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93)
093 새해 인사
“다들 엄청 좋아하나 보네.”
회의를 끝내고 덕준이와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왔다. 시무식에서 안겨 준 희망이 현실로 다가와서 그런지, 생산 현장은 오일장이 성대하게 열린 것 같다.
“당연하지. 돈 많이 준다는데 싫다는 사람 어디 있겠어?”
“근데 왜 아까 회의 때는 그렇게 표정 관리들을 했을까?”
“난 계속 싱글벙글했어. 당연히 돈 벌자고 일하는 건데 돈 많이 준다고 하면 좋다고 내색해야지. 그래야 돈 주는 사람 기분도 좋지 않겠어?”
“그래. 내 맘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한덕준 부장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널 못 보내고 이리 붙잡고 있으니, 그냥 알아서 여기에 뼈 묻으렴.
“왜? 다들 표정 관리해서 삐쳤어? 오히려 좋은 것 아녀? 그만큼 직원들이 회사 생각해 주는 거잖아?”
“기분 나쁠 일은 아닌데, 직원들이 욕망을 드러내 줬으면 좋겠어서. 그래야 회사도 발전하지 않겠나 싶고.”
“사장님아. 내가 여기가 첫 직장이라 잘 모르잖아. 다른 회사도 직원들이 이래?”
“어림도 없지. 직원들이 역량 발휘하고 회사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오롯이 사장이 잘해서야. 내 자랑인데, 그거 쉽지 않다.”
“아이고, 사장님. 어련하시겠습니까? 진짜 이렇게 좋은 직원들만 있기도 쉽지 않은데, 대단해.”
“그게 다 내 역량이라니까!”
너도 나중에 사업해 봐.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뼈저리게 느낄 거야. 아니지, 넌 사업하면 안 돼. 나랑 같이 무덤까지 가야지.
시무식도 잘 끝났고, 이제 내가 할 일은 영업 활동이다.
사장의 영업은 여기저기 인사하며 상대방 기억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새해와 명절에 이뤄지는 사장의 영업으로 밑밥을 깔아 놔야 한다. 일종의 보험이랄까.
이게 참 우스운 게, 누가 먼저 문안 인사를 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자재 업체들은 이미 새해 첫날부터 형형색색 화려한 문자를 보내며 기억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회원 평균 나이 50대인 산악회에 가입한 느낌이다. 가정용 노래방 배경 화면과 같은 문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당연히 우리 물건 사 주는 대한전력과 변압기 대리점에 새해 인사를 돌린다.
그저 계약서에서 편의상으로 나눈 갑과 을이 그 자체로 계급이 되는 현실. 그러니 권력의 정점에 서려고 다들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연락 돌릴 데는 다 돌렸고, 맘 편하게 동지들에게 연락을 돌려야겠다. 첫 타자로 우리 따거,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
“어, 그래. 지 사장!”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나주에서 사업 번창하시길 빌겠습니다.”
“내가 한발 늦었네. 그래, 자네도 새해 복 많이 받게. 지 사장이 무섭게 쫓아오니까 나도 부지런히 사업 키워서 도망가야겠어. 하하.”
“제가 어찌 안성파워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공장 준공이 이달 말이죠?”
“돈이 아주 술술 나가네. 이것저것 신경 좀 썼더니만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냐.”
강 사장이 확실히 승부수를 건 것 같다.
당초 150억 원 투자를 계획했는데, 200억 원 가까이 쏟아붓고 있다니 말이다. 요새 급성장하고 있다는 에너지 저장 장치 사업도 시작한다고 하던데, 강 사장은 확실히 돈 냄새 맡는 후각이 발달한 사람이다. 많이 배워야지.
“공장 조감도 보니까 아주 멋져 보여서 완공이 기대됩니다. 하하. 그나저나 자동권선기는 공장 준공에 맞춰 납품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이게 만들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립니다.”
“돈 주는 사람이 매달리는 판이니 별수 있나. 하하. 잘만 만들어 주게나.”
30억 원짜리 자동권선기 5대를 슬슬 넘길 때가 됐다. 바빠서 만들 시간도 없었긴 했지만, 우리 회사 경쟁력 원천을 넘기기 아쉬워 차일피일 미뤘었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다. 이 정도면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설비인지 지레 짐작하겠지 뭐.
