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9)
039 축구장
창업 1년도 안 된 초짜가 크게 무리해 지은 공장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향긋한 새 건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몸에 안 좋은 냄새가 분명한데도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킁킁.
“우와. 공장 쥑이네! 여기서 일하면 진짜 일할 맛 나겠네!”
“장난 아니네. 저기까지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 년 내내 온도가 똑같이 유지된대.”
“와! 여름에 옷에 소금 낄 일은 없겠네!”
“이거 여름에 감기 걸리는 것 아니야?”
“공장장님! 언제부터 생산 들어갑니까? 몸이 근질근질한데 빨리 시작합시다!”
“아직 설비도 다 안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여! 일단 족구나 한판 하자고.”
새 공장에 다들 신이 났다. ‘새’ 자가 붙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반년간의 임대 공장 신세에서 벗어나 새 공장을 만났으니, 나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신이 나더라. 공사비 잔금 40억을 치르지 못했고, 그 절반은 빚으로 때웠지만, 신 난 것은 신 난 것이지!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에 비해 설치된 설비는 아직 많이 허접한 수준이었다.
하긴 일반적인 변압기 회사 공장의 4~5배 수준이니, 널널하다 못해 축구를 해도 될 정도였다. 몇 달만 지나면 설비로 가득 차고, 마당에는 변압기로 가득 차겠지? 그때까지 잘 버텨 보자.
띠룽 띠룽 띠루루룽.
“네, 지정수입니다. 과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이다. 이번에는 어떤 박씨를 물고 왔을지 기대된다.
“축하드립니다. 공장 완공하셨다면서요?”
“소문 빠르네요. 안 그래도 조만간 조촐하게 준공식하면서 떡이나 먹으려고 하거든요. 초대장 드리려 함 들르려고 했습니다.”
“준공식은 따로 책정된 예산이 없어서 저희가 해 드릴 것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이고, 기공식 그렇게 성대하게 치러 주셨으면 됐지. 염치없게 뭘 또 바라겠습니까?”
“그나저나 기쁜 소식입니다. 지원금이 결정됐습니다.”
개업 축하로 아주 제격인 선물이 도착했다. 나라님이 주시는 선물! 토지 분양 대금은 55퍼센트 지원이 결정됐고, 설비 투자는 24퍼센트 맥시엄으로 지원하기로 결정이 됐다고 한다. 이게 얼마야!
“토지 대금은 잔금 치르고도 2억 8천만 원가량 남네요. 이건 바로 법인 계좌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설비 투자는 공장 건축비에 설비 구입비도 포함이니까 설비 구입 자료까지 다 제출해 주시면 그때 정산하는 것으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공장 이전 비용, 그러니까 이사 비용도 지원 가능합니까?”
“그럼요. 당연히 해 드리죠. 그런데 인천에 계실 때 구입한 설비는 안타깝게도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까지는 어찌 못해 드리겠더라구요.”
“아이고, 이렇게라도 해 주시는 것이 어딥니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곧 찾아뵙겠습니다. 저기 곱창 말고 비싸고 좋은 걸로 생각해 두십시오.”
“저희한테 사장님은 첫 손님이자 귀한 손님 아닙니까? 응당 해 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꿀이 줄줄 떨어진다. 아주 달달하기 그지없는 꿀이다. 진짜 토종 아카시아 꿀이라는 말에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알고 보니 설탕으로 만든 가짜 꿀이더라, 이런 슬픈 사기가 아니고 진짜 꿀이다.
땅값 18.8억, 공장 건축 45억, 설비 구입이 10억쯤이니까 총 74억 원이란 거금이 들어갔는데, 나라님께서 24억 원을 그냥 주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제 부족한 돈은 은행 가서 거들먹거리면서 ‘사업자금 대출 받으러 왔수다’ 이 한마디면 지점장이 맨발로 뛰쳐나와 ‘어서 옵쇼’ 할 것이다.
“사장님, 설비 투자로 24프로를 준다면서? 완전 개꿀이긴 한데 꿀 좀 더 빨아도 되지 않을까?”
꿀물을 거하게 마시며 기뻐하는데, 덕준이가 꿀을 더 빨아 보잖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인천에 설치한 설비들 말이야. 대한전력 납품 자격 받으려고 샀다 뿐이지, 아직 쓰지도 않았잖아. 자동권선기 추가로 만들려고 구매한 자재도 좀 아깝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내색은 안 했지만, 덕준이는 내가 자금 문제로 꽤 골치 아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작년 연말이었지.
