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109
109
제109화: 이제 그만(2)
조태수는 도미닉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안을 만났다는 얘기를 해주었고 신변 안전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말을 했다.
물론 직업이 직업인만큼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도미닉이다.
최소한 자기 목숨 하나 정도는 지킬 역량을 갖췄을 것이지만 상대가 후버 국장이라면 다르다.
도미닉은 고맙다는 말을 했다.
***
후버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이 그다지 기쁘거나 행복한 통화는 아닌 듯 보였다.
그렇지, 그렇군, 그럴까 따위의 짧은 대답만 하면서 주로 들었다.
“알겠소.”
전화를 끊고 난 후버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번호를 눌렀다.
“당장 해치워 버리게.”
단호히 한마다를 뱉고 거칠게 끊는다.
그 시각 도미닉은 NBC 방송국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옐로우 노트북(Yellow Notebook)’담당 피디인 일라이저와 만나고 있었다.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다.
도미닉은 자신이 취재한 것을 책으로 내서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취재했거나 추적했던 여타 사건과 조금 달랐다.
우선 상대가 FBI의 후버 국장이다.
자신이 취재에 들어간 것을 알면 곧장 행동에 나설 것이다.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기 전에 공격해 올 것이다.
그래서 도미닉은 아이템, 즉 정보를 방송국에 팔아 버리기로 했다.
개인이 아닌 방송국 차원에서의 취재라면 아무리 후버라도 함부로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이라면 대특종인데.”
일라이저 피디가 입맛을 다셨다.
“완전한 특종이지.”
“조건이 있어?”
“물론 있지.”
일라이저의 눈이 빛났다.
“말해 봐.”
“나중 내가 취재한 프로그램 하나를 방송할 수 있도록 도와줘.”
프리랜서가 취재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 드라마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겠지. 최소한 광고주들이 앞다투어 달려드는 정도의 재미는 있어야 하고.”
이번 정보를 주는 대가로 드라마 한 편을 계약하자는 것이다.
7년 전 도미닉이 취재하여 집필한, ‘살해된 빈 라덴의 신화’라는 책이 5백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CBS에서 드라마화하여 대성공을 거둔 예가 있었다.
당시도 친구라는 이유로 NBC에서 먼저 접근했지만 가격과 시간대가 맞지 않아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CBS가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일라이저는 잠시 스포츠부로 밀려났다가 2년 전에 다시 돌아왔다.
“솔직히 드라마 제작은 국장님의 소관이야.”
“그럼 국장님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우리 다시 얘기하지.”
도미닉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일라이저가 팔을 잡았다.
“급한 성격은 여전하네. 비즈니스는 대화야. 우리 만난 지 고작 한 시간도 안 됐는데.”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은 토론하듯 얘기를 시작했다.
***
비가 내렸다.
작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올 겨울은 아직 눈 대신 비가 오고 있었다.
겨울의 초입이긴 하지만 비가 내린다는 건 따뜻한 겨울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차고에 주차한 도미닉은 트렁크를 열고 우산을 찾았지만 없었다.
차고가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우산이 있어야 한다.
차고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20여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워낙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 옷이 젖을 가능성이 높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내는 지금 파리에 있다.
유학 중인 딸에게 가 있는 것이다.
트렁크에서 우산을 대신할 물건이 없나 이것저것 뒤지던 도미닉의 동작이 멈췄다.
뒷덜미가 차갑다.
처음에는 빗방울이 떨어진 것으로 오해했지만 차고에 비가 샐 리 없고 물방울과는 냉기의 느낌이 다르다.
서서히 허리를 펴고 돌아섰다.
처음 보는 사내가 소음기를 끼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무엘의 얼굴은 아니지만, 노회한 르포 작가는 단번에 그가 변장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은 웃음을 지었다.
올 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의 미소였다.
“사무엘!”
사내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쓰고 있던 가발을 벗고 콧수염까지 떼어 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경을 벗었는데 완전한 사무엘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이런 일은 서둘러야 하죠.”
도미닉 자신에게는 모두 두 자루의 권총이 있다.
한 자루는 권총은 운전석 의자 밑에 있고, 또 한 자루는 트렁크의 스페어타이어를 넣는 틈 사이에 있다.
그러나 지금 권총을 쥘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산전수전 겪은 사무엘이 가만 놔 둘리가 없었다.
지이잉!
아랫주머니에 넣어 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도미닉은 사무엘의 눈치를 보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사무엘이 도미닉의 바지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주 좋은 구도군요. 이제 그만 총구를 내려도 될 것 같고.]사무엘은 깜짝 놀라며 차고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를 맞지 않도록 비닐을 씌운 카메라를 멘 기자와 일라이저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사무엘의 총구가 본능적으로 일라이저 일행을 향해 돌아섰다.
“방아쇠를 당긴다면 더욱 멋진 그림이 될 것 같은데. 지금 이 모든 건 방송국으로 보내지고 있고.”
흠칫!
사무엘이 놀란다.
덫에는 자신이 걸렸다.
하지만 도미닉 역시 놀라는 것을 보면 사전에 준비된 상황은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영상이 방송국으로 송출되고 있다면 대책이라고는 없다.
생방송으로 중계는 되지 않지만 차곡차곡 영상이 녹화되고 있을 것이다.
