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341
1. 종결(終結). 그 후…….(1)
“일단 얼추 정리가 되어가는 겐가?”
사박.
먼지와 연기가 자욱한 전장(戰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민가 지붕 위로 얼굴 하나가 빼꼼 솟아올랐다.
노천. 당문에 있어야 할 그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마… 그렇겠지요?”
빼꼼.
그리고 또 다른 얼굴 하나가 솟아올랐다. 중사당주 당의명. 역시 한동안 장씨세가에서 식객으로 있었던 그였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볼까?”
“형, 형님! 잠시……!”
노천이 막 굽혔던 허리를 펼 때 당의명이 손짓하며 다급히 외쳤다.
슈슈슈슉!
“…….”
노천은 눈만 깜박거렸다.
다 죽어가던 광휘가 손짓 한번 하자, 수십 개의 검이 사방으로 살벌하게 번득였다.
잠시 멍한 표정이 된 노천은 ‘어쿠!’ 하며 배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았다.
“으윽,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는군. 이래서야…….”
“저, 저도 그렇습니다. 오다가 먹은 당과가 걸리기라도 한 겐지…….”
당의명도 대뜸 몸을 바짝 낮추며 배를 부여잡았다.
그 모습에 노천이 기막힌 얼굴이 되었다.
“아니. 독도 씹어 먹는 놈이 당과 몇 개 먹고 체했다고?”
“형님도 도착하기 두 식경 전에 뒷간을 가시지 않았습니까?”
당의명의 말에 노천의 얼굴이 더욱 불편해졌다.
장유유서라는 말이 엄연히 있거늘. 어디서 어린놈이 맞먹으려 드는지.
“이놈아! 내 한동안 장염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알지요. 근데 장염이라면서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 드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노천의 이마에는 슬며시 핏줄이 돋았다.
“의술 배울 때 졸았느냐? 복통이 있을수록 섭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몰라?”
“그렇지요. 섭생에 신경 써야지요. 저도 그래서 꼬박꼬박 챙겨먹다가 이 사달이 난 거 아닙니까.”
“…….”
“…….”
‘한마디도 안지는 건방진 놈.’
‘핑계만 대는 꼰대 늙은이.’
노천과 당의명은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속내가 빤히 보이는 와중에, 하는 변명도 똑같으니 더더욱 보기 싫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노천은 갑자기 주먹을 결연하게 불끈 쥐었다.
웬만하면 자신들이 나서기 전에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랬지만, 이대로 지붕 위에 끝까지 숨어 있기에는 모양새가 빠졌다.
“그렇지요. 이제는 나서야 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당의명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노천이 움직일 기세를 보이자, 당장 제가 먼저 뛰어들겠다는 듯 전의를 불태운 것이다.
그때.
우지끈.
“응?”
“엉?”
그들의 눈앞에서 비대한 돼지 하나가 올라왔다. 아까까지 조금 떨어진 귀퉁이 아래에서 우왕좌왕하던 당고호였다.
“사부. 어르신? 두 분께서 왜 이곳에…….”
“…….”
“…….”
들켰다. 일순, 얼어붙은 두 노인이 말을 못 하고 있자, 당고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마침 다행입니다.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하게 한 곳을 가리켰다.
“광 호위가 힘이 다한 모양입니다. 이제야 쓰러졌습니다.”
***
자라락. 자라락.
모래알은 한참을 떨어져 내렸다.
탁한 공기 속에서 전장의 참상을 바라보는 모산파 장로. 이천의 눈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라졌구나.”
왠지 허탈하기까지 한 신음이었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제자 하나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 장로님. 무슨 말씀입니까?”
“영안을 돋워보거라. 운 각사의 악령이 사라졌다. 완전히.”
스윽.
길게 늘어뜨린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이천 장로가 말했다.
“음… 아!”
제자는 태양혈에 손끝을 대고 한참을 집중한 끝에 탄식을 터뜨렸다.
그는 모산파의 제자 중 유달리 도력이 높은 이였다. 장로의 말대로 영안을 돋워보니 흉흉하던 운 각사의 영기가 낌새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악령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악령(惡靈)은 단순한 영이 아니다. 죽은 혼이 사념과 악념. 세상의 부(腐)의 요소와 엮여서 이뤄지는 존재다.
따라서 반신반령의 괴물이 목숨을 잃으면 혼(魂)이 떠돌며 사방으로 악념을 뿌리는 법인데, 지금의 전장에는 그런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사삭. 바사삭.
