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00
100.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 많구나.2015.10.16.
광휘는 장서고에 도착했다.
잠시 혼자 시간을 갖고 싶어 예전에 기거했던 처소에 들른 것이다.
방은 깨끗했다.
예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마셨던 술병도, 과거 수납장 위에 있던 서책도 없었다.
창 두 개가 뚫려 있는 텅 빈 공간.
광휘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스윽.
그는 한쪽에 구마도를 세웠다. 그런 다음 허리춤에 찼던 괴구검도 나란히 세워놓았다.
병장기를 모두 푼 뒤 조용히 바닥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조금 전 묵객과 싸웠던 비무가 떠올랐다.
예상보다 그는 빠르고 강했다.
거기다 쏘아져나간 도기를 휘어지도록 운용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비무라…… 실로 오랜만이구나.”
광휘는 즐거웠다.
예상외로 뛰어난 묵객의 실력을 떠올려서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스르륵.
한참 동안 묵객에 대한 생각을 하던 광휘는 이내 그것을 접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칠 조 조장.”
“…….”
“칠 조 조장.”
맨바닥에 주저앉은 광휘가 고개를 들었다.
화창한 햇빛 속, 그곳엔 여인처럼 선이 고운 미공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있었나?”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얼굴.
머리를 묶은 사내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줬다.
살수 암살단 부단주를 맡고 있는 자였다.
자신과 같은 시기에 이곳에 들어온.
“옆에 좀 앉아도 되겠나.”
이미 광휘의 옆자리에 앉아놓고 부단주가 뒤늦게 양해를 구하는 척을 했다.
광휘는 별다른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삼 조 조장에게 박살 났다면서?”
“…….”
“허. 삼 조가 예상외로 엄청난 놈을 데려왔군. 그래도 그렇지 칠 조의 조장을 십 초 만에…….”
“……십삼 초였소.”
광휘는 부지중에 입을 열다,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는 부단주를 보고 혀를 찼다.
애도 안 걸릴 도발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뭐, 그렇겠지. 자네 실력도 부쩍 늘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부단주는 흘흘 웃기만 했다.
광휘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부단주와 말을 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자신이 어린애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실력이 늘었다고요? 제대로 방어도 해보지 못하고 패했는데?”
“내가 보기엔 늘었어, 그것도 많이.”
광휘는 여전히 인상만 구겼다.
부단주는 비무 광경을 보지도 못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실력이 늘었느니 말았느니 하는 평을 한단 말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넨 검기를 완벽하게 쓰질 않나.”
“상대는 강기를 쓰오.”
“그렇다고 못 이길 건 없지. 방법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네.”
광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강기.
무인이 자신의 내기를 담아 펼쳐내는 가장 파괴적인 공격.
자신의 검기로는 그걸 뚫지도, 막지도 못한다.
광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괜한 호승심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던 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검기를 쓰는 무인이 강기를 쓰는 고수를 이겼다는 말은 내 들어 본 적도 없소.”
“강기를 쓰기 전에 끝내버리면 되지 않은가.”
“……!”
그러나 부단주의 말은 광휘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이었다.
“싸우려면, 그리고 이기려면 상대를 잘 아는 것이 먼저지. 자네 생각에, 강기를 운용하는 고수들에게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 같은가?”
“역시 강기 아니겠소?”
광휘는 또다시 강기를 꺼내 들었다.
“아니, 틀렸어. 자네 말대로 검기를 쓰는 무인은 강기 고수를 이길 수 없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강기를 쓸 정도라면 대부분이 경지에 이른 무인. 검기든 강기든 이제껏 그가 체득한 실전 경험은 검기 무인보다 월등히 많아. 승패가 정해져 있는 건 그 때문이지.”
“…….”
광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동의했다.
부단주의 말대로, 삼 조 조장의 강기는 매서웠지만 자신이 패배한 건 강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초식의 흐름도, 내력도, 삼 조 조장은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앞서 있었다. 그건 광휘 역시 이미 느끼고 있던 바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를 이기려면?”
“무공을 버려야 해.”
“허어…….”
광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년에 죽은 청성파 부단주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이다.
“이보시오, 부단주.”
광휘가 노려보자 부단주는 다시금 웃었다.
“칠 조 조장, 우리는 무공을 겨루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란 걸 알 거네. 그러려면 무술대회에 나가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는 게 맞는 게지.”
어느 순간 그는 진지해졌다. 농담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우린 살수를 죽이는 암살단이네. 그것도 적을 죽이고 동료를 지켜야 하는 구표지. 거기다 자신 또한 살아남아야 하네. 이 얼마나 어려운 임무인가.”
“…….”
“살아남기 위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해. 멋지게 이기겠다는 승부욕, 필요 이상의 내공, 자존심도 말일세. 그 첫 번째 길이 바로 무공을 버리는 것이야.”
“부단주…….”
광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무인의 자존심.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 호승심.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 그건 당연한 것이다.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강기를 버리고, 검기를 버리고, 검조차 버리게,”
“…….”
“검이 없는 채로 검을 든 고수와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빠르게. 몇 배는 조심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며 단 일 수에 치명적으로 승부를.”
부단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와 같네. 지금 자네의 무기인 검기를 버리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빨라질 걸세.”
“…….”
“그리되면 상대의 움직임도, 내기도, 내력도, 무엇도 파훼해 낼 것이야. 그리고 그쯤 되면 상대가 검기를 쓰든 강기를 쓰든 아무 상관이 없어지지.”
“부단주, 그건…….”
광휘는 말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신검합일이 아니오?”
“사내라면 그 정도는 노려봐야 할 것 아닌가?”
