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2)
특성 쌓는 김전사-12화(12/300)
고시원 탈출 -3-
크고 아름다운 무기까진 필요 없다.
대충 0레벨, 혹은 1레벨 정도까지 쓸 무기면 충분하다.
방어구도 챙기면 더 좋고.
‘결국은 돈이네.’
뭘 하든 돈이 필요하다.
금고에 넣어둔 돈을 쓸 게 아니면 마력핵을 처분하기는 해야 한다.
마침 미리 봐둔 거래소 근처에 총포사가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걸어가니 눈에 익은 거리였다.
인력사무소가 있는 곳.
비슷한 업종이라 그럴까?
최선수 인력사무소 말고도 다른 인력사무소들이 빼곡하게 위치했다.
덩달아 거래소, 총포사, 마법 상점 등 여러 가게가 입점했다.
거래소는 그중에서도 오염체와 마물, 마수의 부산물을 거래하는 데 특화된 상점.
끼이익.
적당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가 허옇게 센 아저씨가 친근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것 있습니까?”
“아. 뭘 하나 팔려고 왔는데요.”
“흠······”
판다, 그 한 마디에 주인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다른 이들처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탐탁잖은 눈빛이 된 것.
“미리 말씀드리지만 0레벨 마력핵은 매입 안 합니다. 그거 사봤자 쓸 데가 없어서요. 차라리 오염체가 씹다 뱉은 구형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배터리가 훨씬 낫습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그래서 0레벨은 쓰레기 취급이고, 1레벨도 제대로 된 값은 못 받는다.
나는 중언부언 뭐라고 설명하는 대신 가방을 열었다.
옅은 무지갯빛 마력광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검은 비닐봉지로 꽁꽁 싸맸는데도 투과해버리는 빛.
“호오!”
상점 주인이 나직이 감탄을 토했다.
“이 정도면······ 설마 2레벨입니까?”
“예. 확인해 보시죠.”
비닐봉지를 잡아 주인에게 건넸다.
주인이 조심스럽게 받은 다음, 라텍스 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를 파헤쳐 마력핵을 꺼낸다.
우우웅!
꺼내자마자 자기 존재감을 알리며 우짖는 마력핵.
주인의 눈동자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허, 허허허. 정말로 2레벨 마력핵이네요. 잠깐만요, 마력 측정해 보겠습니다.”
주인의 옆에 디지털 저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위에 마력핵을 올리자 디지털 저울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빛과 공명하여 마력핵이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고, 푸른 광선이 마력핵을 샅샅이 조사했다.
파팟! 파파팟!
마력핵이 강렬한 파장을 뿜어냈다.
파장에 반응하여 디지털 저울, 아니 마력 저울 옆의 온도계가 쭉쭉 치솟는다.
처음에는 흐리디흐린 파란색이더니 눈금 끝까지 두 번 주파한 후 짙은 파란색으로 변화했다.
마법 저울 액정에 2.07 Lv이라는 글자가 뜨는 것을 끝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고 마력핵이 저울 위에 내려앉았다.
주인이 마력핵을 챙겨 작은 유리 상자에 넣고는 한숨을 쉬었다.
“2.07 레벨. 훌륭하네요. 모자라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딱 이상적인 2레벨 마력핵입니다.”
“그렇지요?”
“이걸 팔러 오신 겁니까?”
“예. 시세가 얼마나 됩니까?”
순간 주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데굴데굴, 쥐새끼처럼.
나는 주인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마력핵 시세 정도는 나도 안다. 아케인 서울에서 주구장창 팔아댔거든. 집값이나 보험료 이런 건 게임에 안 나와서 모르지만 마력핵이나 무기, 방어구 같은 거로 날 속이지는 못한다.
“음······”
내가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느낀 걸까?
아니면 간을 보고 싶은 걸까?
주인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이 마력핵 말입니다, 혹시 어떤 경로로 입수한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인간이라 장물은 접수하면 안 돼서 말이지요.”
예상했던 질문 중 하나다.
미리 준비해온 대답을 던졌다.
“제 고용주께서 파시는 겁니다.”
“고용주요?”
“예. 설마, 제가 직접 사냥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그야 그렇지요. 2레벨 마력핵이니······ 다른 부산물을 가져오신 것 같지도 않고요.”
“맞습니다.”
“흠. 혹시 물건은 이게 다입니까? 더 많이 가져오시거나, 지속적으로 거래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물건은 주기적으로 더 들어옵니다. 장담은 못 하지만 1주일에 한두 개는 가능하겠지요. 앞으로 더 늘거고요.”
“오호······ 그렇습니까.”
상점 주인이 비로소 작게 웃는다.
주기적으로 거래한다.
최소한 단발성 장물은 아니라는 소리니까.
2레벨 마력핵이라면 초인급 마수 사냥꾼에게 나왔을 확률이 높은데 굳이 여기까지 마력핵 1개만 팔겠다고 보낸 것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세상만사 요지경이고 사람마다 저만의 사정이 있는 법.
여전히 수상쩍게 생각하면서도 그럭저럭 납득하는 눈치였다.
