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94)
094 깨지지 않는 부싱
문자님의 계시가 나왔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바로 실행에 옮기자.
태인산업이 부산에 있으니, 인수 견적 내려면 출장 한번 가야겠군. 겨울이니 겨울 바다 보면서 회 한 접시 하면 딱이겠다.
광안리 앞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한 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잔치에 입이 찢어져 침이 줄줄 새는 상상에 빠져 있는데, 이규철 부장이 찾아왔다. 어지간해서는 검사동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사람인데, 무슨 일 있나?
“부장님, 무슨 일이에요?”
“대구에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가 납품한 변압기가 2대나 불량이라네요.”
“네? 관수예요, 민수예요?”
“관수예요. 다행히 대한전력에서 연락 온 것이 아니고, 공사 업체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참 다이내믹하네. 뭐 좀 순조롭게 간다 싶으면 여지없이 무슨 일이 터진다. 대구는 바다도 없잖아!
“공사 업체한테 연락 온 거면 눈감아 줄 테니까 변압기 교체해 주고 설치 비용 달라는 뜻이죠?”
“아무래도 그런 뜻이겠죠. 대한전력으로 넘어가면 서로 골치 아프잖아요. 백만 원 주고 끝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한전력은 변압기 교체 및 설치 등 작업을 지역 전기공사 업자들에게 하청을 준다. 하청 업체들은 하자가 생기면 절차가 복잡한 것을 아니까, 제조사에 직접 전화해서 새 제품으로 교체해 달라는 식으로 처리한다.
당연히 계약 위반 사안이지만, 관행적으로 그렇게 한다. 비용도 권장 소비자 가격 수준으로 정해져 있다. 설치한 변압기 내리고, 새 변압기 올리는 비용과 인건비 조로 80에서 100만 원이다.
관행대로 그렇게 할 것인가? 당연히 아니지!
돈 100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우리 제품에 자신이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전력으로 넘어가 최종 결과가 불량으로 판정 나면 엄청난 페널티가 기다리지만, 무섭지 않다.
“부장님. 변압기 검사 확실하게 했죠?”
“그거야 당연하죠. 전 절대 대충 안 합니다.”
“그럼 쫄릴 것 없지 않습니까? 일단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하니 대구로 가 봅시다.”
“네, 준비해 놓겠습니다.”
관수 쪽이야 민수처럼 양아치들이 많은 시장이 아니니, 전기공사 업체가 구라를 쳤을 리는 없다. 대한전력과 하청 계약 맺으면 돈을 가마니로 벌어들이는데, 굳이 돈 백만 원 벌자고 그럴 리가 없다.
난데없이 대구 여행이네.
대구로 넘어가기 위해 감히 고속도로라 부를 수 없는 88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아차 싶다. 저녁에 최유리랑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랐다.
남녀가 단둘이 세 번째 저녁 식사를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오즈 야스지로 선생이 말씀하셨지. 그 세 번째 만남이 오늘이 아닌가! 해 지기 전에 복귀하기만을 기도해야겠네.
별일 없기를 기대하며, 대구, 정확히는 대구 밑에 있는 경산시 진량읍으로 차 한 대가 급히 출발했다. 이규철 부장과 덕준이를 싣고 부지런히 대구로 떠났다.
이 부장은 혹시 모르니까 교체용으로 변압기 싣고 가자고 했지만, 난 우리 제품을 믿었기에 그냥 몸만 가자고 밀어붙였다. 합격품 임의로 교체하다가 걸리면 누구 좋으라고.
“대한전력은 하자 보수가 3년이지? 앞으로 3년간 잠 제대로 못 자겠네.”
“이봐요, 한 부장님. 우리 제품이 그리 얼렁뚱땅 나온 것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시험관 입회 시험까지 다 마치고 합격 봉인까지 붙은 것인데, 두려울 것 없어.”
“사장님아, 생각해 봐. 관수로 지금까지 납품 나간 것이 2만 3천 대가 넘어. 아무리 검사를 철저히 했다고 해도 불량 없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 아니야?”
“우리 덕준이가 아직 변압기를 잘 모르는구만. 테스트 완벽하게 내보내지? 그럼 그걸로 끝이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과학적인 발언 아닌가?”
“정말이라니까? 그게 과학이야. 혹시나 운반 중에 어디 크게 부딪치지 않은 이상, 문제없으면 끝까지 문제없어. 이번 건도 아마 설치 업자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일 거야. 이 부장님 그렇죠?”
