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2)
032 인생은 실전
잠깐의 정적 속에서 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 미친놈이 우리 직원을 때려? 그것도 덕준이를?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마음 가는 대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나리오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뚜껑이 만개했다. 열린 뚜껑에서 화끈하게 열기가 품어져 나왔다.
시작은 먼저 화를 내면 지는 싸움이었다. 최현아는 진즉 탈락했고, 나와 우진택 둘만 남았는데, 우진택은 주먹질을 선택해 버렸다.
내가 이겼다는 기쁨보다 내 직원, 그것도 덕준이가 맞았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참아서는 안 될 싸움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구요! 이봐요, 우진택 씨.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까? 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 과장 괜찮아?”
“휴우. 안 괜찮습니다. 사장님, 경찰 불러도 됩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내 회사에서 폭력은 안 될 말이지.”
우진택이 궁지에 몰렸다. 궁지에 몰렸어도 가오 때문에 쉽게 물러나지 못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 궁지에 몰린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 봐야 더 빠질 뿐!
“뭐? 경찰을 불러? 이 새끼들이 진짜 미쳐 돌아가네. 너 이 새끼 일루 와! 이 싸가지없는 새끼가. 뭐 경찰을 불러?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이봐요. 우진택 씨 그만 하시죠. 이렇게 행패 부리려고 여기 왔습니까? 어디 공장 셔터 내리고 원하는 대로 한 따까리 해 드릴까요?”
늪에서 빠져오겠다고 가열차게 지랄해 대는 우진택을 향해 샷다마우스를 시전했다. 솔직히 공장 문 닫고 죽어라 밟아 주고 싶었다. 짐승은 되지 말자. 사람답게 살자.
아직 싸울 일이 많아 화만 돋울 생각이었다. 태양전기가 망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진택 저 미치광이 때문에 그 생각 따윈 다 지워 버렸다.
승리도 필요 없다. 검사과 사무실은 안전 문제로 CCTV가 가동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잖아? 변압기 회사 한다는 놈이 그걸 알고도 폭력을 휘둘렀으면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지.
“야! 뭐? 누가 그따구로 말하래! 네가 뭔데! 니까짓 게 뭔데 그따구로 말하냐고! 아아악!”
아이고 최현아 씨. 고막 터지겠습니다요. 아주 부부가 쌍으로 지랄이십니다.
“여기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인데요. 폭행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네, 맞습니다. 주소요?”
경찰에 신고하는 소리에 우진택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안 부를 거라고 생각했냐?
“여보 갑시다. 여기 더 있어 봐야 이 싸가지없는 새끼들이랑 똑같은 놈 되는 거야. 가자고.”
이 와중에도 가오 챙기면서 무사히 도망칠 생각을 하는구만. 어림도 없지.
사장이라는 것이 뭔지. 이 상황에서도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하지 못하고 이성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 분하다.
“우진택 씨 어딜 가실라구요? 우리 직원 폭행해 놓고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겁니까?”
“뭐?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나도 치겠네? 그래 쳐라. 뭐 치겠다는데 맞아 줘야지.”
우진택이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그냥 그러고 말 것이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순간 최현아가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설마 집에서도 성질부리다가 얻어맞고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 성질 더러운 최현아가 저렇게 고분고분할 수 없을 텐데…….
“너 이 새끼 두고 봐. 사업이 만만해 보이지? 아주 뵈는 것이 없지? 뜨거운 맛을 보게 해 줄 테니까 두고 봐. 여보 가자.”
“아니, 자꾸 딴소리하지 말고, 우리 직원 때려 놓고 어딜 가냐구요.”
“으아아악!”
꽝꽝꽝꽝.
저놈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죄 없는 테이블을 왜 때리는데? 그거 재활용 센터에서 무려 3만 원이나 주고 산 거라고!
“진짜 뭐 하는 겁니까!”
“지 사장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서로 큰 소리를 내는겨?”
몰래 지켜보고 있던 공장장이 타이밍 맞춰 사무실로 들어왔다. 수습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살짝 고민이다. 덕준이가 한 대 맞았는데 그냥 보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안 된다. 저 연놈들 이대로 보낼 수 없다. 태양전기 다니는 동안 그 고생과 수모는 기꺼이 참아 냈지만, 오늘 일은 도저히 못 참겠다.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모를까, 내 직원이 맞았는데 왜 참아야 하는데!
