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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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남자는 집요할 정도로 에녹만을 노렸다. 세라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공격 의사가 없었다. 에녹은 아직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세라는 그때마다 그림자 속으로 그를 감추고 안전한 위치로 옮겨 놓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세라는 약점만 노리는 남자의 악랄함에 질려하면서도 뒤로는 저주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얽혀 만들어진 그 저주는 에녹을 새로운 위치로 옮겨 놓을 때마다 새장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겉보기엔 세라가 에녹을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지만 역으로 그를 미끼 삼아 다음을 준비하고 있는 건 그녀였다. 세라는 이대로 남자의 주변을 제 그림자로 칭칭 묶어버릴 계획이었다.
움직임을 묶어두는 시간은 길게도 필요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순간에, 아주 잠깐. 단 몇 초면 충분했다.
그 뒤는 에녹이 알아서 해낼 테니까.
‘시간을 끌어야 해.’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세라는 최선을 다해 평정심을 유지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흥분을 억누르고 낮은 심박수와 호흡을 유지한다. 적에게 자신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게.
세라는 자신이 기다리는 한순간을 위해 남자의 주변으로 그림자를 두르고 또 둘렀다. 그 과정에서 에녹을 노리는 검은 창에 자신의 그림자를 대신 내어주어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녹도 서서히 몸을 회복하여 남자에게 두어 번 위협적인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성검의 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에녹의 검이 남자가 두른 두꺼운 마력의 보호막을 꿰뚫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하나 더 가세하니 남자에게 쫓기는 것처럼 시작된 전세가 서서히 역으로 기울었다.
피하고, 맞고, 공격하고, 피하고, 맞고, 공격하고…….
남자는 에녹을, 세라는 남자를 쫓는 술래잡기가 지리하게 이어졌다.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이어지는 자리에 튼튼한 새장이 완성되어 갈 즈음-.
발밑의 그림자가 그녀의 발바닥을 톡톡, 건드렸다. 에녹이 신호를 준 것이다.
때가 왔음을 알아차린 세라가 두 눈을 번뜩였다.
숨 쉴 틈도 없이 공격이 퍼부어진다. 조금만 방심하면 영웅의 검이 목을 노리고 발밑에서 검은 칼날이 솟구쳐 올랐다.
수적으로 열세한 상황인데도 남자는 처음과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지루하다. 그리고 따분하다.
겉보기에는 자신을 쉼 없이 몰아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다 보였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다.
에녹 소서를 보호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이는 척 발밑의 그림자가 불온하게 꿈틀대고 있다는 것도, 제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성검에 일부러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는 것도. 그리하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도.
모조리 한심하고, 하찮을 뿐이다.
그때, 발밑의 저주가 꿈틀대며 그림자가 용솟음쳤다. 긴 시간에 걸쳐 단단하게 얽힌 저주가 새장처럼 남자를 가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면에서 에녹이 달려들었다. 이 공격이 진짜라고 말하듯, 두 손에 들린 성검이 감추고 있던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눈앞이 환해지고, 상대적으로 주변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피하지 못할 것도, 막지 못할 것도 없는 공격이다.
남자는 자신을 가두는 창살에도 아랑곳 않고 검은 창을 소환했다. 짙은 저주가 압축된 창끝이 제게 다가오는 영웅을 겨웠을 때였다.
됐다.
바람을 타고 쾌재에 탄 마녀의 속삭임이 흘러들었다.
“……!”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가 마법을 쓰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날아온 새카만 사슬이 남자의 사지를 빈틈없이 결박했다. 그와 동시에 반쯤 부서진 창살에서 저주가 파도처럼 범람하여 남자의 검은 창을 집어 삼켜 버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목을 노리는 영웅의 성검은 순조롭게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분명 신성한 신의 힘일 텐데. 저것에게서는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가짜군.
낮게 읊조린 남자의 어깨 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질량의 마력이 폭출하여 단숨에 새장을 부수고, 감히 제 발밑을 간지럽히는 그림자를 와드득, 잡아먹었다.
헉, 산채로 잡아먹히는 감각에 세라가 숨을 들이켰다. 남자의 마력이 그림자에 닿자마자 눈앞이 까맣게 죽어들면서 의식이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물의 밑바닥처럼 어둡고 습한 수면 아래, 세라는 남자의 마력과 마주했다. 고개를 꺾고 올려다볼 정도로 거대한 마력 덩어리는 성문을 지키는 석상으로도, 모든 것을 집어삼킬 화마로도, 동화 속에 나오는 흉측한 괴수로도 보였다.
노란 눈을 번뜩인 괴수가 제 무릎에도 닿지 않는 작은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올라도 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이 뜬 그 눈동자가 세라를 향해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이런 미친…….”
