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만검귀종(萬劍歸從) (2)
만검산장 정문, 문루는 드높았고, 얼핏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큰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곳으로는 상당한 높이의 돌계단을 정성스럽게 깔아두었다.
강동오서 세 사람은 막 돌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대로 계단을 박차고서 단숨에 높이까지 솟구치려는 참이었다.
놀라고 두려움 가득한 비명과 고함이 정신없이 터졌다.
“와악!”
“히야아악!”
“도, 도망! 도망쳐!”
쏟아지듯 무수히 많은 인파가 와르르 도망쳐 나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도망쳐 내려오는 이들은 다들 제각각이었다. 번듯한 만검산장 사용인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고, 여러 용부, 무부들도 뒤섞여 있었다.
“으음, 이게 무슨?”
백옥상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음했다.
우르릉! 우르르릉!
산장 안쪽에서 울리는 큰 소리가 연신 계곡 절벽을 타고서 맴돌았다. 묵직한 뇌운이 몰려오는 듯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봐, 잠깐!”
금강이서, 강저가 스치고 지나치는 한 사내를 덥석 붙잡았다.
딱 보기에도 그는 강호풍파에 뼈가 굵은, 경험 많은 용부였다. 덜컥 붙들린 그는 기겁하여서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그는 저 안에서 무슨 꼴을 당하였는지, 얼굴은 파리했고, 한쪽 눈가가 시퍼렇게 부풀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처맞은 꼴을 하고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요?”
“나, 나도 몰라! 모른다고!”
사내는 강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니, 뿌리치려고 했지만, 단단한 강저의 손아귀에 손목이 요지부동이었다.
“으익! 익!”
몇 번 힘을 쓰다가 당황한 눈으로 강저를 다시 바라보았다. 강저도 그렇지만 강소도 옆으로 다가와서 차분하게 물었다.
“잠깐 진정하고, 그냥 아는 대로만 말해 보시오. 무슨 일이오?”
“아으으. 괴, 괴물이. 괴물!”
“뭐요?”
“히익! 괴물이 나타났다고!”
“무슨!”
사내는 다시 붙들고 캐묻는 말에 눈을 하얗게 뒤집으면서 울듯이 외쳤다. 더 붙잡고 있다가는 그만 경기라도 일으킬 듯했다.
당황하는 사이, 사내는 강저의 손을 억지로 뿌리치고 더욱 다급하게 도망쳤다.
으어어어!
도망하는 인파 사이에서 강저는 입술을 비틀었다.
“괴물?”
강소도 같은 얼굴이었다.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백옥상을 돌아보았다.
“누이, 이거 아무래도.”
“그래, 그 ‘교’라는 것들이 또 떠오르는군.”
백옥상은 차가운 어조로 내뱉었다.
강호의 온갖 기괴를 마주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화산에서 이미 기괴한 술수를 부리는 요사할 술사를 마주한 바였다.
바로 유명사자, 그는 무슨 수작질인지 몰라도 화산을 찾은 강호의 정영, 협사들은 물론 일반 백성까지 정혈을 모조리 갈취하지 않았던가.
그 유명사자는 ‘교’라고 하는 곳에 속하였고, 그곳은 상당한 세를 이루고 있어서 천하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 들었다.
겁에 질려서 ‘괴물’ 운운하는 소리에, 백옥상은 바로 ‘교’를 떠올렸다.
“가자.”
백옥상은 짐짓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제아무리 괴물이 어쩌고 하더라도 여기서 등 돌려서야 어디 강호의 협사를 자처하는 오서라고 할 수 있을까.
세 사람은 후다닥, 도망하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검산장의 활짝 열린 정문으로 뛰어들어갔다.
쿠쿠쿵!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진동과 굉음으로 돌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주변 전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정신없이 요동쳤다.
가까이에서는 더 버티지 못하고 기왓장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깨져나갔다.
이런 사태까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큰 소란은 예상한 참이었다. 산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피신 준비를 진즉 갖추었다.