자동권선기 10대 채우겠다고 자재비로 4억 넘게 들어갔다. 도저히 돈 마련할 구멍이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내 돈을 건드렸다. 로또 당첨금 28억 중에서 20억 투자하고 남은 8억.
문자님은 분명히 20억 원을 ‘투자’하라고 했었다. 뜻대로 안 한다고 경고한다는 문자를 줄 정도였으니 명을 어길 수는 없다. 고심 끝에 잔머리를 굴렸다. 내 돈을 회사에 빌려 준다면 투자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회사채 개념이지 ‘투자’는 아니니깐.
다행히 아무 말이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은행으로 냅다 달렸다.
“이걸 다 해지하시려구요? 너무 아까운데요. 고객님, 이렇게 금리가 높은 상품은 이제 나오지도 않습니다. 일단 만기만 채우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은행 갔더니 역시나 해지 방어가 강하게 들어왔다. 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 굳이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 상대방 생각해 준다고 머뭇거리면서 고민하는 척해 봐야 서로 피곤할 뿐이지. 그냥 단호하게 얘기하는 것이 편하다.
“네, 괜찮습니다. 그냥 다 해지해 주세요.”
단호박 같은 말에 해지 방어가 와르르 무너진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은행 직원이 아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자금 어디에 쓰실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VIP들에게만 판매하는 좋은 상품이 몇 가지 있는데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아니요. 급하게 사업 자금으로 쓸 돈입니다.”
그렇게 지점장한테 엄청 깨질 것이 뻔한 직원을 뒤로하고 8억 원을 빼내 회사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자금을 끌어모았다.
* * *
덕준이도 내가 이래저래 돈 구하느라 고생했다는 것을 아니, 편법인지 불법인지 애매한 짓을 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귀가 펄렁펄렁한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짓인데 귀가 솔깃하긴 하다. 양심을 조금만 버리면 몇천만 원이 추가로 들어온다. 내가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 몇천원 만인데 흔들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인간적으로 몇 개만 올려 볼까?”
양옆에 천사와 악마가 다가와 서로 난상토론을 펼쳤다. 아무래도 악마의 말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천사야! 너도 좀 논리적으로 날 설득해 보라고! 뭐? 내가 지금 이성을 잃었다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얘기할 게 아니잖아!
사람이 이렇게 타락의 길에 빠지는 것인가 싶다.
“아니다. 안 되겠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고 나면 점점 더 나쁜 짓을 하게 된다고. 절대 불가!”
내 단호박에 덕준이가 아쉽다는 느낌과 함께 다행이라는 느낌이 공존하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야?
“솔직히 많이 아까워서 그런 생각을 한 거긴 한데, 행여나 진짜로 내 말대로 하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네가 고민도 안 하고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었으면 욕 존나게 했을 것 같긴 해. 우리 사장님, 내 시험에 빠지지 않았군. 허허.”
이 자식이 병 주고 약 주네! 잠깐 동안에 얼마나 깊은 고뇌에 빠졌는데!
서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사업하면서 많은 유혹에 빠질 것인데, 부디 흔들리지 말자. 덕준아, 내가 흔들리거든 싸다구 한 대 거칠게 날려 주라.
* * *
공장을 완공하고도 가동까지 3일이나 걸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럭들이 짐을 내려놨다. 자재도 속속 입고됐다.
설비 옮겨 재설치하고 컨베이어로 라인 짜고 자재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설비 배치하고 가동하느라 달이 지고 해가 뜨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덕준이가 신청한 클린 사업장 지원 사업으로 적재함과 공구대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이제 덕준이는 꿀 빠는 데 도가 터 버렸다. 무슨 요술을 부리는지 중소기업 대상 각종 지원을 맥시멈으로 척척 받아 왔다.
공장장 지휘 아래 자동권선기와 생산 설비를 만드는 유재준 부장도 막판 스퍼트를 내며 여러 설비들로 공장을 채워 갔다. 만들어 내는 양은 많이 부족하지만, 다들 호평 일색이다. 직접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인지라 가려운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 내며 성능을 개선해 놨다.
변압기라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다. 여러 품목으로 나뉘고, 변압 용량에 따라 또 달라진다. 인증이야 품목마다 대표 용량으로 눙치지만, 실제 판매에 나서려면 수십 가지를 만들어야 한다.
안 그래도 수작업이 대부분이라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종류도 수십 가지라 생산성이 좋게 나올 리가 없다. 주40시간으로 잡으면 직원 1인당 매출 2~3억도 어렵다.
