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become an evolving space monster RAW novel - Chapter 412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에 조쉬는 실종자들을 버렸다. 해적들은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했다.
들어올 때만 해도 아무 것도 없던 복도에 웬 나무가 자라났다. 말라비틀어진 가지는 천장과 벽에 닿았고, 가운데에는 메마른 껍질로 뒤덮인 앙상한 몸통이 보였다.
「…….」
해적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환영? 아니면 독가스? 헬멧을 어떻게 뚫은 거지? 설마 사이킥 파워인가?’
조쉬도 이 상황을 분석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라 쳐도 여러 조직원들이 순식간에 다른 층으로 이동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히, 히익?! 도, 동료가 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후열에 있던 5명이 또 사라졌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소리도, 전조도 없었다.
마치 복도가 해적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만 같았다.
‘빨리 여기를 나가야 해!’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나무만 지나면 바로 밖이다. 조쉬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명령을 내렸다.
「…나무를 베라.」
부하 한 명이 천천히 나무에 다가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팔에 장착된 ‘블레이드 클로’를 작동시켰다.
손등에서 튀어나온 초진동 톱날이 진동하며 익숙한 소음을 낸다. 톱날의 주인은 천천히 팔을 들었다.
이제 가지를 자르는 일만 남았는데, 부하가 멈칫한다.
「들었어?」
「방금 뭐였지?」
다른 조직원들도 당황해한다. 해적은 나무를 베려던 것을 멈추고 가지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또다시 들리는 소리. 이번에는 조쉬도 분명히 들었다.
「웃음소리?」
나무 속에서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맑은 샘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청량한 목소리였다. 어찌나 곱고 아름다운지 듣자마자 긴장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앙상한 가지가 그 끝을 해적의 뒤통수로 향하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으리라.
「조심!」
「네?」
조쉬가 뒤늦게 외친 순간, 나뭇가지가 부하의 머리를 꿰뚫었다.
–
「헉, 헉, 헉….」
강화복을 입은 해적이 안개가 자욱하게 낀 거리 위를 달린다.
오른팔은 온데간데없었고, 등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가 인간보다 강인한 신체 능력을 지닌 사이보그라 해도 지금 이 부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크헉, 헉, 헉….」
정신없이 달리던 그는 근처에 있는 건물 뒤편에 몸을 숨겼다. 금이 간 헬멧 너머에 있는 기계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사이보그 해적은 주변에 누가 오는지 계속 살피면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가 속한 돌격팀은 간부의 인도를 받아 남쪽구역의 유전자 센터로 향하고 있었다. 이동 중 적과 조우하지 못했지만, 딱히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건물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문제는 센터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터졌다.
방치되어 죽은 나무로 가득 찬 공원을 통과하던 중 그들은 노랫소리를 들었다. 음산한 공원에 작은 소녀들의 천진난만한 흥얼거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음악을 들은 해적들은 잠시 달리던 것을 멈췄고, 그때부터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조용히 서 있던 가로수들이 움직이더니 돌격팀을 습격한 것이다.
‘빌어먹을! 노래로 유혹하는 나무 따위는 본 적 없다고!’
게다가 그 나무들은 살아 있는 생물의 피를 마셨다. 말라 죽어가던 가지가 동료들의 몸에 꽂힐 때마다 가로수는 반대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껍질에는 생기가 돋았고, 노랫소리는 점점 아름다워졌다.
사이보그 해적의 동료들은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곳에 있는 적은 사악한 나무 괴물만이 아니었다.
사방에 산성액을 흩뿌리는 포자, 이상한 냄새를 뿌려서 동료들이 자해하게 만드는 기괴한 식물, 1m가 넘는 크기를 지닌 거대한 날벌레,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실지렁이 등. 꿈에서 볼까 두려운 존재들이 해적을 학살했다.
그렇게 동료들이 공격당하는 사이, 사이보그 해적은 몰래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빨리 본부로 돌아가야 해!’
다른 팀에 합류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저 괴물들이 각 구역마다 있다면 저들도 마찬가지로 전멸을 면하지 못할 테니까.
잠시간 휴식을 취한 그는 다시 달렸다.
상처에서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머리에 박은 모듈이 계속 위험 신호를 보낸다. 당장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했지만, 여기서 멈췄다간 끝장이다.