“최 사장. 서로 오해가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 좀 진정되면 그때 얘기하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게. 이게 무슨 꼴인가. 서로 같이 일했던 사람끼리 말이야.”
“공장장님.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러야죠. 우리 직원이 맞았는데, 그냥 보내다니요. 전 절대 용납 못합니다. 용납한다면 사장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직원이 맞았다니?”
“최현아 씨, 우진택 씨. 손님이라 생각하고 긴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무 구차하게 구니까 몇 마디 하겠습니다. 제가 사람 빼 간 것이 맞습니까? 여기 공장장님 계시니까 한번 물어볼까요?”
니들이 할 말이 있겠냐? 나는 물론이고 공장장, 상무 다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뻔히 아는데?
“거기 있다가 우리 회사로 온 사람들이 노비라도 됩니까? 당신들 허락 없이는 다른 회사 가면 안 되는 사람이냐구요. 그 쥐꼬리만 한 월급 줘 가면서 그렇게 부려 먹고도 아직도 성에 안 찹니까? 다들 태양전기 키우느라 청춘을 바친 사람들한테 고생했다고, 그동안 제대로 대접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소리 하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사태를 수습하러 들어온 공장장도 태세를 바꾼 모양이다. 마냥 사람 좋게 웃어 대던 인상이 화산 터지기 직전의 꿈틀거림으로 가득했다. 이거 와이라노 와이라노. 공장장님. 압니다 압니다.
“뭐 기술 빼 갔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대답할 가치도 없지만, 정 못 믿겠으면 변압기 뜯어 보세요. 이 정도만 하죠. 더 얘기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이따 경찰 오면 그때 얘기합시다.”
내 최후 선언에 두 연놈은 아무 말이 없다.
몸 부들거리는 것이 괴성과 파운딩을 내리꽂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분위기가 삭막해지니까 아무 소리 못하는 것이 딱 봐도 선택적 분노조절장애이다. 성질 더러운 놈들치고 겁 없이 행동하는 경우는 또 없다.
그래, 둘이 행복해라.
“한 과장. 경찰 신고한 것 맞지?”
“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형법 260조 1항,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전 합의할 생각 없습니다.”
덕준이가 단호박같이 법 조항을 읊었다. 그래, 너 사법고시 본다고 책 뒤적거리던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봐, 한 과장이라고? 그래, 한 과장. 내가 좀 전에 흥분해서 자네한테 실례했네. 이해해 주게나.”
시계 풀던 그 패기는 어디 갔냐고 이 새끼야! 이제 와서 꽁무니를 빼겠다고?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오는구만.
“사장님. 모욕죄는 친고죄이니까 번거롭더라도 고소장 쓰셔야 합니다. 아까 폭언한 것 다 녹음돼 있으니까 고소장만 쓰시면 됩니다. 형법 311조 모욕의 죄.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덕준이가 빈집털이에 나섰다. 이미 패배를 시인하며 가져온 봇짐이 다 털린 사람한테서 똥구멍에 묻은 콩나물까지 뽑아먹겠다는 심산이다. 잘한다 한덕준!
“이봐. 내가 잘못했네. 사과를 받아 주게.”
“거참. 아니, 난데없이 싸다구 한 대 맞았는데 잘못했다는 소리 한 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야 합니까? 내가? 난 아직도 여기가 얼얼한데?”
“내가 잘못했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네. 미안하네.”
“말 한번 되게 띠껍네요. 미안하네? 왜요? 나이 어린놈 앞이라 가오는 세우고 싶습니까? 사람 패 놓고 가오는 생각납니까?”
“한 과장, 그만해. 더 얘기하고 말 것도 없어. 할 얘기 있으면 경찰서 가서 하자고.”
저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상황이 종료될 시점이니 한 방 날려 줄 필요가 있겠다. 삼자가 듣지 못한다면 모욕죄가 아니라는 덕준의 조언이 생각났다.
우진택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 좆같지? 경찰 아저씨한테 잘 비세요. 존만아.”
* * *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를 갔다. 살다 살다 이런 일도 있구나. 두 연놈 부부를 모욕죄로 고소하고, 폭행에 대한 진술도 끝냈다.
이규철 과장이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CCTV 녹화본을 떠서 USB에 담아 줬다. 그냥 꼴통인 줄 알았더니 눈치도 빠르네.
