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56
156 무승부로 하지 않으실래요?
“···하아.”
“···후우.”
깊이 포개어져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직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가쁜 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리는 김하늘과 강바다. 떨어지기 싫은 그들의 아쉬운 마음을 대변하듯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이젠 별로 안 무섭죠?”
끄덕-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강바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는 김하늘.
“바다 씨.”
“부르지 마세요. 지금은 좀 부끄러우니까.”
“바다 씨, 바다 씨, 바다···.”
“아, 정말···!”
피슈우우웅- 퍼퍼펑-!!
짓궂은 장난에 강바다가 고개를 들어 올린 그 순간. 웬 거대한 폭죽 소리와 함께 새까맣던 밤하늘이 형형 색깔의 눈 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얼핏 밤낮이 뒤바뀐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폭죽이 연달아 터지며, 강바다의 눈망울을 가득 채웠다.
“대체 돈을 얼마나···. 으응!?”
스윽-
불현듯 왼손 약지에서 느껴지는 낯선 촉감에 강바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그녀는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고, 그곳에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의 김하늘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도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살면서 온갖 귀물을 접해본 강바다의 눈에도 한없이 우아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디자인의 반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만드는 중이라면서요.”
“으음? 저는 분명 한쪽은 이미 완성됐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바다 씨라면 이미 눈치채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
씨익-
능글맞은 답변에 강바다가 입술을 삐죽이자, 김하늘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일부러 텅 빈 상자를 보여주면서 반지는 미처 준비 못 한 것처럼 연기하더니, 사실은 모두 그의 계획이었던 것.
“···짓궂어. 진짜.”
“저처럼 상냥한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본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당연하죠. 이참에 바다 씨도 저한테 한 수 배워두세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이런 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열심히 어필해줘야 하는 겁니다.”
“아, 몰라. 내 감동 물어내요.”
“어라, 제가 누구한테 빚진 기억은 없는데···.”
핏-
능청스러움을 넘어 뻔뻔하기까지 한 발언에 강바다는 황당해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런 수준 낮은 농담에 웃어버렸다는 것에 괜히 자존심 상한 그녀는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으나, 김하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늦어도 한참 늦은 듯했다.
“방금 웃었죠?”
“안 웃었는데요.”
“에이, 제가 다 봤는데.”
“보긴 뭘 봐요?”
“뭐긴요. 우리 여보의 예쁜 미소지.”
“아직 받아들인다고 안 했거든요?”
“하이고. 혼인신고서의 잉크가 전부 마르다 못해 아예 파피루스가 됐을 지경인데, 인제 와서 뭘 또 새삼스럽게···.”
찌릿-!
말없이 노려보는 강바다의 눈빛에 김하늘이 입을 다물었다. 거의 야생동물에 가까운 그의 위기감지 본능이 발동했기 때문.
그는 재빨리 양팔을 들어 올리며 항복 의사를 표했다. 직후 멋쩍은 미소를 띠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내려갈까요?”
“어떻게요? 아직 밑에서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고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설마 난간을 붙잡고 내려···. 응?”
칙! 치익-!
강바다가 하던 말을 멈췄다. 이후 그녀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김하늘을 바라봤는데, 그의 손에 웬 무전기 하나가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실장님 들리십니까?”
– 네, 말씀하십시오.
“저희 좀 내려주실 수 있나요?”
–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우우웅-!
짤막한 대화 끝에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는 관람차. 패닉에 빠져있던 강바다의 머리가 이성을 되찾으며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휴대폰을 제출한 것부터 시작해서, 관람차가 갑작스레 멈춰버린 것. 거기에 더해 김하늘의 입가에 걸린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김하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을 그녀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
순간 강바다가 소리를 내지르며 김하늘에게 달려들었다. 차마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자,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이야!”
“이 안에서 날뛰면 여러 의미로 위험하다고요! 이러다 진짜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진정···.”
“되겠냐!?”
이성을 잃어버린 강바다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김하늘은 그 와중에도 요리조리 잘만 피했다.
이에 더욱 약이 오른 강바다가 아예 몸을 던져 그를 덮쳤고, 천하의 김하늘조차 이 육탄 돌격만큼은 막아낼 수 없었다.
“···잡았다!”
히익-!
희미한 광기마저 엿보이는 강바다의 눈빛에 산전수전 다 겪은 김하늘마저도 움찔하고 말았다. 이에 그가 두 손을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무, 무승부로 하지 않으실래요!?”
“그 입 다물어요!”
“으아아악-!”
쿵! 쿵! 쿠쿠쿵!
고통에 찬 김하늘의 목소리가 관람차 안을 가득 채웠고, 그들의 열띤 움직임으로 인해 관람차 역시 덜커덩거리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덜컹!
큰 흔들림과 함께 다시금 멈춰버린 관람차. 아직 바닥에 닿으려면 한참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에 김하늘이 크게 당황하며 재빨리 무전기 버튼을 눌렀으나, 무슨 일인지 상대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다 씨, 이거 진짜 위험···.”
“제가 또 속을 줄 알아요!?”
“아니, 진짜라니끄아아아악-!”
“요놈의 입! 하늘 씨는 항상 그 입이 문제라고요! 알아들어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분노를 남김없이 쏟아내는 강바다. 김하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실장님, 제발 빨리···!’
