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68)
068 멀미엔 귀미테
우리의 대한전력 첫 납품분이 합격했다!
행여나 1대라도 불량이 났다면 합격이 날아가지만, 5,200대가 아무 문제없이 온갖 시험을 견뎌 주었다.
일주일 뒤에 들어올 납품 대금 60억 원! 800억 원의 꿈이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이거 감개가 무량대수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일제가 핵폭탄 얻어맞고 무조건 항복을 외쳤을 때, 이 땅의 사람들은 해방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해방은 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의 60억 원도 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제 징글징글한 포장전이 벌어진다.
우리 앞에는 2.5톤 마이티가 가득 실어 와 산처럼 쌓아 둔 발포지가 놓여 있다. 테이프 커터기 50개와 50미리 박스 테이프 100박스도!
전 직원 앞에 서서 출정식을 가졌다. 제군들 의기양양하군. 언제까지 그 표정을 유지할지가 이번 포장전의 관전 포인트가 되겠어.
“자, 여러분. 내일 오전에 성적서가 발행되면 이놈들 바로 내보내야 합니다. 이놈들을 내보내야 60억 원이 생깁니다! 이렇게 전 직원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서로 기쁜 마음으로 포장에 임합시다. 1인당 100대씩!”
“와!”
“제가 시범을 보여 줄게요. 발포지를 두 아름하고 반 정도로 자릅니다. 변압기 여기에 테이프로 고정하고 이렇게 예쁘게 두 바퀴 돌린 다음, 테이프로 위에서 한 번 돌리고, 아래에서 한 번 돌리고. 끝! 어때요? 참 쉽죠?”
“가즈아!”
출발은 사뭇 호방했다.
혹시나 해서 귀미테를 사 둔 것이 주효했다.
30분도 안 지났는데 여기저기서 멀미와 빈혈, 울렁거림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허리 숙여 일하는 것도 힘든데 네 바퀴 빙빙 돌면 머리도 빙빙, 세상도 빙빙.
찜통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상황이라 호방했던 이들이 빠르게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거 이러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재현되겠다 싶었다. 전술을 바꾸자.
“자, 자, 주목. 이거 안 되겠습니다.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사람은 변압기 이동을 맡아 주세요. 이 과장님! 출하 지역별로 나눠 놨죠? 세트별로 묶어서 생산동부터 옮겨 주세요. 남은 사람들 계속 포장해 주세요. 1인당 200대!”
해가 지고 달이 떴다. 테이프 돌리는 소리와 곡소리가 허허벌판 혁신산단에 울려 퍼졌다.
“사장님! 저희 그냥 변압기 만들게 해 주세요! 잘못한 것 없지만 정말 잘못했어요!”
“아 시발! 누가 여기다 토해 놨어! 밟을 뻔했잖아!”
“와! 그냥 포장할걸. 변압기 옮기는 것도 완전 시발이네.”
“워메, 나 죽네, 나 죽어.”
육두문자도 거침없이 울려 퍼졌다.
사장인 내가 팔다리 걷어붙이고 테이프 돌리고 있으니 백기를 들어도 소용이 없다. 미안하다 직원들아! 남의 돈 벌어먹기가 이리 어렵다!
시험관이 떠난 5시 반부터 시작한 전투가 10시가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가을이라 밤이 되자 온도가 빠르게 내려갔지만, 변압기 이 자식은 여전히 중2병 걸린 반항아처럼 열기를 품어 냈다.
직원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다. 아마 눈치 빠른 이들은 2주 뒤에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고 있을 것이다.
사기 진작! 사장이 할 일은 직원들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이지.
“네, 여기 혁신산단에 프라임일렉트릭인데요. 치킨 65마리 배달됩니까? 예? 진짜예요. 장난 전화 아니라고요!”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직원들 힘내라고 치킨 시키겠다는데, 장난 전화로 치부하는 점주. 우리 사회의 불신을 어떻게 하면 깨트릴 수 있을까!
결국 치킨집 다섯 군데에 65마리를 나눠 배달시켰다. 치킨은 1인 1닭이지! 내 돈 100만 원!
“이거 먹고 또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사장님! 속이 울렁거려서 못 먹겠어요.”
1인 1닭이라는 옳은 결정에도 직원들의 구원을 갈망하는 눈빛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예전에 혼자서 시간당 30대씩 포장하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이들을 구원해야 한다. 구원하고 싶지만 아직 답이 없다. 기다려야 한다. 대한전력 이 독한 놈들.