그는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따라오는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조, 좋아.」
그의 눈에 진흙과 구름의 그림자가 만든 검은 들판이 보인다. 들판 곳곳에 지뢰와 전투 드론이 깔려 있다.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사이보그 해적은 안전한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들판을 가로질렀다. 중간쯤 왔을 때 헬멧의 바이저 안쪽에서 불이 반짝였다.
본부로부터의 통신이었다. 그가 단지를 벗어나고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확인한 듯했다.
「…왜 이제 연락한 겁니까?」
「미안하군. 구조선을 준비하느라 늦었다.」
거짓말이다. 그가 알기로 시노니 카르텔에서 조직원을 구하기 위해 지원 병력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젠장! 남부구역으로 들어간 동료들은 전부 당했습니다.」
「전부 당했다고?」
「예! 다 죽고 저만 남았습니다!」
「알겠다. 장소를 말해주면 그쪽으로 구조선을 보내겠다.」
「…정말입니까?」
사이보그 해적은 머뭇거리다가 그가 있는 곳의 좌표를 읊었다.
「남부구역 외곽이군.」
「예. 구조선 착륙지점은 어디입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네?」
영문을 몰라서 되물었지만, 그 대답은 통신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들렸다.
섬뜩한 기계음과 함께 바닥에 묻혀 있던 지뢰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실험에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제로 작동된 지뢰가 내뿜은 섬광이 그를 감쌌다.
오랜만에 지은 집은 꽤 괜찮았다.
연구단지로 들어온 해적 대부분이 내가 마련한 함정에 걸려 박살났다. 일부 도주한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깜찍한 ‘하이브포머’들의 새 집이 되었다.
플레이어와 연관된 카르텔인 것치고는 싱거운 결말이었다.
‘뭐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유기체일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둥지와 링크한 채, 적과 싸우느라 손상된 건물에 감각을 집중했다. 구조물을 덮고 있던 검은 액체가 움직이며 부서진 부분을 대체했다. 머지않아 단지에 생긴 전투의 흔적은 전부 사라졌다.
저 건물들은 새로 얻은 둥지 계열 일반 특성, ‘생체정원’로 만든 것들이다. 이 특성이 있으면 둥지에 내가 상상하는 대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해적들이 방문한 경비탑이나 연구소도 전부 나의 피조물들이다.
‘사실 모양만 바뀔 뿐, 특별한 효과가 없지만.’
가령 플라즈마 포대를 모방해서 둔다고 해도 실제로 플라즈마 탄을 발사한다거나 할 수는 없다.
또한 보기에는 단단한 것 같지만 내구력도 일반 둥지와 동일하다. 쉽게 부서지고, 불에 매우 약하다. 이 약점을 보완하려면 다른 특성들이 필요한데, 나는 ‘요새화’라는 특성으로 이를 보완했다.
요새화는 특수방어 계열에 속하는 융합 특성으로 에이모프의 점액이 훨씬 단단하게 응집되도록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
이 특성을 보유할 시, 성장할 때 생성되는 고치, 둥지의 내구력이 크게 상승한다.
‘둘이 같이 쓰면 둥지를 도시로 위장하기도 쉽지.’
게임에서도 행성의 소도시를 쓸어버리고 나면 지금처럼 도시의 형태로 꾸미곤 했다. 행성 밖에서 관측하면 영락없이 도시로 보이기 때문에 적을 유인하기 좋다.
‘색깔만 바꿀 수 있으면 완벽할 텐데.’
아쉽지만 점액의 색깔만큼은 특성으로도 바꿀 수 없다. 둥지의 색은 무조건 검은색으로 고정이다.
‘여기는 기후가 엉망이니 그 부분은 신경 안 써도 돼.’
어딜 가든 비가 수시로 내리고 바닥도 진흙탕이다. 잔뜩 낀 먹구름 때문에 낮에도 굉장히 어둡다. 흰색 건물도 검게 보일 지경이라 둥지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게다가 구조물의 디테일도 게임에서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뛰어났다. 에이모프 특유의 뛰어난 감각 덕분에 세밀한 부분까지 실제 건물처럼 꾸밀 수 있었다.
‘플레이어라 해도 여기가 둥지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손님들은 오죽할까? 놈들은 내가 만든 함정에 고스란히 걸렸다.
이번에 준비한 특성은 크게 두 가지. ‘악마 나무’와 ‘광대 통풀’이다.
