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8)
268 박수 증정식
“시장님 들어오십니다.”
혁신산단 공동기숙사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체결식이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다. 사진 몇 장 찍자고 여는 행사. 신문에 기사 하나 나오는 데 목숨 거는 정치인들의 속성은 이해해 줘야지.
“사장님. 우리 빛가람에너지밸리를 위해 큰 결단을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민찬진 시장이 입이 귀에 걸린 채 악수를 청했다. 우리 공장 기공식 때 악수했으니, 2년 만의 악수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민 시장은 혁신산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혁신도시와 혁신산단 일대를 에너지밸리로 키워서 광산업 메카인 광주와 연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년 선거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에 발표된 직무수행 평가에서 부산시장과 꼴등을 다툴 정도로 지지도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번 악수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론이 참 무서운 것이 우리 회사가 성장하며 잘나가는 것은 전남도의 치적이 됐고, 혁신산단 분양률이 저조한 것은 광주시의 실정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뭐라 한다더니만, 광주ㆍ전남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혁신산단을 두고 이리 평가가 다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민 시장은 텐션이 저 세상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선거만 나가면 당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더니만…… 그러게, 일찌감치 관심 갖고 힘 좀 쓰지 그랬어?
“사장님 덕분에 혁신산단이 광주전남의 대표적인 산업단지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혁신산단의 대표 기업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시니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을 위한 추진한 사업이었는데, 이렇게 재정 지원까지 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하하. 그래요, 그래요. 하하하.”
좋은 일이라고 포장했지만, 20년간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안겨 주는 달달한 투자이다. 돈 벌 생각 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돈으로 되돌아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같이 사진 찍으러 온 전남도지사 권한대행도 한마디 던졌다.
“이게 5년 전만 해도 수익률 6프로 이상이었는데, 좀 아쉽겠습니다. 하하.”
“국가신용도가 높아져 국공채 금리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니 좋게 생각해야지요. 돈 벌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니 개의치 않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도에서도 기숙사 운영이 잘되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도에서 추진하는 민간투자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 돈 없다, 이 양반아.
이미 재선이 된 것처럼 좋아하는 민 시장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실시협약식이 마무리됐다. 매년 8억 가까운 수입이 생기니, 내 노후는 따뜻하다 못해 뜨끈뜨끈할 것이다.
15층짜리 오피스텔. 350실의 주거 공간과 사무실,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이 건물. 내 돈만 165억 원이 들어갔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미 짓기도 전에 혁신산단의 랜드마크가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 혁신도시에 대한전력 신사옥이 있다면, 혁신산단엔 이 오피스텔이 있도다! 두개의 탑!
1년에 19억 원의 임대 수입을 낳는 오피스텔은 이미 입도선매됐다. 주거 공간은 수요가 넘쳐 났고, 사무 공간도 에너지밸리추진위, 혁신산단 지원센터 등이 입주하기로 하면서 만실이 됐다.
망해 버린 중전기조합 사장 놈들아.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라고! 다음 생애가 있다면 절대 잊지 말도록.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체결식을 무사히 끝내고 회사로 돌아오니, 지역번호 02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02로 시작하는 번호는 백퍼 스팸인데, 받을까 말까.
벨이 5번쯤 울렸을 때 결국 받았다.
“네, 지정수입니다.”
“사장님, 이승연입니다.”
“아! 총리님!”
“하하. 잘 지내셨지요? 제가 나랏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지만, 우리 지역 현안은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이번에 큰 투자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도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 네. 별말씀을요. 열심히 사업해서 번 돈은 지역에 환원하는 것이 기업가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지정수 사장님과 프라임일렉트릭의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네, 기업가 정신 잃지 않고 지역사회 공헌에도 힘쓰겠습니다.”
아주 짧은 통화가 끝났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대 총리로 발탁된 전직 도지사, 이승연 총리한테 걸려 온 전화였다.
나를 잊지 않았군. 벌써부터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와서 그런지, 통화가 끝나고도 어안이 벙벙하다.
