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15
215.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2016.11.23.
“새 떼? 별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염악이 미간을 찌푸리며 도를 치켜세웠다.
새벽빛에 비치는 새카만 까마귀들.
원래 사람을 보면 피하는 것들이 거꾸로 날아드는 게 기분 나빴다. 더욱이 봐도 지금은 뭔가의 수작질처럼 느껴졌다.
“제가 처리하겠습…….”
“멈춰!”
염악의 눈이 부릅떠졌다.
날카롭게 소리치는 광휘.
염악은 그가 자신을 말린 것에 놀라고, 광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것에 더 놀랐다.
“피해라! 물러서!”
“단장?”
구문중이 당황해서 물었다. 하지만 광휘는 온몸이 뛰는 이질감에 거기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두근두근.
– 꽉 막힌 나무숲.
– 높이는 육 장.
– 서북쪽으로 날아온 새.
심장이 울렸다.
세상 만물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고, 머릿속으로 온갖 주변의 정경이 파고 들어왔다.
덜덜덜.
이윽고 광휘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은 두려움과 오한이었다. 나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뒤따라왔다.
피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 위험하다고.
“단-자-아아아-?”
방호가 말하는 소리가 느릿하게 들렸다.
그사이 지척까지 날아온 까마귀가 갑자기 서로 몸을 부딪쳤고, 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백중건의 환청과 함께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속도는 모든 것을 극복한다.
퍽! 퍽! 퍽! 퍽!
광휘의 움직임은 한 줄기 빛이었다.
일수에 천중단 네 명을 밀어내고 장대풍의 뒷목을 잡는 데까지는 정말 한순간이었다.
“히이-에에엑?”
“사-알-려주-!”
장대풍이 기이한 헛바람을 일으키고 핏발 돋은 눈으로 느릿하게 외치는 홍각.
‘제기랄!’
광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홍각까지 챙길 틈은 없었다. 이미 열기가 눈앞까지 날아온 상황.
장대풍을 잡은 광휘가 힘껏 뒤로 던지며 몸을 웅크렸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그때처럼.
____
다그닥. 다그닥.
“성공입니다. 이번에도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수려한 얼굴의 사내, 유역진이 선두에서 말을 몰던 장년인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7조 조장 장학림(張學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당이 있을지도 몰라.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십자 대형을 유지해라!”
장학림의 말에 사사삭 풀숲과 나무 사이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이동시에 사용하는 십(十)자 대형. 전후좌우 어디든 기습을 대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보고하던 유역진이 재차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
“조장. 은자림 은자림 하더니 생각보다 대단하진 않은데요? 고수도 많지 않고, 있는 전력이라 봐야 백여 명도 채 안 되지 않습니까.”
“흐음.”
유역진이 한숨 놨다는 개운한 얼굴로 말하는 가운데, 장학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장? 뭐 있습니까?”
“하늘에…….”
스윽.
유역진의 눈이 장학림의 시선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조금 낮은 고도에서, 커다란 매 한 마리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매라……. 별일이군요. 이쪽은 북방의 대초원 지대도 아닌데.”
달자(韃子: 몽고인)들이 사는 북방에는 매를 사용한 매사냥이 잦다. 그래서 매가 혼자 날아다니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원 아래쪽에서는 매 같은 흉포한 금수를 사냥매로 쓰는 경우가 많지 않다.
가격도 가격이고, 어릴 때부터 길을 들여야 하기에 손이 여간 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인근에 대단한 부호는 없었던 것 같은데…….”
“탐나십니까? 제가 잡아드릴까요?”
휘익!
거기서, 마침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매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오호! 저놈이 마침 오는구나!”
유역진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휘이이익!
매가 날개를 접고 급강하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였지만, 그래봐야 무림 고수에게는 우습게 잡히는 한낱 날짐승이다.
타악! 끼르르!
아니나 다를까, 날아든 매는 말을 박차고 도약한 유역진의 손에 그대로 목을 붙잡혔다.
“하핫! 겁도 없이 사람을 노리느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어?”
매의 목을 붙잡은 유역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냥매인줄 알고 잡은 매는, 엉뚱하게도 발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보니 움켜쥔 것이 아니라 둥글고 새카만 구체가 발치에 묶여 있는…….
“숙여!”
상황을 채 파악할 틈도 없이 누군가가 유역진을 내리눌렀다.
꽈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지척에서 끔찍한 폭음이 일었다.
____
찌이이이-잉!
“조장…….”
비척비척.
광휘는 아직도 귀울음이 남은 귀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는 새하얀 안개가 가득했다. 흐릿한 것이 일 장 앞도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스스슥.
