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1)
251 USB
띠룽띠룽 띠루룽.
전화벨이 울렸다. 이 벨소리를 몇 년째 쓰는 건지 기억도 안 난다.
문자님과 만남 이후 핸드폰 설정 자체를 손대지 않고 있다. 핸드폰도 때가 탈 대로 탔는데도 감히 못 바꾸겠다.
누가 보면 돈 안 쓰는 자린고비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최신 핸드폰 쓰고 싶다고!
“네, 누나! 오랜만입니다.”
준희 누나 전화다.
“오랜만은 무슨. 어제도 통화했잖아요. 이번에 발주 몇 대 나왔어요?”
“6,720대요. 1차 때보다 많이 줄었어요. 이럴 거면서 왜 항상 한 번에 몽땅 발주하는지 모르겠어요.”
“제 말이요. 이번에 연체 안 되려고 계속 야근이에요.”
“1차 발주 말하는 거죠? 우리는 이미 시험 의뢰해서 1차 시험까지 끝났습니다. 하하.”
“네에, 정수 씨 똥 칼라파워예요.”
“하하하. 그건 또 무슨 전설 따라 삼천리 개그입니까? 우리 그러지 말자고요. 이 바닥에서나 젊은이 취급 받지, 밖에 나가면 노땅 소리 들어요.”
“잘난 척하길래 한번 해 봤어요. 하하. 약속 없으면 같이 저녁 어때요?”
좋다마다. 평소에 전혀 안 쓰던 말을 쓰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누나 요청은 언제든 콜이다. 회사도 이웃사촌, 집도 이웃사촌인데 자주 봐야지.
오늘은 중식이 당기는 날이다.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구내식당에서 짜장 볶는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냄새를 참으면 사람이 아니지.
여러 번 갔던 혁신산단의 고급진 중식당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환한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 저 얼굴, 도무지 질리지가 않아.
“한창 바쁠 때 아니에요? 일찍 왔네요?”
누나가 꽤 가벼워진 코트를 벗어 옆자리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아직 이르지만, 슬슬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우리 회사는 아직 여유가 넘칩니다. 물량 많아져서 캐파 모가지까지 오긴 했는데, 거뜬합니다.”
“잘난 체 재수 없지만, 인정해요. 부싱체결기 손에 익으니까 현장에서 아주 난리예요. 우리는 왜 이런 설비 없었냐고요.”
2월이 되자마자 안성파워와 금성전기에 부싱체결기 납품을 끝냈다. 납품하겠다고 한 지 6개월이나 지연됐다. 만들 것이 너무 많아 1억짜리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납품이 너무 늦어져서 욕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네요.”
“이휴, 진짜. 이제 프라임일렉트릭한테 뭐 하나 받으려면 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돈을 준대도 물건을 안 주니 배짱도 이런 배짱이 어디 있나 싶어요.”
“하하. 캐파 늘리느라 도저히 할 시간이 없었어요. 누나나 강 사장님이 기다려 줘서 이번 물량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죠.”
캐파 확대가 급하다는 건 핑계였다. 1억짜리 부싱체결기보다 6억짜리 자동권선기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제 조합 회원사들에게 자동권선기 2대씩 싹 들어갔으니, 또 영업에 나설 때가 됐다.
“현장 반응도 좋고, 성능도 말도 안 될 정도라서 1억이 하나도 아깝지 않네요. 혹시 뭐 더 팔 것 없어요?”
누나가 귀신같은 눈치로 돈 쓰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장단도 참 잘 맞아.
“돈 주겠다면 뭐든 팔아야죠. 하하. 안 그래도 자동권선기 더 원하는 업체들이 꽤 있어서, 1대씩 더 공급할까 생각 중이에요.”
“우리 회사는 충분하잖아요. 자동권선기 말고 다른 걸로요! 근데 우리 조합 업체들도 2대씩이면 충분할 텐데요?”
얼마 전 동아일렉트릭 방문담을 알려 줬다. 제3의 조합 설립과 자동권선기 1대씩 판매하겠다는 계획 말이다.
새로 생길 조합에도 자동권선기가 들어가니, 우리 조합에는 추가로 더 공급할 생각이다. 나 잘살겠다고 우리 조합 업체들의 경쟁력을 의미 없게 만들면 안 되지. 명분 아주 좋다.
한 대씩 더 제작해 주면 안 되냐는 요청도 있었으니, 부지런히 만들어서 팔아야지. 이렇게 또 돈을 벌자고.
“어머, 정말요? 그거 잘됐네요. 그렇게 되면 중전기조합은 와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렇죠. 그리고 조합 새로 생겨도 거기 들어갈 업체들 형편이 안 좋아서 입찰 때 단가 싸움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렇다면 저는 조합 설립할 때 준비할 것들 알려 줘야겠는데요?”
