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9
159. 그럼 증거를 가져와보게.2016.05.11.
장련은 눈을 떴다.
서까래가 보이고 모가 둥근 장방형의 물결무늬가 보인다. 그리고 따뜻한 뭔가가 자신의 이마에 놓여 있었다.
“무사님…….”
장련이 언뜻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광휘가 자신의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냥 누워 있으시오.”
그를 본 장련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광휘가 제지했다.
장련은 천천히 누우며 재차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그건 나도 알고 싶군. 내가 왔을 때 소저는 쓰러져 있었소. 그래서 급히 이렇게 누인 것이오.”
“그랬군요. 할 일이 많은데…….”
장련은 씁쓸한 듯 웃었다.
“할 일이 많다면 더욱 누워 있으시오. 안 그러면 영영 못 끝내게 될 거요.”
광휘가 눈을 찌푸리듯 바라보자 장련은 눈을 굴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렇게 잠시 누워 있던 장련은 어색한 분위기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대체 맹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무슨 말이오?”
“순찰 당주 말이에요. 무사님을 아는 눈치던데…….”
광휘는 생각하다 말했다.
“몇 번 본 적이 있소.”
“몇 번 본 걸로 그렇게 겁을 집어먹나요?”
“그가 겁을 먹었었소?”
“네. 겁먹은 표정이었어요. 도망치듯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지켜보던 사람들이 전부 놀랐다니까요.”
광휘는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다 뭔가 떠오르자 재차 입을 뗐다.
“원래 겁이 많던 자였소.”
“거짓말.”
장련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다지 재밌는 말이 아니었지만 한없이 진지한 말투 때문에 웃음이 터진 것이다.
광휘는 내렸던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기보다 기분은 좋아 보이는구려.”
“안 좋을 게 있나요? 무사님 같은 분이 저를 도와주시고 요즘 일도 잘 풀리는 중이니까요.”
장련의 생기 있는 목소리에 광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진 웬일이세요? 오늘부터 저를 호위하시려고 온 건가요?”
“…….”
“아, 그런데 어쩌죠? 요즘 제가 바빠서 무사님을 신경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하긴 옆에 계셔도 신경 쓴 적은 없지만…….”
“…….”
“무사님?”
문득 장련은 혼자서 말하는 기분에 광휘를 불렀지만 그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 자네가 쓰러진 뒤 장 소저가 간병을 했네. 거의 잠도 안 자고 한 것 보면…… 꽤 마음을 쓴 것 같네. 감사하다는 한마디 해주라고.
노천이 했던 얘기가 스쳐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자신을 사흘 동안 간호한 뒤 그 뒤로 계속 일만 했을 그녀였다.
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사람들도 죽은 와중에 가주까지 자리를 비운 상황.
누구보다 바빴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은 관심조차 없었다.
광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들어온 광경.
책상 옆에 수북이 쌓인 서류. 수납장 위에 비치된 종이와 몇 개 더 늘어난 책장.
처음 그녀 거처에 들어온 날 보았을 때보다 더욱 많아진 서류들이 방 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광휘의 시선이 다시금 그녀에게로 향했다.
눈 밑에 짙게 깔린 그림자와 헝클어진 머리. 실핏줄이 터진 흰자위까지.
“아프지 마시오.”
장련은 흠칫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길었던 침묵 끝에 광휘가 뜻밖의 대답을 하자 당황한 것이다.
“소저가 아프면 내가…….”
광휘는 뭐라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그리고 얼마 후에 재차 입을 열었다.
“들었소. 내가 광마에 빠져들었을 때 황 어르신을 살려 그와 얘기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을. 소저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평생 자책하며 살았을 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묘한 침묵에 불편해진 장련이 조용히 말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닌걸요. 대사께서 도와주신 거예요.”
“아니오. 소저가 한 것이오. 내 죽음을 막은 것도, 내 발작을 일시적으로 멈춘 것도.”
광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모두 소저가 한 거요. 소저가 아니었으면 난 진작 죽었을 게요.”
“……무사님.”
장련은 조용해졌다.
칭찬하는 말이었다. 분명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그리고 그녀의 감은 적중했다.
“잠시 장씨세가를 떠날까 하오.”
장련의 표정이 확 굳어져갔다.
“잠시 떠나는 것이오. 후유증을 안고 또다시 싸울 수 없으니까.”
“방법을 찾으셨나요?”
“아직.”
드륵.
광휘가 고개를 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쉬시오.”
“무사님?”
뒤돌아서던 광휘를 그녀가 불러 세웠다.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지금 무사님이 본가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큰 힘이 돼요. 그러니 저 같은 것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정말로요.”
장련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웃어 보였다.
광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 어느 한 지점에 머물렀다.
그녀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알아볼 수 없는 미미한 움직이었지만 광휘에겐 또렷이 보였다.
곧장 밖을 나갈 것 같던 광휘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러고는 몇 번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임무가 참 많았었소. 맹에 들어간 날부터 칠 년 동안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만큼.”