그저 자욱한 모래 먼지만 계속해서 떨어져 내릴 뿐.
“아마도… 베었나 보다.”
“…베어요?”
“심검(心劍)으로 말이다.”
심검. 그 말에 제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심검은 다른 말로 심즉살(心卽殺).
마음에 살기가 일면 그 자체로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전설 속의 절기다.
시정의 이야기꾼들이나 이런 게 있니 저런 게 있니 떠들지, 실제 그런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견문 넓은 모산파의 인물들도 처음 목도하는 일이었다.
“음… 등봉조극(登峯造極) 같은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대원로 같은 분이 무(武)의 경지를 이루면 나타나는 형태라고…….”
무예에 생소한 제자 하나가 도가 경전을 인용해서 물었다.
등봉조극은 도인이 오랜 수련과 많은 깨달음을 통해 오르는 지고의 경지다. 흔한 표현으로 우화등선이라 하는데, 도가에서는 이것이 최고의 단계라고 일러진다.
“노부가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만…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싶다. 대원로께선 아직 등선하지 않으셨지 않느냐.”
“…맙소사.”
제자들의 얼굴에는 경탄이 가득했다.
구도와 축사벽귀(逐邪壁鬼: 사악함을 물리치고 귀신을 막아내다)에만 전념해 온 그들로선, 모산의 대원로만 해도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경지다.
그런데 거기서 한발 더 나간, 더 높은 경지라니. 그것이 방금 쓰러진 광휘가 이룬 경지라니.
“그만큼 현세에 존재할 수 없는 무학인 게다. 그런 심검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다면… 이미 사람이 아닌 무엇으로 봐야겠지.”
외견은 태연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기실 제자들보다 더욱 놀라고 있는 것이 이천 장로였다.
그의 눈앞에 광휘가 보인 무위는, 호풍환우(呼風喚雨: 바람을 부르고 비를 뿌림)하는 전설의 신선이나 보일 모습이었다.
“장로님, 그럼 혹, 광휘란 자가 기현 도사께서 말씀하신 그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자 하나가 바짝 긴장을 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것도 아니다.”
이천 장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귀라면 응당 사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법. 한데 저자는 그런 기운이 없다. 정확히는 잠시 비틀거리는 듯했으나 다시 사라지지 않았느냐.”
“아니, 그럼… 대원로께서 잘못 아셨다는 겁니까?”
또 다른 제자 하나가 묻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나운 눈총에 찔끔했다.
이천 장로는 그에 허허 웃으며 다시 한번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럴 리가. 대원로께서는 이미 모든 걸 아시고 계셨다. 우리 역량으로는 운 각사를 퇴치하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지.”
“으음…….”
“그런데도 왜 우리더러 직접 가서 악귀가 깨어나는 걸 막으라고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절레절레. 끄덕끄덕.
이천이 알았다는 얼굴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제자들의 시선도 주욱 한쪽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장씨세가의 장련.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여인 하나가, 초죽음이 된 광휘를 꼬옥 안으며 보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저 여인을 살렸다.”
“…그렇지요.”
“그리고 저 여인이 광마로 돌변한 광휘. 저 흉신악살이 되려던 무인을 제어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거였던 거다.”
“아아!”
그제야 하나둘씩 제자들은 이해했다.
대원로는 애초에 자신들더러 악귀를 내치라고 명을 내린 게 아니라, 악귀를 내칠 수 있는 사람을 도우라고 명했다는 것을.
“후우… 부끄럽구나.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노부는 저 소저를 구하는 와중에 번뇌가 가득했다.”
이천이 몇 번째인지 모를 고개를 내저었다.
신녀인 아영의 도움이 있었다 한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적공을 쌓아온 도력이 한순간에 고갈되어 갈 때, 이천 장로는 정말로 고민과 절망의 기로에 있었다.
불가에 이르기를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구층탑을 쌓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전력도 안 되는 여자 한 명을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럴 도력으로 운 각사가 퍼뜨릴 사념과 악념을 정화하는 게 더 큰일이 아닐까 하는 고민에.
“뭐. 잘되어서 다행이지. 노부도 아직은 멀었나보다.”
스윽.
이천 장로는 소매를 들어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이마를 닦아냈다.
정말이지, 조금 전까지는 진땀나는 상황이었다.
***
“끄으응…….”
“윽! 크헉!”
“하아… 하아.”
