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25
025 저녁에 시간 되세요?
‘황녀의 비밀을 알아챈 귀족이라면?’
우선 나는 ‘고소미’라는 캐릭터를 어떤식으로 소설에 넣을지 고민했다. 생각보다 고민은 짧았는데, 워낙 캐릭터가 단순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진상. 재활용할 생각도 딱히 없으니, 적당히 쓰고 버리기 좋은 일회성 엑스트라로 설정했다.
‘박승민도 넣어줘야겠지.’
여기서는 주인공인 ‘시엘’이 회귀한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면 되겠다.
주인공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만,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 압도적인 불합리. 그게 또 회귀물을 보는 맛이거든.
‘그럼 상황은···.’
황녀가 주인공을 황궁에 들였다는 사실을 눈치챈 악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가 도리어 역공을 당하는 정석적인 플롯으로.
『──────────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지금 황궁에는 평민이 있어. 정황상 삼황녀가 데려온 것이 분명해.”
“황녀가 대체 왜 그런 짓을···?”
“저번 황녀 습격 사건에서 활약한 평민이야. 제 나름대로 철저하게 은폐하긴 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미드컨스 백작가의 장녀, ‘트라’는 자신이 거머쥔 정보를 확인하며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사적인 이유로 황궁에 평민을 들이다니, 뒤늦게 사교계에 데뷔한 황녀로서는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치부나 다름없다.
“저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평민을 상대해. 내가 녀석을 끌어내서 심판대에 올리면, 네가 철저하게 짓밟으면 돼.”
“그걸로 되겠습니까?”
“충분해. 황녀가 그 평민을 매우 아낀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 만약 평민을 살리기 위해 황녀가 나선다면 황가의 명예를 위해 처단될 테고. 아니라면 그거대로 볼만할 테니.”
하다못해 황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만 해도 충분하다. 평민 하나의 목숨으로 그 정도 일을 해낸다면 매우 값지게 쓰인 셈이니.
“황녀의 보복은···.”
“걱정할 필요 없어. 집에서 칩거만 하던 년이 왜 갑자기 나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이미 늦었지. 끈 떨어진 신세에 불과해.”
“그렇군요.”
물론 나한테는 말이야.
트라는 뒷말을 삼켰다.
잘나가는 변경백의 장녀인 자신과는 다르게, 임무를 수행할 기사, ‘엑스’는 그저 한 번 쓰고 버릴 장기말일 뿐이다.
이 힘만 센 멍청이는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모르는 채 음흉하게 웃고 있다. 장기말로서는 이보다 훌륭할 수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녀석의 목을···. 컥!”
서걱-!
엑스가 자신의 목을 붙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허나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직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혈관이 펄떡거리며 목을 잃은 몸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살벌한 풍경에 트라의 몸이 굳어버렸다.
“···여, 여기는 어떻게?”
“나름 자주 오는 곳이거든.”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여기는···.”
“평민 따위가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지를 찢어 들개에게 던져주고, 뽑아낸 이빨은 목걸이로 만들어 황녀에게 선물하겠다. 맞지?”
“···무, 무슨.”
자신이 할 말을 먼저 가로채버리는 시엘. 이에 대해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 그녀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너희는 한결같아서 좋아. 죽일 때 망설일 필요가 없거든.”
툭-
트라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그녀의 눈과 입은 평생 다물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생에는.
모든 일을 마친 시엘은 말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이곳은 어차피 트라가 만들어낸 비밀공간.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찾아낼 수 없다.
자연스레 두 시체는 실종 처리가 될 것이다. 지난 회차에서 이미 확인한 사실이기에, 시엘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
.
.
“흠.”
모두가 떠난 공간.
홀연히 나타난 황녀, ‘메르’가 트라의 목을 집어 들었다. 죽을 당시의 심경이 그대로 담긴 얼굴을 보며 황녀는 아쉬운 소리를 냈다.
“서방님답지 않게 흔적을 남겨놓으셨네요. 혹시 나한테 선물을 주려고 하신 거려나?”
화르륵-!