“네. 특성치는 변동률 감안해서 체크합니다. 불량 나올 가능성은 낮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저 말. 이 부장은 말 많은 나와 덕준이 사이가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죠. 근데 이 부장님, 물량이 많으니까 불량 걱정도 안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말이 7만 대지, 어휴.”
“자체 시험 확실하게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불안해하는 덕준이보다는 걱정할 것 없다는 이 부장의 말이 더 믿음이 간다. 전수 검사를 하는 자체 시험에서 문제없으면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를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조업은 납품과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불량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무 문제없는 완벽한 제품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좋아졌냐? 원래 88고속도로 죽음의 도로 아니었어?”
“며칠 전에 확장 공사 완료했다고 하더니, 완전 새 도로 됐네. 여기 진짜 돈 내고 가기 아까운 고속도로였는데 말이야.”
국도만도 못한 88고속도로를 생각하고 왔는데, 왕복 4차선에 중앙분리대도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러게 처음부터 이렇게 잘 깔아 놨으면 얼마나 좋아? 여기서 죽은 사람이 몇백 명인데!
2시간 반이 걸려 문제의 현장에 도착했다.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서 노후 변압기 교체 공사를 담당하는 작업반장을 찾아갔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인사를 하는 작업반장을 보니 안심이 된다. 불량이라면 당당한 모습을 보였겠지.
“안녕하세요. 프라임일렉트릭에서 왔습니다. 변압기 불량이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아아, 프라임일렉트릭요?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게 불량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좀 애매한데…….”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대한전력 놈들이 이런 일 생기면 죄다 우리한테 떠넘긴다 아닙니까? 우리야 대한전력이랑 틀어져 봐야 좋을 것도 없고. 일단 변압기 보러 가입시다.”
혹시 모를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저렇게 어벌쩡 얘기하는 것이 제품 성능 문제가 아님이 확실하다. 이런 경험 쌓으라고 굳이 덕준이를 데리고 왔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네.
역시나였다.
“이거 운반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습니까?”
“우리야 지역 본부에서 보내 주는 대로 받아 공사만 하지요. 어제 변압기 21대가 왔는데, 2대가 이럽디다. 뭐 우리가 어찌해 볼래도 방법도 없고, 대한전력에다 따지자니 좀 그렇고.”
하나는 1차 부싱에 금이 가서 반으로 쪼개지기 직전이고, 다른 하나는 2차 부싱이 박살 나 부싱홀에서 기름이 줄줄 새고 있었다. 이건 백 프로 운반 잘못이다.
“이거 화물차에 실려 올 때 변압기 사이사이에 각구목 안 받쳐 있었습니까?”
“네, 그냥 바로 묶여서만 왔습디다.”
“그러니까 변압기가 이 모양이죠. 그나마 2대만 이런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건 우리가 아니라 대한전력에서 책임질 문제예요.”
작업반장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우리한테 전화해서 변압기 교체하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 새끼 확실히 알고 전화를 했어야지! 하루 공쳤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송전 공사만 하다가 변압기 맡은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랐네요. 우리야 문제 생기면 업체한테 전화해서 신품으로 교체만 했으니까, 이것도 그렇게 하면 되는지 알았지요.”
“우리는 지역 본부로 물건 보내서 납품 확인서 받으면 끝입니다. 하자 보수는 성능 문제나 누유이지, 이렇게 운반하다 파손된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멀리까지 오시게 했네요. 그런데 이거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간이 테스트 장비까지 모조리 챙겨 온 이규철 부장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좋게 생각해서 대구 놀러 왔다고 생각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검사동에 쌓여 있는 검사 물량 생각하면 화가 날 일이지.
“반장님. 제가 아침에 통화한 사람인데요. 제가 어떤 불량이냐고 물어봤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부싱이 깨져서 기름이 샌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여기까지 올 필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해 좀 해 주십쇼. 이왕 오셨으니까 이거 불량 난 것 좀 어떻게 해 주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불량이 아니라니까요. 이건 대한전력 잘못이니까 대구본부로 연락을 하셔야죠.”
“그렇게 하면 좀 시끄러워지지 않습니까? 괜히 지역 본부 담당자 심기 건드렸다가는 우리만 피곤해진다 아닙니까? 공사일도 마냥 늘어지고. 제가 부탁 좀 드릴게요. 깨진 것이라도 바꿔 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 부장을 더 이상 욱하게 만들면 안 되겠다. 내가 정리하고 마무리 짓자.
“반장님.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셨으니까 그냥 변압기 교체해 주고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함부로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아이, 이것 참. 이거 공사 늦어지면 안 되는데……. 대한전력 이놈들은 물건을 왜 이따구로 보내서, 나 참.”