“마력핵 시세를 보여드리죠.”
주인이 탁자 한쪽을 탁 건드렸다.
위이잉.
탁자 한쪽에서 투명 모니터가 분리되어 내 눈앞에 딱 멈추었다.
허공에 인터넷 브라우저를 띄운 듯한 장면.
[0레벨 마력핵 : 103원] [1레벨 마력핵 : 155,339원] [2레벨 마력핵 : 5,176,983원] [3레벨 마력핵······]1레벨 마력핵 하나면 시내버스 1대를 1년 정도 굴릴 수 있다.
2레벨 마력핵은 전차와 자주포에 적용되고, 가끔 프리미엄 슈퍼카에 쓰이기도 한다.
비행차에는 못 써도 지상에서는 충분하다고.
상점 주인이 숫자 키패드를 두드렸다.
“시세에 제 수수료 10%······ 아니, 8%만 받겠습니다. 92% 곱하면 476만 2천 8백 2십 4원입니다. 고객님 꽃길만 걸으시라고 477만원 드리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떻게, 계좌이체로 드릴까요? 아니면 현금으로 드릴까요?”
주인이 다 안다는 눈을 하고 물어본다.
나도 장단을 맞춰주느라 자못 음흉하게 웃었다.
“현금이 좋지요.”
“후후. 좋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인이 뒷걸음질 쳐서 물러나더니 한쪽 벽을 쑥 잡아당겼다.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금고가 노출된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나를 보고 있고, 금고 아래쪽 수납공간에서는 총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험한 일을 좀 겪으셨나 보죠?”
“이 근방은 그렇죠, 뭐. 그래도 신림동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금천구로 가면 아주 말도 못 해요. 거기 갱단놈들이 아예 손 놓고 마약만 줄창 팔고 있어서요.”
금고가 열리고 자동으로 지폐를 새서 뱉어냈다.
오로지 세종대왕 님으로만.
주인이 자기 손으로 일일이 지폐를 샌 후, 백만 원씩 엮어 종이봉투에 넣어서 내게 주었다.
“확인해 보세요. 정확히 477만 원입니다.”
“예. 좋은 거래였습니다.”
“제게도 좋은 거래였습니다. 나중에 또 오시면 수수료를 더 깎아드리지요.”
“하하.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다음으로 총포사에 직행.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아가며 총포사에 들어가자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던 덩치 큰 중년 여자가 나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못 보던 얼굴인데.”
“왜요? 처음 오면 총 못 삽니까?”
“철권파 놈이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철권파? 아, 전 그쪽이랑은 관계없습니다.”
“흐흐. 소개받아서 온 건 아닌가 봐?”
“예. 그냥 찾아왔습니다.”
“흐, 알고 보니 선량한 시민 분이셨고만? 한 번 쭉 들러봐. 없는 물건도 웃돈만 얹어주면 뭐든 구해줄 수 있으니까 말해보고.”
여자가 내 얼굴에다가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아니, 이 여자가?
화를 내려다 말고 얼굴을 굳혔다.
연기를 흡입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혀끝이 아려왔기 때문이다.
이거, 마약이다!
그것도 흡입 한 번으로 훅 갈 수도 있는 강한 마약!
여자가 날 보더니 씨익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합법적인 물건 찾을 거면 굳이 나한테 살 필요도 없어. 저 앞에 형제 총포사만 가도 돼. 그게 아니면 나한테 사고. 좀 쎈 것도 취급하니까.”
나는 말 없이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면마다 총, 검, 쇠뇌, 방탄복, 위장복, 삼단봉, 전기 충격기, 스프레이 등 다양한 물건이 걸려 있었다.
아케인 서울의 대한민국은 총기 허용 국가.
단, 한계가 있었다.
일반인은 권총이나 단발성 산탄총, 공기총만 소유할 수 있다.
그나마 자유롭게 들고 다닐 수는 없고,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가방이나 상자에 넣어 다녀야 한다.
따라서 이 총포사의 벽에 걸린 제품도 권총이 대부분이었다.
“소총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지!”
여자가 자기 뒤쪽 벽을 건드렸다.
벽이 통째로 회전하며 새로운 총들이 나타났다.
원래 세계의 M16, K2, AK37, G36, P90과 비슷한 여러 소총.
여자가 자랑스럽게 소총들을 쓰다듬었다.
“총의 제왕은 역시 소총이지. 이거 하나면 2레벨 초인도 거뜬히 저세상에 보내거든.”
“3레벨은요?”
“3레벨? 3레벨은 진짜 초인이잖아. 3레벨 초인이랑은 싸울 생각도 하지 마. 혹시 싸우게 되면 무릎 꿇고 비는 게 생존확률이 높으니까. 아니면······”
여자가 씩 웃고는 바닥 한 군데를 탁 쳤다.
그러자 바닥에 숨겨져 있던 수납함이 치솟고, 저절로 열리면서 내용물을 노출시킨다.
수류탄, 섬광탄, 최루탄, 봉인탄.
그 개수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 정도면 아주 전쟁도 할 수 있겠어.