“그럴 줄 알고 나주 내려와서 누나 한번 만나라고 얘기해 놨습니다. 하하.”
설비 얘기로 빠지던 대화가 자연스럽게 중전기조합 죽이기로 넘어갔다. 누나가 뭔가 준비된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든 오라고 하세요. 저도 마침 선물 하나 가져왔는데, 분위기가 꺼내야 할 타이밍이네요.”
“선물요? 말만 들어도 설레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누나가 오바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내려는 차에 주문한 요리가 들어왔다. 라조육, 해삼탕, 마파두부. 짜장 냄새에 끌려 이곳에 왔지만, 이 요리들의 냄새도 기가 막힌다.
“일단 먹어요. 오늘은 정수 씨가 사는 걸로 해요. 이걸로 제가 가져온 선물 퉁치는 게 아깝긴 하지만요. 하하.”
뭐기에 저리 기대감을 심어 주나? 요리 냄새에 정신 못 차리겠는데, 기대감이 더 아노미에 빠지게 한다.
뜨끈뜨끈한 해삼탕을 접시에 떠서 맛보기 시작했다. 남해 바다가 보이는 독일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맛있다.
맛에 빠져 몇 숟가락 더 먹다가 겨우 정신을 찾았다. 이제 선물을 공개해 보시지. 마주 보고 앉은 누나 입에서 독일 마을 향기가 품어져 나왔다.
“무슨 선물이냐면요, 저번에 광진변압기 뒷조사 좀 하겠다고 했잖아요? 그 결과물이 도착했지요. 호호.”
기대와 설렘이 후회되지 않을 선물이다. 역시 우리 누나. 궁디 팡팡해 주고 싶다.
“누나네 회사 경리분이랑 친하다는 그 경리한테서 나온 건가요?”
“빙고! 우리 과장님이 아주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까 알았대요. 그 뒤로 광진변압기 경리직원이랑 몇 번 만난 모양이에요. 그러더니 이걸 들고 오지 뭐예요.”
누나가 벗어 놓은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USB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내 가슴도 흔들렸다. 기대감이 폭발한다.
“그게 뭡니까!”
“하하. 저한테 큰 신세 진 거예요. 저한테 잘하세요.”
‘싸랑한다’고 크게 외치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업체 뒷조사가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누나가 내 기쁨에 흡족하면서도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 안에 들어 있는 자료 훑어봤는데, 가관이에요. 예상대로 백마진은 기본이고, 회사 돈이랑 조합 돈 엄청 빼돌렸더라고요.”
“조합 돈도 빼돌렸어요? 아주 악질이네요.”
“확실치는 않아요. 느낌이 그래요.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어 가는 게 많더라고요. 조합 돈 관리를 광진변압기 경리직원이 맡아서 하는데, 월급을 더 받진 않는대요. 근데 조합경비 처리내역 보면 상근 직원 두 명으로 돼 있거든요.”
역시 명불허전이다. 악랄한 것들은 지독하게 꼼꼼하다. 코 묻은 돈도 빼돌리려고 혈안이다. 광진변압기 최웅민 이 새끼, 잘 걸렸다.
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임필성 변호사가 떠올랐다.
직원 명부만 구해다 주면 알아서 하겠다는 임 변호사에게 이 자료를 주면 군침을 마구 흘릴 것 같다. 만나기 전에 손수건 꼭 챙겨 가야지.
이대로만 가면 중전기조합을 없애고, 그 조합을 이끌었던 업체들을 군홧발로 밟아 버리겠다는 목표가 달성될 것 같다.
“누나 덕분에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겠습니다. 아, 이거 진짜 저녁 사는 걸로 퉁쳐도 됩니까?”
“제가 좀 밑지는 거 같죠? 이런 게 서로 돕고 사는 것 아니겠어요? 하하. 제가 뭐 한 게 없어서 계속 걸렸는데, 이거라도 구해 왔으니 맘이 좀 편해지네요.”
“제 일인데도 이렇게 도와주는 게 어딘데요.”
고마움을 가득 담아 준희 누나에게 마파두부를 한 접시 가득 퍼서 진상했다.
“하하. 이런 서비스까지. 이걸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요. 일단은 지켜볼게요.”
누나는 더 큰 보상을 바라고 있다. 그게 뭔지 충분히 알고 있다. 마냥 시간 끌어 봐야 좋을 것 없지만, 조금 뜸 들인다고 실망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으니…….
“그래서 거기 담긴 걸 다 봤어요?”