한 시간 전 일라이저는 방송국에서 국장과 마주 앉자 도미닉의 제의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있었다.
– 누군가 죽기에는 매우 적절한 날씨요.
사내는 다짜고짜 카메라를 준비해 나오라고 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사내는 자신과 도미닉이 만나 나눈 얘기를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버 국장 쪽 인물이 아닐까 했지만 적의가 전혀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만나자는 장소에 나갔는데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과거 사무엘이 범죄자를 죽인 패턴을 말했다.
그런데 자신들도 미처 몰랐던 일을 사내가 말해주었다.
사무엘의 살인 패턴 중 하나가 비가 오는 날 총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 제거된 마피아와 일반 갱들 이십여 명 중 열다섯 명이 비가 내리는 날 제거되었다.
사실 살인자들이 비 오는 날을 선택하는 건 증거 제거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물은 어떤 물질보다도 완벽하게 증거를 씻어버린다.
사내는 일라이저 일행을 태우고 도미닉의 집이 보이는 나무 뒤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그림을 전부 화면에 담는데 성공했다.
조금 전 사내는 자신들을 내려주고 떠났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사내는 빙긋 웃기만 했다.
사무엘의 얼굴에 당황한 그림자가 넘친다.
화면이 방송국으로 넘어갔다면 이들을 죽여도 소용없다.
오히려 살인죄로 더욱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사무엘의 얼굴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 생기는 특유의 모습이었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한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는 눈앞의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해야 하지만 화면이 방송국으로 보내졌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방법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사무엘은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가고 낯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됐나? 정리했나?]누군가와 술을 마시는지 시끄럽고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순간적으로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는데 한가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후버 국장에 대해 분노가 치민다.
[왜 말이 없나? 없애 버리라고 했잖아!]“골이 아프게 됐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군요.”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순간 후버 국장도 충격을 받은 듯 신음을 삼켰다.
뿐만 아니라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들까지 일체 사라진 걸 보면 같이 술 마시는 일행을 밖으로 내쫓아낸 것이 분명했다.
후버가 발작하듯 소릴 질렀다.
그때였다. 통화 중인데 전화가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액정에 잡혔다.
낯선 번호인데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를 하다니 누굴까.
“잠시 후에 다시 하겠습니다.”
[쏴 버리라니까!]후버 국장의 외침을 무시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요?”
[후버 국장이 쏘라고 말하는 것 같군요.]흠칫!
사무엘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밤은 더욱 어두워졌고 빗줄기는 훨씬 거세졌다.
주위에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을 지켜보며 전화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 같으면 항복하겠소. 최소한 당신 책임은 면하니까. 그들을 죽이면 당신이 덤터기를 쓰게 되오. 끝까지 후버의 개가 되겠소?]“조?”
[현명한 판단을 하시오. 그럼.]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후버 국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됐나? 죽였나?]“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절 이해시켜주십시오.”
[자네 블랙 맘바 맞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사람 세 놈 없애는데 이해를 시켜달라니?]탁!
사무엘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담배를 찾았지만 없다.
“담배 하나 주시오.”
일라이저가 담배 한 개비를 내밀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딸칵!
사무엘은 담배를 길게 빨아 내뿜었다.
빗속으로 연기가 뻗어 나갔다.
모든 게임은 끝났다.
세상을 울렸던 블랙 맘바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사무엘은 피식 웃었다.
그건 패자의 쓰디쓴 미소였다.
감비노의 권력이 바뀌었다.
맥그리거가 주위를 재빨리 자신의 사람들로 갈아 치우며 기반을 단단하게 쌓고 있지만 아직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후버 국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비노의 목줄을 죄려고 했다.
감비노의 권력이 바뀐 만큼, 그동안 마가디노에게 정치자금을 비롯한 뇌물을 받은 상하 양원이나 정부 고위 관료들 모두 때는 이때다 싶어 발을 뺄 것이다.
마가디노가 그들과 거래한 내역서를 수집해 놨다고 해도 본인이 죽고 없는 만큼 법정에서 증거로 작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감비노를 싸고 있던 강력한 힘들이 잠시 소멸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들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맥그리거가 다시 권력과 줄을 대기 전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하나 후버보다 계산이 한발 빠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태수였다.
그는 그 모든 상황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선공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걸려들었다.
‘리사!’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무엘이 소원은 리사의 원한을 갚는 것이었다.
자기 손으로 조태수를 죽이는 것인데 이미 물 건너갔다.
지금으로서는 조태수에게 완벽하게 당한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조태수에게는 상대가 안 됐는지도 몰랐다.
부우웅!
그때 승용차 한 대가 오더니 급정거를 하더니 한 사람이 내렸다.
FBI의 보거트였다.
보거트를 발견한 사무엘의 눈이 커졌다.
알렉스가 죽고 나서야 조태수가 보거트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태수가 아니면 사냥꾼 알렉스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이유가 없었다.
결국 모든 일의 원인은 조태수였다.
“짐작은 하고 있지만 직접 듣고 싶소. 데커, 당신이 죽였소?”
사무엘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매우 곤혹스러운 반응이었다.
“말해 보시오.”
보거트와 데커는 흔히 말하는 절친한 동료였다.
학교 동문이기도 했으며 둘 사이에는 어떤 벽도 없을 만큼 데커와는 허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