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7)
267 통장 다이어트
봄이 완연히 찾아왔고, 중전기조합과 길었던 싸움도 마무리됐다.
싸움의 결과는 발주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 조합에서 업체 세 곳이 이탈하면서 대한전력 발주가 살짝 늘어났고, 중전기조합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대박 특수를 누리며 우리 자재를 양껏 사 갔다.
5월 대선을 열흘 앞둔 날, 제3의 조합이 만들어졌다.
소속사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해서 중부변압기조합. 12곳이 참여하기로 했는데, 3곳이 입찰자격 정지를 맞으면서 고꾸라져 9개사만 이름을 올렸다.
새 조합 설립에 맞춰 동아일렉트릭 이석균 사장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사장님! 이사장 취임 축하드립니다.”
“지 사장님, 고맙습니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중전기조합을 반면교사 삼아서 좋은 조합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조합과도 사이좋게 지내시죠. 하하.”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 회원사들 앞으로 욕심 안 내고 착실하게 사업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휴, 이번에 정말 호되게 당했습니다. 하하.”
중전기조합 최웅민의 계략에 빠져 회사를 말아먹기 직전까지 갔다가, 내 덕에 겨우 살아났다. 이왕 살아난 거 더 살아 보라고 대한전력 실사에 대한 경고도 해 줬다.
2차로 들이닥친 파고도 내 덕에 겨우 넘겼으니, 저 워보이들에게 난 임모탄 조가 됐다. 날 위해 죽으면 발할라에서 부활할 것이니라.
“중전기조합에 남은 업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긴요. 죄다 망하게 생겼죠. 세무조사까지 맞아 버렸으니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나마 해원중전기야 워낙 돈이 많은 곳이라 살아남긴 할 텐데, 선장도 없고 관수도 못하고. 답이 없죠.”
17개 회사만 남은 중전기조합은 1945년 8월의 히로시마가 됐다.
소환장을 받은 사장들은 먼저 구치소 들어간 사장들에게 신고식을 하고 있다. 선장 잃은 회사들은 폐업전문 땡처리 업체들로부터 따뜻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광진변압기와 동서변압기는 엄청난 벌금과 추징금에 자금경색까지 겪다 땡처리 업체에 넘어갔고,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3~4곳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다.
“작년 입찰분 계약기간 이제 얼마 안 남긴 했어도, 업체 수 줄어서 관수 납품이 꽤 늘었겠습니다?”
“그렇죠. 스물아홉에서 열하나로 줄어 버렸으니 배 이상 늘어났죠. 지금 물량 뽑느라고 다들 난리입니다. 하하. 몇 달만 일찍 줄어들었어도 돈 좀 벌었을 건데요…….”
“혹시 욕심 부리시는 것 아니죠?”
“하하. 이거 참. 욕심 중에 최고가 돈 욕심이라고 안 합니까? 말처럼 버리기가 쉽지 않네요.”
욕심을 안 내야 사업이 잘되는 법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제 회사 망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자재만 잘 사면 그만이니까.
“물량 많아졌다고 좋아하실 것이 못 됩니다. 아차 하는 순간 연체 들어가면 답이 없어요.”
“부지런히 변압기 만들어야지요. 그래서 말인데, 그 자동권선기는 언제쯤 가능합니까? 빚을 내서라도 대금 마련할 테니 좀 서둘러 주시죠.”
“하하. 새 조합 만들어지면 선물 드리기로 했으니, 최대한 빨리 드려야죠. 새 조합 참여한 아홉 곳 모두 자동권선기 구입하기로 했죠?”
“그럼요. 그렇게 기똥찬 설비라는데 안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재도 싸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동권선기 9대. 63억 벌었다. 우리 조합 아니라고 1억씩 더 불렀는데도, 납품만 빨리 해 달라고 저리 난리다. 내 충실한 워보이들, 아주 맘에 들어.
설비제작 자회사보다 더 신 난 곳은 자재 쪽 자회사들이었다.
새 입찰 전까지는 중전기조합으로 계약이 유지되기에 살아남은 업체들은 관수 물량이 두 배로 뛰어 버렸다. 대부분은 우리한테 자재를 공급받기로 했기에, 갑자기 늘어난 자재 주문에 연일 야근이다.
