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안명준 교수와 주정빈 영화감독.
그 두 사람은 자유 단편영화제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와 있었다.
그들도 나름 자신의 지반을 잘 다지고 성공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함동호 앞에서는 마음대로 뻗댈 수는 없었다.
함동호는 그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함 교수님 은퇴하신다는 말 나오지 않았었어요?”
“아, 그건 저도 들었어요. 교수직 말고 전부 내려놓는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은 함동호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면서 단편 영화를 심사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 보니까, 아직 현역이신 것 같은데. 왜 은퇴하시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뤄놓으신 게 많으시잖아요. 여기서 굳이 더 뭔가를 할 이유도 없고요. 그런데 애초에 은퇴 이야기부터가 찌라시로 도는 거라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죠.”
“하긴, 함 교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니까요.”
주정빈의 말에 안명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동호가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업계 바닥에서 조금씩 돌고는 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작품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네요.”
“네, 솔직히 좋은 작품을 찾기보다는 그나마 나은 작품을 찾아야 할 정도예요.”
“그래도 작년에는 괜찮은 작품이 꽤 있었는데. 이번에는 꽝이네요. 직원들이 괜찮은 작품 있다고 해서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어쩔 수 없죠. 아마추어들이 하는 거니까요. 저희도 이 정도인데, 함 교수님은 어떻겠어요. 눈도 엄청 높으신 분인데 저희보다 더 괴로워하지 않으실까요?”
그 말에 주정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그들만 하더라도 괜찮은 작품을 찾지 못했는데, 함동호는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함동호의 눈은 매우 높았다.
단순히 많은 작품을 보았기에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직접 작품을 만든 적이 있었기에 더욱 높아진 것이었다.
함동호가 제작한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느끼고 배운 것들이 많았다.
“어? 저기 지금 최 교수님이랑 같이 있는데요?”
“그렇네요. 두 분이 같이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시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최 교수와 함께 있는 함동호를 향해 다가갔다.
함동호의 표정이 심각할 것이라 예상하며.
“……?”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함동호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거렸다.
그의 표정은 두 사람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영상을 보는 함동호의 표정은 멍해 보였고, 멍한 그 표정 속에서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함동호의 표정에 그들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을 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들은 함동호가 보고 있는 단편 영화에 관심을 보였다.
* * *
‘이런 기분도 오랜만이네.’
화면을 바라보던 함동호는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하루’의 영상을 벌써 다섯 번째 돌려보는 중이었다.
보통 이 정도 봤으면 질릴 법도 하건만.
“재미있네.”
그는 ‘하루’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연출을 잘해서?
조명을 잘 사용해서?
음향이나 소품들을 잘 사용해서?
그래, 물론 그런 것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함동호의 시선은 단순히 연출과 음향만을 보고 듣지 않았다.
‘이런 배우가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의 시선은 화면 속 연기하고 있는 배우에게 향해 있었다.
하얀색 가면을 쓴 채 연기하고 있는 배우의 모습은 함동호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나랑 지금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는 거지?
―알겠어.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내가 술래. 잡히면 그대로 끝. 알았지?
영상 속 최덕수는 가면을 벗으며 다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다정한 말투 속에서는 숨길 수 없는 흥분과 즐거움.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 하는 충동이 엿보였다.
‘이렇게까지 감정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은데.’
많은 배우를 만나봤기에 연기를 보면 그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최덕수를 맡은 배우는 대단한 연기자였다.
단순히 연기를 잘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이해력이 있는 배우였고.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잘 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연기를 진짜 잘하네요.”
“그러게요. 제가 봐도 엄청 잘하는데. 다른 분들도 지금 인정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이 정도 연기면 꽤 유명한 사람일 것 같은데. 왜 처음 보는 것 같지?”
그들은 최덕수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연기는 상당히 좋았다.
단순히 일반인의 기준이 아니라,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연기.
“저도 많은 배우를 봤지만, 이렇게까지 카메라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시선 처리부터 조명을 이용하는 것까지. 어떻게 해야 좋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아는 모습이에요.”
“배역의 이해도도 너무 좋아요. 창문을 열고 손을 뻗는 이 장면에서도 보면 흥분과 차분함이 공존하는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고 있고요.”
“감독이 배우를 너무 잘 찾았네요. 이건 연출을 떠나서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으니까요. 상대 배우도 연기가 나쁘지 않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함동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위로는 어느새 심사위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그 사람의 연기를 잘 담아낸 감독도 칭찬해 줄 만하네요. 미숙한 게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건 확실하게 담아냈으니까요.”
