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청혼 -2-
성희영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톱스타였던 어머니를 닮아 얼굴은 예쁘고 몸매는 섹시하다.
능력은 또 어때?
이미 7레벨에 재벌 총수다.
2세도 3세도 아니고 회장, 그 자체.
조건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완벽할 수가 없다.
문제는 성격.
반송장이 된 전 회장을 쏙 빼닮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 보는, 지독히 권위적이면서 권력욕에 가득 찬 인간.
아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괴물이라고 해야 맞다.
나는 성희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반달을 그리는 눈도 가지런히 드러난 하얀 치아도 확실히 어여쁘다.
성희영은 분명히 진심으로 나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저 투명한 눈 아래 타오르는 음험한 욕망.
맹목적이고도 순수한 애정이 아닌, 날 가짐으로써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픈 권력욕이 날 주저하게 만들었다.
“미안합니다.”
그래서 거절했다.
“정말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악귀처럼 변한 성희영이 날 쏘아보았다.
“왜죠? 전사 씨는 만나는 사람도 없잖아요. 내가 어디가 어때서요?”
잠시 말을 정돈했다.
어울리지 않는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다…….
상투적인 말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다 집어치웠다.
최소한 성희영은 진심으로 내게 고백했다.
그러면 나도 내 진심을 조금은 보여 줘야겠지.
“사장님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하! 어이가 없네요. 고작 그런 거 때문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우리 레벨 정도 사람들한테 취향이 뭐가 중요해요?”
“중요하죠.”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저는 연애하게 된다면, 또 결혼하게 된다면 오직 저만 보는 사람과 할 겁니다. 사장님처럼 절 권력 강화 수단이자 인맥의 징검다리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요.”
성희영이 몸을 살짝 떨었다.
권력 강화 수단이자 인맥의 징검다리.
절대 아니라고 못 할 테니.
나를 남자로서 좋아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 이유가 없었다면 절대 내게 청혼하지 않았겠지.
성희영의 눈이 표독하게 빛났다.
“그게 문제라고요? 순진하시네요. 완전 서민 마인드예요. 고레벨 초인이 된 이상, 전사 씨도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전사 씨가 잘났다고 해도, 위로 올라가려면 기반이 필요하고 인맥이 필요하다고요!”
“예. 필요하지요. 그리고 저도 필요한 만큼은 갖고 있습니다.”
나는 묵호검을 툭 쳤다.
아울러 가슴을 내밀어 성기사 휘장 두 개와 수호자 연맹 배지가 반짝이게 했다.
성희영의 눈에서 힘이 빠졌다.
당당하던 어깨를 움츠리자, 재벌 회장이 아니라 비로소 또래 여자애처럼 보인다.
“납득이 안 돼요. 고작 그런 이유로…….”
“간단합니다. 전 이용당하기 싫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 본심이었다.
비즈니스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즉 윈윈 관계이기 때문에 성립한다.
사랑과 결혼에서도 그럴까?
정략결혼이 기본인 상류층에서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원래 세계에서의 사고방식을 전부 다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여자관계가 그렇다.
나는 처절하게 배신당했으니까.
가장 사랑했던 여자에게. 내 마음을 전부 주었던 여자에게.
나는 속으로 짧게 냉소를 던졌다.
‘배신당하느니 혼자 살고 말지.’
원래 세계에서 순수하게 다가왔던 여자도 그랬다.
성희영은 어떨까?
애정 반, 정략 반인 여자는?
분명히 말하는데 상황이 불리하면 언제든 나를 손절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진 않다.
“이용당하기 싫다…….”
성희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전사 씨, 아님 묵호검주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죠. 오늘 일은 잊어 주세요.”
그 말을 하고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창문을, 도시의 야경을 응시하는 성희영.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자 회로 신경계를 억제하여 인체 반응을 억제하고 있는 것.
……아마도 울음을.
조금은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애초에 성희영과는 맞지 않는 조각이니까.
“쉬세요.”
조심스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마법진을 통해 철저히 방음이 이뤄져야 할 장소.
그런데 등 뒤에서 희미한 울음 소리가 들린 건 내 착각이었을까?
나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벌써 나오십니까?”
이중삼중의 보안문을 통과해 나오자 요원들이 묘한 눈빛을 보낸다.
오늘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
나는 머리를 휘휘 저었다.
“사장님께는 저 먼저 가 본다고 전해 주세요.”
“가신다고요? 이 밤에요?”
“예. 집을 너무 오래 비워 두고 있어서요. 고생하세요.”
며칠째 지하 주차장에서 잠자고 있던 SUV를 깨웠다.
부아아앙!
힘찬 엔진음과 함께 SUV가 달려 나갔다.
유난히 달빛이 밝은 밤이었다.
미련이 남은 걸까?