“네?”
장련이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했지만 광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손을 바라본 채로.
“그 많은 임무 중에서 쉬웠던 건 손에 꼽을 정도였소. 많은 훈련을 받아 투입된 것인데도 현장은 늘 변수가 발생했고 때로는 예상이 빗나가기도 했소.”
“…….”
“그때마다 다짐했소. 다음에는 방심하지 않으리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르오.”
“무사님…….”
“하지만 결과는 늘 장담할 수 없었소. 그렇게 계속 틀어지고 꼬이다 보니 결국에는 임무를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무서워지더구려.”
광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럴 때 극복했던 방법이 바로 동료들을 믿는 거였소.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들이 나를 믿게 하는 것이 필요했소. 그래서 더 당당해져야 했고 대범해져야 했소.”
– 조장, 조장은 어떻게 극복한 것이오?
– 이번엔 할 수 있겠지요? 나도 나에게 배정된 표적을 구할 수 있겠지요?
흠칫!
장련이 다시 몸을 떨었다.
일순간 광휘의 손이 자신의 손을 포갠 것이다.
두근두근.
장련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림이 손발로 퍼져나갔다.
“우리를 믿으시오. 장씨세가에는 칠객 중 하나라는 묵객이 있고 천중단 출신인 명호가 있으며, 당가의 은거 고수 노천과 소림의 파불이 있소. 십만 방도를 거느린 개방과 오대세가의 하나인 모용세가가 버티고 있고 십방에 촉각을 펼치고 살피는 하오문이 있지요.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있소.”
“무사님…….”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시오. 두려워하지도 겁내지도 마시오. 어떤 존재가 장씨세가를 막아선대도.”
“…….”
“내가 당신 옆을 지킬 테니까.”
*
마주 본 두 사람의 시선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오십 줄에 들어선 장년인은 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맞은편 노인은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그의 머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하아.”
이윽고 노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자 무거웠던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정말 그였는가?”
총관 서기종은 믿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제가 그를 어찌 잘못 보겠습니까.”
“하긴, 잘못 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자이지.”
서기종은 실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임조영에게 설명을 듣고도 벌써 몇 번째 묻는 자신이 우스워진 것이다.
“그 위험한 무공을 익히고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 대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짐을 지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칠 조였지…… 아마…….”
과거의 상념이 떠올랐다.
흑우단 칠 조.
살수 암살단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이력의 인물들이 모여 있는 조였다.
성격도 나쁘고, 타 조직과의 불협화음도 잦았다.
다만, 임무를 내리면 항상 그 이상을 해왔고 수뇌부에서도 불가능하다 여긴 일도 그들 손에 맡기면 해결된 일이 여러 번이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흑우단이 중심이 되어 버렸다. 당시의 또 다른 핵심이었던 삼 조와 더불어서.
“하아.”
또다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법이 없지 않은가? 묻어야지.”
“팽 장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안 있으면? 맹에 칼이라도 들겠는가?”
임조영이 잠시 침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요는 팽인호가 어떻게 반응하는 가가 문제였다.
“나쁘게 본다 해도 할 수 없지. 광휘가 어떤 자인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일을 해냈는지, 우리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줄 수 없는 노릇이니.”
“얘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가 천중단에 있었던 당시의 일을 설득하는 데 잘 이용한다면…….”
“믿겠는가?”
서기종이 툭 하고 내뱉었다.
“구대문파는? 전대 장문인들은? 그자의 무위를 직접 보고 들은 자들조차도 믿지 않았네. 그런데, 한 단계를 거쳐서 건너 들은 팽인호가 믿겠는가?”
임조영은 입을 다물었다.
절대 믿지 않을 터였다. 임조영 자신도 본인이 보았던 그 사실이, 때로는 착각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흑우단 칠 조는, 그리고 광휘는 그런 자들이었다.
“팽가에도 뛰어난 무사들이 많으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게야. 예전에, 전대의 무림맹 수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임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일개 무인이다.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백 명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는.
“설령 광휘의 실력이 예전만큼 못하다고 치세. 그래서 그를 죽였다고 가정해 보세. 그럼 그 옆에 누가 있는가?”
“……개방이 있지요.”
“그래. 만약 맹주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네.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게 될 게야. 광휘는 비공식적이긴 해도 잠시나마 맹주였던 사람일세.”
사박.
서기종은 뒤돌아 임조영을 바라보았다.
“그런 사내를 상대로 칼을 들이대겠다고? 끝났네. 그가 나선 순간 모든 일은 끝났어.”
임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자신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맹에는 아직 그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현 무림맹주다.
잠시 둘은 침묵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씨임에도 방 안의 분위기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 일은 여기서…….”
콰앙!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때 문이 부서질 듯 흔들리며 한 노인이 들이닥쳤다.
임조영과 서기종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총관!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지금 들은 것이 사실입니까?”