그래도 산장 밖으로 모두 피신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불망과 사진초, 양하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다급하게 산장의 사용인을 비롯한 모두를 외당 밖으로 피신시켰다. 그게 제일 첫째였다.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건만.
불망이 다급하게 만검고 앞에 섰을 때에는 내려가는 통로가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겉모습뿐이라고 하지만 창고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만검고가 폭삭 내려앉았다.
“이, 이런…… 고, 고 소협!”
불망은 크게 외쳤지만, 그 소리는 아래로 내려가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땅이 들썩거렸고, 동굴은 아래에서 위로 계속해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불망은 지금 일어나는 붕괴 앞에서 굳어 버렸다. 망연자실하여서 두 손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으, 으으윽!”
쿠쿵! 쿠쿠쿠웅!
아래에서 굉음이 울릴 때마다 불망은 가슴이 덜컥,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불망은 불현듯 급한 숨을 삼키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아찔하다. 그렇지만 곧 정신을 다잡았다.
통로인 동굴이 무너졌을 뿐이지, 아래에 펼쳐진 만검고는 그 규모가 산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요한 만검고는 아직 건재하다.
“만검고가 무너지면, 여기도 폭삭 내려앉겠지.”
불망은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눈매에 힘을 주었다. 고진무에 대한 걱정이 크게 일었지만, 그는 어찌 버티어 낼 것이다. 그 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저 아래에서 아주 거대한 삿된 것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고진무는 홀로 저 아래에 갇혔다.
불망은 홱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만검고에서 허둥지둥 도망쳐 나온 여러 군웅 중 남은 몇이었다. 지쳐서 밖으로 더 도망도 못하고 햇살 아래에 털썩, 털썩 무릎 꿇기 급급했다.
대부분은 고진무의 검경봉혈에 당하여서 아직 사지가 온전치 못한 탓이기도 했다.
그들은 엉망진창인 꼴로, 무너지는 만검고 동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불망이 그들에게 급하게 물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아, 안에서요? 그건…… 어어…….”
딱 누구를 가리켜서 묻는 건 아니지만, 순간 백광이 번뜩이는 불망의 위압에 딱 짓눌려서 다들 어깨를 들썩였다.
그들은 더듬거렸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이들을 찾았지만, 전부가 불망의 하얀 눈초리에 완전히 눌려 버린 참이었다.
한 사내가 어찌 입을 열었다.
“괴, 괴물이었습니다. 땅에서 괴물이 튀어나왔어요.”
“괴물?”
역시 검룡인지, 뭔지 하는 것이 뛰쳐나왔다는 건가.
불망이 미간을 찌푸리자, 사내를 시작으로 다들 소리를 높여서 떠들었다.
“새카만, 칠흑 같은 기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이 난 것처럼 검은 연기가 솟구쳤는데, 그, 그것이 갑자기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사, 사람을 그대로!”
들으면 들을수록 불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확실히 만검고는 어떤 요물, 괴물을 봉인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지막에 젊은 검객이…… 뒤를 맡겠다고. 서둘러 도망하라고 해서. 겨, 겨우 기어 나오다시피…….”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였다.
그는 더듬거리다가 말끝을 흐렸다. 아무것도 못하고 서둘러 도망 나온 꼴이 너무도 처참한 까닭이었다.
그 젊은 검객이 누구이겠는가.
“으음…… 고 소협.”
불망은 눈매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고진무가 홀로 괴물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저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아니면 무너진 잔해를 전부 치워 버려서라도.
쿠쿵!
일어나자마자 재차 땅이 들썩거렸다.
***
만검산장, 사 씨 일족이 누대에 이르는 세월 동안 갖추었던 일만여 자루의 보검, 명검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다.
빛을 다 잃고 평범한 날붙이 꼴이었다.
검진이 무너진 탓이었다. 진세의 얼개를 이루고 있던 검대는 모두 넘어가고 부서졌다.
