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45
144
손으로 코를 틀어막은 에녹이 불편한 눈으로 병실을 살폈다.
갓 입원했다는 오스만의 병실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예리하게 날 선 시선이 깨끗한 병실을 한 바퀴 훑고 허무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의사가 에녹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이렇게 냄새가 지독한데도 그는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에녹은 자신에게만 느껴지는 냄새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리고 대개 이런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골칫거리가 된다는 것도.
“아니. 됐어. 난 더 있다가 갈 테니. 이만 가 봐도 좋아.”
손을 내저은 그가 의사를 물렸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의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얼른 병실을 나섰다.
그리하여 병실에는 에녹과 오스만만 남게 되었다.
병상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에녹이 수상하다는 눈으로 그를 살폈다.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오스만은 겉보기에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딱딱, 그의 눈앞에 손가락을 튕겨 봐도, 옆구리를 꾹꾹 찔러 보아도 얼굴 근육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
에녹의 의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창밖의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쓰러졌다고는 해도, 살아 있는 인간인 이상 반사 작용은 해야 하는데 오스만은 그조차 없었다.
꼭 숨만 쉬고 있는 시체처럼.
“왜 너를 보러 오라고 했을까…….”
뭔가 있기는 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골똘한 눈으로 오스만을 살피던 에녹이 툭, 툭, 손끝으로 침대를 두드렸다.
깨워 보면 알겠지.
간단하게 결론을 낸 에녹이 오스만의 심장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먼저 치유력을 나눠 주지 않는데, 요즘 세라 덕분에 아주 이곳저곳 헤프게도 퍼 준다고 생각하면서.
에녹의 몸에서 치유력이 일부분 빠져나갔다.
오스만이 정말로 술 때문에 쓰러진 거라면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날 것이다.
“…….”
하지만 역시나, 오스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간단히 끝나지 않으리라 예견한 에녹이 방금보다 조금 더 많은 치유력을 들이부었다.
“…….”
그러나 이번에도, 오스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에녹은 더 많은 치유력을 들이부었다. 오스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에녹이 계속해서, 더 많이, 더더 많이, 잘린 팔도 돋아나 자랄 정도로 콸콸, 날이 새도록 치유력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스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에녹의 어깨 위로 서슬 퍼런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성검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고?”
심상치 않은 난제에 봉착한 에녹이 병실 밖으로 나가 다시 의사를 불러왔다.
아침이 되어 교대를 한 의사는 아까보단 나이가 좀 있는 자였다. 다행히 이전 근무자에게 귀띔을 받았는지, 조용한 병실에서 갑자기 에녹이 튀어나와도 크게 당황하거나 하지 않았다.
에녹을 봐도 당황하지 않던 의사는 병상에 누워 있는 오스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당황하여 차트를 뒤적거렸다. 단순한 피로 누적이라고만 적혀 있는 진단서를 보고서 미간을 찌푸린 그가 더듬더듬 다가와 조금 이른 아침 검진을 시작하였다.
검진이 길어질수록 의사의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상태는?”
“그게…….”
이변을 확실시한 에녹이 의사의 소견을 물었다.
오스만에게 들이대고 있던 청진기를 걷어 낸 의사가 난색을 표했다.
“이, 이상합니다. 분명, 의학적으로 이상이 없었는데…….”
“이상은 없지만, 낯빛이 저렇게 창백해질 수도 있나?”
어젯밤과 정확히 똑같은 소견에 에녹이 추궁하듯 오스만을 턱짓했다.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이던 얼굴은 밤사이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어딘가, 아픈 것 같기는 한데-.”
제 발언을 주워 담은 의사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지만 맥박, 호흡, 혈압이 모조리 정상이었기에 낯빛만 보고서도 무슨 병인지 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체온도, 계속 오르고 있군요. 일단 해열제를 써 보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오스만의 체온이 까닭 없이 치솟고 있었다.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한데, 막상 손을 가져다 대면 델 듯이 뜨거운 것이다.
의사는 이런 증상은 처음 본다며 연신 허둥거렸다.
“…….”
반면 에녹은 침착하게 무게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의 앞에서는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언젠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던 세라가 딱 저런 꼴로 앓았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치유력을 들이부어 낫게 했지만, 지금은 에녹의 치유력을 아무리 쏟아도 말짱 헛것이라는 거다.
그사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의사가 오스만의 차트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환자가 어제 가시 토벌에 다녀왔다고 하니, 어쩌면 가시의 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정화의 돌도 같이-.”
“아니.”
에녹이 허둥지둥하는 의사를 가로막은 건 그즈음이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오스만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용없을 것 같군.”
“……예?”
그에 증상을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던 의사가 어리둥절한 낯으로 오스만을 쳐다보았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한 의사가 철그럭. 차트를 떨어뜨렸다.
방금 전까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오스만이 어느 틈엔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의 입과 귀, 코에서 새어 나온 시커먼 연기가 온통 창백한 얼굴에 들러붙어 시야를 가렸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꾸물대며 움직인 그것들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오스만의 이마 한가운데로 몰려든 검은 연기가 한데 뭉쳐 깨끗한 이마에 커다란 낙인을 남겼다. 매끄럽지 않고 투박하게 새겨진 문양이 보기 좋지 않았다. 복잡하게 엉킨 선들이 불길하다.
