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47
246
한 번 있었던 일이라 그런 걸까.
밤사이 시체가 내걸렸는데도 길드원들의 동요는 처음만큼 크지 않았다. 역시 마찬가지로, 한 번 있었던 일이라 길드의 처리 속도도 훨씬 빨랐다.
“물러나세요!”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세요!”
누가 신고를 했는지, 마차에서 내린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시체를 확보하고 사건 현장을 보존했다. 의사들은 시체를 내리고, 함께 온 수사관들은 최초 목격자와 주변인들에게서 진술서를 받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세라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훑었다. 사람을 찾는 건 아닌 듯 임시 캠프가 들어선 숲의 저 어디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숲의 어디쯤, 유난히 세라를 끌어당기는 지점을 찾아냈다.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간 세라가 한창 목격 진술을 듣고 있던 길드원의 어깨를 흔들어 자신이 보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 방향으로 수색대 보내. 시체 하나 더 있어.”
“……네?”
뜬금없는 발언에 길드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으나, 세라는 이미 인파를 헤치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현장을 떠난 그녀는 곧장 길드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공식적인 휴가는 바로 어제가 끝이라, 오늘 당장 가시에 들어가지 않아도 임시 캠프에서 혹시 모를 소집을 대기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용무가 있었다.
길드로 돌아온 세라는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뀨……?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주인의 모습에 한창 늘어져 있던 까망이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마치 기대도 하지 않았던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뀨우우!
덩치만 산만 해진 아기 뱀이 얼른 기어와 세라의 어깨에 머리를 비벼댔다. 평소라면 잔뜩 애교를 부리는 까망이를 기꺼이 오랜 시간 예뻐해 주었을 테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어보였다.
“응. 그래그래.”
대충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어 준 세라가 까망이를 뒤로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뀨우……? 평소와 다른 세라의 태도에 까망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석 같은 눈동자 위로 침대맡에 놓아둔 통신장치를 켜는 세라의 뒷모습이 비쳤다.
연락은 금방 이어졌다. 세라가 통신 장치에 마력을 불어넣은 순간, 저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했기 때문이다.
[……세라.]화면 너머로 나타난 에스텔라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왜 연락을 했는지 묻지 않고 그저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눈으로 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세라가 왜 이 타이밍에 연락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비슷한 꿈을 꿨어요.”
세라는 간밤에 꾼 꿈에 대해 늘어놓았다.
또 밤이었고, 달이 떴고, 누군가가 도망치고 있었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두 사람은 검은색의 불꽃이 길을 비추는 복도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
여자가 연신 두려움에 젖은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가 자신들을 쫓아오는 것처럼 다급한 몸짓이었으나, 정작 그들을 쫓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텅 빈 복도에는 내달리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 메아리 치고 있을 뿐이다.
돌아보지 마!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여자를 재촉하듯 손을 붙잡아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렸다. 붙잡은 두 손에는 똑같은 모양의 은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던 물건이었다.
어서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남자가 병적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완전히 혼이 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비밀을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다.
미친 듯이 내달린 덕분에, 두 사람은 거의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그 끝에는 밖으로 통하는 입구와, 아래로 향하는 수백 개의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몇 걸음만 더 내디디면, 원하던 대로 그 불길한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서지만 않았더라면.
‘알……? 당신 왜 그래?’
그에 함께 멈춰서게 된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남자가 천천히 여자를 돌아봤다. 그리고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홉떴다.
‘니아……?’
‘뭐? 무슨 소리야. 그게 누군데?’
처음 듣는 이름인 듯, 여자가 황당한 얼굴로 재차 정신 차리라며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그럼에도 남자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여자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네, 네가, 어떻게…….’
혼란스럽게 얼어붙어 있던 눈동자에 금세 투명한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오, 내 아가. 살아있었구나. 아빠는, 아빠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남자의 얼굴 위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괴로움인지 기쁨인지 모를 형태로 일그러졌다.
‘아빠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여자의 얼굴을 감싸 쥔 남자는 그녀가 정말 제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격스러워했다. 그에게 붙잡힌 여자만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
‘알! 정신 차려!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니아!’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남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남자가 여자를 냅다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하하하! 우리 딸이 돌아왔어! 우리 아기가!’