그리고 서서히 맺어지는 초점.
광휘는 한참이나 눈을 이리저리 굴린 끝에 장대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쿨럭! 쿨럭! 이게 대체 무슨 괴변입니까?”
“…….”
저벅. 저벅.
광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악문 채 무표정하게, 까마귀 떼가 날아든 방향을 향해 걸었다.
‘좌우 이십 장의 폭발력. 까마귀가 들고 움직일 정도의 무게.’
폭굉으로 폐허가 된 곳에 멈춰 섰다.
홍각의 시체 따위는 찾을 수 없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공간에서 광휘는 천천히 지리를 더듬고 있었다.
‘이 주위에는 없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 오십 장, 아니 그보다 더 멀리서 이곳을 봤다는 것인데.’
스스스으으-
공간 거리 위치가 천천히 광휘의 눈에 각인되었다. 그 순간 형태가 일그러지며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주위의 소리.
바람이 부는 방향.
밟고 있는 지면의 고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감지하던 광휘의 시선이 한순간 멈췄다.
타탓.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바바박.
무려 삼 장을 도약한 광휘는 불길에 타고 있던 나뭇가지를 밟고 올라섰고, 나무 머리 부분에서 한 번 더 뛰어올랐다.
쉬우욱.
무려 십 장의 높이.
광휘는 무려 지면에서 십 장 높이인 공중에서 이 근방을 재빠르게 둘러보았다.
숲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분명, 이 근처에 있다.’
어딘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 광휘는 몸이 떨어지는 와중에 검을 세웠다.
그러고는 몸을 틀며 검을 돌렸다.
새벽빛을 최대한 끌어모아 숨어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서였다.
찌릿.
그렇게 몸이 천천히 떨어지는 와중에 언뜻 검날에 약간의 채광이 스쳤다.
광휘의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몸이 환영으로 변했다.
바바바박.
십 장.
타탓. 바바바박. 타탓.
이십, 삼십 장…….
바바박. 바바바박. 타타탓. 팟.
사, 오, 육십 장을 단번에 줄여가던 광휘가 이름 모를 나무 위로 치솟아 오르며 검을 세웠다.
“히히힛.”
눈앞에 나타난 괴인.
한쪽 눈에 하얗게 백태가 낀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또다시 폭발이 일었다.
*
“이건…….”
염악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들렸다.
광휘에 의해 밀려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 폭음이 들렸던 것이다.
“저곳이네.”
맹인 구문중이 한 곳을 가리켰다.
“가지.”
파파팟.
그 말에 순간 천중단 대원,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달려나갔다.
바바바박. 바바바박.
“대장?”
마지막 폭발이 예상되는 곳에서 염악은 멈춰 섰다.
그곳 역시 나무가 모두 뭉텅이로 잘려나가 폐허로 변해 있었는데, 그곳 한가운데 광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단장, 어떻게 된 겁니까?”
방호가 슬쩍 다가가 슬쩍 물었다. 다른 조원들도 광휘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개량된 벽력탄이었다.”
“예?”
“이번 게 은자림이 쓰는 벽력탄이었단 말이다.”
“……!”
그제야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폭굉.
과거 은자림이 사용했다는 개량된 벽력탄이었다.
“위력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크기는 흡사해. 벽력탄보다 작지만 위력은 몇 배나 더 강하다.”
그 말에 구문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까마귀 몸에 달릴 만큼 작은 폭굉이라 하더라도 도화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불꽃은커녕,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폭굉은 도화선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불씨는 필요 없지.”
“그게 말이 안 되는…….”
“그래서 백중건이 죽었다.”
웅산군이 반박하려 하는 순간 광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부릅뜬 눈이 천중단 대원들의 시선에 확연히 들어왔다.
“아무도 몰랐어. 심지에 불이 붙지 않고도 터질 수 있는 건, 그때까지는 누구도 몰랐다.”
대원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십대고수 백중건.
천하제일 고수로도 거론되었던 그의 죽음을 그들도 떠올렸다.
광휘는 지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명은 이미 빠져나갔다. 바닥에 찍힌 발자국이 있으니까. 아마도 방금 스스로 자폭한 사내와 2인 1조로 움직인 것 같다.”
대원들의 눈에도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이 보였다.
아마도 광휘가 쫓자 한 명이 시간을 벌고 다급하게 도망친 듯 보였다.
쉬이이이.
잠시 침묵이 꺼질 때쯤 광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앞서 죽은 자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바닥으로 내렸던 대원들의 고개가 광휘 쪽으로 움직였다.
“천리경입니까?(千里鏡: 명대의 망원경을 일컫는 말)”
구문중이 묻자 광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는…….”
