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3)
033 빈볼
태양전기 진상들의 행패를 일거에 제압하고 나자, 회사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이제 좀 사업에 전념하며 살자.
핸드폰이 책상을 요란하게 들이박으며 자기 좀 봐 달라고 울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생각 좀 하겠다 싶으면 여지없이 울려 대는 전화.
“네,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안녕, 하십니까? 중전기조합에 박희태 상무입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이번에 대한전력 입찰 자격 받으셨더라구요?”
“네, 맞습니다. 올해 입찰 준비하려고 서둘렀습니다.”
“축하할 일이긴 한데요, 조합에는 가입하셔야지요?”
평온이 찾아오나 싶더니, 이제는 조합이 시비를 거는 것인가? 조합에 가입해서 가입비도 내고, 와서 비싼 데 데려가서 신고식도 해야지, 왜 아무 말이 없냐는 뜻이겠지.
하여간 이 바닥 사람들 참으로 거만하다. 목소리부터 기름기가 철철 넘치는 것이 참 띠껍다.
변압기는 대형인 전력용 변압기를 제외하고는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어 대기업이 뛰어들 수 없다. 대한전력도 법에 따라 배전용 변압기를 중소기업에만 발주한다.
고만고만한 이 바닥 회사들은 과당 경쟁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조합을 만들어서 대한전력과 계약을 맺는다. 회사가 크든 작든 조합 소속이면 무조건 나눠 먹는다. 합법적인 담합인 셈이다.
어차피 나눠 먹기라 금성전기같이 규모 좀 있는 회사들은 관수 시장을 그냥 용돈벌이 정도로 취급하고 만다. 그러나 관수만 하는 회사들은 목숨이 걸려 있으니 악을 써 가며 조합을 꾸려 간다.
간혹 나눠 먹기에 불만을 가진 업체들이 조합을 탈퇴하고는 개별로 입찰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합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후려치기로 반발 업체를 죽여 버리는 것이지.
불만 업체가 낙찰을 받아도 아주 거지 같은 단가에 피똥을 싸게 된다. 결국 조합에 반납하고 앞으로 개기지 않겠다는 충성 맹세를 할 수밖에 없다. 단가 하락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치더라도 반발하는 놈을 가만둬서는 안 된다는 곤조의 발현이다.
난 조합에 가입할 생각이 애당초 없었다. 나주 내려가면 우선 배정을 받는데, 그것만으로도 배가 터질 지경이다.
굳이 조합에 가서 물량 더 받겠다고 굽실거릴 필요가 없지. 가입비에 수수료만 해도 몇 억인데…….
“아직까지 조합 가입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그래서 가입 안 하고 있습니다.”
“뭐라구요? 필요성을 못 느껴요? 허허. 창업하신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사장님, 그러다 업체 사장님들한테 찍히면 골치 아파요. 제가 조언드리는 것이에요.”
“네, 고민해 보겠습니다.”
“허허. 이것 참. 아직 입찰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 보시구요. 이번 주에 조합 신년회가 있는데, 와서 인사나 하고 가시죠?”
인사나 하고 가라고? 이거 전화기에 대고 욕을 해 달라는 부탁인가? 말 한번 되게 싸가지없게 하네. 나도 질러야지, 가만있을 수는 없지.
“가야 합니까? 전 조합 회원도 아닌데요?”
“하하, 사장님. 제가 조언드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직 이 바닥 생리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원래 그렇게들 하는 겁니다. 다들 몇십 년씩 하신 분들인데 당연히 와서 인사도 하면서 안면 익히고 그래야 사업하기가 수월해지지요.”
조합 월급쟁이가 뭐 이리 거만하냐? 몇십 년씩 했다는 사장이었으면 수화기에서 칼 삐져나왔겠네.
신삥이라 길들이고 싶은 것 알겠고, 내가 좀 수그리면서 굽실굽실했으면 하는 것도 알겠는데, 말본새가 싸가지가 없잖아!
지랄하는 놈들한테는 쌍지랄로 되갚아 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이자 국룰!
“인사하라고 하면 가서 하겠는데요. 제가 오늘 처음 통화하는 분한테서 조언까지 들으며 회사 운영해야 합니까?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허허. 태양전기 사장님이 한참 얘기하더니 역시나네요. 아무튼, 신년회 날짜랑 장소 문자로 보내 드릴 테니까 확인하세요.”
태양전기 사장님? 하하. 최현아 고것이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쳤네. 그래서 조합도 한통속이라 이거군? 하아. 이것들 진짜. 어디까지 지랄을 하시겠다는 거냐?
“조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새해 벽두부터 전화해서 사람 불쾌하게 하는 말씀을 하셔야 합니까? 예의를 차리셨으면 좋겠네요.”
“아, 네에네에. 그럼 신년회 때 뵙겠습니다.”
뚝.
이런 시밤바가 다 있나! 내가 신경이 예민한 것일까? 왜 이렇게 빼빠로 신경 긁어 대는 놈들이 많지? 서로서로 웃으면서 좋게 얘기하면 혓바닥 덧나서 알보칠이라도 발라야 하는 것이야?