작업반장이 허공에 혼자말로 아쉬움을 달랜다. 우리가 왔으니 알아서 변압기 바꿔 주고 갈 줄 알았던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수다.
“우리는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봉인 줄 보이죠? 이게 대한전력에서 합격했다고 주는 것인데, 한 번 풀면 다시 못 껴요.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대한전력이랑 잘 얘기해서 처리하세요.”
작업반장 얼굴이 울상이 됐지만, 내가 화 안 내고 좋게 얘기한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길.
씁쓸해하는 작업반장을 뒤로하고 차에 타는데, 이 부장이 죄인 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사장님, 제가 확실하게 어떤 상황인지 확인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설치 현장에서 불량이라고 얘기하니까 놀라는 것은 당연해요. 저 사람들이 변압기 전문가도 아니고, 일단 문제 있다 싶으면 전화부터 하고 보잖아요.”
“할 일도 많은데 하루 그냥 공쳤습니다.”
“이런 일도 겪어 봐야죠. 그게 다 경험 아니겠습니까?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런 경험은 필요한 일입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맛집이나 가서 배 채우고 들어가죠.”
덕준이가 맛집 얘기에 전면에 나섰다. 준비된 자 맛집을 찾을지니라.
“아까 분위기 보니까 이리될 것 같아서 대구 맛집 검색해 봤는데, 막창만 잔뜩 나오네. 육개장 맛집 하나 나오는데 여기 어떻습니까?”
“그래. 뭐든 먹으러 갑시다.”
“근데 사장님. 보니까 앞으로 이런 일 숱할 것 같은데, 부싱 저거 어떻게 안 될까? 우리가 아무리 애지중지 내보내도 공사 현장에서 막 다루면 툭툭 깨져 나갈 것 아니야? 그때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불량이라고 할 것 같은데?”
맛집 검색만 하는 줄 알았던 덕준이가 내 뒤통수를 강타하는 말을 던졌다.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 것인가! 문자님의 계시인 폴리머부싱!
“야! 그거 좋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내가 뭐 이상한 소리 했어?”
이상한 소리 맞아. 그 덕분에 이제야 머리가 돌아간다야.
“이 부장님. 1, 2차 부싱 전부 폴리머로 교체하면 이런 일 절대 안 일어나겠죠?”
“폴리머부싱요? 그거 내던져도 안 깨지니까 그러겠지만, 단가가 비싸다고 하던데요?”
“단가야 맞추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덕준아, 폴리머부싱 얼마에 들어오지?”
“글쎄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1차는 일반 부싱보다 만 원 정도 비쌌던 것 같고, 2차도 그 정도인 것 같은데? 품목이 하도 많아서 다 외우질 못하겠네.”
부싱이 1차 1개, 2차 2개가 들어가니까, 폴리머로 바꾸면 변압기 1대당 3만 원가량 원가가 높아진다. 3~4퍼센트 정도야 감당할 수준이긴 한데, 문자님께서 손해 볼 짓을 계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산부터 서둘러 달려가야겠다.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쌓인 일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이 부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차분하게 진행하자.
“오케이.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TV에도 여러 번 나왔다는 대구의 유명한 육개장 집을 찾아갔다.
나주 맛집들이 입에 익은 탓일까? 맛은 있지만, 영 아쉽다. 진한 국물에 칼칼한 맛은 아주 좋았다. 근데 이걸 8천 원을 받아?
솔직히 반찬에 실망했다. 나주의 진한 간에 질려 이 집의 심심하게 간된 반찬이 맛있게 느껴졌지만, 뭔가 아쉽다. 풍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하다못해 깨라도 뿌렸어야지.
“아, 잘 먹었다.”
덕준이가 이를 쑤시며 감탄사를 던진다. 그래, 너라도 잘 먹었으면 됐지. 이 부장이야 아무거나 막 먹는 사람이니 당연히 잘 먹었을 것이고.
지금 출발해서 나주 도착하면 6시는 넘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준비하면 최유리와 저녁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만나는 것도 일이네.
회사에 도착해서 옷 갈아입고 최유리를 만나러 광주로 가는 내내 폴리머부싱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문자님 계시대로 태인산업을 인수하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지?
자본금 10억 원에 자산을 다 해도 50억 원도 안 되는 회사라 인수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부채도 많고 형편이 어렵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이니, 인수하겠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힐 수도 있겠지.
그저 그런 회사를 인수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있을 것이다. 깨지지 않는 부싱으로 변압기를 만든다면, 변압기 시장에 못해도 잔잔한 파도 정도는 일으키겠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뭇 기대된다.
몸은 광주를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부산에 가 있다. 집중을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