사박사박.
때마침 나무숲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대원들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여기 계셨습니까.”
숲에서 나온 사람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대원들이 다들 그를 경계하는 사이, 광휘가 손을 올렸다. 상대는 엄청 지친 기색인 것이, 필사적으로 달려온 모양으로 보인 것이다.
“누군가?”
“하오문에서 왔습니다.”
“하오문? 무슨 일이지?”
“팽가가 움직였습니다. 어서 속히 장씨세가로 가셔야 할 듯합니다.”
남자가 어깨로 숨을 쉬며 다급히 보고해 왔다.
“왜? 장씨세가에는 당가가 있지 않느냐. 그들이 당했나?”
순간 광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출진하기 전 당가가 팽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분명히 들었었다. 그게 영원히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토록 빨리 상황이 바뀌다니.
“당가는 피해 입지 않았습니다. 팽가가 그들을 피해 우회한 것 같습니다.”
“…….”
광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존심 높은 팽가가 그런 식으로 실리만 따질 거라고는 예상 못 했던 것이다.
“웅산군, 구문중. 너희 둘은 이제부터 도지휘사를 보호한다.”
“옙.”
“예.”
“방호. 은자림과 저들과의 연결고리를 색출한다. 염악. 폭굉을 만드는 기술자가 있을 거다. 반드시 찾아 와라.”
뒤이어 하나하나 재빠른 지시 변경이 이어졌다.
방호가 끄덕였고 염악이 깊이 읍한 다음 물었다.
“허면, 단장께서는…….”
“나는…….”
광휘는 고개를 돌렸다.
저 숲 너머에 펼쳐져 있을, 작은 마을을 향해 말을 이었다.
“집으로 가야지.”
____
쉬이이이.
“으으으으…….”
손이 뜨거웠다.
폭발의 순간 급히 떠밀려지긴 했지만 불길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가슴도 뜨거웠다. 어찌 된 영문인지 땅에서 느껴지는 강한 열기가 온몸을 지글지글 익혀 버리는 듯했다.
“신입…….”
스으으으-
“신입!”
사아아아악!
누군가의 외침 소리에 먹먹했던 귀가 뚫렸다.
시야에 먼저 들어온 건 같은 흑우단의 대원들.
몇 발 떨어진 곳에 모인 그중 하나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타탓.
유역진은 비틀비틀 몸을 옮겨 대원들이 모인 곳으로 움직였다.
“조, 조장? 아…… 아악!”
그리고 신음했다.
조장 장학림. 간발의 차로 폭발에서 유역진을 밀어낸 그가 힘겹게 눈을 뜨고 있었다.
“유역진이라고 했지? 이번에 처음 들어온 신입, 너 말이다.”
“이게 어떻게…… 조장…… 대체 무슨 일이.”
조장 장학림은 팔다리가 날아가 있었다.
그나마 붙어 있는 몸통도 부분부분 구멍이 뚫려 있었다.
폭발을 온몸으로 막아선 결과였다.
“이게 은자림이다.”
“아…… 아…….”
“흔적도 실체도 알려지지 않은, 상식을 벗어난 싸움 방식. 이것이 바로 은자림이다.”
“제가…… 제 잘못입니다, 조장. 제가 매를 잡지만 않았어도…….”
“닥치고 들어! 유역진!”
대원 중 한 사내가 소리치자 유역진이 눈을 부릅떴다.
다급한 분위기. 사지를 잃고 엄청난 출혈을 한 장학림. 그리고 그럼에도 묘하게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한 그의 얼굴.
‘……회광반조.’
목숨이 경각에 달한 끝에 나온다는 마지막 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해.”
그조차 거의 끝에 다다랐던 걸까, 장학림의 소리는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방식, 그들의 병법. 모두 익히고 배워야 한다.”
“조장…….”
“힘들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해. 우리들이 아니면…….”
스륵.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그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____
흔들흔들.
대원들과 조금 떨어진 곳.
나뭇가지를 밟고 서 있던 광휘는 멀리서 흩어지던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조장.”
과거의 잠재된 기억 속에서 떠올린 장년인.
광휘, 아니, 그때만 해도 유역진이었던 자신의 첫 번째 큰 실수. 그때 잃었던 선배 조장이었다.
“지켜보십시오, 조장. 은자림도, 그과 관계된 자들도,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광휘는 곱씹었다.
한때 동료들의 수많은 죽음을 앗아갔던 은자림.
다시금 세상 속에 나타난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던 광휘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씨를 말려버릴 겁니다, 죄다.”
복잡한 그의 표정은 공포가 아니었다.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기쁨의 희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강렬한 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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