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78
078 너 혹시 돈 받았냐?
[타코야끼 1세트 주세요.] [알겠습니다.]치이익-
주문을 넣자 곧바로 전용 팬 위에 마가린을 바르는 주인장. 불판이 달아오르며 고소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불판을 채우는 허연 반죽. 그 안으로 큼지막한 문어와 각종 야채들이 퐁당거리며 뛰어들고, 다시금 반죽으로 뚜껑이 덮인다.
“이제 뒤집나 봐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바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말대로 주인장이 방울이 달린 타코야끼 꼬치를 집어 들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타코야끼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뒤집힌다. 맨들맨들한 살이 위로 올라오며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낸다.
‘일종의 쇼맨십이구나.’
꼬챙이에 방울을 왜 달아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인가 더 뒤집히며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타코야끼. 마무리로 마요네즈와 전용 소스, 가쓰오부시가 뿌려지며 요리가 마무리됐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타코야끼를 건네받은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와서 곧장 뚜껑을 열었다. 이런 건 식기 전에 먹어줘야 또 제맛이지.
“으음~!”
먼저 타코야끼를 입에 밀어 넣은 강바다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냈다. 도톤보리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라더니 이름값은 하는 모양.
“하늘 씨도 먹어봐요. 아~”
나는 얌전히 입을 벌려 타코야끼를 받아먹었다. 강바다가 호호 불어준 덕에 딱 먹기 좋은 온도가 되었다.
제일 먼저 마중 나간 혀가 타코야끼 소스와 마요네즈를 맛봤다. 딱 기대했던 만큼의 무난한 맛.
고개를 끄덕이며 한입 베어 물자, 안에 들어있던 큼지막한 문어 다리가 식감을 자극했다.
“입에 맞아요?”
“네, 생각보다 맛있는데요?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되겠어요.”
“······!?”
강바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타코야끼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볼이 빵빵한 것이 꼭 다람쥐 같았다.
“요리 방법이 복잡한 건 아니니까요. 불판 정도만 있으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응! 나중에···. 꿀꺽! 꼭 만들어주세요!”
어찌나 급했는지 중간에 타코야끼를 통째로 삼키며 대답하는 강바다.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해외여행이 좋긴 좋네.’
강바다와 길거리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메리트였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맘 편히 다닐 수가 없으니까.
누가 들으면 연예인 병에 걸렸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우리 커플은 한국에서 꽤나 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골목마다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씩은 나오는 터라,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예의 없는 사람이 많단 말이지.’
불쑥 다가와서 사인을 해달라거나, 사진 좀 같이 찍어달라거나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곤란하던 차였다.
그때마다 경호팀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실외 데이트를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해외에 나오니까 확실히 그런 부분에서는 편했다. 물론 강바다의 화려한 외모가 시선 몰이를 하는 건 여전했지만.
“갑자기 왜 그렇게 봐요?”
“예뻐서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표현이 적극적이시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 싫지만은 않은 듯 강바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순간 그녀의 입가에 묻은 타코야끼 소스가 보였다.
“바다 씨, 입에 소스 묻었다.”
“어디요?”
“여기.”
스윽-
손을 뻗어 입가를 닦아주자 눈에 띄게 움찔하는 강바다. 중간에 내 손이 살짝 입술에 닿아서 그런 듯했다.
나는 간을 보듯 반사적으로 손에 묻은 소스를 핥아 먹었다. 그랬더니 제 앞을 가리며 뒷걸음질 치는 강바다.
“···안 돼요.”
“뭐가요?”
“기다려 준다고 했잖아요.”
“그게 뭔···. 아하?”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강바다. 하기야 경호팀도 없이 단둘이 해외여행을 나온 데다가, 니시오가 잡아준 방도 하나뿐이니까.
그 일정도 무려 4박 5일. 한창 몸이 달아오른 남녀가 사고 치기에는 이만한 기회도 없겠지.
나는 전에 약속한 것도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강바다도 나름 의식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러면 장난치고 싶은데.’
씨익-
대충 사악한 느낌으로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강바다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상당히 재밌는 반응이었으나, 여기서 더 했다가는 한두대 맞는 거로는 안 끝날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양손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짓궂어.”
“정말 짓궂은 게 뭔지 보여줘요?”
“됐거든요?”
강바다는 입을 다물라는 듯이 내 입에 타코야끼를 쑤셔 넣었다. 왠지 아까 먹었던 것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배는 어느 정도 채운 것 같은데. 오사카 관광이나 제대로 즐겨볼까요?”
“생각해둔 곳 있어요?”
“역시 유니버설 스튜디오겠죠?”
“오! 저도 거기 가보고 싶었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오사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해리포터, 슈퍼마리오, 쥬라기월드 등 다양한 테마가 있는 놀이공원이다.
니시오가 준 티켓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입장권도 함께 들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행선지를 정했다.
.
“우와아아-!”
성문처럼 되어있는 입구로 들어서자 강바다가 감탄성을 토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거대한 지구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크네요!”
“그러게요. 사진 찍어드릴까요?”
“우리 같이 찍어요.”
“음, 그럼 찍어줄 사람이···.”
“잠깐 여기서 기다려 봐요.”
강바다는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이제 막 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한 커플에게로 다가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고 부탁할 모양인 듯한데.
상대는 옷차림새만 봐도 한국인이었다. 커플끼리 사이가 어찌나 좋은지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
“응?”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상대가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다가가던 강바다 역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우리를 알아본 상대도 마찬가지.
“···바다 언니?”
“···구름 씨?”
깊은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대로 굳어버린 여인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꽂혔다.
허나 이쪽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 나 역시 적절한 답안을 도출하지 못했고, 우리 사이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다.