“자, 자! 이제 고지가 눈앞입니다. 앞으로 1시간! 딱 1시간만 빡세게 하고 마무리 칩시다!”
난 진실을 말했다. 1시간이면 이제 포장은 다 끝난다.
봉인 스티커 5,200장과 봉인 줄 5,200개가 기다리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9월 2차분 납품을 위해 시험 대기 중인 완성품도 검사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사장님! 다음 납품 때도 또 이렇게 해야 하는 거죠?”
빙고! 전체 발주가 입찰대로 나온다 치면 7만 1,178대니까 5,200대 빼면, 앞으로 6만 5,978대 남았어!
“하하. 우리 모두 치킨 먹고 힘냅시다!”
격려가 오히려 불을 지른 것 같다. 직원들 얼굴에 그늘이 짙게 깔리고 있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식으로 속 울렁거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치킨이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겠다.
그럴 줄 알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지. 나 지정수야! 태양전기에서 개고생하던 지정수라고! 내가 고작 치킨 따위로 이 막노동의 대가를 치르려 했다면 오산이야.
“그리고 내일은 오전에 푹 쉽시다. 제 직권으로 내일 오전은 유급 휴식입니다.”
이글거리던 눈빛이 맑고 영롱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울렁거림을 호소하던 직원들 얼굴에 기쁨이 차오른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또 준비했어!
“내일 아침 일찍부터 트럭 들어오니까 출하할 인원은 고생 좀 해 주세요. 나머지는 푸욱 쉬어도 됩니다.”
희비가 교차하는 이 체험 삶의 현장. 제비뽑기로 군 입대를 결정한다는 태국의 징병 검사소가 이렇단 말인가.
미안하다. 출하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다.
태국 군 입대가 결정된 직원들을 위로해 주려고 몸을 움직이는데, 상무가 허겁지겁 달려와 내 팔을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 간다. 왜 그래요? 저 돈 없어요.
“사장님! 아니 밤새워서 변압기 만들어도 모자랄 판인데 오전에 휴식하면 어째!”
행여나 ‘센따까서’ 돈 나오면 십 원에 한 대라고 할 줄 알았더니, 역시나 회사 걱정이로군.
“전 직원이 모여서 이 고생을 하는데, 고작 치킨 한 마리씩으로 되겠습니까? 회사에서 이 정도는 해 줘야죠. 물론 생산 걱정도 있지만,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최소한 공장장님이랑 상의는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상무님 은근히 뒷북치는 데 뭐 있습니다? 이미 얘기 다 끝냈죠. 하하. 그리고 어차피 내일 하역 때문에 뭐 하지도 못해요.”
상무가 공장장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공장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무가 만날 자기 구박 못해서 안달이라고 하소연하더니, 공장장이 드디어 한 방 먹였다는 뜻이겠지. 이런 톰과 제리들.
치킨과 대국적인 오전 휴식 결정이 이 뜨끈뜨끈한 검사동에 냉기를 불어넣어 줬다. 이제 막바지니까 힘들 냅시다. 행군할 때도 죽을 지경이다가도 저 멀리 부대 막사 보이면 힘이 벌떡 나잖아! 저 앞에 군악대와 육개장 라면이 기다리고 있다고!
솔직히 나도 죽겠다. 간만에 포장하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기는 개뿔.
치킨 냄새가 진동하는 포장 전장에서 벗어나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치킨을 보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내 것은 빼고 주문했지만, 냄새만으로도 속을 요동치게 한다. 이 징글징글한 포장. 없어지겠지? 없어져야 하는데…….
“아이고, 힘들다. 형 죽겄지?”
혼자 인줄 알았더니 저쪽에도 사람이 있었군. 괜히 방해하지 말고 구석에 숨어서 조용히 피우고 가야겠네.
“나도 전에 회사에서 포장 좀 했는데, 이건 진짜 사람 잡는다야.”
숨어 있으려니 자꾸 귀에 대화가 들어온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지정수가 듣는다더니. 듣지 말자. 듣지 말자.
“형은 그래도 내일 오전에 쉬잖아. 난 출하 때문에 아침부터 또 뺑이 쳐야 해.”
“야, 월급 받는데 원래 할 일 아니냐! 이 새끼 빠져 가지고.”
“오전에 일하면 나중에 쉬게 해 주겠지? 요새 진짜 힘들긴 하드라. 진짜 아직 팔팔한 줄 알았는데 30대 들어서니까 몸이 하루가 다르네.”
얼마 전 신입 30명 뽑을 때 들어온 30대 형들이구만.