하여간 이 그지 같은 바닥. 1년만 지나 봐. 내가 진짜 죽는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들어 줄 테니까.
* * *
“사장님요. 혼자 갈 수 있겠어? 괜히 분위기에 주눅 들어서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밥만 먹고 오는 것 아녀?”
덕준이가 내 전투력이 못내 의심스러운지 같이 가서 지랄해 주겠다고 앙탈이다.
“걱정 마라. 나도 산전수전까지 겪으면서 나름 공력을 갈고닦았어. 이제 공중전 끝내면 만렙이니까 걱정 마셔. 행여나 헛소리 개소리 짖으면 아가리 이쁘게 찢어 주고 오면 되는 것 아니냐?”
“이야, 우리 사장님. 파이터 다 됐네. 혹시나 쌍욕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싶으면 바로 녹음하는 것 잊지 말고! 모욕죄는 친고죄니까 고소해야 처벌 받는 것 알지?”
조합 신년회라는 것이 사장들끼리 비싼 점심 먹고 골프장 가서 라운딩하면서 시간 때우다, 해 지면 돈 많이 드는 곳에 가서 흥청망청 노는 것을 그럴싸하게 이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 사장들은 눈치껏 남자 중역들을 대신 보내고는 했다.
그러나 올해는 라운딩을 취소했단다. 다크호스 출현으로 똥구멍이 움찔움찔한 모양이지?
프라임일렉트릭이 생겼고, 나주에 공장을 차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긴 했다. 나주 입주 업체가 배정량 20퍼센트를 가져간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니까 뒤늦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뛰어들어 봐야 늦었지. 문자님의 신탁을 받은 내 선견지명이 얼마나 대단하냐!
신년회는 밥 먹기가 아주 불편한 한정식 가게에서 열렸다. 먹고 싶은 것도 눈치 보여서 맘대로 못 먹고, 좀 먹을라고 하면 그릇을 치워 버리는, 아주 허기지기 좋은 식당이다.
일단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부터 찾았다. 적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그나마 안면이 있는 박 사장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든든하겠다 싶은 얄팍한 생각에서다.
박 사장을 찾으러 식당을 둘러보는데 우진택부터 눈에 들어와 버렸다. 에잇, 재수없게시리. 가래를 한번 뱉으려는데 박 사장이 눈앞에 나타나 방해한다.
“어머, 지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조합에서 신고식하라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박 사장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얼굴을 밀착한다. 어머 씨발. 놀래라.
“하여간 꼰대들이죠? 기죽지 마세요.”
귓속말이 참 달콤하구나. 50대 이상의 여자들에게서 나는 진해서 역한 화장품 냄새가 아니라 상큼한 향수 냄새가 싹 훑어 지나갔다. 킁킁.
“그나저나 사장님, 나주 내려가면 대한전력한테 20프로 배정 받는다면서요? 어쩜 저한테 얘기를 안 하셨어요?”
저 매서운 눈빛! 처음이었으면 등골이 오싹했을 텐데 이미 경험한 바로는 살의가 없는 눈빛이다. 은근히 장난꾸러기이구만.
“저는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죠.”
“다들 긴가민가했는데, 얼마 전에 대한전력 사장이 못을 박았더라구요. 다른 사장님들 난리도 아니에요.”
역시나군. 그래서 나를 이렇게 혼자 불러 놓고 다구리라도 치겠다 이거구만. 전투력이 고조된다.
조합의 반발이라.
우선 배정은 입찰 결과에 따라 단가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조합이 미쳐서 헐값에 낙찰을 받으면, 우리 회사 역시 그 가격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를 죽일 수 있으니 알아서 짜져라 이 말을 하겠다고 여기 부른 것이군. 너희들은 짖어라. 난 내 갈 길 갈란다.
“사장님, 박희태 상무라는 분이 어떤 분이시죠?”
“박 상무님요? 잠시만요. 어디 보자. 아! 저기 계시네요. 같이 가요. 소개시켜 드릴게요.”
밥 한번 같이 먹었다고 친해져서 그런가, 원래 성격이 활달해서 그런가. 어색하고 불편함이 가득한 이곳에서 참 좋긴 하다.
“상무님! 오랜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고, 박 사장님. 그간 신년회 통 안 오시더니 올해는 오셨네요?”
“걱정 마세요. 해 지기 전엔 갈 거니까요. 여기는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 사장님이에요. 오늘 인사드리러 왔다고 하네요.”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전화상으로 인사드렸던 지정수입니다.”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뭐랄까 간신배같이 생겼다고 할까? 환하게 웃는데도 눈빛에 담긴 야비함을 숨기지는 못했다. 내 선입견은 아닐 것이다. 선입견이었다면 그런 개 같은 전화질은 안 했을 것이니.
“아, 네. 반갑습니다. 이따 회의 시작 전에 간단히 소개할 시간 드릴 테니까 인사 한번 하세요.”