‘···김구름이 왜 여기에?’
그런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내 시야에 어색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박도진이 들어왔기 때문.
거리가 상당함에도 녀석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나누던 진한 애정행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성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너 이 자식!?”
“자, 작가님···. 아니, 형님!”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박도진. 허나 친절히 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김구름도 성인이다. 녀석이 뭘 하고 다니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눈앞에서 대놓고 애정행각을 부리는 건 선 넘었지.
“설명해라. 자세하게. 5000자 이내로.”
“그게 그러니까···.”
박도진의 어깨를 붙잡으며 남자들만의 뜨거운 이야기를 하려던 그때. 김구름이 내 몸을 밀어내며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우리 오빠한테 왜 그래!?”
“우, 우리 오빠아아아아?”
“아씨, 지도 연애하러 왔으면서 왜 꼬장인데!?”
“나는 어디까지나 일하러···.”
곧바로 반박하려던 나는 어깨를 붙잡는 부드러운 손길에 입을 다물었다. 강바다가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나를 붙잡은 것.
“여기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강바다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이더니. 선뜻 김구름에게로 다가섰다.
김구름의 손을 이끌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는 강바다. 나에게는 바락바락 대들던 동생이었으나, 강바다에게는 의외로 고분고분했다.
“저기···.”
덕분에 덩그러니 남겨진 박도진만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호칭을 정리하지 못한 녀석은 일단 3인칭으로 나를 불렀다.
가만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강태양 앞에서 쩔쩔매던 내 모습이 떠오른달까.
“사석에서는 그냥 형님으로 불러.”
“···형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솔직히 박도진을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기분이다만, 애써 그 마음을 억눌렀다.
박도진이 의도적으로 김구름에게 접근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동안 편집자로서 보여준 인간 됨됨이도 썩 나쁘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이유 정도는 들어봐도 되겠지. 물론 그 이유가 불순하다면 이런저런 각오를 해야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반년 만에 겨우 휴가를 받았습니다.”
“아니, 그 정도로 바빴다고?”
“···그야 그렇죠.”
말을 하면서 박도진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폈다. 왜 저러는 건가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두뇌가 회전하며 퍼즐이 맞춰졌다.
박도진은 내 편집자다.
그리고 난 지금 7작품을 동시 연재 중이다.
‘설마 박도진이 휴가를 못 쓴 이유가?’
내가 던진 폭탄 드랍 때문에 업무량이 폭발해서였던 건가. 그러다가 내가 일주일 정도 쉰다니까 겨우 맞춰서 휴가를 쓴 거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미안한 마음이 샘솟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 때문에 편집부 인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 휴가 기간이 겹치는 건 이해했어. 근데 어쩌다 장소까지 겹친 거야?”
“그건 저도 잘···. 저는 대표님께서 주신 패키지 여행권 때문에 온 거라서요.”
“패키지 여행권?”
“이겁니다.”
박도진이 얼른 가방에서 티켓을 꺼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이더라 싶더니, 내가 가진 티켓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내가 양보한 티켓이네.’
하아-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원래는 우리 쪽 사정을 전해 들은 니시오가 예나와 이태리를 위해 준비한 여분의 티켓이었다.
허나 예나는 신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비자가 안 나왔고, 이태리는 웹툰 마감으로 피가 말리는 상황이라 열외.
자연스럽게 남게 된 두 장의 티켓을 대표님께서 알아서 쓰시라고 양보했던 거였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스노우볼의 결과가 이거라니. 이러면 여행 일정이나 숙소도 우리랑 거의 똑같겠군.
“···미안하다.”
“···아닙니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건넸고, 박도진 역시 별말을 꺼내지 않았다.
급속도로 어색해진 분위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타이밍 좋게 강바다와 김구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늘 씨. 저희 왔어요!”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요?”
강바다와 김구름은 찰싹 달라붙어서 팔짱을 낀 채였다. 일말의 어색함도 묻어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질적이었다.
“어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랑 구름 씨가 얼마나 친한데.”
“맞아. 오빠보다 내가 언니랑 훠어얼씬 더 친하거든?”
“너 혹시 돈 받았냐?”
움찔-
정곡을 찔렀는지 동시에 움찔하는 두 사람.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받았어?”
“말 그대로 용돈이에요. 용돈!”
“으응! 그럼그럼!”
퍽이나 그러시겠다.
결승전에서 우리한테 깨진 뒤로, 우승 상금을 조금만 나눠주면 안 되겠냐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찡얼거리던 녀석인데.
물론 강바다의 기준에서는 정말 용돈 수준이겠지만, 욕망에 솔직한 김구름에게는 꽤나 큰 액수일 것이 분명했다.
“알아서 해라.”
“으응?”
“대신 이번만이다.”
“···오빠!!”
당연히 내가 돌려주라고 말할 줄 알았는지, 김구름이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강바다 역시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물론 평상시라면 그런 걸 넙죽 받냐고 혼냈겠지만. 강바다가 이제 남도 아니고, 시누이한테 용돈을 주는 것 정도야.
‘나도 좀 찔리는 게 많으니까.’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여러모로 마음이 약해졌다. 해외여행까지 와서 싸우기도 좀 그렇지.
“그럼 이제 서로 갈길···.”
순간 내 혀가 굳었다. 우리가 다가서기 전, 길거리에서 당당히 애정행각을 나누던 김구름과 박도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시야에서 멀어지면 금방 그렇게 될 테고. 종국에는 함께 숙소로 들어가서 그렇고 그런 일도 하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건전한 성생활을 지향하는 내 마음이 크게 불타올랐다.
“그, 그럼 나중에 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다 같이 놀까?”
다급한 김구름의 말을 끊어버리자 녀석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제야 비로소 강태양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