“넌 변압기 회사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래. 원래 봄까지 미친 듯이 바쁘고 여름부터는 좀 한가해져. 그때까지만 참어.”
“여름 되면 좀 나아져?”
“여름엔 민수 변압기가 또 미친 듯이 나가지. 푸크크.”
맞다. 날이 추워지면 관수가 미치고, 날이 더워지면 민수가 미친다. 그래도 뭐 관수의 미친 물량에 비하면 민수는 껌이야. 형들 힘내.
“뭐야? 1년 내내 바쁘다는 거잖아? 이거 도망쳐야 하나?”
“미친놈아. 넌 언제 정신 차릴래? 진짜 여기만 한 회사 없다. 내가 여러 군데 다녀 봤지만, 우리 사장님 같은 사람 없어. 돈 많이 벌면 연말에 보너스도 준다잖아.”
“솔직히 대우는 좋지. 일이 힘들긴 해도 갈구는 사람도 없고.”
“난 처음 왔을 때 신생이라 대우 좆같을 줄 알고 적당히 있다가 도망치려고 했는데, 이제 여기다 뼈를 묻어야겠어.”
“아이고, 충신 나셨네. 안 그래도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 했더만 중소기업치고 엄청 좋은 회사라고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난리긴 하드라.”
“야야. 우리 사장님 똥꼬 헐겄다. 그만 빨고 담배나 빨어.”
난 아무것도 못 들었다. 누구인지도 모른다. 정말이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이거 기분 좋네. 당연히 내 뒷담화나 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 회사가 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연말에 두고 보라고. 내가 당신들 어떻게 대접하나 말이야. 후훗.
근데 이제 좀 들어가지? 계속 숨어 있으려니까 불편하잖아. 모기가 왜 지금까지 있냐고!
11시 반이 되어서야 포장 대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검사동 출입문 여기저기 흩뿌려진 토사물이 혁신산단 1호 입주 기업의 성공적인 데뷔전을 축하해 주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15톤 장축 트럭들이 인력 사무소 번호표 받으려는 듯이 줄지어 공장에 쳐들어왔다.
총 185대. 혁신산단에 공장이 우리뿐이라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기저기 민원 전화로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급 장관을 만들기 위해 운송비만 4천만 원이 날아갔다.
“이야. 이거 진짜 장관이네.”
사장실 테라스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트럭들의 구애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덕준이가 꼽사리를 꼈다.
“장난 아니지? 이제 다음 주면 60억 들어온다. 상무님이 1년 동안 전국 돌아다니면서 주문 받아 왔는데, 이거는 한 방에 곱절로 뽑아 버리네.”
“상무님 엄청 속상해하시는 것 아녀? 나라면 허탈했을 것 같은데.”
“관수랑 민수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상무님 혼자서 매출 40억 가까이 했는데 그것도 엄청 대단한 거지. 상무님이 못한 것이 아니라 관수가 사기인 거야.”
다시 한 번 대한전력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한데 포장 좀 어찌 안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이 짓을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갑갑하다.”
“이놈 봐라? 언제는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하더니, 똥 싸고 나니까 사람이 돌변하냐.”
“사장님아. 인간적으로 포장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죽겠지? 난 지금까지 혼자서 만 대를 넘게 했어. 조금만 기다려 봐. 그 짓거리 안 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뭐 뾰족한 수라도 있나 봐?”
“내가 누구냐? 지정수라고, 지정수. 넌 걱정 말고, 생산 안 끊기게 서포터나 잘해 줘. 어제 오늘 생산 멈춰 버렸으니 일 엄청 밀렸을 거야.”
가용할 수 있는 호이스트와 지게차를 다 동원해 트럭에 변압기를 실어 보냈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나마 야근을 안 한 것이 다행이랄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이거 해도 해도 끝이 없네.
포장과 출하. 빨리 해결해야 한다. 출하야 검사동 대대적인 공사로 하역 가능 물량을 늘리면 된다. 생산량을 월 6천 대로 잡고 대응 가능할 수준으로 만들 생각이다. 대한전력 발주량이 들쑥날쑥한 것은 어떻게 대응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지.
문제는 포장이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슬슬 좋은 소식이 도착할 때가 됐는데, 이거 참.
“사장님!”
“네, 과장님. 사무실까지 웬일이에요?”
변압기 출하하느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땀에 흠뻑 젖은 이규철 과장이 몸소 사무실까지 방문하시었다. 검사동에서 꿈쩍도 안 하던 양반이 웬일이랴.
“검사 사무실 팩스로 대한전력 공문이 왔는데요. 이것 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