전투의 상흔은 도처에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싸움은 승리했지만, 파멸적인 전투 후의 광경은 이기고도 이긴 자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의술 아는 사람 있나!”
“출혈이 가장 심각한 사람부터 옮겨!”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뚫고, 좌중을 일깨우는 외침들이 있었다. 부상을 입었지만 그나마 운신이 가능한 무인들이었다.
사해는 동도라는 말이 있듯, 생사투를 함께 겪은 이들은 자기 문파, 남의 문파 할 것 없이 서로를 챙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목소리가 있었다.
“보았는가! 내가 이겼다! 결국 이 묵객이 이겼다고!”
거친 숨소리, 정신없는 외침 속에서도 주위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허허허허…….”
힘겹게 몸을 지탱하며 일어서던 방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동안 쭉 지켜보니 뭔가 한 가닥 모자란 느낌을 받긴 했지만 오늘은 참.
“여러 부분에서 모자란 느낌인데.”
“뭐. 그러려니 하게.”
툭툭.
때마침 다가와 그의 어깨를 치는 맹인. 구문중이었다.
“적어도 초상집처럼 우중충한 것보다는 낫지 않나.”
“뭐…….”
입꼬리를 슬쩍 들어 보이는 그를 보자 방호도 웃음이 나왔다.
하긴 생각해 보니 저런 행동이 그저 바보같이 여겨지진 않았다.
‘젊은 날의 호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호승심과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여유.
그것이 삶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그렇기에 자신들도 저 지옥 같은 싸움을 견뎌온 것이 아닌가.
“칭찬할 것은 칭찬하자고. 저 애송이가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어, 끙.”
옆으로 다가온 웅산군은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으며 신음했다.
“그건 그러네. 그럼 나중에 내가 비무를 한 번…….”
“참아라.”
그리고 그때 끼어드는 염악.
초주검이 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제법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제 막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놈의 기를 꺾어놓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냐.”
“뭐, 그것도 그렇지.”
천중단 대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승리는 이래서 좋았다. 다들 여유를 가지고 관대해질 수 있으니까.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달리 말해 누구보다 더 혹독한 중심에서 버텼던 그들은 얼핏 예전의 주마등까지 볼 정도였다.
“하하하하! 다음에는 이렇게 쓰러지지 않겠다. 광휘! 너뿐만 아니라 천중단도 하나씩 꺾어주겠다 이 말이다!”
“…….”
“…….”
한데 훈훈하게 마무리될 것 같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악 가라앉기 시작했다.
“칭찬은 취소한다.”
제일 처음으로 웅산군의 얼굴이 굳었다.
“난 저 녀석과 달랐지.”
염악은 빠르게 입장을 전환했고.
“아주 뒈지게 패줘야겠군.”
방호가 날카롭게 뒤를 이었으며.
“하긴. 사람 열을 모으면 그중 한두 놈은 꼭 정신줄을 놓더군.”
구문중이 멋쩍게 웃으며 마침표를 찍었다.
***
“응? 네가 왜 여기 있느냐?”
호호탕탕하게 소리치던 묵객은 눈을 크게 떴다. 문득 낯익은 청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 손 보태러 왔습니다.”
“누가 사부… 아니, 그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내 무위를 보았겠구나. 어떠냐? 이 묵객이 저 흉신악살 같은 놈을 쓰러뜨린 걸 본 감상은?”
찌푸리던 묵객은 대뜸 의기양양해져서 물었다.
“죄송하지만 방금 도착해서…….”
모용담명은 땀과 먼지로 잔뜩 뒤엉킨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광휘를 보고는 입을 벌렸다.
“정말… 해치우셨군요.”
“물론.”
“아마도 치열했겠지요?”
“생사를 넘나들었지.”
“과연. 제가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군요.”
담명의 눈이 신뢰를 가득 담고 비쳐오자 묵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만.”
“예.”
“음… 보는 눈이 많으니 조금 가까이 오거라.”
묵객이 말했다. 담명은 일어서지 않고 누운 채로 말하는 사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시키는 대로 귀를 가까이 했다.
“좀 업혀야겠다.”
묵객이 작게 소리 죽여 말했다.
“…예?”
“네가 날 좀 업으란 말이다.”
묵객의 얼굴이 이젠 난처함으로 붉어졌다.
그는 황당해하는 담명을 향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겨우 말을 덧붙였다.
“이기기는 했는데… 워낙 상대가 센 놈이라… 덕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안 남았구나.”