나는 링크를 해제하고 눈을 떴다. 지하 깊숙한 곳에 마련된 보금자리 곳곳에 화사한 붉은색 나무들이 눈에 띈다. 단풍이 든 나무처럼 새빨간 가지를 가진 나무 아래에 검은 실지렁이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
악마 나무 특성을 얻으면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 깃든 나무처럼 생긴 육식성 식물이 둥지에 생성된다.
평소에는 앙상한 고목 상태로 서 있지만, 살아있는 생물이 접근하면 즉각 돌변한다. 여기저기 뻗은 날카로운 가지를 이용해 적을 찌르고 그 피를 마신다. 가지에는 혈액의 응고를 막는 균이 포함되어 있어 일단 찔리면 피를 더 많이 쏟아내게 된다.
악마 나무는 피를 마시면 껍질이 단단해지고 가시가 예리해진다. 가시에 찔린 적이 많을수록 이쪽이 강해지는 구조다.
또한 나무들이 확보한 에너지 중 일부는 둥지를 통해 내게 전달된다. 악마 나무의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인신공양’인데, 그 효과를 계승한 거다.
‘그 다음은 광대 통풀.’
둥지의 바닥에는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통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근처에는 통풀로부터 나온 미세입자들이 둥둥 떠다닌다.
설정상 저 입자는 닿은 대상에게 극도의 가려움을 유발시킨다. 닿은 부위를 뜯어내기 전까지는 가려움이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가 미치게 만든다고 해서 이름이 광대 통풀인 거다.
물론 입자가 살에 직접 닿아야 효력이 있기 때문에 맨몸을 노출하지 않은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 같이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적에게도 마찬가지로 무력하다.
하나 걱정할 것 없다. 전자의 문제는 악마 나무와 하이브포머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침입자들은 궤멸했다. 남은 적은 부하를 여기로 보낸 시노니 카르텔의 지휘부다.
나는 하이브포머를 시켜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준비한 건 어떻게 됐어?”
「끝났습니다. 행성 주요 도시의 통신망은 모두 제 관리 아래에 있습니다.」
AG-01에 도착하자마자 PS-111은 홀로 행성 통신망 장악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위성의 통제권을 빼앗아 온 덕에 현재 이 행성의 통신망은 전부 녀석의 통제 아래에 있다. 행성 내 통신 차단은 물론이고, 행성 밖에 보내는 통신도 제한할 수 있다.
‘차단만 하면 다행이지.’
내게서 ‘교란침’을 이식받은 녀석은 상대의 통신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 이번에도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해적들은 자신들이 지휘부로부터 명령받는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들이 둥지에 발을 들인 이후 받은 모든 통신은 제3자에 의해 조작된 거짓 명령들이었다. PS-111은 지휘부에게는 부하의 모습으로, 현장의 조직원들에게는 간부의 모습으로 연기하며 양측을 모두 속였다.
‘잘 써먹을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로 능숙하게 활용할 줄이야.’
함정을 피해 둥지 밖으로 도망친 조직원들도 녀석에게 속아 지뢰밭으로 뛰어들어 죽어버렸다. 반면에 항만의 해적들은 연구단지의 병력들이 아무 일 없이 임무 수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유용한 교본이 있어서 교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용한 교본?”
「예. 에이모프의 행동과 피해자 반응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화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나를 따라했다는 뜻이다.
‘쩝, 새 제자가 생겼네.’
내 전략을 배우겠다고 한 존재는 아드하이 이후로 처음이다.
「향후에도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해주시기 바랍니다.」
“노력할게. 아무튼 통신망을 전부 장악했다고 했지?”
「예. 통신 제한, 수정 모두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외부로 보내는 통신도 조작 가능해? 다른 행성으로 보내는 메시지나 신호 같은 것들.”
「통신 위성을 확보했으므로 가능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외부에 새어 나갈 일은 없다는 거다.
「항만을 공격할 생각입니까?」
“내가 직접 가지는 않을 거야.”
「?」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일부들’이 갈 거지만.
양옆에 있는 머리들이 나의 의지를 읽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여기는 조쉬. 북동부구역 관리센터를 확보했습니다.」
「셰퍼드. 이쪽도 남서부구역 관리센터 점령했어요.」
연달아 날아오는 희소식에 벤트리스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