동굴 벽이고 바닥이고 쩍쩍 갈라졌으며,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위태하게 들썩거렸다.
그 한복판에서 고진무는 먼지 섞인 숨을 삼켰다.
고개를 흔들자, 땀방울이 후드득 흩어졌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자신의 철검을 새삼 곧게 들어서 눈앞에 세웠다.
몸은 지쳤지만, 그의 두 눈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검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검은 바위는 완전히 갈라졌고, 그 자리에서 굵은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치솟았다.
치밀어 오르는 연기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저 아래에 섬뜩하고 기괴한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진짜 모습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고진무가 이제껏 마주하였던 온갖 기괴한 것들을 다 끌어모아도 저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만큼 음습하고, 사악하며, 지독했다.
소름이 돋았고, 무릎 뒤가 들썩거렸다. 그러한 동요를 고진무는 곧 차분하게 다잡았다.
“후우, 정주일여. 정주일여.”
정한 마음을 기둥처럼 세우니.
고진무는 한 줄 경구를 나직이 읊조렸다. 아무리 천하의 절학이니 절세 보검을 지녔다고 한들, 마음이 탁하고 흔들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는 곧 눈을 다시 떴다.
담담한 눈길로 솟구쳐 오르는 검은 연기를, 그리고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갈라진 바위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처음에는 폭발적으로 솟구쳐 오르자마자 당장 만검고를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격하게 요동쳤다.
귀검은 저것을 제대로 봉인하고 있지 못했다.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여하간 귀검이 있고, 그동안 소란으로 저것을 억누르고 있었을 게 틀림없는 만검고 검진이 산산이 흩어졌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귀검처럼, 아니 솟구치는 새카만 칠흑의 기운은 더욱 게걸스럽게 마수를 뻗었다. 주변 군웅들을 노리고 마구잡이로 덮쳤다.
줄기줄기 뻗어 오는 칠흑의 기운은 휘청거리는 군웅들을 가차 없이 붙들었다.
고진무가 당장 달려들어서 거푸 끊어 냈지만, 그래도 열 몇에 이르는 자들이 삽시간에 당했다. 그들은 어찌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처절한 비명만을 남긴 채 검은 기운이 휘감기며 바위 아래로 사라졌다. 그들은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다.
그래도 힘껏 마수를 뻗은 것에 비하면 충분하지 않았다.
다시금 검은 기운이 덮쳐들었지만, 허겁지겁 도망하는 군웅들 뒤에서 고진무는 자리를 지키면서 뻗어 오는 검은 마수를 모조리 베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저것은 색이 약간은 흐려졌고, 처음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꿈틀거리는 연기만 일으킬 뿐, 아직 본래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저 아래에는 무엇인지 괴물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검룡이라고 지칭하는 그 무엇이다.
다만 고진무는 자신을 무겁게 노려보는 눈길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진무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등 뒤에서는 붕괴의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쿠르릉! 콰르르릉! 우릉, 우르릉!
딛고 선 자리가 들썩거릴 정도였지만, 고진무는 숨을 다잡은 채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자리만 한참이고 노려보았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저 검은 연기가 당장 노도처럼 밀려들 판이다.
“후우…….”
그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고진무는 새삼 곧게 세운 검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으르르르…….
본격적이 효후가 나직이 울렸다.
그 소리는 이제껏 성질을 부리듯이 땅을 뒤흔들어 대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그 울음은 검룡 운운하는 소리가 나올 만했다.
만검산장의 시조는 대체 무슨 연유로 저런 것을 가두어 놓았는지.
고진무는 떠오르는 의문을 차곡차곡 접어서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그는 마련한 비책에 집중했다.
마지막의 비책이라면, 역시 하나뿐이었다.
두려움 없이, 나서서 맞이한다.
지이이잉!
비스듬히 늘어뜨린 고진무의 철검이 한껏 울어 젖혔다. 공력을 집중하여서 억지로 내는 검명이 아니었다.
고진무와 검심이 서로 상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검의 울음, 검명(劍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