우리 조합이 아닌 업체에는 공급가를 높였기에 연일 꿀이 뚝뚝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올해 목표로 했던 매출 3,500억 돌파도 떡을 치고 남을 정도다. 성과급 얼마나 뿌려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이제 과속방지턱 같은 놈들도 사라졌고, 고속질주만 남았다. 고속질주를 앞두고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잘 지내셨죠? 이제 워낙 거물이 되셔서 전화하기도 어렵네요.”
혁신산단 유아란 대리 전화다. 이게 얼마만인지. 교회 오빠랑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하하. 아무 때고 편하게 전화 주세요.”
“네네. 사장님, 직원들 숙소 크게 짓겠다고 하신다던데, 맞죠?”
“네, 맞습니다. 기존 숙소로는 부족해서 허물고 다시 지을지, 아니면 부지 분양 받아서 지을지 검토 중입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직원이 이제 200명을 넘어섰다. 살 곳이 없는 보호종료아동을 위해 50명 수용 가능한 크기로 지은 기숙사는 턱없이 모자랐다.
월급 많이 받는 터라 따로 숙소 구해서 사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기숙사 포화는 어찌어찌 막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영산포 일대 전월세 가격이 꿈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저희 사장님이 프라임일렉트릭이 기숙사 새로 짓는다는 얘기 듣고 여기저기 알아보셨어요.”
“아, 뭐 지원할 수 있는 것이라도 생겼습니까?”
핸드폰을 거쳐 전해지는 유 대리의 숨소리가 기쁨의 신호로 느껴졌다.
“네네. 원래 혁신산단 조성할 때부터 민간투자방식으로 공동기숙사 세우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어요. 근데 민간사업자 참여가 없어서 지지부진했거든요. 한데 혹시 사장님께서 참여 의사가 있으실까 해서요.”
“하하. 정말입니까? 저야 좋죠. 어차피 지을 생각이었는데, 지자체 지원 받으면 땡큐 아니겠습니까? 대리님,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할 일까지는 아니구요. 그래서 저희 사장님께서 사장님께 의향을 좀 여쭤 보라고 하셨거든요. 분양률이 요즘 계속 정체돼서, 정주 여건이 개선되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요새 기숙사 건립에 힘을 쓰고 계시거든요.”
혁신산단 분양률 높이기 위해서 기숙사 하나 새끈하게 짓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러니 돈 많은 나한테 투자할 생각 없냐는 뜻이로군? 그깟 돈 얼마든지 대 주마!
“대환영입니다. 얼마든지 투자하겠습니다. 이왕 짓는 거 오피스텔처럼 멋드러지게 짓죠. 하하.”
“호호. 감사해요. 아마 저희 사장님께서 따로 연락을 드릴 거예요. 사장님께서는 내년 초 착공 생각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내년이면 너무 늦어! 수용 인원 200명 정도로 잡으면 대략 15층짜리 정도는 지어 줘야 한다. 오늘 짓기 시작해도 2년은 족히 걸릴 텐데, 내년이라니!
“내년까지 반년이 넘게 남았는데, 너무 뜸 들이는 거 아닙니까? 짓기로 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지어야죠.”
“역시 사장님은 추진력 하나는 최고예요. 호호. 저희 사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서두르면 올해 안으로도 가능할 거예요.”
오피스텔에서 출퇴근하며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고독한 도시남이라도 된 듯이 흡족해하는 직원들을 상상했다. 비록 남자만 바글바글해 BOQ스럽겠지만, 군대 막사 같은 영내 기숙사보단 낫겠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혁신산단 사장이 찾아왔다.
“아이고, 지 사장님. 제가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이해 좀 해 주시죠. 허허.”
“어서 오세요. 요즘 분양률도 잘 안 올라가고, 답답하시죠?”
“하하. 그래도 사장님께서 분양 많이 해 주셔서 위안이 됩니다.”
최대근 의원에 이어 2대 사장으로 취임한 조상철 사장.
역량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조 사장 취임 이후로 혁신산단 분양과 공장 착공이 영 지지부진하다. 그래서인지 임기 2년차에 성과 좀 내려고 기숙사 건립에 올인하고 있다. 연임하려면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기숙사 건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성과가 필요한 사람이 내놓을 요리를 바로 주문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하는 건 알고 계시죠? 민자유치면 수익률이 좀 나와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민간사업자 참여자 찾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사장님께 말씀 한번 드려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사업자로 참여하겠다고 하면 바로 착공할 수 있습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절차 간소화해서 빨리 결정될 겁니다. 근데 BTL 방식이라 투자 수익률이 높진 않습니다.”
