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6)
특성 쌓는 김전사-16화(16/300)
1레벨 초인 -2-
석촌 호수.
원래 세계에서는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가 있었지.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초인탑을 올려다보았다.
세 쌍둥이 탑.
초인 협회, 초인 인증소, 초인 연합, 서부군 연락소, 신화 그룹 지점, 태양 마탑 사무실, 옛 아버지 교단 성소 같은 초인 관련 시설이 총집합한 곳.
탑 하나하나가 원래 세계의 롯데월드타워보다 크다.
주변 마천루들 역시 그렇다.
대충 봐도 20개가 넘는 마천루가 서울시 송파구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도로도 널찍하다. 무려 왕복 40차로. 깨진 보도블록 하나 없고 도로에도 구멍 하나 패이지 않았으며, 잘 정돈된 가로수들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노루 패거리와 싸웠던 뒷골목과는 차원이 다른 풍경.
쌔액! 쌔애액!
하늘을 날아 초인탑으로 바로 진입하는 비행차들을 지켜보다가, 나도 발걸음을 옮겨 초인탑으로 향했다.
한 덩치 하는 경비원이 눈에 낀 선글라스를 조작한다.
그러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비켜섰다.
“초인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비 초인님.”
“감사합니다.”
마력 감지 선글라스.
눈에 한 번 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광활한 공간이 나타난다.
신기하게도 기둥 하나 없이 펼쳐진 축구장 크기는 될 공간.
체육관 같은 구조도 아니고 수백 미터 마천루의 1층이 이런 광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마력이었다.
곳곳에 마력이 회로처럼, 혹은 입체 마법진처럼 배치되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 세상의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라 마력이 무게를 지탱하는 모양.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며 걷자 모델처럼 늘씬한 직원이 다가왔다.
어쩐지 낯익은 얼굴인데······
“안녕하십니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인 인증 받으러 오셨습니까?”
“예.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초인 인증은 처음이실까요?”
“처음입니다.”
“조금 험하게 수련하셨나 봐요.”
직원도 얄쌍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저 안경에도 마력 감지 마법이 걸린 것 같다.
내게 마력은 감지되는데 신원 조회가 안 되니 자꾸 다가오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수련이라?
저 말을 하는 걸 보면 내 계열까지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강화병 계열이나 마법사 계열, 사제 계열이라면 다른 식으로 말했겠지.
중심에 도착했다.
직경 10미터가 넘는 청록색 원형 바닥.
그 위에 커다란 입체 마법진이 제멋대로 부유하고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천장에선 맑고 투명한 빛이 은하수처럼 떨어지는 중이다.
거기 시선을 주자, 직원이 정중히 팔을 들어 가리켰다.
“마력 회로 측정 장치입니다. 저기 안에 들어가시면 컴퓨터가 마력 회로 레벨과 중첩도를 종합적으로 측정해서 알려줍니다.”
“그게 정확한가요?”
“9레벨 대마법사이신 멀린 경께서 직접 설계하신 마법진입니다. 틀릴 리가 없죠.”
어, 그래.
멀린. 마법계의 천마.
그 사람이 만들었으면 할 말이 없지.
저벅저벅.
측정 장치를 향해 걸어간다.
드넓은 1층을 오가던 사람들이 잠깐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초인 인증하나?”
“오랜만에 보네.”
“저기 좀 봐! 마력치는 1.0을 훨씬 넘는데 등록이 안 돼 있어!”
“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예비 초인이었어?”
“우리 용병단에 자리 비었는데 영입할까?”
“겨우 1레벨짜리를? 막 인증받고 초인뽕 취한 애송이보단 특수부대 출신 군인이 훨씬 낫지. 진짜는 3레벨부터라고.”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이, 혹은 무시하고 괄시하는 시선이 범벅이 되어 내게 꽂혔다.
막 측정 장치에, 빛의 기둥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웅! 우우웅!
탑 전체가 진동하고 천장에서 빛이 떨어졌다.
비 내리듯이, 수직의 선을 수도 없이 그리며, 마치 레이저 폭격이라도 가하는 듯한 광경.
형형색색의 광선이 그리는 빛의 세례.
내가 눈만 끔뻑거릴 때 뒤에 서 있던 직원이 놀라 소리쳤다.
“성녀님께서 오셨어요!”
성녀?
그게 누구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반드시 있을 법한 별명이지만, 아케인 서울의 사제 계열 SSR 캐릭터 중에는 성녀가 없었으니까.
기이잉.
내 의문을 무시하고 천장이 열렸다.
전부는 아니지만 벽면 일부가, 도개교처럼 쩍 내려가서는 하늘을 노출시킨다.
청량하게 쏟아지는 파란빛 사이 한 비행선이 떠 있었다.
비행선?
아니다. 저건 비공선이라고 해야 옳겠다. 날개도 풍선도 없이 바다에나 떠다닐법한 배에 마도과학 엔진과 부유 마법진을 단, 사치와 자기과시의 총체.
고오오오.
비공선은 척 보기에도 강대한 마력을 휘감고 있었다.
마력이 전혀 없는 일반인조차 느낄 정도.
은은한 바람이 유선형 몸체를 회오리치듯 쓰다듬으며 돌고, 금속 표면에선 파란 별빛이 타닥타닥 불꽃을 피운다.
비공선은 그대로 탑에 진입하여 천천히 하강했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1층 광장에 광풍이 몰아치고, 마력에 빛이 산란되면서 파랑 빨강 초록 빛무리가 나팔꽃처럼 피어났다.
“탑에 비공선을 타고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반쯤 기가 질려 묻자 정신 팔고 있던 직원이 겨우 대답했다.
“그럼요! 성녀님이시잖아요!”