“이거 몇 개 들고 가야지. 방심하고 있을 때 봉인탄 파바박! 섬광탄 파바박! 수류탄 파바박! 해버리면 제까짓 게 뭐 어쩌겠어? 나도 초인 몇 놈을 이걸로 잡은 적이 있다고.”
“초인씩이나 됐으면서 수류탄에 잡힌다고요?”
“심리전이지, 심리전. 인생은 게임이 아니거든. 초인이건 뭐건 대가리에 총알 한 방이면 이거야, 이거.”
여자가 자기 엄지로 목을 연신 그었다.
그 표정이 뉴비 만나 신난 고인물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나는 벽면의 자동소총과 수납함의 수류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걸 내가 제대로 쓸 수가 있을까?’
나도 군대 정도는 갔다 왔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라는 말씀.
하지만 자대 있을 때 사격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남들 하는 정도 했지.
김전사라고 다를 것은 없다. 김전사는 엄연히 전사 계열 초인이고, 사격 종류 특성은 4대 초인 계열 중 강화병 계열에 속한다.
투자하는 건 좋은데 장기적으로는 손해라는 뜻.
“어휴.”
짧게 한숨을 쉬자 여자가 눈썹을 삐죽 들어 올렸다.
“왜, 돈이 없어? 그럼 기관단총도 괜찮아. 코트 안에 숨기고 다니다가 위험할 때 쏴 갈기기 좋거든.”
여자가 권한 것은 원래 세계의 우지를 똑 닮은 기관단총.
잠깐 마음이 쏠렸으나 머리를 흔들었다.
실전성이 없잖아.
저런 작은 기관단총은 코앞에서 기습할 때나 좋지 총격전을 벌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어쩌자고?”
투덜거리는 여자를 앞에 두고 차분히 생각했다.
과연 내게 필요한 물건이 뭐냐?
다른 것보다 대인용 장비가 필요하다.
마물보다, 오염체보다 사람이 백배 천배는 무서운 세상이니까.
“저걸로 주세요.”
“으응? 이거?”
“예. 그게 가장 마음에 드네요.”
“잘 생각했어! 한국 사람은 신토불이지! 국산이 최고라니까? 러시아제, 미제, 독일제 다 필요 없어! 탁월한 선택이야!”
여자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진다.
내가 고른 것은 원래 세계의 K2를 꼭 닮은 소총.
다른 총은 쏴보지도 못했으니 이게 가장 낫겠지.
“얼마죠?”
“국산이라 싸! 삼백만 줘.”
“예? 삼백이요?”
무슨 소총 하나에 삼백이나 해?
여자가 코웃음을 친다.
“싫으면 적당히 산탄총이나 공기총 사 가. 그건 싸. 백만 원이면 된다구. 권총은 오십만 원이면 되고.”
“그렇게 차이가 나나요?”
“위험수당이야, 위험수당. 무슨 말인지 알지? 꼬우면 초인증 들고 오던가. 초인한테 파는 건 합법이거든.”
불법이라 더 비싸다는 소리다.
그래도 사람 상대로는 소총만 한 게 없지.
몇 번 망설이다가 눈물을 머금고 시퍼런 지폐 뭉치를 건넸다.
여자가 지폐에 입을 쪽 맞추고는 금고에 던져 넣는다.
“총알은 필요 없어?”
“하아, 서비스 안 됩니까?”
“장난하는 거지?”
“하아아.”
정말로 탈탈 털렸다.
마력핵 팔아 번 477만 원을 몽땅 날렸다고.
그야 총알만 산 게 아니라 섬광탄도 두 개 사고, 합법인 권총 한 자루에 탄창 여럿, 방탄복과 초대형 삼단봉까지 샀으니까.
총포상 여자가 싱글벙글 웃었다.
“어디 사냥이라도 가?”
“비슷합니다.”
“흐흐흐. 고마워. 개털 손님인 줄 알았는데 알짜 손님이었네. 이건 서비스. 싸구려긴 한데 그 가방보다는 나을 거야.”
여자가 길쭉한 골프백을 서비스라며 건넸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에는 소총이 안 들어갔다. 더구나 골프백 안쪽에 개별 공간이 더 있어서, 열자마자 소총이 보이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겠다.
“흐흐, 또 와.”
여자가 살가운 태도로 날 배웅해주었다.
호주머니를 완벽히 털려서일까?
휘청, 다리가 꼬인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는 중.
붉은 노을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잘한 거겠지?’
대충 권총 한 자루, 방검복 한 벌 사고 퉁칠 걸 그랬나?
사실 총격전을 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
아무리 총기 허가 국가라고 해도 칼침이나 놓지, 누가 총부터 들겠냐고.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갈 때였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한 명이 아니었다.
최소한 네 명.
하나같이 두꺼운 코트에, 오토바이 헬멧을 눌러쓴 차림새.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단 한 명,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만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다리가 괴상하게 휘어있지 않은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초식동물의 다리.
어제 하루 종일 봤던 그 다리.
또, 아케인 서울 게임에서도 심심찮게 봤던 그 다리.
“······노루?”
흐흣.
노루가 대답 없이 작게 웃더니 오른손을 코트 안쪽으로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