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01
101 승자와 패자
“그럼 예나야, 내일 봐!”
“웅. 엄마 안녕!”
흐히히-
엄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는 강바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지은 나도 예나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제 법적으로 예나는 김하영의 딸이었으나, 우리가 후견인으로서 위탁할 예정이었다.
다만 예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보육원에 있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 예나에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잖니. 너희도 당장은 예나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이건 잠시 보류하자꾸나.
– 저희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어린이집과는 별개로 보육원 아이들과는 그런대로 잘 지내는 그녀이기에. 그들과 작별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모양.
예나 본인도 그러길 바라는 눈치였으니, 그녀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건 대략 반년 후가 될 예정이었다.
‘우리 문제는 그 안에 해결을 봐야겠지.’
김하영의 등장으로 잠시 미뤄뒀지만, 사실 강산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특히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강바다의 큰 언니 ‘강설’은 둘째 치더라도. 강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
‘기간도 얼마 안 남았고 말이지.’
강산이 주선한 강바다와 저축은행장 아들의 약혼 시기가 머지않았다.
그동안 밤낮으로 노력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얼마전까지 일반인이었던 나에게 ‘1조’라는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2년 정도면 어떻게 해볼 만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벌어들이는 주 수입원은 ‘글쓰기’라는 근로소득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자본금이 꽤 넉넉한 상태.
이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투자나 사업 등으로 자본금을 굴리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돈을 긁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씨는 이미 실천 중이지.’
그녀도 동화책의 지분을 나눠받은 덕에 자본금이 크게 늘었고, 기존에 자신의 명의 앞으로 주어진 주식 등도 상당했으니.
이전까지는 돈에 큰 관심이 없던 그녀였으나,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자본을 활용하여 돈을 불려 나가는 중이었다.
자세한 건 묻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도 강씨 가문의 피가 흐른다는 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를 구하고 싶은데.’
강바다에게 맡기는 것도 생각해봤으나, 그녀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관뒀다.
그녀가 지금 본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자본까지 맡기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자산 관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려 할 테니.
‘계속 찾아보는 수밖에.’
물론 직접 관리한다는 방법도 있으나 짧은 고민 끝에 포기했다. 어설프게 공부하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전문가 중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있는지 계속 수소문하고 있으니, 이 문제도 머지않아 곧 해결할 수 있겠지.
“···하늘 씨, 집 앞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네?”
강바다의 부름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신 차리고 앞을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웬 하와이안 차림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
‘뭐지 저 미친놈은?’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일단 강바다의 자택 주변에는 항상 경호원이 상주하기에, 평범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저 인간이 지금 마당에 파라솔과 선베드를 펴놓고, 선글라스까지 낀 채로 잠을 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한 사람은···.’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만, 강바다의 집에서 대놓고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있다.
소거법에 따라 자동으로 몇몇 후보가 선출되고, 그중에서 내 기억 속의 얼굴들을 대입하자 곧 정답이 튀어나왔다.
“···강산?”
“엑!?”
강바다가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그녀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자세히 상대를 살피더니,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우리 큰 오빠네요. 옆에 최비서님이 계신 걸 보니까 확실해요.”
“텍사스에 계신 거 아니었어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나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혹여 이런 일이 생길까 강별과 강태양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그의 소식을 듣고 있었건만, 아무렇지 않게 정보망을 뚫고 들어오다니.
게다가 이 말도 안 되는 장면을 구태여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강산 자신이 여유롭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과연 만만치 않은 상대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이 넘어갔다. 지금껏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봤지만, 저렇게 미친놈은 또 처음이다.
범상치 않은 진상의 기운에 절로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미친놈은 피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저기가 우리 집이라는 게 문제다.
“대체 왜 저러고 계신 거죠?”
“···세간에서는 되게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지만. 사실 저희 큰 오빠가 좀 바보 같은 면이 있어요.”
“바보 같은 면이요?”
“그게···.”
“막내야!”
문득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선베드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강산이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바다 씨, 제 뒤로···!”
달려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강바다를 등 뒤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코뿔소처럼 강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강산.
어쩔 수 없이 나는 결단을 내렸다. 언젠가 잠시 경호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의 경험을 살려서, 정확한 타이밍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커억-!”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부딪힌 강산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나 역시 거대한 힘에 밀려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힘이 무슨···?’
물론 상대의 체급도 있고, 달려오는 속도가 상당했기에 아무런 피해 없이 상쇄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껏 힘으로 누군가에게 밀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상대 역시 나와 비슷한 감정인 듯했다.
“···뭐냐, 네놈은?”
흐트러진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위압적인 기세를 내뿜는 강산. 당장 겉모습만 보면 대기업 부회장이 아니라 깡패에 더 가깝다.
‘···작은 형님보다 더 그쪽 사람 같네.’
서로의 역할이 바뀐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벌하다. 동시에 근육이 움직이는 폼을 보아하니 운동도 제대로 배운 듯하고.