본체만체하면서 기계적으로 말하는 저 주둥아리를 이쁘게 찢어 드리고 싶은 맘이 용솟음친다.
“박 사장님, 제가 신생 업체한테 너무 잘 대해 주죠? 예전에는 신고식이니 뭐니 하면서 엄청 살벌했었는데…… 하하하.”
이거 아주 큰 은혜를 입었네요, 씨발놈 님아. 하긴 뭐 저 사람도 월급쟁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자. 먹고살려고 저러는 것도 참 고생이다.
“이사장님! 여기 잠깐만요.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있는데요. 지정수 사장이라고. 인사 나누시죠.”
저 상무 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을 뻑뻑 긁어 댄다. 의도적인 티가 너무 나, 대본을 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날 흥분시켜서 욕이라도 나오길 기대하는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잘 부탁한다느니, 만나서 반갑다느니 추임새를 넣고 싶지 않았다. 조합 이사장이라고 해서 내가 기 죽을 것도 없다. 이사장이라고 해 봐야 고만고만한 변압기 회사 사장이지 뭐 별것 있나.
“반갑습니다. 이제야 이렇게 정체를 드러내는군요. 미리 좀 와서 차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눴으면 좀 좋습니까? 하하.”
어디 보자, 어금니 위아래로 금이빨 4개. 금목걸이에 금팔찌. 어이쿠야, 금반지 큰 것 좀 봐라. 반짝이는 것 참 좋아하시네. 어디 생활하십니까?
“제가 회원사가 아니라서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조합은 언제 가입하려고 그럽니까?”
“글쎄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 참. 젊은 사장이 무슨 거창한 포부를 가지고 있길래. 아무쪼록 사업 번창하시오.”
결심했다. 조합 가입은 하지 않기로. 이 거들먹거리는 놈들하고 한배를 타고 싶지 않다. 조합 가입하지 않아도 난 대한전력한테서 계속 꿀 빨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 것이니까!
그나저나 우진택을 봤으니 그냥 넘어가 줘서는 안 되지. 살살 신경 건드려 주는 새해 인사를 건네야 하지 않겠나.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은 많이 받으셨습니까?”
“어? 뭐야. 네가 여긴 왜 왔어!”
“아이고, 덕담 한번 진득하네요. 새해부터 뭐 그렇게 눈을 부라리십니까? 하하하.”
이 새끼야 그냥 말해, 다가오지 말고. 향수 냄새 더럽게 역하네. 빨리 박 사장의 상큼한 향수 향으로 코를 정화하고 싶다.
“너 이 새끼야. 신경 건드리지 말고 아가리 다물고 있어라. 알았냐?”
“하하. 제 아가리 가지고 왜 이래라저래라 합니까? 그나저나 재판은 잘 받고 있습니까? 왔다 갔다 하느라 사업에 지장이 많겠습니다?”
“이 새끼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니 주제를 알고 다녀라.”
“어이쿠, 무섭네. 왜? 또 주먹질이라도 할라고? 이봐요, 우진택 씨. 당신이야말로 주제를 알고 다니세요. 하꼬방 부사장이면 부사장답게 행동해야지, 어디 사장 앞에서 말이야. 오케이? 아무튼 식사 맛있게 하세요. 다음에는 웃으면서 봅시다.”
치고 빠지기! 찍소리 못하고 부들거리는 모습이 상쾌하다. 이것도 나름 짜릿한 맛은 있다.
이 법 앞에서 평등한 새끼야! 넌 계속 나한테 당할 수밖에 없어. 그동안 추운지 모르고 살았지? 이제 곧 해가 질 테니 얼마나 추운지 한번 느껴 보라고. 내가 니 연놈 부부는 두고두고 기억해 둘게.
“사장님들. 자리에 착석해 주시지요. 신년회에 앞서서 소개시켜 드릴 분이 있습니다. 원래 권투 경기도 메인이벤트에 앞서서 오픈게임 하잖아요? 하하.”
저 상무라는 놈이 자꾸 신경을 건드리네. 어차피 앞으로 볼일도 없고, 참아야지. 내가 부처다 씨댕아.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대표 지정수입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기업이라 선배님들께 좋은 말씀 듣고자 찾아왔습니다. 4월에 나주에서 둥지를 틀 계획인데, 제가 혁신산단 터를 잘 닦아 놓고 있겠습니다.”
“자네가 지정수 사장이로구만. 내가 어른이니까 말 편히 해도 되겠지? 암튼, 우리 얘기할 것이 좀 많은데?”
“하하, 김 사장님. 성질도 급하십니다. 우선 서로 인사 나누시고, 세세한 얘기는 이따 식사하시면서 하시죠.”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말부터 놓으면서 나를 죄인 취급을 한다.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장래가 촉망한 젊은 사업가 불러다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진짜 여기 분위기 쉣이네. 한 따까리 하자는 것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 준희 누나는 나가 있어. 이것들이, 나를 건드리면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세상 이치래드라. 알아들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