심사위원들의 말을 듣던 함동호는 ‘하루’를 연출한 감독에 대해 말했다.
“좋은 배우와 괜찮은 감독이 만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좋은 작품입니다.”
함동호는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감독이 연출을 잘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배우가 너무 뛰어나면, 감독이 그 기세에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루’를 연출한 감독은 배우의 기세에 잡아먹히지 않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었다.
연출을 살펴보던 함동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것도 잠시.
그의 눈은 다시 배우의 연기에 집중되었다.
‘묘하단 말이지. 젊어 보이는데 정작 연기하는 방식은 올드하단 말이지. 마치 3, 40년 전에 연기했던 사람처럼.’
최덕수를 맡은 배우의 연기에 사용되는 기법은 옛날에나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시선 처리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발성이나 몸을 사용한 연기까지.
이제는 잘 배우지도 사용되지 않는 연기 기법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사내의 연기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엔딩 크레딧 올라오네요.”
“배우 이름이 뭐예요?”
“연출 김민석. 그리고 최덕수 역이…… 한성태?”
심사위원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성태의 연기는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들은 한성태란 이름이 매우 생소했다.
“이름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네, 이런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가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하죠.”
“누구지? 진짜 궁금하네요. 작품 찍은 게 없나?”
심사위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함동호는 엔딩 크레딧에 올라온 이름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출 김민석 / 최덕수 한성태 / 윤희…….]한참 동안 이름을 바라보던 그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심사를 보는 동안 줄곧 어두웠던 그의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 * *
“허억…… 허억……!”
공원의 산책로를 달리는 한성태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한성태는 중간에 멈춰서는 일은 없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사람의 근육은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더욱 강인해진다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지금부터 하는 운동이 몸의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계속 움직이기를 재촉합니다.]달리고 나서 바로 맨몸 운동을 시작하는 그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알려주는 대로 운동했고 힘들다는 이유로 중간에 멈추는 일은 없었다.
“야, 야야. 너 그러다 죽어! 뭔 놈의 운동을 그렇게 해?”
철봉에 매달려 있던 한성태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손에 힘을 풀었다.
“후우…….”
“야.”
숨을 가다듬는 그의 앞으로 물병 하나가 불쑥 내밀어졌다.
고개를 든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땀을 흘리고 있는 김민석을 볼 수 있었다.
“감사.”
한성태는 김민석이 내민 물병을 받아들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무리하는 게 아닌지 걱정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자신은 저 강도에 두세 배는 했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은 당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연기의 신들이 투덕거리는 메시지를 보며 웃음을 흘리던 한성태는 다시 운동하기 위해 움직였다.
“야야. 적당히 해. 그러다 너 진짜 쓰러질 수도 있어.”
“안 쓰러져.”
“아, 내가 힘들다고. 조금만, 조금만 더 쉬자. 응?”
김민석의 간곡한 부탁에 한성태는 볼을 긁적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 혼자 운동해도 되는데.’
한성태가 운동을 나왔을 때, 김민석은 자신도 같이하겠다며 따라 나왔다.
네가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며, 김민석은 한성태의 운동을 죽기 살기로 같이 했다.
한성태야 지금의 강도에 익숙하지만, 처음 운동하는 김민석에게는 절대 익숙하지 않을 터.
‘말려도 듣지를 않으니.’
따로 운동하자는 한성태의 말에도 김민석이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사람이 좀 쉴 줄도 알아야지. 너 그러고 또 집에 들어가면 대본 볼 거 아니야.”
“응.”
“어후……. 가끔 보면 너는 나랑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까지 든다니까? 어떻게 된 게 쉬는 법을 몰라요.”
잔뜩 투덜거리는 친구의 모습에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하루 정도는 조금 느긋하게 움직여도 되겠지.
“그럼 딱 5분만 쉬고 운동 시작하자.”
“……그래. 그냥 날 죽여라, 죽여.”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병을 들었다.
우우웅!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성태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고개를 내렸다.
―김무철: 성태야, 너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되냐? 시간 되면 촬영장 한번 와봐.
김무철에게 온 메시지.
“미친!”
바로 옆에서 김민석이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김민석의 모습에, 그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살펴본 한성태의 표정이 묘해졌다.
[자유 단편영화제에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하루’의 심사 결과가 담긴 메일.
수상자 명단이 보였고 그 속에 ‘하루’의 이름이 당당히 기록되어 있었다.
“축하한다.”
한성태의 말에 김민석이 멍하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한성태는 김무철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성공을 향한 계단에 한 걸음 올라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