그건 숫제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선 기분이었다.
그 벽은 너무나 높고 견고하고, 또 화가 난 나머지. 세라의 힘으로도, 에녹의 힘으로도. 아니면 다른 어떤 누군가의 힘으로도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그 애의 몸 상태로 저런 것과 부딪힌다면 산산조각이 나고 말거야.
평소의 그녀라면 그런 재수 없는 생각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게 그들에게 더 이득일지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그녀는 에녹이 상처 입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았고, 그래서 심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남자의 마력이 선사한 감응 현상은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고, 급기야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그녀를 몰아붙였다.
“에녹! 물러서!”
그래서 봐 버리고 말았다.
남자가 공격하는 가짜가 아니라, 그의 사각지대에서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진짜 에녹을.
세라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남자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거기 있었구나. 진짜 적을 찾아낸 남자의 입술이 소리 없이 호선을 그렸다. 세라의 의식은 쓸모를 다한 개처럼 제자리로 쫓겨났다.
아차. 속았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진짜를 찾아낸 남자가 그쪽을 향해 수십 개의 검은 창을 쏟아부었다. 에녹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저걸 막으면 더 이상 성검을 사용할 수 없고, 막지 않고 공격을 가하면 남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는 있겠으나 에녹의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안 돼……!”
어떻게 해도 파멸뿐인 결과는 그나마 남아있던 세라의 이성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그 다급함이 세라를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세라는 그런 경험을 제법 했었다. 하지만 여태껏 경험한 그 어떤 충동도 지금처럼 간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발휘된 간절함은 기적처럼 찾아온 빛나는 기지가 아닌, 지극히 무식하고도 뒷일을 생각지 않은 미친 짓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무사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에녹 대신 그 공격을 대신 맞을 생각 따위 하지 않을 테니까.
파바바박!
보호막처럼 에녹의 바로 앞에 나타난 그림자가 남자의 검은 창에 무자비하게 꿰뚫렸다.
“커흑!”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은 세라가 붉은 피를 내뿜는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노래질 지경으로 아팠으나, 그녀는 끝까지 에녹을 보호하는 그림자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 두껍게 그를 감싸 안았다.
한심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녀의 희생은 효과적이었다.
“……?”
거의 제물처럼 스스로를 바쳐버린 그녀의 모습에, 남자가 처음으로 당황한 듯 멈칫거렸다. 비록 과정은 달랐으나 원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 세라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지금!!!”
그리하여 바로 다음 순간, 그림자를 뚫고 나타난 성검이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깊게 베어냈다.
끼기기긱!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과 육체가 베여나가며 소름끼치는 파열음이 울렸다. 남자의 몸에는 에녹의 몸에 난 것과 비슷한 균열이 검에 베인 자리를 따라 이어졌다.
그 일격은 세라의 예상보다도, 남자가 가늠했던 것보다도 훨씬 치명적이었다. 남자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파편들이 공중에 흩날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여유를 잃지 않던 육체가 뒤로 넘어간다.
쿠웅-. 그 사이 바닥에 착지한 영웅의 주변으로 땅이 깊게 파였다. 곧장 자세를 바꾼 에녹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남다른 각오가 서려 있는 연둣빛 눈동자.
영웅은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힘줄이 불거지도록 두 손으로 움켜쥔 성검에서 아까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증오스러울 정도로 건재한 빛이었다.
저 검이 그의 몸에 꽂히게 된다면 이번에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이 정도인가.”
치명상이 확실시되는 순간임에도 그는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도 에녹 소서의 힘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웃돌고 있었다. 그 실패는 예정에도 없는 큰 부상으로 이어졌으나, 이제 와서는 딱히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에녹 소서에게 아직 자신이 경계해야 할 만큼의 힘이 남아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쓰지도 못한다면 결국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자신과 가까워지는 빛을 바라보며, 남자가 발밑의 그림자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세력을 넓힌 마력이 그림자를 타고 달려 나가 먹이를 사냥해 남자와 에녹 사이로 내던졌다.
밤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이 공중에 넓게 퍼지고, 당황으로 얼어붙은 자수정 빛 눈동자가 크게 벌어져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
“……!”
세라를 알아본 에녹도 적잖이 당황했다. 이대로 휘두르면 세라와 남자를 함께 베어버리는 꼴이었다. 소스라친 에녹이 검을 마저 휘두르지 못하고 멈췄을 때였다.
“이렇게, 나약해서야…….”
남자가 세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창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에녹의 어리석음을 비웃듯 고개를 내저으며.
“……커헉!”
“큭……!”
저주의 창으로 두 사람을 동시에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