덕준이는 벌금형으로 끝날 것 같다고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강냉이 몇 개 내줄 필요는 없잖아. 이것으로 끝내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덕준아.
“한 과장! 괜찮냐?”
“네, 진정됐습니다. 아까는 진짜 눈깔 뒤집히는 줄 알았어요. 공장장님 안 왔으면 진짜 유혈사태 났을지도 모릅니다. 뭐 저딴 새끼들이 다 있어요?”
공장으로 복귀해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상무와 공장장을 비롯해 태양전기에서 빼돌렸다는 그 멤버들이 다가왔다.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후련하다는 상쾌함이 공존한 표정으로 말이다.
“야야. 내가 저놈들 밑에서 일했어. 어땠는지 알겠지?”
상무가 잘 양념된 무침에 참기름을 쏟는다. 하긴 상무도 엄청 당했지. 영업한다고 나갔다 오면, 어디 가서 뭐 했냐, 이건 왜 썼냐, 밥은 왜 7천 원짜리 먹었냐, 그 말 같지도 않은 지랄을 묵묵히 견뎌 냈었지.
“상무님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아까 손에 칼 있었으면 찔렀어요. 아오. 한덕준 많이 사람 됐네.”
“우진택 저놈이 저렇게까지 개차반인 줄 몰랐네. 우리 사장님도 그렇고, 다들 그동안 고생들 많았네. 우리 말이야, 회사 잘 키워서 저놈들 기를 확 죽여 버리자고!”
“상무님, 좋은 말씀 하셨습니다. 저 연놈들 경찰서 보냈다고 시시덕거리면서 좋아하고 말 일이 아니죠. 두고 보세요. 태양전기 쪽박 차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회사를 키워야 할 또 하나의 동력이 생겼다. 어디 봐, 화끈하게 키워서 초근목피로 연명하게 해 줄 테니까. 그때 가서 죽니 마니 하면서 아쉬운 소리 좀 해 봐라.
“그나저나 덕준이가 저렇게 한 대 맞을 줄 알았으면, 대본 좀 잘 짜 둘 걸 그랬네. 너무 아깝네. 덫을 놓고 기다리다가 잔인하게 밟아 줬어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아쉽네.”
“아오! 내 뺨따구가 부비트랩이냐!”
“1차전은 완벽한 승리!”
“뭐 또 있어?”
“저 새끼들이 저 꼴을 당했는데 가만있겠냐? 어떻게든 복수하려고 난리치겠지. 지들이 해 봐야 뭘 하겠어? 복수라고 해 봐야 어차피 할 것도 없어. 지들이야 할 것이 없지만, 난 할 수 있는 것이 많거든. 저 새끼들 절대 가만 안 둬. 상무님! 저놈들 분명히 거래처부터 관리 들어갈 겁니다. 문제없죠?”
“거래처들 지들이 만들었나? 다 내가 만들어 둔 거래처지. 아무 문제 없으니까 걱정 말어. 저놈들 지랄한들 지들만 죽어 나가는 거야.”
“한 과장. 자네가 이 바닥 와서 고생이 많네.”
공장장이 생각이 많은 얼굴로 덕준이를 위로한다. 청춘을 바쳐 회사를 일으켜 세운 보답이 고작 토사구팽이었다는 한스러움이 다시 떠올라 분이 풀리지 않은 것일까?
그래요. 그 분노 다 터트려 버리세요. 제가 확실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우리 능력쟁이 직원들 마음껏 날게 해 드리겠습니다요!
“공장장님. 아까 최현아랑 우진택 경찰서 끌려갈 때 어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통쾌했지. 그것들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면서 그러나.”
“그러고 보면 공장장님이 오늘 제일 득본 사람이네요. 술 한잔 쏘세요!”
“그래? 그렇지! 안 그래도 2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 버렸어. 그래! 오늘 내가 쏜다. 우하하하.”
“그런데 사장님. 투자자 미팅은 어떻게 할까요?”
“푸하하하. 야, 이 미친놈아 거기서 왜 애드립을 쳐! 분위기 존나 험악해지고 있었는데 터질 뻔했잖아!”
외부인의 침입으로 내부 단결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적어도 태양전기 토사구팽 5인방과 덕준이만큼은 하나다. 초사이어인보다 더 강력한 것이 궁극의 퓨전 아니더냐!
앞으로도 이렇게 단합된 모습이라면 망태 할아버지가 와도 안 무서울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