약간의 인연 가지고 사업에 도움 받을 일도 없고, 도움 줄 사람도 아니겠지만, 괜히 기분이 우쭐해진다. 앞으로 똥볼 차지 않고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마! 느그 총리랑 밥도 먹고 마! 다 했어!
무지막지한 돈을 쓰고도 기분이 좋아서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보니, 우리 조합에서 정신 차리라며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봄이 따뜻한 기운을 여름에게 넘겨주는 6월 초. 우리 조합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재편된 업계 상황에 따라 8월에 있을 입찰 준비도 해야 하며, 이달 말에 있을 체육대회까지. 할 일이 많다.
이번 대한전력 입찰은 삼파전으로 치러진다.
우리 조합과 새로 생긴 중부변압기조합, 그리고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입찰유자격 업체가 달랑 2곳만 남은 중전기조합. 결과는 안 봐도 넷플릭스다.
사장단 회의는 승리를 미리 자축하려는 의미가 컸다. 장소는 늘 그렇듯 세 번 정도 넘어져야 코 닿을 곳에 있는 안성파워.
안성파워 정문에서 준희 누나를 만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이 우연. 역시 인연은 인연이야.
“오늘 회의에서 정수 씨 어깨 좀 들썩거리겠어요? 하하.”
“하하. 오늘 좀 거만하게 있어도 됩니까?”
살짝 더위가 느껴지는 6월 초 한낮의 햇빛을 맞으며 시시덕거리고 있자니, 뒤통수에서 질투 섞인 말이 들려왔다.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조합의 대들보들 아닙니까?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어요? 둘이 썸 그만 타고 연애를 하라니까. 하하.”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이다. 우리 조합의 최고 강경파답게 내가 중전기조합 족치고 있을 때 매일같이 응원해 주던 사람. 이젠 내가 하겠다면 뭐든 절대 지지해 줄 사람이다.
“하하. 사장님, 저희 연애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누나가 부끄럽다는 듯이 어깻죽지에 파운딩을 날렸다.
이거 찌릿찌릿한데? 강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이제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상황을 종료할 때가 된 듯싶다. 연애 직전의 설렌 감정은 충분히 즐겼다.
“허락은 무슨. 하하. 소문 다 났어요! 내가 봤을 땐 우리 박 사장이 많이 아깝긴 한데 말이야. 하하하.”
저 새끼가! 유 사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높게 평가해 줘서.
“아니, 셋이서 뭐 하고 있어요? 뭐 고스톱이라도 치는 거야?”
아주전기 이충원 사장도 도착해서 광이라도 팔겠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이, 이 사장. 아니 이 젊은 청춘 남녀가 소문 날 대로 다 났는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다는 게 말이 돼? 하하.”
“아직도야? 허허. 지 사장님요. 우리 박 사장 빨리 잡아야 해. 박 사장이 눈이 높아서 그렇지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먹어 보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오대양 육대주에 가득이야!”
“또 모르지. 눈 높기로 유명한 박 사장이 퇴짜 놓고 있는지. 박 사장님, 조합의 은인이자 든든한 대들보인 우리 지정수 사장님이 별로예요? 하하.”
안성파워 던전 들어가는 입구부터 난이도가 극강이다. 이거 정문에 돗자리 펴 놓고 만담쑈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사귀고 있어요! 됐죠? 하하. 어서 들어가시죠.”
깜짝이야.
누나가 만담쑈를 일거에 제압하고 환한 미소로 만담가 인솔자 역할을 자처했다. 누나도 이제 인내심이 다 된 모양이다.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확인했고, 방아쇠를 당길 순간만 남았다.
안성파워 사무실로 걸어가는 누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휴가 언제 갈 거예요?”
“글쎄요. 우리 회사는 다음 달 말부터 일주일 휴가니까, 그때 어디든 가야겠죠?”
“휴가철엔 사람만 많잖아요. 이달 중으로 푸켓 어때요? 날 더워지기 전에 더운 데 가서 여름맞이 준비를 미리 하는 거죠.”