강 사장에게 문안 인사를 전했으니, 이제 자동권선기 첫 판매처로 연락을 할 때다.
“지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통통 튀는 목소리.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은 새해에도 여전하다.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 나주에서 사업 번창하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업 번창하신 사장님이 말씀해 주시니까 정말 그럴 것 같네요. 하하.”
“내일 자동권선기 출발합니다. 아주 잘 만들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언제 오나 그토록 기다렸는데, 딱 8개월이 걸렸네요. 앞으로 사장님하고 거래할 때는 마음을 비워야겠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 사정 잘 아시잖아요? 대한전력 물량 소화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당연히 이해하죠. 농담하면 꼭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더라. 하하. 다음 주에 저희 공장 기공식 하는 것 아시죠? 꼭 오셔야 합니다.”
작년 허허벌판 혁신산단에서 혼자 고군분투했지만, 올해는 공장이 꽤 늘어난다.
동종 업계가 늘어나는 것은 파이가 줄어드는 것이라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직원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이제 편의점 정도는 생기겠지? 편의점 하나 없는 이곳에서 직원들이 고생이 많긴 했다.
“그럼요. 가면 VIP 대접해 주셔야 합니다. 하하. 요새 조합은 별일 없죠?”
“별일이 왜 없겠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리 조합 신년회 때 얘기를 하려고 안건 정리하고 있어요.”
작년 대한전력 입찰에서 중전기조합에 참패를 안긴 변압기혁신조합은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이 이사장이지만, 실무는 박 사장이 다 하는 실정이다.
조합에 별일이 있다? 새해부터 시끄러운 일이 있는 모양이다.
“중전기조합이 무슨 일이라도 꾸미고 있습니까?”
“얘기 들으셨어요? 중전기조합 몇 개 회사가 변압기 회사를 세운다고 하더라구요. 어차피 나눠 먹기니까 쪽수 늘려서 가져가는 양을 늘리겠다는 뜻이겠죠.”
중전기조합이 여전히 발악을 멈추지 않는구나. 매년 대한전력 입찰에 참여하는 변압기 회사가 늘어나긴 하지만, 이건 대놓고 위장회사 세워서 물량 뺏어 가기 하겠다니, 구질구질하네 진짜.
“뭐 걱정하실 것 있습니까? 저도 올해에는 입찰 참여할 텐데, 눈 뜨고 물량 뺏길 수 없죠. 여차하면 우리 조합이 입찰 다 먹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눈 뜨고 당할 수는 없죠. 예전에 조합 깨졌을 때 단가가 너무 심하게 떨어진 경험 때문에 꺼리는 사장님들도 있을 것 같은데, 중전기조합 멋대로 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뭐 자세한 얘기는 신년회 때 하시죠.”
예상대로 올해 대한전력 입찰은 시끄러워지겠군. 중전기조합이 먼저 신사협정을 깨뜨리겠다고 선언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대한전력 입찰에서 조합 나눠 먹기가 깨진다면, 칼부림이 벌어진다. 합법적인 담함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과 눈치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말도 안 되게 떨어진 낙찰률로 대표된다. 그렇게 입찰이 마무리되면 상처만 남는다.
단가 하락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니, 변압기 회사들은 자재 업체들과 직원들을 조져 애먼 화풀이를 한다. 대한전력만 신 나게 웃는 결과일 뿐이다.
가장 좋은 상황은 두 조합이 잘 상의해서 높은 낙찰률로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것이다. 그것이 조합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그러나 중전기조합이 싸우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작년 입찰이야 지켜만 봤지만, 올해 입찰에서는 전면에 나서 본보기를 보여 줘야겠군. 박 사장도 전의를 불태우고 있으니,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고.
내가 맘만 먹으면 적자 걱정 없이 입찰 물량 전체를 다 먹을 수 있다. 중전기조합 놈들이 어떤 짓을 할지 잘 지켜보면서, 그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다.
“참! 사장님. 태양전기 소식 들으셨어요?”
“아니요. 나주에 있으니까 소식이 많이 늦습니다. 저한테 좋은 소식이라도 됩니까?”
“아마 그럴걸요?”
태양전기 관련해서 나에게 좋은 소식이라. 운만 띄운 상황인데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배가 터질 것 같다. 기대된다.
“기대됩니다. 빨리 얘기해 주시죠!”
