”
“네. 저희에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품질, 빠른 납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렇게 맺은 인연이 오래 이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오하오’ 소리와 함께 세 명의 사장이 손을 맞잡으면서 479억 원짜리 계약 체결식이 종료됐다.
저번 만남 때는 내심 불안감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느낌도 없다. 두 번째 중국 방문에서 달라진 유일한 점이다.
에이전트 케이가 갈고닦은 인맥이 우리에게로 서서히 이전되는 기분이다. 사기 칠 생각 없이 물건 잘 만들어서 제때 잘 보내 주고, 상대방도 우리를 믿고 편의를 봐준다. 마! 이게 사업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식당에 그대로 옮겨 갔다. 이번엔 한식당이 아닌 현지 식당으로 갔다. 역시나 크고 웅장하다. 해산물로 유명한 지역답게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양쯔강과 호수 내음이 가득하다.
“오늘은 미스터 왕이 대접하는 것이니까 마음껏 드세요. 저번에 사장님들 생각한다고 한식당으로 갔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하네요. 중국 현지식으로 제대로 즐겨 보세요.”
에이전트 케이의 말이 아니어도 마음껏 먹을 생각이었다. 기분 좋게 계약까지 체결했으니, 오리 혓바닥이나 개구리라도 양껏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왕 종이 한국에 방문한다면 산낙지부터 홍어까지 화끈하게 대접하겠다고 다짐하며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재료를 묻지 않았다. 모르고 먹으니 뭐든 맛있다. 원효대사의 가르침이 이것이로군.
기름에 튀겨 매콤달콤한 소스를 뿌린 생선을 한입 가득 먹은 왕 종이 번들거리는 입으로 말을 건넸다. 에이전트 케이는 통역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다.
“미스터 왕이 그동안 변압기 수리로 아주 골치가 아팠대요. 그것 때문에 한국 변압기 수입하는 걸 고민했는데, 역시나 사장님들 제품 수입하고 나서는 문제가 없었대요. 제가 그렇게 한국 제품 좋다고 얘기할 때는 못 믿더니, 직접 보니까 너무 맘에 들었나 봐요. 호호.”
“김 사장님께서 길을 잘 닦아 주셔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아요. 2년 전에 저한테 처음 중국 수출해 보자고 하셨을 때 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일이 잘 풀려 다행이에요.”
누나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을 받았다. 2년 전에는 중국 수출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말하는 중간에 나를 살짝 쳐다보는 것이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후훗.
“저 고생 많이 했어요. 작년엔 일이 없어서 가이드 알바까지 했다니까요. 호호. 우리 사장님들 덕분에 저도 등 따시게 잘 것 같네요.”
“가이드 알바도 하셨어요?”
“먹고살려면 그거라도 해야지 어쩌겠어요. 이젠 은퇴해도 되겠죠? 호호.”
에이전트 케이가 통역하느라 못 먹는 줄 알았더니만…… 회고하며 산으로 가 버린 대화에 민희가 슬쩍 귓속말을 보냈다.
“아까 통역 안 한 게 있는데, 왕 종징리가 궁금해서 변압기 분해해 봤대요. 대답이 안 돌아오니까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요.”
“땡큐. 귀 쫑긋 잘 세우고 있어.”
결국 참다못한 왕 종이 에이전트 케이에게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것도 어디든 똑같고, 그걸 못 참는 것도 만국 공통이네.
“호호. 내 정신 좀 봐. 미스터 왕이 사장님들 변압기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서 뜯어 봤다는 얘기를 빼먹었네요.”
“뜯어 보니까 소감이 어떻다고 합니까?”
왕 종이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차분한 톤으로 말을 쏟아 냈다.
“그렇게 깔끔하게 만든 변압기는 처음 봤다고 하네요. 부싱 연결도 기계로 한 것처럼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도 권선이 최고였다고 해요. 자기도 예전에 권선 감아 봤는데, 그렇게 나올 수가 없다고 아주 놀라네요.”