강자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 정면으로 붙으면 아무리 나라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
“대답 안 하냐?”
“형님. 일단 진정하시고···.”
“이게 나를 언제 봤다고 형님···. 억!?”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강산의 머리가 앞으로 꺾였다. 그는 전에 없이 살벌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새···.”
“정신 차리십시오. 대표님.”
“아, 그래. 내가 너무 흥분했군.”
“???”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당연히 뒤통수를 때린 상대의 멱살이라도 잡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차분해지는 강산.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강산의 뒤통수를 때린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입니다. 바다 아가씨. 그쪽은 김하늘 씨 맞으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강산 대표님의 비서인 ‘최민서’라고 합니다.”
“···아, 예. 김하늘입니다.”
더없이 깔끔한 인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얼떨떨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강바다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봬요. 큰 언니.”
“지금은 비서입니다.”
“···그런 면도 여전하시네요.”
“바다 씨, 큰 언니라뇨?”
“아, 최비서님은 큰 오빠의 부인이세요. 결혼 전부터 비서로 일하셨는데, 이후로도 줄곧 오빠를 도와주고 계시거든요.”
무슨 그런 개 같은 족보가.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간신히 삼켰다. 그럼 강산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비서랑 결혼했단 말인가?
‘혹시 집안이 엄청나신 분인가?’
소설에서는 제법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로. 귀족 가문의 여식을 상대 쪽의 일손으로 들여보내는 경우가 있으니까.
보통 왕가에서 일하는 메이드나 집사장이 그런 경우인데. 꼭 현실이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노릴 수도 있고.’
눈앞의 사례처럼 운이 좋으면 가문끼리의 결합을 노릴 수도 있고, 실패해도 실질적인 리스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애초에 가문에 승계권이 없는 사람을 보낼뿐더러, 여차하면 가문의 스파이로 사용한다는 설정이 보통이니까.
“혹여 오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저희 집안은 굉장히 평범한 편입니다.”
“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덤덤하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 최민서.
듣자 하니 강산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결혼하자며 청혼했다고.
당연히 그녀는 거절했으나, 이후 학창시절 동안 몇 년이고 따라다니다가 결국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둘이 결혼했단다.
“크하하! 그때는 청춘이었···. 커억!”
“당신은 조용히 있어요.”
익숙하다는 듯 강산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어버리는 최민서. 시트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자니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비서라는 컨셉이 깨지고 계십니다만.’
본인도 그걸 깨달았는지 얼른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다시금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다. 우리도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았고.
그렇게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뭔가 내가 지금껏 상상했던 강산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조금 벙찌고 말았달까.
“근데 왜 마당에서 자고 계시던 겁니까?”
“대표님께서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셨답니다.”
“그럼 저희한테 미리 연락을···.”
“곧 죽어도 바다 아가씨께 서프라이즈를 해야겠다고 우기셔서 말이죠.”
놀라긴 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하고 싶은 정말 말은 많았으나, 무슨 말을 하든 이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뭐, 대충 그런 거지.”
최민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산. 이쯤 되자 이 인간이 부회장으로 있는 대한 그룹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네놈이었구나?”
“예?”
“우리 순진한 막내를 꼬신 기생오라비가.”
스윽-
순간 강산의 표정이 변했다. 장난스러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내 몸을 훑는다.
나도 구태여 시선을 피하지 않고 꿋꿋이 마주했다. 그러자 슬쩍 미소를 짓는 강산.
“사진으로 봤을 때랑은 느낌이 좀 다르군? 아까 나를 막아선 것도 그렇고. 듣던 대로 몸은 좀 쓰는 모양이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래, 칭찬이다. 헌데 우리가 내준 과제는 이미 실패한 모양이다만?”
역시 갑작스럽게 강바다의 약혼을 추진한 것은 일종의 자격시험이었던 듯했다. 그의 말대로 제시한 기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긴 했지.
허나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슬슬 강산의 성격이 감에 잡히기 시작했으니.
‘···사자의 탈을 쓴 여우라고 해야 할까?’
사자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위압적이고 저돌적인 겉모습과는 다르게 속에 여우가 들어앉았다는 뜻이다.
이 인간은 지금껏 내가 만나본 어떤 인간보다 계산적이다. 아마 가족을 제외하고는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터.
‘이것도 일종의 시험이겠지.’
대충 봐도 철두철미한 성격의 최민서가 굳이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은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가 편하다고 느껴지면 보통은 긴장감이 느슨해질 테고. 그만큼 본성이 드러날 확률도 높아질 테니.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두 분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바다 씨와 교제하고 있는 김하늘이라고 합니다.”
“흐음.”
내 깔끔한 인사에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강산. 최민서 쪽은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중이라 잘 모르겠지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괜찮으시다면 자세한 이야기는 안쪽에서 나누실까요? 모처럼이니 제가 직접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호오. 기대되는걸?”
강산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들 사이의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남은 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