여자를 안아 올린 남자는 눈물 젖은 얼굴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더없는 행복을 느끼듯 반짝이는 눈빛은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여자를 마치 제 딸처럼 안아 올린 남자는 제 자리에서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았다.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몸이 불안하게 휘청거렸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남자의 두 눈은 꿈속을 헤매듯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그의 눈에는 텅 빈 복도도, 불길하게 일렁이는 불꽃도, 이것 놓으라며 자신을 내려치는 동료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여보. 이것 좀 봐. 우리 니아가 살아 있었어…….’
더는 여한이 없다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은 남자의 몸이 서서히 뒤로 기울어졌다.
꺄아악! 길게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바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하여, 기나긴 통로의 끝.
남자와 여자가 서 있던 네모난 입구에는 누구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하나,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새카만 그림자를 제외하고.
내내 남자의 뒤에 붙어 있던 그림자가 꿈틀대며 위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땅에 들러붙어 있던 세라의 시야도 높이를 달리했다. 앞으로 걸어나간 그녀는 수백 개의 계단 위에서 그들의 초라한 죽음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숫자를 셌다.
‘열여섯…….’
……온 계단을 피로 물들이며 아래로 처박힌 두 구의 시체. 그 너머로 칼바람이 부는 새카만 협곡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선명했어요. 시각, 청각, 후각, 모든 게 다요.”
회상을 마친 세라가 꿈의 감촉을 떨쳐내듯 고개를 털었다. 두 번째로 꾸게 된 꿈은 첫 번째보다 그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좀 더……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꿈속에 등장하는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마치 제 안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혹은 다른 누군가의 안에 자신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뭐가 됐든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이대로 넋 놓고 있으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막연하지만 선명한 세라가 제발 도와 달라는 듯, 에스텔라를 향해 물었다.
“대체, 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에스텔라가 근심어린 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내려 깐 그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듯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첫마디를 뗐다.
[회로는, 영혼에 귀속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영원히 그 주인만을 따르지…….]“……?”
그건 구태여 말하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었다. 마법사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이 꿈꾸는 무언가는 신의 기적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의 축복을 빌어 마법이라는 기적을 영혼에 새기는 것이다.
그렇게 새겨진 회로는 마법사가 소원을 이룰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다. 마치 충성스러운 종이자 수호자처럼.
하지만, 네 회로는 그렇지 않더구나.
설명을 마친 에스텔라가 허공에 무언가를 띄웠다. 황금빛의 마력 알갱이들이 움직여 그가 보여주려는 장면을 구현했다.
[오늘 새벽. 관측기에 기록된 네 마력 회로다.]복잡한 문양으로 얽힌 회로의 내부에는 불길한 마력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그 순간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잠결에라도 마법을 썼다면 회로 내부의 마력이 사라져야 하는데, 맹렬하게 돌아가기만 할 뿐, 고여 있는 마력 중 어느 하나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저게 왜 멋대로……?”
대놓고 멋대로 움직이는 회로를 목격한 세라가 당혹스러워하는데, 에스텔라가 아직 놀라긴 이르다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말라고 일렀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빛의 입자들이 움직여 새로운 장면을 구성했다. 세라는 단번에 그가 시간을 앞으로 뛰어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멋대로 움직이던 회로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력의 순환이 멈출 무렵.
멋대로 움직이는 마력 회로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세라의 눈앞에 펼쳐졌다.
“……!”
안정을 되찾은 회로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똬리를 풀고 몸을 일으키려는 뱀처럼 혹은 뜨거운 대지 위의 아지랑이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틀어버린다.
그리고 맹렬하게 박동한다.
무언가가 안달 나서 죽겠다는 듯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죽겠다는 듯이…….
그것 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성검에 꿰뚫린 자리가 불 꺼진 집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
세라의 두 눈이 소리 없이 충격으로 물들어갔다.
에스텔라는 그녀가 눈앞의 장면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 화면이 멈추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네 눈엔, 이게 어떻게 보이니?]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차마 제 입으로 대답하기 어려워서였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에스텔라가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끝을 길게 끈 그가 괴로운 표정을 했다.
자신이 알아내고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하지만,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긴 숨을 들이 쉰 에스텔라가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목소리로 결론을 내뱉었다.
[그 회로의 주인은, 네가 아니라는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