“하하. 뜬금없기는.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요?”
뜬금없는 여행 제의에 놀라면서도 여유로운 내 표정이 맘에 든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덕준이도 그랬지만, 누나도 틈만 나면 일만 하지 말고 충분한 휴식을 보내야 한다고 들들 볶았다. 나도 이제 그럴 여유가 생겼수다.
“8월 입찰 전까지는 비수기라 일도 널널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요. 이럴 때 쓰라고 연차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작년에 연차 거의 못 썼어요.”
“근데 다른 사람 다 놔두고 왜 저한테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예요?”
“뭐 이유가 필요합니까? 누나니까요.”
누나가 기대하는 눈빛과 음흉한 사람이라는 눈빛이 뒤섞인 눈망울을 선보였다. 어떤 눈빛이라도 좋으니까 대답만 하셔.
“좋아요. 근데 둘이 가도 괜찮겠어요? 안 무서워요? 하하.”
“무섭긴 한데, 누나를 믿어야죠 뭐.”
“뭐래. 푸하하.”
“아이, 진짜 둘이 연애하라니까!”
꽁냥꽁냥을 방해하는 일심전기 유 사장의 일침에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17명의 대표가 모였다. 작년 입찰 때는 조합 회원사가 19곳이었다.
대한전력 실사의 벽을 넘지 못한 세 곳은 나주 내려오겠다며 잔뜩 투자해 놓고 막혀 버린 자금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청산 절차를 밟으며 채권단인 은행이 자산매각 공고를 내는 바람에 내가 좀 바빠지기도 했다. 이 업계 게임체인저인 자동권선기가 애먼 사람에게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임필성 변호사 도움을 받아 자동권선기 6대를 다시 사들였다. 무슨 운이 그리 좋았던지, 6억에 팔아 1년도 안 쓴 걸 2억에 다시 샀다.
밥 먹다 돌을 씹었는데, 꺼내 보니 금이더라, 이런 건가? 자동권선기의 가치를 몰라본 감정평가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렇게 세 곳이 떠났고, 중전기조합에서 이적한 전우산업이 새 회원사로 이름을 올렸다. 전우산업은 우리 조합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대한전력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든든함.
참석자에 살짝 변동이 생긴 변압기혁신조합 사장단 회의가 시작됐다. 예상대로 귀가 간지러웠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에 앞서 국민의례 같은 건 다 생략하고, 우리 지 사장님한테 박수나 한번 보냅시다.”
강호창 사장이 나를 태극기 대하듯 운을 띄웠다. 일심전기 유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호객꾼 노릇에 나섰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 사장님이 정말 큰일을 하셨어요. 난 진짜 검찰 조사 받는다고 할 때 가슴이 철렁했다니까요. 그걸 되치기해서 중전기조합을 묵사발을 만들어 놨으니, 진짜 대단하신 분입니다. 덕분에 우리가 재미를 보게 생겼지 않습니까? 자, 박수 시원하게 보내 줍시다.”
짝짝짝.
“고생 많았습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 사장님 하라는 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요! 하하.”
박수 소리에 섞여 나오는 낯간지러운 말들이 고막을 흔들었다. 누구 면봉 가지고 계신 분 없습니까?
내 앞에서 삼바춤이라도 춰야 할 사장들이다. 내가 어중이떠중이들 싹 정리해 준 덕에 가만히 앉아서 30억가량을 더 벌게 생겼으니 말이다.
몇 달 스트레스 받아 가며 고생한 결과가 남 좋은 일만 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합과 나는 운명공동체이다. 우리 조합 회사들이 많이 벌수록 그 돈 대부분이 우리 회사로 굴러온다.
우리 조합뿐이랴. 새로 생긴 중부변압기조합도 열심히 돈 벌어서 나에게 상납한다.
변압기 팔아서 돈 벌고, 자재와 설비 팔아서 돈 벌고. 변압기 자재와 설비 전문 회사라는 또 다른 축이 이렇게 재미를 볼 줄이야. 난 이제 놀러 다닐 일만 남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