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Dragon RAW novel - Chapter (160)
* 160화 *
구우우웅.
크누트를 가두고 있던 문이 열렸다. 그의 방사선이 안전수치까지 떨어졌다.
“지겨웠다고. 이 자식들아.”
크누트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벽에 걸어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대단한 정신력이로군.’
모니터요원이 멀쩡하게 걸어 나가는 크누트를 보며 생각했다. 크누트는 바하무트급 토벌 2회라는 업적이 있다. 현재 바하무트급 토벌 2회는 크누트가 유일하다. 3세대 사이코프레임은 3기를 제작했다. 힐링팩터 강화병이 3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3세대 사이코프레임들은 바하무트급 드래곤을 2번이나 잡아냈다. 물론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군인들의 희생이 따랐다. 그나마 기반을 갖추고 있던 지하요새가 셋이나 날아갔다. 지하요새와 군인들을 미끼로 사용했었다.
현재 3세대 사이코프레임 강화병 3명 중에 2명은 죽었다. 생존자는 크누트뿐이다.
‘사망원인이 전사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게 문제지.’
모니터요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세뇌에 가까운 정신교육을 받은 강화병조차 자살했다. 3세대 사이코프레임은 착용자에게 고통과 정신붕괴를 유발했다. 방사선은 몸만 아니라 뇌를 파괴했다. 물리적 손상은 회복됐지만, 망가진 정신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바하무트급 드래곤을 죽였다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2명이 자살했고 크누트만 남았다.
3세대 사이코프레임은 실패작이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불완전한 소형원자로는 아직 성급했다. 무한에 가까운 재생능력을 가진 착용자들은 ‘기계부품’ 이 아니라 ‘인간’ 이었다. 내구성이 견뎌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강화병 둘을 허무하게 잃고서야 얻은 교훈이었다.
사람들은 경외와 비난의 의미를 담아서 3세대 사이코프레임을 아이언메이든이라 불렀다. 현재 아이언메이든은 사실상 크누트 전용이다.
“구조가 복잡하네.”
침대에 걸터앉은 이한은 테라노드 구조도를 확인했다. 길이만 300미터이고, 수천 명을 수용하는 잠수함이다. 항공모함 규모의 함선이 잠수기능을 갖춘 셈이다. 아무리 이한이라도 단 번에 내부를 외우진 못했다.
‘전투보다는 거주와 순항이 목적이다. 외부 전투는 사이코프레임과 병사에게 맡기고 있어. 핵미사일 같은 전략병기는 없군. 무장의 상당 부분을 축소한 채로 아크에게 넘긴 모양이야.’
이한은 펜 끝을 입에 물곤 생각했다. 아크가 보유한 사이코프레임은 34기. 사이코프레임 전력만 따지면 시타델보다 우위다.
‘다시 합쳐야 돼. 우리 전력을 온전히 쏟아 부었던 전투에서도 패배했어.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한은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아크와 시타델을 이어야 했다.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간 갈등에서 내가 빠져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야. 두 집단은 모두 내게 호의적인 세력이 존재해.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겠지. 아니면 사일런스처럼 떨어져 나가던가.’
이한은 손톱 끝을 살짝 깨물었다.
‘아크도 시타델도 알고 있을 거야. 결국 힘을 합해야 이길 수 있다. 암묵적인 불가침이 그 증거지.’
믿을 수 있는 전후조약이 필요했다. 사이커들은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요구할 터다. 즉 시타델 같은 자치권 행사다. 반면에 인간 측에서는 사이커가 세력을 키울까봐 두려워한다. 시타델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다.
‘드래곤을 죽이지 못하면 둘 다 끝장인데.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과거에도 아크 프로젝트 참여국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심지어 방패인 아크조차 견제하며 지원에 인색했다. 아크의 전투력과 규모는 ‘국가 단위’에서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그쳤다. 그 이상 커지길 바라지 않았다.
‘그 인색함과 시기 때문에 결국 이 꼴이 되었지. 이제는 합쳐야 된다는 걸 서로 뼈저리게 깨달았을 거다. 누가 먼저 자존심을 굽히느냐의 문제야.’