지금쯤 밑에서도 갑작스러운 기계 고장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을 터. 그것만이 김하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
.
.
“실장님, 정말 괜찮을까요?”
“안전 점검은 확실하게 했다며.”
“그야 그렇긴 한데···.”
스윽-
경호원의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향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유난히 격렬하게 흔들리는 관람차.
그를 보며 다시금 우려 섞인 충언을 올리려던 부하 직원이었으나, 경호실장의 입에 걸린 흐뭇한 미소를 보자 말이 쏙 들어갔다.
“음음. 좋을 때구만.”
“드론으로 무슨 상황인지 확인이라도···.”
“스읍-! 두 분의 사생활은 존중해 드려야지!”
“······.”
실장의 단호한 거절에 경호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 고집불통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경호팀 내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치이익-! 치익! 칙! 칙!
다급한 상황을 전하듯 연신 울려대는 무전기. 그 너머로 간간이 김하늘의 비명이 들려왔으나, 추억에 잠긴 경호실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뚝-
부하 직원은 묵념하듯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무전기의 전원을 꺼버렸다. 이후 고요해진 관리실 안을 경호실장의 목소리가 대신 메웠다.
“크으, 나랑 와이프도 한창 젊었을 적에는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정말 뜨거웠거든. 나이 먹으면 저런 것도 못 해.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야지.”
“그러다 사고 치셔서 결혼하셨잖아요.”
“······.”
순간 경호실장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에 아차 싶었던 부하 직원이 재빨리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를 달랬다.
“아하하···. 그래도 실장님 부부는 금슬 좋기로 유명하시잖아요. 밑에 애도 셋이나 있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죠?”
“······.”
“······.”
무겁게 이어지는 침묵.
이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듯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는 관람차를 향해서.
“···좋을 때네요.”
“···좋을 때지.”
이후 두 사람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두 젊은 남녀의 거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 * *
“···얼굴이 왜 그렇지?”
“···그냥 일이 좀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이 화려했다더니. 허구한 날 밖에서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 놈을 집안에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막내 따님께 맞았습니다.”
“······.”
“······.”
나의 솔직한 발언에 강용학은 할 말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의 시선이 잠시 내 이마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숨겨보려 화장까지 했건만, 고작 그 정도로는 강바다가 내게 남긴 진한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앉지.”
“예.”
이에 강용학은 조용히 내게 자리를 권했고, 나는 구태여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비로소 우리는 단둘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묵직한 성격답게 강용학은 쉽사리 먼저 입을 열지 않았으나, 눈빛 하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반짝거렸다.
이에 나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침착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덕분에 주변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으나, 딱히 조용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전할 때도 있는 법이지.’
경지에 이른 무인들은 입이 아닌 칼로 대화를 한다던가.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나와 강용학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으나, 기묘할 정도로 상대방의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정회장과는 확실히 다르군.”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침묵을 깨트린 것은 강용학이었다. 이에 나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답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미워도 너희 할아버지다만?”
“그러니 이쯤은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겠죠.”
“···그놈의 입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구나.”
강용학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는 의자에 완전히 몸을 기댄 채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 소설은 전부 읽어봤다.”
“제 소설을요?”
“그래.”
“아, 혹시 지난번에 회의실에 두고 갔던 원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것도 읽었지.”
“···지금 혹시 그것‘도’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님께서 내 글을 읽어볼 시간이 얼마나 있으시겠나.
당연히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강용학이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시중에 나와 있는 건 전부 읽어봤다는 뜻이다. 네가 쓴 웹소설이나, 오래전 블로그에 써둔 글까지 전부.”
“미친. 앗,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괜히 변명할 필요 없다. 우리 넷째 실력이 제법 괜찮더군. 워낙 깔끔하게 지워둔 덕에 우리 비서실도 꽤나 애를 먹었다지?”
“······.”
강별이 내 이미지를 관리하게 되면서, 과거에 썼던 글 중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전부 삭제했다고 들었다.
헌데 강용학은 그렇게 삭제된 부분까지 어떻게든 모조리 긁어모아서, 내 과거를 전부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게 지워뒀으니 어지간해서는 찾아낼 수 없겠지. 다만 앞으로의 언행은 더욱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마치 가르침을 내려주는 듯한 강용학의 발언에 나는 꾸밈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의 말에서 일말의 따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전부’ 읽어보신 겁니까?”
“그렇다고 했을 텐데?”
“정말, 정말로요?”
“지금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강용학이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이에 나는 얼른 두 손을 내저으며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다급히 알렸다.
“그런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그로’가 필수적이라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제목도 많다 보니···.”
“확실히 그렇더군.”
“당연히 그건 안 보셨···. 예?”
“가히 흥미로운 제목들이었어. 인터넷 기사보다 자극적인 것도 많더군. 가령 .”
“우아아아아악-!”
강용학의 입에서 튀어나오리라고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 이에 저도 모르게 비명이 앳된 새어 나왔다.
직후 아차 싶었던 나는 기름칠이 덜 된 녹슨 기계마냥 덜컹거리며 온몸이 굳어버렸다.
“후후.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군. 묘하게 정회장을 닮아서 그런지, 네 녀석이 당황하는 걸 보니 제법 재밌구나. 시간을 들인 보람이 있어.”
“······.”
꿀꺽-
말없이 올라가는 강용학의 입가를 보며, 나는 기어이 마른 침을 삼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