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8)
038 벚꽃 피는 봄
공장 준공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벚꽃 피는 4월부터는 직원 채용과 함께 바로 교육에 들어가야 한다. 열흘 정도 교육하면 준공과 함께 바로 실전에 투입될 것이다.
“한 과장아!”
“네히~ 사장님!”
“준비 다 됐겠지?”
“네히~ 말끔하게 다 준비해 놨습니다요.”
변압기의 변 자도 모르던 덕준이가 입사 1년도 안 되어 신입 사원 OJT 자료를 만들어 낼 정도로 성장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귀두가 주목된다. 귀두? 응?
채용할 직원 수를 놓고 꽤 격론이 벌어졌다.
당초 계획은 무리가 되더라도 50명 정도 뽑아서 여력이 되는 만큼 제품을 최대한 많이 만들 생각이었다. 8월 입찰이 끝나면 9월부터 물량이 쏟아질 테니 최소한 한 달 치 정도는 미리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동권선기 등장으로 무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장으로 승진한 유재준 부장은 사람 두 명을 붙여 주자 호랑이가 날개 단 듯 설비를 척척 뽑아냈다.
벌써 5호기가 가동 중이니 9월 전까지 자동권선기 10기 가동은 무리가 아니었다. 빨리 만들면 다른 것도 시켜야지.
“그래도 도망갈 사람까지 감안하면 20명은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존 직원 14명 포함해서 34명이면 당장은 많은 인원이긴 했다. 월 3억 원이 넘어가는 민수 쪽 매출 말고는 아직 벌이가 없기 때문이다.
건설 공사가 활발해지는 봄이라 민수 변압기 판매가 늘어날 것 같지만, 그래도 34명 먹여 살리기에는 많이 무리다. 그래도 어쩌겠나. 800억 원이 대기하고 있는데!
공장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군.
“지 사장 뜻도 알겠지만, 30명이면 관수, 민수 다 해서 한 달에 천 대는 뽑고도 남을 인원인데 너무 많아. 한 달에 500대 정도 만든다 생각하고 일단 10명만 충원하자고. 자동권선기가 없었으면 모를까, 지금도 고장 없이 권선 척척 뽑아내잖아. 조립할 사람만 있으면 되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상황 봐서 그때그때 충원해야지,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
“공장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큰 회사도 아니고 한 번에 인력 충원 많이 하면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큰 회사가 아니잖아요? 신생 회사라 조직 관리 노하우도 부족하고 말이죠. 10명 충원해서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연습을 해야죠.”
덕준이 이 자식. 다 컸네 다 컸어. 이제 백수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야.
나는 회의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답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호통 치는 회의를 왜 하나 싶었다. 갈굴 것이 없으면 회의 자료 양식 가지고도 시비를 걸더라.
그렇게 회의로 몇 시간을 잡아먹고는 일을 못 끝내면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끝내야 한단다. 그것이 책임감이란다. 아주 회사 사랑하는 마음이 췌장에서부터 올라오게 만들어 주신다. 캬악 퉤!
계급장 떼고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고 치열하게 싸우며 결론을 내는 회의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렇게 내 20명 충원 주장은 무참히 까이고 있다. 성격 화끈한 상무는 내 의견에 힘을 좀 실어 주겠지?
“상무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나보다는 황 대리 생각을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경리 업무하고 있으니까 돈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지 않겠어? 황 대리! 얘기 좀 해 봐요.”
부지런히 회의록 쓰던 황미연 대리가 자신이 호명되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상무의 갑작스런 도발을 보니 어제 분명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앙금은 집에서 좀 풀고 오지.
“제가 뭐 압니까? 경리야 뭐 들어올 돈 체크하고 나갈 돈 보내고 그것만 하는데요.”
“몇 달 굴러가는 것을 봤으니까 자금 면에서 괜찮을지 어떨지 계산이 될 것 아닙니까? 그 정도는 파악해야 하지 않습니까?”
상무님! 집이 아니라고 그렇게 도발하시면 안 돼요. 내일부터 우리 못 볼 수도 있단 말입니다! 살기가 엄습하고 있다. 눈치 빠른 덕준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살기가 분명하다.
“대리님, 제가 방 내어 드릴 테니까 상무님이랑 잠시 얘기 좀 하시겠습니까? 하하. 회의는 누구나 평등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신 것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아니요. 뭘 그렇게까지요. 이따 집에서 오붓하게 얘기하죠, 뭐. 음…… 그냥 제가 돈 관리하고 있으니까 아는 정도에서만 얘기를 해 볼게요.”
돌아가면서 자기 의견 내는 회의. 아주 좋다, 좋아! 그나저나 우리 황 대리님, 늘 뭔가 준비돼 있단 말이지. 회사에서 단순히 입출금 일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야.