“아뇨. 잡다한 게 많아서 전부 보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더라고요. 보니까 그냥 통째로 복사해서 담은 것 같아요. 정수 씨가 분석하면서 쓸 만한 것들 챙기세요.”
우리 회사 김 사장들의 중국 출장에 따라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며칠 동안은 저 USB만 죽어라 봐야겠군.
살짝 매콤한 마파두부를 한입 맛본 누나가 화제를 이어 갔다.
“최 사장이 알뜰살뜰 돈 많이 빼먹었는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요?”
“또 놀랄 것이 있어요?”
“최 사장이 1년에 가져가는 돈이 얼마일 것 같아요?”
“글쎄요. 매출 200억짜리 회사니까 삼사 억 정도 되지 않을까요?”
누나가 코웃음을 치며 턱도 없다는 반응이다. 대체 얼마를 받아 가기에 저러나?
“광진변압기에서만 12억 챙겨 가요. 조합에서도 이사장이라고 1억 5천 받아 가고요. 미친 것 아니에요?”
마파두부 먹다가 뱉을 뻔했다. 생각보다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웅민 그놈이 챙겨 먹는 액수에 놀라서다.
보잘것없는 회사를 매출 2,500억짜리로 키운 내가 받는 연봉이 고작 5억이다.
이걸 아는 직원들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뭐라고 하지만, 난 만족한다. 배당으로 무지막지하게 챙겨 가는데, 바닷물에 세숫대야 물 부어 봐야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런데! 매출 200억짜리 회사에서 사장 연봉이 12억? 진심 미쳤다. 가히 ‘좆소기업’ 사장의 최고봉이다.
사장 연봉이 회사 매출 대비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사장들은 10퍼센트를 외친다. 그 정도 챙겨 가야 사업할 맛이 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가져가는 미친놈들도 많다. 월급은 기본이고, 각종 수당 등 온갖 명목으로 받아먹는다. 그 걸론 당연히 부족하니 달콤한 불법의 길을 걷는다.
그래 놓고 100원 팔아 봐야 1원도 안 남는다고 죽는 소리를 한다.
회사가 돈 벌어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심보로 사장이 과하게 빨아먹으면, 회사에 돈이 없단 소리는 하질 말든가. 진짜 미스터리한 우리나라 좆소기업의 현실이다.
“연봉이 12억이면 한 달에 1억씩 받아 간다는 거예요?”
“기본급이 5천 정도고 나머지는 수당이랑 분기별 상여금이랑 이것저것 붙여서 그만큼 가져가더라고요. 직원들은 최저임금에 수당 몇만 원 붙인 것으로 주면서, 참 대단하지 않아요?”
“그것도 부족하다고 유령직원 등록해 놓고 더 빼먹을 것 같은데요?”
10퍼센트 디자이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유령직원은 필수겠지. 물어보나 마나다. 역시나 누나가 격하게 호응해 준다.
“맞아요. 직원 명부 보니까 이경순이라고 있는데, 이 사람이 최 사장 와이프예요. 월급 700만 원씩 주는 걸로 해 놨더라고요. 찾아보면 몇 명 더 있을 거예요.”
“칠백요? 유령직원인데 칠백을 줘요?”
“네, 그렇다니까요! 혹시나 등기이사나 감사인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나 못지않게 누나도 열을 냈다.
법 지키는 자신만 바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분하기 마련이지. 회사 물려주고 퇴직한 아버지에게 흔한 고문 자리 하나 안 주며 실업자로 만든 누나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친척 명의 빌려서 감사로 올려놓고 또 월급 챙겨 먹겠네요. 그 정도 받아먹으면서도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욕심을 부릴까요? 그게 이해가 안 되네요. 돈이 필요하면 회사 수익 많이 내서 배당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그래서 정수 씨가 마음에 들어요. 좋아하고. 정도를 걸으면서도 돈 많이 벌잖아요?”
불쑥불쑥 들어오는 저 고백. 좋으면서도 당황스럽다.
“고백 감사합니다. 하하. 마파두부 맛있네요. 공깃밥도 하나 시킬까요?
“어머? 고백 받고 입 싹 닦는 건 무슨 경우예요? 정수 씨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어요? 하하.”
화제 전환에도 굴하지 않는 누나다.
썸은 이미 넘어섰고, 그렇다고 연애도 아닌 이 기묘한 관계. 누나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에게 타들어 가는 심지에 폭약을 갖다 놓으라고 권유하는 상황, 재밌네.
“우리 준희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아주 좋아 죽겠어요.”
“제가 어쩌다 엎드려 절 받기 해야 하는 신세가 됐는지. 에휴.”
이 누나 요즘 들어 앙탈 부리는 빈도가 잦아졌는데? 이거 참, 나 참. 보기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