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02
102 퍼스트 킬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요리를 잘하시는군요.”
“그렇죠? 처음엔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식탁에 앉은 강산과 최민서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강바다는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것마냥 싱글벙글했고.
이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갖 산해진미를 맛봤을 두 사람의 입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까.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준비한 요리인지라, 식재료나 메뉴가 마음에 드시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지나친 겸손이군.”
딱 잘라 선언하는 강산. 그는 다시금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맛봤다. 그리고는 음미하듯 눈을 감고 한참을 침묵했다.
“···솔직히 요리를 잘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고 생각했는데, 이 김치찌개는 정말 놀라워. 5성급 호텔에서 먹었던 한식보다 더 감칠맛이 나다니.”
“김치도 정말 맛있어요. 이전에 박주부님이 직접 운영하시던 식당에서 먹었던 맛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형수님의 미각이 아주 예리하시군요. 말씀하신 박주부님 아래에서 잠깐 요리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김장법도 같이 배웠거든요.”
“하늘 씨가 박주부님의 제자라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반응을 보아하니 박주부와의 인연을 강조하면 뭔가 도움이 될 듯했지만, 그렇다고 맺지도 않은 사제관계를 연기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요리를 배우셨다고···.”
“그저 개인적인 부탁이었을 뿐입니다.”
별거 아니라는 뜻에서 꺼낸 말인데, 의미가 조금 잘못 전달된 건지 최민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차 물어왔다.
“그건 박주부님과 개인적인 부탁을 나눌 정도로 친근한 사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으음. 그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같이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의 동료로서 함께 게임을 하며 밤을 지새운 적도 많으니까.
서로 워낙 바빠서 현실에서는 자주는 못 보지만. 며칠 전에도 박 주부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 하늘아, 넌 안 하냐?
– 제가 요즘 워낙 정신이 없어서요.
– 영철이한테 대충 듣기는 했다만. 그래도 잠깐만 형들 좀 도와주면 안 되냐? 이번 월드 보스는 우리가 꼭 먹어야 하는데, 반왕 새끼들이 만만치 않거든.
– 거참···. 쓸만한 아이디 불러주세요.
– 역시! 너만 믿는다!
대충 이런 대화였다.
박주부 이 양반이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종종 같이하자고 조르거나. 이번처럼 문제가 생기면 대리컨을 부탁하곤 했으니.
‘···이 정도면 친근한 사이긴 하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기업 회장님과 너무 격식 없이 지낸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바로 문화의 힘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최민서는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라고 받아들인 모양.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재차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건지 궁금한데. 혹시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하하,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완곡한 거절과 함께 나는 슬쩍 강산의 눈치를 살폈다. 요리의 영향인지 별다른 적개심은 느껴지지 않는 상태이다만.
‘···아무리 그래도 게임 폐인은 아니지.’
박주부와 친해진 경위를 밝히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게임에 미쳐 살았던 과거를 두 사람에게 털어놔야 한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은 마이너스 요소.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따려고 애교부리는 중에 꺼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서는 적당히 흘려넘기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려던 그때.
“하늘 씨의 게임 실력이 대단하거든요.”
난데없이 강바다가 난입했다.
그녀라면 내가 게임 관련 이야기를 피하려는 이유를 짐작했을 텐데. 어째서 이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걸까.
이러한 의문을 담아 강바다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그녀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전에 분명 어떤 게임의 유명한 랭커라고 했었죠. 국내 유일 퍼스트킬 기록을 가진 공대장이라고 그랬나?”
“···퍼스트 킬이라고?”
강바다의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뜻밖에도 강산이었다. 지금껏 묵묵히 식사를 즐기던 그가 처음으로 수저를 내려놨다.
강산은 그게 정말이냐는 듯 나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긍정적인 시그널인지 확신할 수 없어 망설이기도 잠시.
“하늘 씨, 제 말 맞죠?”
“···어. 네, 그렇긴 하죠.”
적극적으로 대답을 유도하는 강바다의 말에 나는 조금 얼떨떨한 느낌으로 대답했다. 상황을 전부 파악하기에는 주어진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
다만 강바다가 내게 해가 될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굳건했기에. 일단 그녀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갔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바다 씨를 만나기 전에 잠시 게임에 빠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박주부님과 친해진 것도 그때였죠.”
“그 게임 이름이 뭐지?”
“광겜···. 아니, 입니다.”
World of Crazy.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자면 정도로 해석되는 정통 MMORPG다. 중독성이 워낙 심해서 한국 유저들은 흔히 ‘광겜’이라고 불렀다.
발매 이후 온라인 게임의 판도를 뒤집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했던 게임이며.
최대 동시 접속자 수가 무려 1,000만 명을 훌쩍 넘어가는 역사적인 게임이었다.
‘왕년에 게임 좀 해보셨나?’
강산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최소한 게임을 싫어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구태여 게임 이름을 물어보지는 않았을 테니.
‘···슬슬 윤곽이 잡히는데.’
강바다가 굳이 이 자리에서 게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득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나에게는 워낙 친근하게 대해서 잠깐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그녀는 두뇌 회전도 빠르고, 강씨 가문답게 계산도 철저하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눈앞에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명은 게임에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건 높은 확률로 강산일 터.