‘……냄새가-.’
더하여, 에녹을 괴롭히던 불쾌한 냄새가 참기 힘들 정도로 지독해졌다.
코를 틀어막은 에녹이 낙인을 건드렸다.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손끝에 축축한 점성이 들러붙는 감각이 느껴졌다.
지이잉. 에녹의 몸속에 잠들어 있는 성검이 불쾌하다는 듯이 낮게 울렸다.
이 배 속까지 늪 속에 잠긴 것처럼 질척한 기운은 분명-.
안타레스의 기척이었다.
“생각보다 더 더러운 수작을 부린 모양이지.”
차가운 비소를 머금은 에녹이 창가를 향해 다가갔다.
“이 일은 기밀을 유지하는 게 좋겠군. 오스만은 퇴원했지만 정신적인 불안정을 호소하여 휴가를 더 준 것으로 처리하지.”
철컥, 창문을 열어젖힌 그가 의사에게 앞으로의 일을 지시했다.
“오스만의 신변은 다른 곳으로 옮긴다. 마커스가 데리러 올 테니 그전까지 알아서 잘 숨겨 놔.”
“어, 어어…….”
“이제부터 오스만의 기밀은 네 책임이야.”
“예?”
“그러니 움직여. 목격자가 생기기 전에.”
새벽 해를 맞은 영웅의 그림자가 역광이 되어 의사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고개만 돌려 돌아보는 입가에는 세라에게 보여 주었던 다정한 미소 따위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선 눈동자는 그간의 권태와 무기력을 떨쳐 낸 채 총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네, 넵! 알겠습니다!”
뭔가 대단한 일에 연루된 듯한 분위기에 어물대던 의사가 서둘러 병실을 떠났다.
방금 전의 발언으로, 오스만의 일이 새어 나가면 경로가 어떻게 되든 자신이 난처해진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길드의 전경을 지켜보던 에녹이 휘이익-. 휘파람을 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수리부엉이가 창틀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탁자에 놓인 메모지에 무언가를 휘갈긴 그가 그것을 부엉이의 다리에 달린 가죽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네 주인에게 전해.”
간단한 전언을 남긴 그가 부엉이를 다시 하늘로 날려 보냈다.
에녹은 아침 하늘과 야행성 새가 만들어 내는 부조화를 바라보며 냉소적인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제, 돈값을 좀 하겠군.”
그러다 문득, 부득불 자신에게 병원에나 가 보라 등 떠밀던 세라가 떠올랐다.
딴에는 본인의 신분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힌트를 주려고 애쓴 모양이지만, 전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나 좀 의심해 주세요. 하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네 말대로-.”
픽, 하고 바람 빠진 실소를 내뱉은,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표정의 에녹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한가하게 놀 때가 아니었네.”
긴 잠에서 깨어난 영웅이 몸을 일으켰다.
적들이 그의 안식처까지 쳐들어왔으니,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였다.
기분 나쁜 아침이었다.
***
오스만이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린 후 며칠이 지났다.
하루 만에 퇴원한 그는 매일같이 술판을 벌이던 사람답지 않게 또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아이들도 여전히 이웃에게 맡겨진 채였고, 가시 토벌대 소집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정기적으로 모이는 밤의 모임에도 얼굴을 들이밀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소식이 끊긴 게 수상하여 알아본 게 아침의 일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린 남자는 수소문 끝에 오스만이 정서 불안을 핑계로 휴가를 내고 길드를 떠났다는 놀라운 소식을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
“이반 녀석, 도망쳤대.”
사라진 사람은 오스만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다른 자의 것이었다.
시그너스 길드에는 이반이라는 자가 없었지만, 남자와 함께 둘러앉은 이들 중 그게 누구냐고 되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 자식, 매번 규칙을 어겼잖아!”
오히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며 그의 흉을 보았다.
“그럼,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빠 찾겠다고 나서는 거 아니겠지?”
분개하는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행여나 아이들이 도망친 이반을 찾겠다고 나설까 두려운 눈치였다.
“그 어린 것들이 뭘 알아서 나서? 그냥 버려졌나 보다 하겠지.”
“그 자식 분명 안 돌아올 텐데. 길드에서 우리한테까지 조사가 들어오진 않겠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거야? 찾아서 시체라도 가져다 놔야 깔끔하지 않을까?”
“아서라, 그러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지.”
어둠 속에 숨어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쑥덕거렸다. 그들은 실종된 동료를 걱정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까 제 앞길만 생각하기 급급했다.
흉흉하고 불안한 술렁임은 병균처럼 빠르게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밤의 집회에 모인 이들이 정숙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크게 동요했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그때, 누군가 그들의 불안을 비정하게 잘라 버렸다.
지대가 높은 바위에 걸터앉은 사내였다. 그가 입을 열자 두서없이 떠들어대던 입들이 합, 하고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꽂힌다.
“너희가 발각될 일은 없을 테니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늘에 모습을 감추었으나, 목소리만큼은 당당한 그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좌중을 눈짓하며 확언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서로를 도울 텐데. 놈들이 무슨 수로?”
그의 시선 아래 펼쳐진 숲 그늘 속에는 시궁창의 쥐새끼처럼 득실대는 인간의 그림자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수가 족히 수십은 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