달빛 아래 반짝이던 성희영의 미소와 돌아눕던 몸의 곡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휴.”
거절할 때는 언제고 자꾸 생각나고 그러냐.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난 남자잖아.
육체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몸이고.
여자 손만 잡아도 반응할 판에 예쁜 여자가 눈웃음치며 유혹하면 어떻겠어.
[시구르드 연공법][불굴][마력혼] [결의][정화][집중]침실로 부를 때부터 이렇게 특성을 장착하지 않았으면 욕망을 못 이기고 성희영을 덮쳤을 것이다.
성희영은 못 이기는 척 나와 동침하고 책임지라고 했겠지.
그렇게 코가 꿰이고 금오 그룹에 메여 말이 좋아 남편이지, 실제로는 큰 머슴이 되어 바닥을 벅벅 기었을 게 분명하다.
100번을 생각해도 잘한 선택.
근데 왜 이렇게 아쉽냐?
“하, 진짜.”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일점]피가 나도록 깊이 찌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여자는 무슨 놈의 여자냐.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다.
정신 차리고 훈련이나 하자.
강해져야지.
살아남으려면. 조만간 불어닥칠 에피소드 광풍을 이기려면.
그 첫 번째로 모자와 허리띠를 집었다.
금오모와 금오대.
단체전 참가 및 훈련 도우미를 하면서 받은 보상이다.
금오신과 함께 금오 세트의 완성이기도 하지.
여태 쓰고 있던 탐지 투구를 벗고 마력 집중 허리띠도 끄른 다음 하나하나 착용했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세상이 한 꺼풀 비밀을 벗는다.
아울러 마력이 폭증하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금오안]와 [금오 강화] 능력.금오안은 정신 보호와 탐지 기능이 있고 금오 강화는 마력 증폭과 신체 능력치 증강 능력이 있다.
그리고 세트를 완성하면 생기는 특성 하나.
[금오]효과는 간단하다.
모든 능력치 증가.
그 증거로 전신에서 활기가 치솟고 있었다.
몸이 훨씬 더 가볍고 정신은 맑다.
마력도 극도로 강력해져 용암처럼 뜨끈하게 내 마력 회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피부에 살짝 주황색 기운이 어려 있는 게 보인다.
무형의 방어막이 생긴 것.
이와 비슷하게, 주먹질하거나 칼질을 하면 검기처럼 주황색 기운이 묻어나 상대에게 더한 피해를 줄 것이다.
힘이나 민첩, 맷집 같은 신체 능력치만 아니라 공격력과 방어력, 저항, 이동력 등 표기되는 모든 수치가 강화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니까 SSR 급이지.’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는 집에 돌아온 다음 침대에 누워 특성을 교체했다.
[검술][일점][참격] [발도][쳐내기][흘리기]드디어 모은 여섯 특성.
총잡이보다 확실히 늦었다.
저레벨에선 검보다 총이 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다산총을 집어도 검이 더 세지만.
눈을 감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차분히 마력 회로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미 마력 회로는 쩌적쩌적 금이 가고 있다.
하나로 뭉쳐진다는 상상을 한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딱히 아프지도 않았다.
총잡이 때 그러했듯이 마력 회로가 쪼개졌다가 금세 하나로 합쳐졌다.
[검 전문가]사방이 고요하다.
내 마음도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다.
조용히 묵호검을 뽑았다.
언제나 어색하고 조금은 따로 놀던 묵호검.
이제는 다르다.
손에 착 감기며, 내 팔의 일부가 된 것처럼 일체감을 선사한다.
쌔액!
검을 휘둘러 보았다.
바람이 느껴진다.
검이 내 감각 기관이 된 듯, 어느덧 겨울이 되어 싸늘한 공기가 검면을 통해 내 심장에 차가운 감촉을 선사했다.
흥이 올랐다.
찌르고 베고 꺾고 치고 그어 본다.
즉석에서 피워 낸 검무.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뜻밖에도 상당히 그럴듯했다.
“괜찮네.”
검의 주인까지 만들면 더 멋있어지겠지.
뭐 뭐 필요하더라?
검 전문가는 방금 만들었고, 섬광이랑 단월은 있고, 검기는 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길 거고…….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생각해 보니까 나 사흘 넘게 못 잤구나.
요즘은 계속 달렸지.
원래는 귀국해서 푹 쉬려고 했는데 성희영이 찾아오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며칠만 좀 쉬자.
사람은 강철이 아니야.
쉴 때는 쉬어 줘야 한다고.
오랜만에 내 집 내 침대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성역을 이중으로 발동하고 보안 장치를 모조리 기동한 상황.
죽음 같은 적막이 찾아오고 꿀맛 같은 잠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그다음에는 정말로 푹 쉬었다.