팽인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척 보아도 피를 토할 정도로 감정이 격양되어 있는 것이다.
“자네는 나가 있게.”
“예.”
총관의 말에 임조영은 예를 짧게 표했다. 그리고 재차 팽인호에게도 예를 표했지만 그는 전혀 응대하지 않았다.
탁.
그가 나간 뒤, 문이 닫히자마자 팽인호는 다시 언성을 높였다.
“말씀 좀 해보십시오! 이게 지금 무슨 일입니까! 손을! 떼시겠다니!”
“앉게.”
“지금 앉을 상황입니까!”
지금 팽인호에게는 상대가 무림맹의 총관이라는 건, 그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손을 벌벌 떨고 있을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기도 벅찼다.
“순찰 부당주에게 얘기를 들었겠지? 맞네. 이 일은 덮을 생각이네.”
“대체 무슨 말이오! 제가 이해를 할 수 있게끔 얘길 해주시오!”
“증인이 있었어.”
“……예?”
“증인이 장씨세가에 있었다고……. 장씨세가 호위무사, 그가 증인이었어.”
“…….”
팽인호의 고개가 기이하게 틀어졌다.
여러 감정이 솟구치자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다 그 얼굴이 곧 차갑게 식었다. 이제 그는 조소를 잔뜩 머금고 입을 열었다.
“대체 그자가 누구입니까?”
“말할 수 없네.”
“허. 지난번에 저에게 하신 이야기와는 다르시군요? 아무도, 그 일에 관계된 증인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만만하시더니?”
“자신했었지. 하지만 그게 과신이었었나 보네.”
“허허!”
팽인호는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증인은 있는데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얼마나 고수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팽가에게 손을 떼라는 요구를 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증인이 나섰으니까, 그러니까 덮어야 한다는 겁니까? 맹의 부탁에 개나 말의 수고를 피하지 않고, 은자림이 남겼던 폭굉을 찾고! 그걸 제조하는 도안과 기술자를 찾아내고! 총관의 명에 불의한 피까지 보아야 했던 팽가는요!”
팽인호의 목소리는 점차 더 커져갔다. 그런 그를 보며 서기종은 짧게 말했다.
“그건 좀 안타깝게 생각하네.”
“안타깝게? 지금 그게…… 허허허.”
그의 얼굴이 점점 뒤틀어졌다. 표정뿐만 아니라 얼굴색, 눈동자 모두가 기이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총관께서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북은 새외나 다름없다고, 오대세가라고는 하나 무식한 촌놈들이라고 업신여기던 맹의 중진들과 하나도 다르시지 않군요.”
“흐음.”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도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이제 팽인호의 목소리에는 위협까지 섞여 있었다. 총관은 오른손 검지로 왼쪽 손등을 툭툭 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리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증거를 가져와 보게.”
“예?”
“개방이 독을 탔다는 증거, 모두가 보고 절대 의심하지 않을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서기종은 날카롭게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럼 도와주겠네.”
팽인호는 잠시 숨이 막혔다. 그가 입을 다물자 방 안은 쥐 죽은 듯한 침묵에 빠졌다.
툭. 툭. 툭.
하지만 입은 열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경련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이다.
서기종의 완곡한 거부의 명령에, 팽인호는 지금껏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었다.
“좋소이다. 가지고 오지요.”
“……뭐?”
“가지고 온다고 했소이다, 그 증거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서기종이 눈을 찌푸렸다.
선대 팽가 가주의 죽음이 개방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은 팽인호도 알고 그도 알았다.
그래서 이쯤 하면 알아듣고 물러서리라고 내민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팽인호가 그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열흘하고 이틀을 더 주시오. 내 기필코 증거를 가져와 총관의 두 눈에 직접 보여주겠소.”
“정말인가?”
‘내가 모르는 또 뭔가가 있었던가?’
서기종조차도 반신반의했다. 그런 그에게 팽인호가 이를 바득 갈며 말했다.
“그럼 거짓이겠소? 잘 들으시오, 총관. 만약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도 이런다면 내 결코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소.”
서기종와 팽인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렇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어느 순간 서기종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 눈빛은 흡사…….’
탐욕이 깃든 눈빛과는 달랐다.
자존심도, 문파의 자긍심도 아니었다.
마치 정조를 빼앗긴 여인처럼, 치욕을 감내하고 버텨온 삶의 근간을 뒤흔든 듯한 격한 반응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자를 이토록 몰아붙이고 있는 것인가?
“그럼 기다리고 계시오, 총관.”
콰아앙!
이윽고 발길을 돌린 팽인호가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가버렸다.
드륵.
서기종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는 조금 전 팽인호의 행동을 되짚기 시작했다.
어느새 굳었던 표정은 사라져 있었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증거라.”
톡톡.
그가 탁자에 검지를 몇 번씩 두들기다 이내 혼잣말로 읊조렸다.
“이거 생각해보니 재미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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