“자금이야 많이 빠듯하죠. 한 달에 천 대요? 그럼 200만 원씩만 잡아도 20억인데, 자재비만 못해도 12억이에요. 9월까지면 그것만 60억 넘게 나갈 텐데, 무리일 것 같네요. 공장장님 말씀대로 월 500대 생산으로 잡고 10명 충원이 낫겠다 싶네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황 대리가 물 흐르듯 말을 토해 내니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래! 이런 것이 회의야! 가만가만, 상무님 표정이 혼란스러워지는데? 명줄이 다했음을 깨달은 것인가?
“그렇다면 저도 우리 황 대리님 말씀대로 공장장님 의견에 한 표입니다. 이렇게 업무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는 황 대리가 정확하게 평가해 주니 10명 충원에 손을 들 수밖에 없군요. 황 대리 잘하고 있어. 아주 대단해!”
전세가 역전된다 싶으니 상무가 우디르급 태세 전환을 선보였다. 어설프게 도발했다가 퇴근하고 죽게 생겼으니 지문이 닳도록 비벼야 하지 않겠나. 상무님, 명복을 빕니다.
내 의견이 무참히 깨졌으니 회의를 마무리할 때가 됐군.
“우선, 자금 걱정 많이들 하시는데요. 안 그래도 공장 완공되고 등기 나오면 바로 대출 풀로 받을 생각입니다. 정부 지원 자금도 받을 수 있을 만큼 다 받아 놔야죠. 돈 걱정은 제가 한다고 해서 굳이 따로 말씀 안 드렸는데, 말 나온 김에 설명드리죠.”
지금 자본금이 바닥나긴 했다. 혁신산단 토지 구매로 10억을 보냈고, 공장 건설 계약금으로 5억을 보냈고, 설비 사고 운영비 하는 데 5억을 썼으니 딱 20억 원이 사라졌다.
대한전력 첫 납품분이 10월이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대략 계산해 보니까 70억 원이 필요했다. 혁신산단 정부 지원금이 얼마나 나올지가 관건이긴 한데,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땅과 공장, 설비 담보로 잡아서 대출 받으면 30억 정도는 나올 것이고, 신용 보증이 혁신산단 입주 기업에 한 해서 30억까지 가능하다. 그래도 부족하면 기술 개발 지원 자금, 청년 창업 지원 자금 등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을 생각이다.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란 소리만 하길래 저거 허풍이면 어쩌나 남몰래 걱정하며 흘린 눈물이 서 말인데.”
“지 사장. 이제 걱정 안 하고 물건 정신없이 만들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돈 걱정은 제가 합니다! 하하. 의견은 다 들었으니, 더 회의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공장장님 말씀대로 우선 10명만 채용하는 것으로 하죠. 대신 인력 풀로 돌려서 제품 만들어 놓는 것으로 합시다. 마당 널찍하니까 많이 쌓아 놓자구요.”
역시 난 직원들 말을 잘 들어 주는 사장이야!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사장이랍시고 고집 부릴 필요가 없다. 이것이 회의다. 알겠습니까, 최현아 씨?
그렇게 인력 충원이 결정됐고, 창업 공신들을 차에 태우고 나주 백지원으로 향했다.
남부 지방은 이미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완연한 봄이로구나.
“크으. 역시 내장산 벚꽃이야. 저기 좀 봐 봐. 좋네, 좋아.”
“공장장님, 사춘기 소녀같이 감성이 풍부하신지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 메마르게 살았나 싶네요.”
“아니 저걸 보고도 감흥이 없어? 지 사장 이거 감정이 메말랐어. 벚꽃을 보니까 먼저 간 마누라가 생각나는구만. 마누라가 암으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벚꽃을 보고 싶다고 그리 고집을 부리더라고. 아이고, 오늘내일하는 사람이 벚꽃 보고 싶다는데 어째? 데리고 가야지. 여의도까지는 못 가고 대충 인천대공원 가서 벚꽃 보여 주는데 어찌나 좋아하던지 원…….”
갑작스러운 탈룰라 신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때는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공장장이 한마디 하면 꼭 토를 달던 상무도 아무 말이 없다. 아내의 암 투병을 겪으며 힘들어하던 공장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공장장님, 좋은 짝 만날 생각 정말 없으세요?”
“난 재혼하고 싶어도 못해. 할망구들이 나를 가만두지를 않어. 서로 싸우고 난리도 아니라니깐. 할망구들 두고 내가 누굴 만나겠어. 혼자 살아야지 뭐. 허허.”
오늘 여러모로 말문을 막히게 하는군.
* * *
“아이고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봉숙 원장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우리를 반겼다. 다행이다. 1차로 10명만 뽑겠다고 전화할 때만 해도 실망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리 반겨 주다니 고마운 분이다.
트리거가 생겼는지 이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벚꽃이 만발했는데 딱 때맞춰 잘 오셨네요. 어서 들어가시죠.”
