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입문(入門) (5)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인이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야윈 얼굴에 세 갈래 수염 끝이 뾰족하다. 그는 동판(銅版)을 뒤에 댄 등불을 가까이 두고서, 환부를 신중하게 살폈다.
침을 쓰고, 약을 바른다. 붕대를 감는 것도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었다.
워낙에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망이군.”
손발 전부 거죽이 다 벗겨졌다. 엉망도 이렇게 엉망일 수가 없었다.
“자칫하였다가는 큰 장애가 남았을지도 몰라. 아니, 네놈은 아이를 맡았다는 녀석이, 그래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냥 두고 본 게냐?”
“……죄송합니다.”
종남파 의약당을 맡은 조연선생(趙緣先生)은 바로 정색하면서 타박했다. 도기홍도 선생 앞에서는 감히 다른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얌전히 고개 숙이고서 꾸중을 들을 뿐이다. 분명 자신 잘못도 크다.
고진무, 이 아이가 한번 집중하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폐관 때는 물론이고, 입문식 때도 겪었건만.
어찌 보면 이럴 수도 있다고 염두에 두었어야만 했다.
“면목 없습니다. 선생.”
“에이잉.”
조연선생은 못마땅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약에 적셔 놓은 붕대를 대충 털고서 다 감지 않은 아이 발을 덮었다.
고진무는 내민 발바닥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지만, 일단 꾹 참았다. 그리고 당황한 눈초리로 조연선생과 도기홍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이 미련해서 그런 것을.
“저, 이건 제가…….”
“아아, 조용히 있어. 으이그. 하여튼 무인이라는 놈들은 죄 이 모양이지. 정도껏이란 말을 몰라. 어린놈이고, 나이 든 놈이고. 쯧쯧.”
“…….”
조연선생은 바로 고진무 입을 막았다. 지금 선생에게 중요한 것은 부상을 살피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식한 입문식을 한다고 해서 탈 난 아이가 몇이던가.
그중에서도 제일 상태가 심한 것이 코앞에 있는 이 녀석이었는데, 자리 털고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손발이 죄 벗겨져서는 이리 왔으니.
의원으로서 조연선생의 속이 좋을 턱이 없는 일이다.
그럴수록 도기홍은 점점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타박을 잔뜩 들었다. 들어 마땅한 일이다.
“조치는 다 했다. 사나흘 정도는 꼼짝 않고 있어야 할 게다. 못해도 달포는 있어야 아물 게야.”
“주의하겠습니다.”
그렇게 심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험한 치료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아이도 참 어지간한 녀석이다.
조연선생은 얌전히 앉아서 붕대 감은 두 손을 어설프게 들고 있는 고진무를 흘깃 보았다.
“흠, 이놈이 그놈이냐? 검오 녀석에게 코 꿰였다는?”
“조연선생. 코가 꿰이다니요.”
“쯧, 그놈은 하여튼 제멋대로인 놈이었지.”
조연선생은 짧게 혀를 찼다. 못마땅한 기색이 솔직했다.
이름 좋아서 검오이니 어쩌니 떠들 뿐이지, 조연선생에게는 허구한 날 무리 끝에 실려오면서 말은 더럽게 들지 않는 어린 녀석에 지나지 않았다.
조연선생은 문득 피식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놈도 손발이 죄 이 모양이 되어서 종종 실려왔지.”
“스승께서요?”
“왜, 네놈 스승 얘기라고 귀가 솔깃하느냐?”
“네.”
고진무는 와중에도 맑게 웃었다. 그러자 조연선생은 한층 어이가 없어서 눈썹 찌푸린 채 아이를 보았다.
“하이고, 이놈도 참 어지간한 녀석이구먼. 도가야. 네놈 고생문이 훤하다.”
“예, 선생.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도기홍은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앉아 있는 고진무 머리를 힘주어 쓸어내렸다.
“으이그, 이 녀석아.”
다른 말은 없었지만, 타박이 잔뜩 실린 손짓이었다.
치료를 다 받고 시무관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한밤이었다.
고진무는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방을 찾아 들어왔다. 두 손도 엉망이고, 발도 엉망이다. 절로 낑낑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문지방 하나 넘어서는 것도 일이다.
의약당에 얌전히 누워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의약당도 만석이라, 딱히 내어줄 자리는 없었다. 그저 붕대나 그때그때 갈면 그만이니.