이한이 혀를 찼다. 그가 펜으로 글자를 적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치익.
“내가 왔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범생이 양반.”
방문이 열렸다. 크누트가 들어왔다. 이한은 크누트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대머리구나. 옥토-MK2라도 되는 거야?”
크누트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대머리라는 게 이한의 눈에 보였다. 옆머리는 비롯해 눈썹도 없었다.
“거시기 털도 없어. 간만에 좀 자랐는데 이번에 출격한 덕분에 다 빠져버렸지.”
크누트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크 내부에서 크누트는 여러 의미로 초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신탄력성과 인내심이라는 항목에서는 이미 만점을 찍다 못해 측정불가 판정을 받았다. 아이언메이든 내부에서 받는 고통은 그 누구도 모른다. 2명의 강화병이 자살했다는 것만으로 어렴풋이 예상할 뿐이었다. 자살한 2명도 어렸을 때부터 정예교육을 받은 강인한 병사들이었다. 결코 그들이 나약해서 자살한 게 아니다.
“방사능 맛이 좀 어때?”
“먹을 만해. 그거 알아? 방사선에서는 단맛이 난다고.”
크누트가 자신의 혀를 가리키며 말했다.
“별로 먹어보고 싶지 않네. 방사선 같은 거….”
이한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크누트의 상태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살아있었던 거야?”
크누트가 물었다.
“운이 좋았어. 나중에 정식보고서 올라가면 읽어봐.”
이한은 두리뭉실하게 넘겼다. 당장 설명하기에는 복잡하고 길었다. 크누트와 이한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교환하듯 이야기했다.
‘크누트는 시타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한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시타델에 쿠로가 있는 건 알고 있지?”
크누트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의 눈동자가 삭막하게 변했다. 크누트의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시타델에 간 적이 있어? 이한?”
건조하고도 차가운 목소리다. 이한은 뭔가 역린을 건드렸다는 걸 대번 눈치 챘다.
“그래. 나는 시타델과 아크, 둘 다 가본 셈이지.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힘을 합쳐야 돼.”
“웃기지 마. 한.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하지만 이건 현실적인 문제야. 크누트. 이대론 각개격파 당할 뿐이라고.”
이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침묵이 일었다. 크누트가 눈을 크게 뜨며 이한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놈들이 호세를 죽였다고….”
크누트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한은 망치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말문이 막혔다.
“호세가 죽었구나.”
이한은 쓰게 웃었다. 여태까지 주변 반응을 보고 예상은 했다. 호세에 대해 물으면 대답을 회피했다. 다들 직접 말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호세를 죽인 쪽이 시타델이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쿠로는 관련이 없을 거야. 남은 건 오메가-1인가.’
이한은 먹먹해지는 가슴을 붙잡으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놈들이 아크를 떠난 다음날, 호세가 죽은 채로 발견됐어. 밤중에 총에 맞아 죽은 거지. 그전날 밤에 오메가-1이 호세를 만나 설득하려다가 실패했었거든. 호세를 죽인 범인이 놈이란 건… 뻔하지.”
“확증은 없다는 거잖아.”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설마 오메가-1을 믿고 있는 거야? 그 자식을?”
이한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았다.
‘오메가-1이 정말 호세를 죽였을까? 호세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이한은 일단 크누트를 진정시켰다. 흥분한 크누트의 손끝이 과하게 떨렸다. 발작이라도 일으킨 듯했다. 크누트가 욕설을 내뱉더니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앰플 주사기였다.
“제길, 잠시만.”
크누트가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를 들었다. 이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크누트, 그건?”
“손이 떨려서 안 되겠어. 부탁해. 한.”
얼굴이 창백한 크누트가 주사기를 이한에게 넘겼다. 이한은 일단 크누트의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크누트가 눈을 감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약성… 인가.’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크누트는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손발의 떨림도 멈췄다.
“크누트, 약이라면 끊는 게 좋아.”
“그러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괜찮아. 손상은 힐링팩터로 상쇄 가능하니까.”