“저희가 아직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열 명만 뽑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황 지켜보면서 추가로 계속 뽑을 예정이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렇게라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주시는 것이 어딥니까! 그나저나 애들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같이 지냈던 사이니까 같이 일하는 것이 무척 좋은가 봐요.”
“원장님 인품을 보면 아이들도 다들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휴, 사장님 아부 떠는 것 좀 봐. 이거 빈손으로 아부 받으려니 민망하네. 호호.”
백지원에서 7명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했는데, 딱 아다리 맞게 3명이 추가 지원했단다. 아무래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밴드웨건 효과일 듯싶다. 시작은 좋군. 저 10명을 잘 대우하면서 키운다면 소문 잘 나겠다 싶다.
10명을 뽑는 데 10명이 지원했으니 전원 합격이긴 해도, 구색을 맞추려고 면접을 진행했다. 남자 8명에 여자 2명이 들어왔다.
내 편견이었다. 고아라면 뭔가 느낌이 날 것이라는 편견 말이다. 우울함과 궁함이 얼굴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자.
그저 흔한 20대 초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몇 명은 20대 초반 특유의 반항기가 담겨 있기도 했지만, 뭐 대수겠나 싶다. 그 나이에 너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것도 재미없지.
“반갑습니다. 저는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변압기 제조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 지정수입니다. 저희 회사 첫 공개 채용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모레죠? 4월부터 업무가 시작될 것입니다. 공장 일이 다 그렇듯 힘든 것은 맞지만,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 있죠?”
“네…… 네.”
이것들이 주눅 들었나? 왜 이리 목소리가 작아? 군 시절 유격대 조교로 끌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정도 데시벨이면 바로 숙영지까지 오리걸음 왕복이야 이것들아!
덕준이가 근무 조건, 급여 책정, 복지 등을 소개하며 아주 좋은 회사임을 포장하고 나섰다. 사장인 나도 처음 들어 본 것도 있었다. 생일자한테 휴가를 준다고? 뭐 좋긴 한데, 이 새끼 진짜.
공장장은 매의 눈으로 10명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사이즈를 쟀다. 누가 보면 관상가인 줄 알겠네.
“공장은 2주 후에 완공이 됩니다. 공장이 완공되면 기숙사를 제공할 테니 출퇴근이 어려운 분들은 기숙사를 신청하면 됩니다. 2주 동안에는 여기 강당과 공장을 오가면서 교육이 있을 예정입니다. 잘 아셨죠?”
“네…….”
힘내자 이것들아! 누가 보면 어디 팔려 가는 것 같잖아! 우리 회사 좋은 회사라고! 아직은 겁나겠지만, 일단 겪어 봐. 앞으로 서로 못 들어와서 안달 날 회사가 될 것이니까. 너희는 선택 받은 인간이라고!
* * *
“공장장님, 보니까 어떠십니까?”
“아직은 모르지. 일을 시켜 봐야 일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뭐. 얼굴만 보고 아나.”
“다들 잘 적응할 수 있게 공장장님이 많이 힘써 주셔야 합니다. 저희 나름 지금까지 분위기 좋았잖아요? 그 분위기 이어 가자구요.”
“그래야지. 내가 하나하나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 줘야겠구만.”
살짝 걱정이 됐다. 공장장이 풍부한 경력과 노하우로 알려 주면 좋지만, 애들이 좋아할까?
태양전기 시절, 공장장이랑 친해지려고 밥 먹으면서 변압기에 대해 물어봤다가 점심시간 다 날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변압기에 대해 좀 알고 나니까 그때 알려 줬던 것이 이거였구나 하면서 감탄하긴 했다. 그래도 그 당시엔 내 뺏긴 점심시간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괜한 노파심에 덕준이에게 교육을 맡겼다. 얼마 전까지 변압기의 변 자도 모르는 애였으니, 딱 적당한 눈높이에서 교육을 시킬 것 같다. 공장장이 서운해할 수 있지만, 훌륭한 교수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강사는 아닐 것이니 말이다.
공장장님! 앞으로 현장에서 알려 줄 기회가 많을 테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라구요!
“우리 사장님 무슨 걱정을 그리하십니까?”
생각에 빠지기 무섭게 덕준이가 치고 들어온다.
“맞다, 한 과장아. 생일자 휴가는 누가 정한 거야? 사장인 나도 첨 들어 보는 건데!”
“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여기 내려오기 전에 담배 피우면서 얘기했잖아! 좋다고 고개 끄덕여 놓고! 그래서 급하게 자료에 손으로 써 넣었구만! 어쩐지 건성건성 대답하더라.”
“그랬냐? 쏘리! 내가 요새 정신줄을 놓고 사나 보다야.”
하긴 태양전기 그 연놈 부부부터 시작해서 발바닥 쳐들고 태클 걸러 오는 놈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긴 했었지. 이제 본격적인 승부에 들어가는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사장님! 공사가 내일 다 마무리됩니다! 며칠 밀릴 뻔했는데, 겨우 맞췄습니다.”
우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