메르가 손을 휘두르자 트라의 목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공간 전체가 까맣게 물들어간다.
“같이 가자고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메르는 한동안 툴툴거리다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
“음···. 무서운데?”
일단 느낌이 가는 대로 써놓기는 했는데 황녀가 생각보다 살벌하게 나왔다. 그렇다고 딱히 수정할 껀덕지도 없었다.
장면이 워낙 깔끔하게 잘 나오기도 했고, 이번에 잠깐 엿볼 수 있었던 강바다의 일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친절하다고 해서 착각하면 안 되지.’
착한 모습이 그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어설프다. 돈 많은 집안만큼 인간관계에 냉철한 집단도 없으니까.
하물며 대한 그룹의 일원으로서, 어릴 적부터 온갖 교육을 받은 강바다라면. ‘적’이라고 판별된 사람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테지.
‘정도와 방식의 차이일 뿐이야.’
사실 고소미 커플도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반쯤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며칠 후 은근슬쩍 강바다에게 물어봤더니.
– 이제 볼 일 없을걸요?
이런 살벌한 대답이 돌아왔다. 설마하니 죽이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건 어려우리라.
‘나도 항상 조심해야지.’
상대가 누군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웃는 얼굴 뒤에 어떤 무기를 숨겨놨을지 모르니까. 내가 시엘처럼 회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아무튼···.”
이번 사이다는 독자들을 위한 플롯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특히 내 애독자인 ‘황녀’님을 위한 글로서는 더더욱.
내 소설의 배경은 중세 기반 판타지. 그만큼 독자들에게 화끈한 사이다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아니겠는가.
‘생각보다 빌드업이 길어졌어.’
이번 에피소드의 악역인 ‘엑스’와 ‘트라’의 분량은 약 3화로, 웹소설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는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다.
그만큼 확실한 사이다를 주지 않는다면, 고구마를 잔뜩 먹은 독자들이 대거 이탈할 거다. 그런 면에서 ‘시엘’과 ‘메르’의 행보는 적절했다.
‘···이건 이쯤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으그그극-!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간이 지난 상태.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문자가 와있었다.
– 표지 완성! ٩( ᐛ )و
알림창에 떠 있는 한 줄.
며칠 전에 부탁했던 표지가 벌써 완성된 모양이다. 보통 2주에서 한 달은 기다려야 할 텐데, 어떻게 벌써 완성한 거지?
‘···설마 날림으로 그렸나?’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예술을 하는 직종이라서 그런가, 일러스트레이터 중 일부는 가끔 사회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곤 했다.
돌연 잠적한다거나.
그림을 대충 그린다거나.
아니면 무기한으로 연기되거나.
‘그런 사람이 아닐 텐데?’
업계에서는 ‘빠른 손’과 ‘확실한 일처리’로 소문난 사람. 순번도 꽤나 밀려있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 만에 답변이 오다니.
나는 불안한 마음을 삼키며 조심스레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상대가 미리 보내놓은 장문의 메시지가 보였다.
: 오랜만에 즐거운 그림이었어요. 프로 실격이지만, 사진을 본 이후 도무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최우선적으로 작업했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비밀! (>_<;;)
: 그림은 이메일로 보내놨어요. 와타시는 5일 동안 밤낮을 지새우며 작업해서(。•́︿•̀。) 메시지 보내고 바로 기절할 예정-!!!
: 그리고 혹시 나중에 또 이분과 관련된 삽화 필요하시면 꼭 저한테 먼저 연락 주세요. 꼭 입니다. 꼭! 그럼 이만. (`Д´)ゞ 충성!
···이쪽도 제정신은 아니다.
의뢰하기 전부터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정도로 캐릭터가 확실하다.
‘뭐, 일만 잘하면 됐지.’
저렇게 표현할 정도면 진심으로 작업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나는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허···.”
한동안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표지 말씀하시는 거죠?”
– 그래, 어디서 우주선이라도 주웠냐? 어떻게 그 정도 퀄리티의 일러스트가 일주일 만에 나와.
“전부 황녀님 덕이죠.”