“음, 그렇군요.”
젠장. 조 사장 온다고 했으면 미리 공부 좀 할 걸 그랬다. BTL은 또 뭐야? 이럴 땐 알아듣는 척 연기하면서 상대방 말에서 힌트를 빨리 얻는 수밖에 없다.
“BTL이라 수익률이 20년짜리 국고채 수익률에 프리미엄 조금 붙이는데, 대략 20년 기준으로 연간 5프로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그것보다는 기숙사 이용자 대상으로 수익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요.”
“그럼요. 그래서 BTL로 하겠다고 결정한 거죠. BTO 방식으로 하면 기숙사비 몇십만 원도 우습죠. 사장님께서 SPC 설립해서 기숙사만 세워 주시면 제가 운영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알아듣는 척 연기했더니 역시 성과가 있다.
대충 BTO는 민간사업자가 수익 사업까지 하는 거고, BTL은 건물 지어 준 값만 할부로 받는 식인 것 같군. 민자도로의 최저수익보장 조항 때문에 세금이 줄줄 샌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BTL은 그 짓을 안 하겠다는 것이겠지 싶다.
“규모는 어느 정도 생각하십니까? 저는 1인 1실로 200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수용 인원도 중요하지만, 1인 1실은 무조건 관철시켜야 한다. 혈기왕성한 20대, 그것도 남자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200명요? 그럼 투자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 정도면 대략 10층 정도는 올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투자비는 건설비만 들어가는 것이죠?”
“그럼요. 나라 땅에다 건물 지어서 기부채납하면 임대료 지급하는 방식이죠. 일단 예정부지는 혁신산단 중앙에 공원 조성돼 있지 않습니까? 그 옆으로 잡아 놨습니다. 상가 주차장도 크게 지어 놔서 기숙사로 쓰기 딱 좋죠.”
급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건축비 평당 400 이상 잡으면 300억은 족히 들 것 같다. 300억이면 좀 후달리는데…….
그래도 그 정도 쓰고 매년 5퍼센트 수익이면 나쁠 것도 없지. 세제 혜택도 있으니, 버는 돈의 절반 가까이를 나라에 상납하는 것보다 좋은 일 하면서 돈 버는 것이 더 낫겠다.
“어차피 회사 자체적으로 직원 숙소 크게 지을 생각이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투자하고, 부족하면 회사에서 일부 투자하면 됩니다. 자금 걱정은 안 합니다.”
“역시 지 사장님답습니다. 다들 사장님처럼 화끈하게 사업한다면 혁신산단이 진작 분양 다 돼서 지금쯤 공장으로 바글바글했을 텐데요. 하하.”
어쩌다 돈 화끈하게 쓴다는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장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 하면 두세 마디씩 던지는 회사 중역 나리들께서 동의해 줬으니 가능한 일이지. 반대할 때는 만인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니되옵니다’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치는 임원들이 돈 쓴다고 할 때는 나보다 더 신 나는지 원.
“제가 나중에 혁신산단 다 우리 공장으로 채울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하하.”
“아이고, 제가 사장님 때문이라도 연임해야겠습니다. 하하. 그럼 일단 도청이랑 시청 담당자들하고 연락해서 일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이게 절차가 있긴 한데, 좀 서둘러 보겠습니다.”
조 사장이 내 의지를 확인하고 나면서부터, 혁신산단 기숙사 건립사업은 빠르게 추진됐다. 뭐 하나 붙잡으면 질질 끄는 공무원들이 웬일로 속전속결로 움직이나 싶을 정도였다.
혁신산단 사장과 수차례 협의, 전남도청, 광주광역시청을 숱하게 오가며 고생 좀 한 끝에, 총 411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 확정됐다.
기숙사 건립을 위한 SPC에 내가 40퍼센트를 투자하고, 전남도와 광주광역시가 각각 15퍼센트씩 출자하기로 했다. 프라임일렉트릭과 자회사가 25퍼센트를 넣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최대근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유원종합건설과 대한전력, 혁신산단 입주기업들이 맡았다.
최소한 반년이 걸릴 절차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신속히 마무리됐다. 물주 생겼다는 소식에 번개처럼 일을 하셨군.
덕분에 작년에 두둑하게 벌었던 돈으로 초고도비만 상태였던 통장이 슬림하다 못해 헐벗게 됐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뭐.
돈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간다는 진실은 사장이라고 다를 게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