“하하. 우리 회사가 만든 변압기 뜯어 보신 모양이네요. 박 사장님? 대신 말씀해 주시죠.”
자동권선기의 위력을 설명하는 것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그 위력을 충분히 맛보고 있는 준희 누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게요. 우리 회사 것을 열어 봤으면 그렇게 안 놀랐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누나가 온화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며 한 방 날렸다.
부싱체결기 왜 빨리 안 주냐는 핀잔이겠지? 만들 것이 너무 많아서 좀 늦어지긴 하지만, 올해는 넘기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셔.
“김 사장님, 설명하기 전에 놀랄 수도 있으니까 미리 놀라지 말라고 얘기해 주세요. 하하. 저나 지 사장님 회사는 권선 제작이 자동화돼 있어요. 사람 손을 빌리지 않으니 항상 일정하고 예쁘게 나오죠. 그렇게 깔끔하게 감긴 권선은 어디서도 못 봤을 거예요.”
예상대로 왕 종은 먹던 생선을 뿜을 수도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놀라는 것을 보니 변압기 회사 사장이 맞긴 하네.
에이전트 케이가 그 놀라움을 통역해 전달했다.
“한국 변압기 기술력이 그 정도로 대단할 줄 몰랐답니다. 미스터 왕도 사업하면서 여러 나라 돌아다니며 변압기 회사 많이 봤는데, 사람 없이 권선 감는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다네요. 이게 대단한 것인가 봐요?”
“그럼요! 들어도 놀랍지만, 직접 보면 더 놀라워요. 언제 한번 방문해 주세요. 프라임일렉트릭 공장 가면 깜짝 놀랄 거예요. 지 사장님과 함께하면 사업이 번창한다고 꼭 전해 주세요.”
누나의 과한 칭찬이 듣기 좋다. 여기서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 나와 ‘함께하면’이라는 말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자 더 기분이 좋아졌다.
“미스터 왕이 사장님들 회사 한번 가고 싶다고 해요. 말로만 들으니까 궁금해서 못 참겠다고 하네요. 호호. 사업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나 봐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우리 회사 와서 자동권선기 본들 배만 더 아플 것이다. 예전에야 전문가들은 소리만 듣고도 설비를 따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자동권선기는 어림도 없다. 백날 쳐다봐도 흉내조차 못 낼 것이다.
자동권선기만 봐도 놀라 까무러칠 텐데, 신기술의 향연들인 각종 설비들을 보고 나면 얼마나 놀랄 것인지 눈에 선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기분 좋은 만찬 자리는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다.
술자리는 술만 마실 수 있는 곳이 선택됐다. 행여나 왕 종이 ‘접대’를 요구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넘쳐 나는 정력은 회사 키워서 우리 제품 많이 사는 쪽으로 쓰도록!
왕 종이 나와 따로 술 마시러 어디론가 가자고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테이블에 올라온 술은 저세상 구경도 가능할 정도로 독한 놈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독한 술에 몸이 긴장됐지만, 맘이 편해서 그런지 궁금한 것들이 떠올랐다.
“아까 주상변압기 용량 몇 가지로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중국은 그게 가능한가요?
“한국은 모르겠는데, 중국은 가능해요. 전력청이랑 계약한 업체들끼리 서로 물량 주고받으면서 자기들 편한 대로 할 수 있거든요. 중국이 규제가 많긴 해도, 어떤 것들은 참 편하기도 하죠.”
“여름에 첫 계약했을 때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번엔 쉽게 응해 줘서 좀 의아해긴 했습니다.”
“그게 미스터 왕이 올해는 중간에 껴들어 와서 그게 안 됐는데, 이번에 전력청이랑 1년짜리 계약 맺어서 가능했던 거죠. 확실히 내년엔 일하기 많이 편해질 거예요.”
“좋네요. 내년에도 계약 꼭 따내서 우리와 인연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 왕 종이 답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토로하듯 말을 뱉었다. 나와 대화하느라 왕 종에게 소홀했던 에이전트 케이가 이제야 귀를 기울였다.