나는 최진철 대표의 전화를 받으며 웃음을 흘렸다. 하긴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선작이 올라가서, 작가인 나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으니까.
– 갤러리는 봤냐.
“네, 지금 보는 중이에요.”
본래 문피아는 다른 웹소설 플랫폼에 비해서 삽화나 표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뒤에서 조작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최진철이 급하게 연락한 것도 그 이유겠지.
[제목 : 일러봄?] : ㄹㅇ 개쩐다. 요즘 핫한 ‘순애짱’이 작업했다는데, 일러스트 퀄이 진짜 미쳤음. 이거 보고 황녀님 나오는 부분 정주행 두 번 때렸다.└ 그게 뭔데 씹덕아?
└ 이걸 아직도 모르네;
└ [링크]
└ 워메, 시벌.
일러스트는 황녀가 처음 주인공을 만났을 때를 묘사했다.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을 무감정하게 내려다보는 장면.
당연히 모델은 ‘강바다’였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난번에 얻은 사진을 피사체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
‘표지로 넣길 잘했어.’
삽화로 쓰기에는 아쉬운 퀄리티였기에, ‘여주물’이라 오해를 받을 수 있음에도 과감히 표지에 박아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
굳이 내가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일러스트를 여기저기 퍼 날랐으며, 자연스레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
[제목 : 황녀님 일러 렉카!] : 솔직히 주인공이 황녀 살리는 거 개연성 1도 없어서 하차했었는데. 일러스트 보고 납득해서 다시 정주행함 ㅋㅋㅋ: [황녀님.jpg]
└ 개추
└ 순애짜응이 잘 그리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나? 다른 그림이랑 퀄리티가 아예 다른데?
└ 모델이 개쩌는 거 아닐까?
└ 어?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인데.
└ 황녀님 계정 찾았다. [링크]
└ 와···. 일러스트도 역대급인데 실물은 더 예쁘네. 이게 말이 되나?
덩달아 강바다의 인스타까지 떠들썩해졌다. 한쪽에서 남의 사진을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냐고 논란이 일었지만.
– 제가 직접 허락했어요.
라는 한 문장으로 모두 정리가 됐다. 100만 팔로워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엄청나서, 조회수가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대부분은 허수지만···.’
그중 일부는 실제로 내 글을 읽었고, 또 그중 일부는 진짜 내 독자가 되었다. 그렇게 된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다.
──────────
투데이 베스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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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네.’
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볼을 꼬집어 봐도 꿈이 아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표지를 달고 단 하루 만에 1위까지 치솟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인생 진짜 한방이구나.’
폭발적으로 쌓인 알림창.
차마 확인할 엄두도 안 나서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는 중이었다. 공모전 종료까지 고작 일주일 남은 시점에 이런 급반등이라니.
– 하늘아, 대상 축하한다.
“그건 너무 김칫국 아니에요?”
– 응, 아니야. 이 기세면 오늘 내로 기존 1위의 선작을 따라잡을 거고. 구독자 통계나 추천비도 압도적이야. 게다가 누구라도 저 그림을 보면···.
“웹툰으로 만들고 싶겠죠.”
– 역시 김하늘이야. 척하면 척이지.
이번 공모전 상위권은 웹툰화가 보장되어있다. 그건 단순히 상금이 얼마이냐를 떠나서, 작가에게 엄청난 유입을 보장한다.
‘물론 저 퀄리티로 웹툰을 뽑아내긴 어렵겠지만.’
작화가 조금 다운그레이드가 되더라도, 이만큼의 화제성을 끌어모은 작품이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는 걸 증명한 셈.
하물며 돈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떨어트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 크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넌 언젠가 성공할 거라고. 당장 밖으로 나와라! 우리 거하게 회식이나 한번 하자!
“선약 있습니다.”
– 거짓말하네. 네가 약속은 무슨.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 야! 이 배은망덕···.
뚝-
나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곧장 1번을 꾹 눌러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와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한다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했을 뿐.
“바다 씨, 저녁에 시간 되세요?”
너무 힘을 준 탓일까.
휴대폰을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