그래서 공장 짓기 전에 생산성 높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1등 공신은 당연히 자동권선기이지만, 그것 말고도 전 직원들의 고민과 상상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동선이 짧아지고, 불필요하게 시간을 뺏어 가는 작업들은 설비와 기계의 힘으로 대체됐다. 직원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작업이 끝난 중신이 건조로까지 한 큐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낸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신선함이었다. 역시 유 부장이다.
“부장님,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알면서 그래요. 공장장님이 이렇게 해 보자고 하니까 한번 만들어 봤지 뭐. 공장장님이 아주 아이디어 박스야. 장난 아니더라니까.”
그렇다면 공장장을 칭찬해 줘야겠군!
“아니, 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얘기했더니만, 혼자 막 이것저것 뚝딱뚝딱하더니 저렇게 만들어 버렸지 뭔가. 아무리 봐도 저 자식 저거 영 보물이야.”
또 의좋은 형제 시작됐군.
둘만 있으면 서로 못 까대서 안달난 사람들이 칭찬 좀 하겠다고 하면 뭐가 그리 쑥스러운 것인지…… 나만 쌀가마니 들고 왔다 갔다 고생이네. 결국 두 사람이 다 고생해서 만든 것으로 결론을 내 버렸다.
의좋은 형제들 덕분에 동시에 여러 팀이 축구해도 남을 만한 공장이 슬슬 제 모습을 갖춰 갔다. 아직 월 4~5천 대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지만, 낙엽 지기 전에 저 드넓은 공터가 설비로 가득 찰 것이다.
잘 돌아가는 설비를 보니 800억 원이 아른거린다. 이것저것 다 제해도 마진 25퍼센트는 넉넉하게 남을 것이다.
200억! 로또 1등을 열 번 정도는 맞아야 생기는 돈이다! 중소 제조 기업들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마진으로 연명하는 상황이니 이거 엄청난 대박이다.
아직은 설레발이지만, 거하게 뽕에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뽕을 방해하는 놈들이 있다면 내가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
새로 채용한 10명도 잘 적응하고 있다. 아직 도망가는 이가 없었으니 잘 적응하고 있다고 봐야지? 기존 직원들에게 꼰대 짓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덕인지 아니면 정말로 회사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잘만 버텨 다오 아이들아.
이제 준공식 열 차례군.
“대리님! 트럭 운전할 줄 알죠? 쇼핑 한번 시원하게 하고 오시죠? 직원들 배불리 먹여 봅시다.”
“네에? 준공식 조촐하게 한다면서 또 무슨 돈을 그리 쓸려고 그래요! 돈 아껴 써요!”
“에이, 너무 그러지 말아요. 출장 뷔페라도 부를까 하다가 그냥 홍어랑 떡 정도만 사서 생색 좀 내려고 하는데, 기분 좀 냅시다. 아주 살짝만.”
직원들도 먹이고 외부 인사 몇 명 초대해서 잔치라도 벌이려고 황미연 대리에게 법인 카드를 줬더니 저래 타박이다. 상무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아이 둘을 키워 낸 주부 9단 살림 베테랑답게 회사 돈 좀 쓸라 치면 아주 구박이 예술이다.
이런 구박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내가 흔들릴 때 싸다구 날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말해 줄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 * *
공장에 고소한 떡 냄새와 코를 찌르는 홍어 냄새가 들이차자 공장장이 붓펜을 들었다.
“공장장님, 이번에도 축문 태우실 겁니까?”
“당연하고말고! 출입문마다 북어도 한 마리씩 걸어야지! 미신이니 어쩌니 해도 그렇게 해야 나중에 탈이 안 생기는 것이야. 그리고 고사를 지내야 회식비가 짭짤하게 생기지!”
오늘도 마시고 죽을 각오이군. 이럴 줄 알았으면 밴드 마스터라도 부를 것 그랬나? 그래, 노래방 기기 하나 지르자! 직원들 복지를 위해 내 기꺼이 투자하마!
“오늘 잔칫날이니까 노래방 기기도 하나 섭외하겠습니다. 오늘 흥청망청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시지요.”
“노래방 기기를 가져온다고? 이거 큰일인데.”
“왜요? 또 무슨 일인데요?”
“한 과장 마이크 못 잡게 해야 할 텐데, 이거 큰일이야. 이를 어쩐담.”
걱정 없이 회사가 술술 잘나가니 이제 별것을 다 걱정하는구나. 마이크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할지 기대감이 부곡하와이 온천수처럼 펄펄 끓어오르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