도기홍에게 뒷덜미 잡혀서 의약전으로 갔다가, 고진무는 조심조심하는 걸음으로 시무관에 들었다.
그런데 들어서기가 무섭게 마주한 것은 여러 아이의 험한 눈빛이었다.
불이 확 밝혔다.
도끼눈을 뜨고서 고진무를 노려보는데, 하나같이 영 엉망인 꼴을 하고 있었다.
자잘한 부상으로, 누구는 눈가가 잔뜩 부어 있거나, 누구는 온통 울긋불긋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꼴로 아이들은 고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벼르고 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쏟아지는 눈빛을 받으면서 고진무는 잠시 굳었다.
“으으음.”
고진무는 입술을 꾹 말아 물고서 사뭇 난처한 소리를 흘렸다. 번쩍거리는 아이들 눈초리가 하도 험악하니.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지만, 고진무는 본래에 눈치가 재빠른 아이였다. 험한 사막에서 주점 일을 어디 한두 해 거들었던가.
분위기를 싹 파악하고서 앞뒤 사정을 대번에 꿰어 맞췄다.
‘아, 내가 난리를 쳐도 아주 단단히 쳤구나.’
고진무는 상황을 바로 알았다. 일을 저지른 걸 이제는 알았다. 그럼 어쩌겠는가. 고진무는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선 채 깊이 허리 숙였다.
“미안. 오늘 내가 많이 잘못한 모양이야. 미안해.”
“잘못? 자알못? 미안해? 그걸로 끝이냐?”
아주 난장판을 있는 대로 벌여 놓고서, 그냥 잘못한 정도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휩쓸린 덕분에 다들 끼니를 받지 못하여서 배를 곯기까지 했다.
그래도 고진무는 욱하는 아이에게 다시금 고개 숙였다. 그뿐만 아니라,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꾸벅꾸벅 고개 숙였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할게.”
“너. 너 정체가 뭐야!”
큰소리 낸 아이, 언예진이 재차 다그쳤다. 그 옆으로 송아영도 같이 나섰다. 턱을 치켜들고서, 고진무는 하얀 눈으로 흘겨보았다.
둘이 그리 나서니, 고진무는 배시시 웃었다.
“아, 하하. 나는 서쪽에서 온 고진무야.”
“지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응? 그럼 뭘?”
고진무는 순박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마냥 순박하니, 다른 사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 모양새가 사람 속을 더 끓게 하는 데에 뭐가 있다.
“이, 이익!”
언예진은 속을 붙들었다. 아무리 열이 난다고 해도 손발에 붕대를 두껍게도 감아놓은 녀석에게 달려들 수는 없다.
“후우, 후우.”
언예진은 숨을 거세게 몰아쉬면서 일단 다잡았다. 그는 연신 입술 끝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그러다가 송아영에게 눈을 돌렸다.
“네가 뭐라고 좀 해봐라.”
“흠.”
송아영은 애써 차분한 기색으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언예진만큼이나 의아한 마당이었다.
“이름이 고진무라고.”
“응.”
“언제 종남파에 들었어?”
“어…… 한 달 보름 정도?”
“한 달, 보름?”
송아영은 눈썹을 바짝 모았다. 그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다른 아이라면 모르지만, 송아영은 종남산에서 가까운 경조부 출신이었다.
그때에 일대 강호인들이 크게 어수선하여서 가문 어른들도 걱정하지 않았던가.
듣기로는 비보를 지닌 자가 있어서, 그 비보를 손에 넣으면 단숨에 천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한참 떠돌았다.
실제로 경조부 근처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이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소란이 종남산까지 이르는 통에, 가문 어른들 사이에서 소리가 오간 것을 송아영은 기억했다.
“혹시 비보를 들고 있다는 게…….”
“비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아니야. 그럴 리는 없지.”
송아영은 퍼뜩 정신 차리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보로 인한 강호의 큰 소란에 고진무처럼 어린아이가 얽혀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송아영은 다시 차가운 눈초리로 고진무를 노려보았다.
“너, 우리한테 손을 쓴 검법, 그거 뭐였어?”
“음, 팔범검세. 오늘 배운 거.”
“그게? 그게 팔법검세라고!”
“그럴……걸?”
딱히 아이들을 상대한 기억은 없지만, 하루 온종일 펼치고 또 펼친 것은 팔법검세였다.
덕분에 두 손, 두 발이 엉망이 되기는 했지만.