“하하. 태양전기가 필리핀 수출한다고 그랬잖아요? 지금 난리도 아닌가 봐요.”
“무슨 난리요? 불량이라도 났답니까?”
“저도 자재업체 통해 들은 얘기라서 정확하게는 모르는데요, 중간에 낀 에이전트가 장난을 치나 봐요. 자금 회전이 안 되니까 자재 업체들도 대금 결제가 자꾸 미뤄져서 부글부글한다네요.”
“에이전트들이 물건 잔뜩 만들게 해 놓고 나중에 불량으로 시비 걸면서 장난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거기에 당한 모양이네요.”
“이번엔 좀 큰가 봐요.”
“그러다 자금 융통 못하면 회사 문 닫는 것 순식간 아닌가요?”
이 기쁜 소식을 두고 맘껏 기뻐하지 못하고, 태양전기 걱정해 주는 척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평판을 무시할 수 없으니 속으로나마 마음껏 기뻐하자.
“맞아요. 어떤 자재 업체는 결제가 3개월까지 밀려서 폭발 직전이래요. 수출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닌데, 너무 급하게 서두른다고 하더니만…….”
“사기꾼 에이전트한테 걸린 거네요?”
“지 사장님도 잘 알아 두세요. 수출할 때 제일 좋은 것은 전력 회사랑 직접 계약하는 것인데, 이건 어지간해서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에이전트, 그러니까 브로커 끼고 들어가는데, 필리핀은 사기꾼이 정말 많아요.”
“그렇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탕발림으로 몇십억 매출 운운하면서 회사 엄청 키워 주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물건 보내고 나면 트집 잡으면서 대금지급 미루고. 뻔해요. 이제 그만 당할 때도 됐는데, 태양전기도 참. 빨리 정신 못 차리면 오래가기 힘들 거예요.”
새해부터 복 많이 받는구나.
최현아의 멍청한 머리로는 분명 정신 못 차릴 것이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이다.
멍청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가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더 밀어붙이겠지. 회사 키우기는 엄청 어렵지만, 망하게 하는 것은 아주 쉽지. 그것이 멍청한 사장의 능력이야.
그나저나 박 사장은 이것저것 잘도 알려 주네. 은혜나 두둑하게 갚아 줘야겠다. 부싱체결기를 팔거나, 외함이나 코아를 공급해 준다고 하면 아주 좋아하겠군. 은혜 갚으면서 돈도 벌고.
이렇게 새해 문안 인사를 끝냈다. 인사를 전하지 못한 한 사람이 남아 있다. 우리 문자님!
발신 번호라도 있다면 하해와 같은 은혜에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겠지만, 전할 길이 없다. 워낙 시크한 양반이라 그 흔한 인사조차 없다.
지금이야 직원들이 워낙 잘해 주고 있어서 조금 덜하긴 하지만, 문자님이 아니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속이 답답하고 눈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솔루션을 시크하게 툭 던져 주셨던 문자님.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띠링.
새해라 그런지 문자도 참 많이 오네.
-폴리머부싱. 태인산업 인수.
문자님! 이런 식으로 새해 인사를 전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경험상으로 문자님의 계시는 시일이 지나야 윤곽이 드러난다. 폴리머부싱과 태인산업 인수라, 머지않아 부싱으로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이란 계시일 것이다.
태인산업은 얼핏 들어 봤다. 부산에 있는 폴리머부싱 제조업체인데, 후발 주자인 데다 거래처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알고 있다.
부싱은 도기로 만드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싱 시장도 변화를 겪고 있다.
도기를 만들려면 흙으로 빚어서 가마에서 구워야 하는데, 4차 혁명 운운하는 이 나라에서 누가 그 짓을 하겠나. 가마 공장들이 인건비 싼 중국이나 동남아로 죄다 넘어갔는데, 싼 게 비지떡이었다. 기술력이 떨어지니, 파손도 많고 절연이 안 돼 누전되는 경우도 많다.
대한전력은 도기 부싱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폴리머부싱을 도입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확대 보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폴리머부싱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라는 계시가 떴다.
아리송하지만, 한 번도 어긋남이 없는 계시이기에 무조건 고다. 이번엔 첨부 문서가 없는 것을 보니 태인산업을 인수해서 짱구를 잘 굴려 보라는 것 같은데, 까라면 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