“아……!”
그는 급히 묵객을 어깨에 들쳐 메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사부님.”
“…왜?”
“가장 큰 공을 세우신 사부님에게 저 사람들은 왜 저럽니까.”
“누구?”
묵객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 담명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헛숨을 삼켰다.
“이크!”
웅산군, 염악, 방호, 구문중.
전 천중단원 모두가 담담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핏 그 뒤에서 무림맹주가 한숨을 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것도 보였다.
“…가자.”
“예?”
“어서 가자고! 어서!”
“아. 예!”
담명은 갸웃거렸지만 일단 지엄한 사부이자 이 전장의 영웅을 업고 급히 달아났다.
***
‘삼대세가라. 서혜가 손을 썼구나.’
타닥. 사사사삭.
맹주는 전장을 흐뭇하게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다친 사람이 많고 죄다 파괴된 전장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광휘를 향해 달려가는 노천.
묵객을 데리고 눈치 빠르게 뛰어나간 모용세가의 청년.
선두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서군. 그 뒤로는 색 바랜 남색 장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의원들인가?’
싸움이 끝난 후에 도착한 후발대에는, 무인과 무인 못지않게 많은 의원차림의 사람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운 각사와의 싸움에만 골몰한 자신과 달리, 마침 하오문에서는 싸움 이후까지 바라보고 처리를 준비해 준 것이다.
“맹주님.”
“……?”
고개를 돌리자 팽가운이 서 있었다.
“오, 몸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괜찮으냐고 물으려던 맹주는 질문을 바꿨다.
신임 팽가 가주의 안색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무례가 아니라면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허, 팽가의 가주가 그리 스스로를 낮출 것은 없지. 말해보게. 뭐든 대답하지.”
“그럼 분부대로. 본 팽가에는 대단히 뛰어난 무인이 있었습니다. 팽오운. 사적으로 제게는 대사형이었다가 불운하게 유명을 달리한 인물인데…….”
“아, 그 사건에 대해서는 들었네. 황궁에서 잠시 머물 때.”
“그럼 애기가 편하겠군요.”
팽가운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으윽. 어이쿠!
신음과 비명. 전후 처리의 수습이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통에 이쪽의 말을 들을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는 저주받을 마공을 익혔습니다.”
“…알지. 그래서?”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흔쾌히 대답해 주고자 했던 그의 얼굴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그 마공은 대체 누가 주었을까요?”
“은자림이지 않나.”
“저도 조금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팽가운의 말에 맹주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졌다.
“조금 전까지?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 싸움에서 뭔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놓치고 있었는데…….”
팽가운의 얼굴은 고민, 번뇌.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맹주마저 뭔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떠오르는군요. 팽오운 사형이 벌인 혈사. 거기서 그가 보인 마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음, 나도 그렇게 들었네.”
“한데, 이 싸움에서 운 각사가,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은자림의 교도들, 그중에서 대사형이 썼다는 마공을 시전한 이가 있었습니까?”
“……!”
맹주가 헛숨을 들이마셨다. 잔뜩 굳은 얼굴로 팽가운이 더 소리를 낮춰 말했다.
“팽인호. 그가 죽기 전에 제게 건네준 서신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마공을 쓰는 살수들이 있었고. 그것이 때로는 폭굉보다 더욱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은자림은 본래 직급 체계가 뚜렷했다.”
“…자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맹주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굳었다. 팽가운은 조심스레, 정말로 누가 들을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소리 죽여 말했다.
“은자림은 왜 마공을 전면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팽오운에게 마공을 건넨 것이 정말 그들이었을까요?”
“…….”
맹주의 눈이 꾸욱, 감겼다. 얼핏 그의 기억 속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몇몇 장면이 떠올랐다.
산불처럼.
겨우겨우 꺼진 숲에서 다시 숨은 불길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는 듯 끔찍한 기분이었다.
“역시. 맹주께서는 짚이는 것이 있으시군요?”
“…….”
팽가운의 말에 맹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껏 매우 급박하게, 그리고 정신없이 처리해야 했던 망령들.
마땅히 죽어서 썩었어야 했을 놈들을 잡느라, 그는 아주 당연한 의문을 이제야 떠올렸다.
‘누가.’
기억이 주마등처럼 과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싸움. 죽음. 광기. 폭발.
미친 듯이 흘러가던 기억이 일순, 딱 멎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누가 그들을 살려냈단 말인가…….”
천중단이 창설되던 그때였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