부단주는 껄껄 웃으며 광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진하자고. 우리의 길은 가장 어렵지만……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니까.”
그는 말하고 있었다.
비무의 승패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생사투(生死鬪)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임을.
광휘는 눈을 떴다.
긴 꿈을 꾼 것처럼 몸이 나른해졌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이상하게 기분이 들떠 있었다.
“오늘따라 문득…….”
광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는데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다.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 많구나.”
*
어둠이 서서히 몰려오는 저녁.
서산 산마루 끝에서부터 시작된 불기둥이 세상을 환하게 물들였다.
황하는 붉은 빛깔로 넘실거렸고, 그것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관작루(鸛雀樓)에 있던 사람들을 그 절경에 취해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관작루는 백여 년 전 불에 타 소실된 곳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이곳에 이 층 누각을 세운 뒤 객잔을 차렸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다시금 붐비기 시작한 것이다.
저벅저벅.
붉은 노을빛을 등에 진 한 장년인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 층에 도착한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황하가 내려다보이는 서쪽 가장자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곳엔 세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남색 무복 차림에, 허리춤에는 칼집을 찬 채 다들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장년인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사내들이 시선을 올릴 때쯤 장년인은 원탁 사이에 있던 의자 하나를 빼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군. 전갈을 늦게 받다보니.”
사내들은 그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를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마에 검흔 자국이 난 장년인의 이름은 일령귀(一嶺鬼).
불명귀 중 가장 무위가 뛰어난 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세 명의 사내 모두가 불명귀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일이 정파 놈들 몇 명만 죽이면 끝난다는 거야?”
장신의 키에 마른 체격의 사내, 삼영귀(三影鬼)는 잠시 멈췄던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다는군.”
맞은편 청수한 얼굴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는 대화 도중 쟁반 형상의 병기를 습관처럼 탁자에 쿡쿡 찍어대고 있었다.
이수야귀(二水夜鬼).
강호에서도 보기 힘든 건곤권(乾坤圈)을 병기로 사용하는 자였다.
“의아하군. 고작 사람 몇 명 죽이는 데 우리 불명귀 모두를 불러들이다니. 그것도 구대대파 장문인이 아니라 그저 이름도 없는 세가 놈들을 말이야. 그런데 장씨세가? 대체 그건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얼굴 반쪽에 화상 자국이 나 있는 중년인이 끼어들며 불만스런 목소리를 토해냈다.
사군패검(四君敗劍).
눈으로 보아도 횡횡한 소리가 들릴 것처럼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였다.
삼영귀는 눈을 찌푸렸다.
“그동안 뜸했으니 휴가라도 다녀오라고 시킨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문주께서 친히 우리를 보냈겠어? 여기에 오지 않은 다른 불명귀도 있다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하면 개방을 상대할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거든.”
이수야귀가 반박하자 삼영귀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들었어. 허나, 개방의 장로들이 모두 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전국에 있는 개방 거지들과 분타주, 장로들과 당주들도 역할이 있어. 들으니 오결 제자와 삼결 제자 몇 명만 상대하면 된다 하던데 말이지.”
그 말에 불명귀들은 수긍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아니, 불명귀 전원이 이 일에 달려들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듣지 못했나 보군.”
그때쯤 침묵을 지키던 일령귀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불명귀를 한 명씩 둘러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월객이 움직인다고.”
“……!”
“……!”
“……!”
불명귀의 표정이 동시에 급변했다.
그들은 듣지 못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야월객까지……. 그렇게까지 대단한 임무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가 보군.”
“십대고수라도 있는 건가?”
세 명의 불명귀는 저마다 한마디씩 토해냈다.
어둠 속 살수들.
그들이 온다는 것은 이번 일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일 때쯤 일령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칠객이 있으니까.”
“……!”
세 사내는 모두 눈을 치켜떴다.
칠객.
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라는 그들의 존재가 들린 것이다.
정보에 능한 사람일수록 칠객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불명객만큼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
과거 칠객에 의해 동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던가.
“칠객 중…… 누군가?”
삼영귀가 어느새 싸늘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묵객.”
“허.”
다시 침묵이 일었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이수야귀가 슬쩍 웃음을 띤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군. 묵객이라면 칠객 중에서도 말단이…….”
“말단은 아니다.”
순간 사군패검이 끼어들었다.
그는 화상 자국이 나 있는 볼을 씰룩거리며 말을 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나? 그는 이 년 전, 불야성(不夜星)을 죽였다.”
불야성.
녹림십팔채의 채주 중 한 명으로 명실공히 백대고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고수.
그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사군패검의 말에 다들 잊었던 기억이 상기된 듯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칠객 중 만만한 자는 없다.
그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일령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소위건을 제압했다는 자가 있다고 하더군. 팽가에 들어가 교두 여덟 명을 일거에 쓰러뜨렸기도 했고.”
“소위건? 백대고수에 준하다는 그자 말인가?”
“……팽가의 교두 여덟이라.”
일령귀의 입에서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고수들이 계속 거론되자 이곳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누구지? 출신 내력은?”
잠시 침묵을 지켰던 삼영귀가 일령귀에게 물었다
“알려지기로는 광휘란 자다. 장씨세가 호위무사를 하고 있다더군.”
“…….”
잠시 정적이 일었다.
그리고 어느새 불명귀들의 눈에는 살기가 돋고 있었다.
탁.
그때 일령귀가 품속에서 하나의 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불명귀에게 지시할 권한을 문주께 받았다. 이번 일은 나를 따라주길 바란다.”
일령귀의 말에 다들 무언의 승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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