“이, 이이이!”
언예진은 속에서 천불이 솟아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게 진짜 장난하나.’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서 송아영과 같이 손을 쓴 데다가, 작정하고 펼친 배운장까지 제압한 검 놀림, 그게 고작해야 팔법검세란 말인가.
송아영도 그렇지만, 언예진도 놀림 받는 것만 같았다.
속으로는 당장 달려들고는 싶은데, 지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고진무였다.
저런 상태인데 달려들면 뭣하겠나.
언예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치미는 울화를 억지로 붙잡았다. 아이는 자신을 다잡겠다고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소리 나게, 쫙! 때렸다. 두 볼이 얼얼하다.
손바닥 자국이 붉게 남을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진무는 움찔하면서 언예진을 올려다보았다.
언예진은 당장 더운 숨을 훅 뿜어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크게 뜬 눈에 불을 켠 듯하다. 이글대는 눈으로, 고진무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고씨! 너 그거 낫고 나면, 제대로 한 판 붙자!”
“야……, 언예진.”
언예진이 잔뜩 힘주어 다그치기 무섭게, 옆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송아영이다.
송아영은 팔짱을 낀 채 새삼 찌푸린 눈초리로 언예진을 흘겨보았다.
“이게 어디서.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찬물? 위아래?”
“내가 누나잖아. 넌 나 다음으로 해.”
“이 와중에 나이는 무슨…….”
“억울하면 일찍 태어나든가.”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나 송아영은 진지했다. 짙은 눈썹을 바짝 치켜들었다. 언예진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보자 보자 하니까. 잠깐 같이 싸웠다고 내가 만만해 보이냐.”
“그러엄, 만만하지. 그리고 누나라고 못 불러?”
“누나? 누나는 무슨!”
“이게!”
버럭버럭, 느닷없이 둘이서 싸움을 벌일 판이다. 방에 있는 아이들도 난데없어서, 이번만은 편들기보다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고진무는 가운데에 껴서 송아영과 언예진이 서로 뻗대는 모습을 난처하게 보고 있었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서 서로 힘주어 밀어댔다. 키가 엇비슷하니 그것도 되는 일이다.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한참 물러나서는 다들 딴청이었다. 어쩔 수 없어서, 고진무는 둘을 만류하면서 말했다.
“아아, 그러지 말고, 그냥 둘이서 같이 해.”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으르릉거리던 송아영과 언예진이 잠시 주춤했다. 둘이 같이 고개를 돌렸다. 어이없는 눈동자였지만, 고진무는 방긋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냥 둘이서 같이 와. 같이 해도 나는 괜찮아.”
왜 굳이 먼저 하겠다고 싸우는지, 고진무는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참 순박한 얼굴이고 악의 없는 눈길이다.
송아영과 언예진은 잠시 입을 닫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어쨌든, 자기가 더 세다는 얘기가 아닌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이!”
“뭐 이 새끼야!”
동시에 돌아보면서 이를 드러냈다. 험한 욕설이 터졌지만, 고진무는 헤헤, 그저 웃기만 웃었다.
주변 아이들은 그만 아연한 얼굴로 셋이 하는 양을 빤히 보았다.
송아영이고 언예진이고 원래 이름 있는 아이들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저기 저 녀석은 또 뭐람.
“서천에서 온 고진무라고.”
“허어, 영 모를 녀석이기는 한데. 저놈도 대단한 걸물이기는 하다. 그치?”
“어? 어어. 그르게. 걸물이네.”
낮에 서로 머리끄덩이 붙들고서 악을 쓰던 아이들이다. 지금은 같이 어깨를 맞대고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말했다.
“야, 그냥 우리 먼저 자자. 쟤들 저러다 밤샌다.”
“그치?”
“그래, 그래. 자자. 배도 고프고, 피곤하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다가 바로 돌아서서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 생각대로 셋은 밤늦도록 한참을 입씨름했다. 아니, 싸우기는 송아영과 언예진이었고, 고진무는 두 녀석 사이에 붙들린 채였다.
몸 빼기는 늦어서, 그냥 머쓱한 웃음만 겨우 흘렸다.
“하, 하하하.”
“너 지금 웃었냐? 웃어?”
“우리가 웃겨?”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고진무는 한참 난처하여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시무관에서의 실질적인 첫날밤을, 고진무는 이렇게 어렵게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