‘혹시 형님도 광겜 유저셨나?’
이름을 언급한 뒤부터 점점 미묘해지는 분위기를 보니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간다.
만약 강산이 광겜 유저였다면 이쪽에는 명백한 호재다. 나도 게임 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명인사였으니까.
특히 내가 이끄는 ‘반지하의 제왕’이 서리 여왕 퍼스트 킬에 성공한 이후로는 한국 유저들에게는 신처럼 추앙받기도 했으니.
“···국내 유일 퍼스트 킬 공대장이라. 그럼 네가 반지하의 제왕 공대 소속이란 말이군. 심지어 공대장이었다고?”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네가 그럼 ‘언럭키로키’냐?”
언럭키로키.
강산의 입에서 광겜 시절에 사용하던 닉네임이 튀어나온 순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이걸로 단번에 승기를 잡았다.
“설마 제 닉네임까지 알고 계실 줄이야. 역시 형님도 광겜 유저셨군요!? 여기서 고향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알다마다.”
“음?”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분명 강산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데, 전혀 즐거운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그의 눈썹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재빠르게 대화를 되짚어보는 사이, 강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공대의 퍼스트 킬을 빼앗아간 네놈의 닉네임을 내가 잊을 것 같냐!?”
“그게 무슨···.”
팟-
강산의 노성에 당황하기도 잠시.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광겜의 주요 콘텐츠는 ‘전쟁’이다.
이벤트 때를 제외하면 항상 중간계와 마계, 중립으로 세력이 나뉘어있고. 중립을 제외한 각 세력은 싸우는 게 일상이다.
싸움 방식은 단순한 PVP를 비롯해서, 특정 던전을 통제하거나, 상대 세력을 밀어내고 필드 보스를 잡는 등 다양하다.
‘···그중에는 퍼스트 킬도 있지.’
새로운 보스가 등장하면 모든 세력이 공략을 위해 뛰어들며, 자연스럽게 전쟁의 규모도 평소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만약 퍼스트 킬에 성공할 경우 한 달 동안 해당 세력에게 독점권이 주어지기에, 상대 세력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안건이다.
‘우리 공대도 라이벌이 있었지.’
선라이즈 공대.
공대의 출범 시기도 비슷하고, 인원이나 실력도 서로 엇비슷해서 커뮤니티 내에서도 자주 라이벌로 언급이 됐다.
그만큼 서로를 의식하며 치열하게 다툰 경쟁팀이었는데. 항상 간발의 차이로 우리 공대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때가 제일 재밌었는데.’
물론 우리 입장에서만 그렇다. 선라이즈는 매번 우리에게 밀려 패배했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결국 공대 자체가 와해됐다.
그 종점을 찍은 것이 바로 ‘서리 여왕 퍼스트 킬’이었고. 이후로는 우리 공대의 전성기가 시작됐는데.
“···선라이즈는 미국 공대인데?”
전원이 한국인이었던 우리와는 다르게 다양한 인종이 섞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의문에 답하듯 강산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몸은 업무상 미국에 있는 일이 잦아서 말이지. 게다가 중학교 때부터 유학을 다녔으니 내 친구들도 대부분 미국인이고.”
“그럼 형님이 정말 선라이즈 공대원이셨단 말입니까?”
“누구 마음대로 형님이냐!”
“쪼잔하신 거 보니까 확실하네요.”
“뭐 이 자식아!?”
쾅-!
강산이 책상을 내리치며 분개했다. 당장이라도 나를 담가버릴 듯한 살벌한 기세에 강바다도 최민서도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으나.
오히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똑바로 강산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매번 필드에 숨어있다가 졸렬하게 뒤치기나 하고, 보스 공략도 저희 방송 몰래 훔쳐보고 따라오지 않았습니까!”
매번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기는 했으나, 우리라고 선라이즈 공대가 밉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흔히 ‘치사하다’라고 말하는 수법까지 모조리 사용해서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고. 덕분에 고생만 쌔빠지게 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도 많았으니까.
“흥. 게릴라와 정보전은 기본이지. 그리고 게임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댁들이 던전에서 빼 온 전염병 때문에 한동안 게임이 마비됐잖아요! 그때 입은 손해만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데!”
“···그건 우리도 반성하고 있다.”
강산의 기세가 한결 수그러들었다. 철면피를 깔기에는 매스컴에도 언급될 만큼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플레이어의 피를 1로 만들고,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에게 옮겨 다니기까지 하는 던전 보스의 악질적인 디버프 스킬을 마을에다 풀어놨으니.
전염병이 NPC와 펫, 플레이어를 타고 온 마을로 퍼진 덕분에 한동안 게임 자체가 마비됐고. 전염병 사례로 정식 연구가 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 군주를 잡을 때도···.”
“그 던전은 우리가 먼저 발견한 거잖냐! 너희가 우리 공대에 첩자를 심어서···.”
“아, 그러십니까? 그러는 형님은···.
서로 수년간 쌓여온 앙금이 많았던 터라, 우리의 대화를 수십 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건 서로가 각각 강바다와 최민서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