에이전트 케이가 독한 중국 술을 홀짝이며 왕 종과 한참을 얘기하더니 환한 표정으로 그 결과를 알려 왔다.
“미스터 왕이 올해까지는 전력청 납품 신경 쓰느라 민수 쪽을 소홀히 했대요. 근데 내년에는 힘 좀 쓰겠다고 하네요. 품질이 좋아서 승산이 있을 것 같다면서요. 아시겠지만, 중국은 민수시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말인즉 삼상변압기 발주를 늘리겠다는 뜻이죠?”
“그렇죠. 저번에 만났을 때 영업직원 여럿 뽑는다고 했으니까 확실할 겁니다.”
누나를 위한 내 이벤트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된 셈이다. 표정 관리하고 있는 듯한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박 사장님 좋으시죠? 삼상변압기 많이 하고 싶어 했잖아요? 아주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당연히 좋죠. 그래도 저만 좋은 선물은 아닌 듯한데요. 지 사장님한테는 더 좋은 선물 아니에요?”
“어차피 발주 나오면 물량 나누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니까, 저는 주상 위주로 할게요. 박 사장님은 삼상 많이 가져가셔도 됩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우리 회사는 수출용 주상변압기도 남을 만큼 남는다. 물론 삼상변압기는 더 많이 남는다. 그래도 누나를 위해 그 정도는 양보할 생각이다. 그동안 나한테 많이 양보했으니 이렇게라도 보답해야지.
“아, 정말요? 이거 고마워서 어쩌죠?”
“주상 만들어 봐야 얼마 남지도 않잖아요? 수출 같이하는데 저만 재미 볼 수 있나요? 박 사장님도 내년에는 재미 좀 보셔야지요.”
누나의 눈매가 반달로 바뀌어 눈자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눈자위에 하트가 가득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배려를 단순한 배려로 느끼지 않았으리라.
술자리는 독한 술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고, 나는 누나의 고마워하는 표정 때문에 더 달아올랐다. 그 탓에 독주를 넙죽넙죽 들이켰다. 저세상에 안부를 전하기 직전에 난징변압기 연간 계약 체결식이 마무리됐다.
겨우 정신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술이 올라와 귀가 웅웅거리지만, 아직 잠들기엔 이른 9시밖에 되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자석이라도 설치된 듯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누나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200억 넘는 계약을 맺었고,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으니 말 다 했지.
“확실히 왕 사장님은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 같죠?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몇 번 더 만나면 보증도 서 줄 것 같은데요?”
“하하. 오늘 일이 너무 잘 풀려서 기분이 좋네요.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아쉬운데, 우리끼리 맥주라도 한잔 더 할까요?”
누나가 아쉬움을 눈치챘는지 음주를 제안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본능이 향하는 대로 대답했다.
“좋죠. 아까 마신 게 너무 독해서 힘들긴 한데, 가볍게 마시는 거야 오케이죠. 일단 술 좀 깰 겸 좀 씻고 오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30분 뒤에 여기서 다시 모이는 걸로 해요. 참! 민희 씨! 민희 씨도 괜찮죠? 같이 마셔요.”
누나의 제안이 민희에게까지 넘어갔다.
사람 챙기는 것을 좋아해 늘 하던 행동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 해석은 전과 달라졌다. 괜한 오해를 없애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우리가 나누는 눈빛만 봐도 오해 받기 충분하긴 하지.
첫 중국행과 지금과는 반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그 기간 동안 나와 누나의 관계는 급속한 진전이 이뤄졌다. 박 사장이 준희 누나로 바뀌었고,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네, 좋아요. 아직 조금 더 마실 수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또 있었다. 민희였다. 나와 누나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녀석. 일찍 들어가 쉬겠다는 전과 달리 이번엔 당당히 누나의 초대에 응했다.
누나의 다음 호칭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해 볼까 했더니, 글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