마약은 몸을 망가뜨린다. 힐링팩터를 가진 크누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다만, 뇌에 각인된 자극만큼은 힐링팩터로도 치유하지 못한다. 정신적인 손상과 약물의존성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런 꼴로 만들어서라도 싸워야하는가. 레드 중사도 이걸 허가한 무리 중 일부겠지.’
이한은 크누트를 더 자극하지 않았다. 크누트도 진정됐는지 상체를 일으켰다.
“널 탓한 게 아니야. 한. 어쨌든 시타델도 찢어 죽여야 할 놈들이라는 거지. 만약 그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아크가 존속됐다면 벌써 전쟁이 끝났을 수도 있어.”
크누트는 시타델을 향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분노와 증오가 깊었다. 이한은 말없이 서있었다.
이한은 테라노드에서 3일을 더 머물렀다. 대기명령은 무한정이었다. 레드 중사는 일이 바쁜지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한은 테라노드 승무원들이 왜 침울한지 알 것 같았다.
‘벌써 3일이나 태양을 보지 못했어.’
시타델이나 지하쉘터는 지상과 근접한 곳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바깥에 언제든 나갈 수 있다. 테라노드는 바다 깊이 잠겨있다. 지상과는 거리가 까마득하게 멀다. 답답하다고 해치를 열고 나갔다간 압력에 짓눌려 죽는다.
장시간 격리된 삭막한 거주환경에서 위안을 찾을 곳은 몇 없다. 승무원들은 오락거리나 사소한 즐거움에 집착했다.
‘여기가 더 안전하겠지만, 생활환경은 시타델이 훨씬 나아.’
이한은 철판으로 막힌 복도를 걸었다. 그는 상부의 호출을 받았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중간 중간 보였다.
이한은 커다란 회의실로 들어갔다. 레드 중사와 낯선 이들이 보였다.
“내가 부사령관 토비아스 대령이네.”
군복을 입은 중년사내가 말했다. 회의실은 청문회 분위기였다. 이한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크와 미군의 간부들이 섞여있었다.
“이한입니다.”
토비아스 대령은 다크서클이 짙은 중년사내였다. 눈 밑의 주름이 처져서 음산했다. 악다문 입에서 군인다운 완고함이 엿보였다.
“자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흥미로운 정보들이었네. 우린 꽤 오래 검토했지.”
토비아스 대령이 회의를 주도했다. 실권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한은 자신이 상대해야할 사람이 토비아스 대령이라는 걸 알았다. 이 사람을 설득시켜야 한다.
“바하무트급 3종 드래곤, 즉 하이브는 현재 인류의 힘으로는 죽일 방법이 없습니다. 실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말의 요지는 이겁니다.”
“자네는 하이브가 부활한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있나?”
다른 간부가 이한의 말에 반문했다. 이한은 눈을 잠시 감았다.
‘짜증나는군.’
이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듣고 걸러낸다. 그렇기에 정보를 쉽게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한은 3년의 공백이 컸다. 신뢰를 마냥 얻기가 힘들었다.
“혹시 자네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3년간 숨어있다고 우리와 접촉한 게 아닐까? 라는 의심도 가능하지. 무엇보다 시타델을 거쳐 왔다는 게….”
이한은 상대의 말을 끊었다.
“전 아크에서 자랐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그 빌어먹을 드래곤들을 죽였죠. 이런 판국에 도대체 저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다는 겁니까? 시간이동? 불멸의 존재? 지금은 얼토당토 안하겠죠. 하지만 하이브가 다시 살아난다는 걸 증명할 쯤엔 우리가 모두 죽어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듯이 말입니다. 한 번 더 실패하면 인류라는 종이 이제 남아있을 것 같습니까?”
이한이 짜증 섞은 분노를 토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한의 감정적 어조가 크게 어필했다. 언제나 한발 늦는 탁상공론에 지친 사람들은 이한뿐만이 아니었다. 때론 논리보다는 감성이 인간의 마음을 빨리 움직이는 법이다. 이한은 계산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사정까지 이해해가면서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 이제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이젠 정말 뒤가 없는 벼랑이라는 걸 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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