거의 이틀을 내리 잔 것 같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서 침대에서 밍기적거렸다.
간만에 영화 한 편을 때렸다.
냉장고에 누가 넣어 놨는지 팝콘과 콜라가 있어서 그 덕을 톡톡히 봤지.
“하하하!”
고른 영화는 가벼운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
세상이 달라서일까?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의 액션 영화는 고어 영화에 가깝도록 잔인했고, SF 판타지 영화는 심각하게 기괴했으며 로맨스 영화는 다섯 다리 열 다리를 걸치는 막장 하렘이었다.
가장 만만한 게 코미디.
그것도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슬랩스틱.
그나마 잘 골라야 한다. 잘못하면 원래 세계 일본 예능보다 열 배 정도 수위가 세서 역겨운 영상을 보는 수가 있다.
“쩝…….”
영화 한 편 본 다음에는 TV 채널을 쭉쭉 돌렸다.
수백 개가 넘는 채널.
내가 볼 건 없었다.
평소 얘기하고 일할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다른 세계 사람은 다른 세계 사람이다.
문화 코드가 이렇게 다른 걸 보면.
‘집에 가고 싶…… 지는 않네.’
2평짜리 고시원보단 이 넓은 저택이 낫지.
생존 문제만 해결되면 말이야.
‘옛 아버지 교단 때려잡고, 진리 마탑 때려잡고, 하이퍼 디멘션도 때려잡으면 되는 거지. 쉽다, 쉬워!’
요즘 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원래 세계에 돌아가는 것보다 이게 낫지 않을까?
귀환해 봐야 난 쥐뿔도 없는 독거 노총각 신세잖아.
[금오 그룹에 새로운 회장이 탄생했습니다. 오늘 취임식을 가진 성희영 회장은 취임식에서…….]아, 취임했구나.
나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취임식 장면을 지켜보았다.
단상에 선 성희영은 칼날 같은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금오 세트를 완성했는지 전신에 주황색 기운이 어려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나한테 원한 갖진 않았겠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데…….
괜히 뒤가 켕겼다.
아닐 거야.
게임에서 성희영은 통이 큰 모습을 자주 보여 줬으니까.
비록 그때는 이미 30대였고 결혼도 한 다음이긴 했지만.
[띠디디디!]오랜만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보니 최 소장.
[초인님! 의뢰 성공하신 겁니까? 지금 취임식 보고 있습니다!]“성공했지요.”
[듣기로는 초인님이 결투 4연승을 두 번이나 하시고, 단체전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던데요!]“정확하십니다.”
[와, 정말이지…… 초인님은 대단하십니다. 초인님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초인님은 현재 레벨에서 1레벨은 더 올려서 생각해야겠습니다.]“거의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제가 많이 강하긴 합니다.”
[하하하! 많이 강한 수준이 아니죠! 엄청나게 강하신 거죠! 이러다 7레벨 초인도 이기시는 거 아닙니까?]“에이, 그건 힘들죠.”
7레벨쯤 되면 대부분 상위 특성을 여섯 개 꽉 채우니까.
가끔 최상위 특성을 가진 초인도 나오고.
며칠 전의 성희영 같은 어설픈 7레벨이 아니면 나도 이기기 힘들다.
사실 성희영이 거리를 1킬로미터 정도 벌려 놓고 싸웠으면 나라도 못 이겼을 거고.
[그런데 말입니다…….]최 소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거긴 또 왜요?”
[저한테 초인님 지명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불사조 계곡을 찾아 줄 수 있냐고요.]이게 뭔 소리야?
불사조 계곡을 왜 또 찾아?
저번에 찾아 준 거면 충분하잖아!
태양 마탑이 불사조를 남획하지만 않았으면 백 년 이백 년도 넘게 써먹을 수 있다.
“이미 하나 있잖아요? 그거 잘 써먹으면 되지 왜 찾아 달래요?”
[그게 말입니다…… 불사조들이 계곡을 떠난 모양입니다.]“떠났다고요? 왜요?”
[태양 마탑에서도 모르겠답니다. 분명히 불사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만 잡았는데, 어느 날 싹 사라졌었다고요.]신수 불사조가 눈치를 챈 걸까?
지구 모든 불사조의 어머니.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신수.
그 신수라면 지능이 초월적으로 좋으니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양 마탑이, 특히 그 마탑주가 불사조한테 들킬 만큼 어설프게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이상해.’
냄새가 났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순간, 머릿속에서 섬전이 튀었다.
금오 그룹에서 보고 들은, 또 겪은 일이 불사조 계곡, 그리고 태양 마탑과 연결되었다.
‘설마…….’
어떤 가정이 떠올랐다.
만약에,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조만간 7레벨 마법사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성희영처럼 어설픈 상대가 아니라, 완벽히 성숙한 상태의 마법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