“성녀님이요?”
“네! 성녀님!”
누구더라?
분명히 그런 별명이 있긴 했는데.
얼핏 기억이 날락 말락 했다.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비공선을 올려다보았다.
구우우웅.
1층 광장 바로 위에 정지하는 비공선.
함수가 상어 머리 꺾이듯 위로 열린다.
착, 착, 착.
접혀 있던 바닥이 펼쳐지며 거대한 경사로가 만들어진다.
비행선과 1층 광장을 잇는 경사로.
전체가 까맣다. 그냥 검은색이 아니라 심연 너머 무저갱 아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꺼먼색이다.
그 흑색 경사로에는 음험한 황금색으로 신성 문자를 새겨놓았다.
라틴어와 갑골 문자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신성 문자.
그걸 보니 슬슬 감이 온다.
‘어, 이거?’
막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기억 한 움큼을 꺼내려는 찰나.
철컥.
쇳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그것도 연속으로.
자연스럽게 내 눈동자가 확장된다.
들은 적이 있다.
이 효과음.
정확히 말하면 발소리라고 해야 할까?
‘정말로?’
보스 몬스터가 이 자리에는 왜 나타난 거야!
내가 속으로 비명을 삼킬 무렵, 그녀가 열린 입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성녀님!”
강렬한 마력광 아래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서 있다.
통짜 묵색 흉갑.
두툼한 강철 치마.
등에 짊어진 거대 전투 망치.
오른팔에 장착한 초대구경 산탄총.
얼굴을 덮은 적색 반투명 고글.
머리를 장식한 흑금관.
성녀가 쇳소리를 내며 경사로를 따라 내려온다.
그 뒤를 따라 흑금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총과 망치를 흔들며 시위하듯 행진했다.
틀림없다.
나는 마침내 기억의 조각을 건져 올리는 데 성공했다.
고대신의 성녀.
흔히 옛 아버지 교단이라 부르는 사이비 종교.
이 세상 기준으로는 멀쩡한 종교다.
신멸 전쟁에서 죽긴 했으나, [옛 아버지]는 한때 지상을 거닐며 인류를 지배했던 강력한 신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보스 몬스터지.’
아케인 서울은 에피소드 단위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중 에피소드 1, 2, 3.
서울 테러, 좀비 사태, 고대신 부활.
이 모든 사건에 옛 아버지 교단이, 고대신의 성녀가 관여하고 있다.
에피소드 3, 고대신 부활의 최종 보스가 바로 저 성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난이도가 엄청났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힘들게 잡았지. 나도 수십 번이나 실패한 끝에 현질할까 고민했을 정도였으니까.
나중에야 스펙이 올라가면서 스펙 체크용 보스 몬스터로 전락하지만.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그야 게임 시작 몇 년 전이니까.
게다가 에피소드 2까지만 해도 옛 아버지 교단은 멀쩡한 종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신전에 가서 헌금하고 축복받거나 정화하는 것도 가능.
캐릭터 중에 N급이긴 해도 옛 아버지 교단 사제와 성기사도 존재했고.
그래서 에피소드 3 공개 때 반향이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컥, 철컥.
성녀가 전투력 측정 장치를 향해 직진한다.
직원이 탄성을 터뜨렸다.
“레벨 갱신하시나 봐요!”
레벨 갱신?
성녀는 시작부터 8레벨 아니었나?
아, 지금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성녀가 전투력 측정 장치 앞에 선다.
벌써 마법진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마력 입자가 유형화되어 흩날리고 마법진이 진동하면서 그 진동이 밀물처럼 탑 전체로 번져 나갔다.
번쩍! 팟! 휘리릭!
어느새 소식이 전해진 것일까.
열려 있는 천장을 통해 비행차 수백 대가 날아들었다.
고레벨 초인들이 비행차 위에 서서는 성녀를 지켜본다.
순간이동 마법으로 도착하는 마법사들.
공간이 일렁이며 차례차례 강림하는 신들의 눈.
집중된 눈길 아래 성녀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허스키한, 중성에 가까운 목소리.
문득 소름이 끼쳤다.
보스전을 할 때마다 고막을 찢어버릴 듯이 울려 퍼지던 광기 진득한 웃음소리가 생각나서.
쿠웅.
성녀가 발을 내디뎠다.
육중한 무게에 마법진이 비명을 지른다.
빛의 기둥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어마어마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회오리쳐 나를 강타했다.
“으윽!”
저절로 신음이 나온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겨우 꿀꺽 삼켰다.
옆의 직원은 이미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다음이었다.
1층 광장의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했다.
일반인은 예외 없이 기절. 그나마 초인들만 버티고 있으나 1레벨 2레벨 저렙 초인들은 졸도하기 직전까지 갔다.
나도 반사적으로 특성을 바꾸지 않았으면 저렇게 됐겠지.
[맷집][인내][활기] [재생][상처 회복][마력 회복]방어와 회복 계통 특성을 총동원해서 겨우 버텼다고.
한참이나 빛이 번뜩였다.
거의 정신줄을 놓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력 폭풍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글자 한 뭉치.
웅혼하고 찬란하게 불타는 글자들이 허공에, 세상에 낙인을 꽉꽉 눌러 찍고 있었다.
[성녀] [여자] [27세] [사제 계열] [8레벨] [6중 회로]성녀는 자기 이름마저 옛 아버지에게 바친 사제 계열 초인.
8레벨, 8레벨이라.
아케인 서울의 설정상으로는 항공모함 전단에 비견되는 무력.
흔히 초월경이라고 부르는 무위.
성좌라고 칭하는 9레벨보다는 아래지만 걸어 다니는 국가급 전투력이 따로 없다.
‘이 시점에서 8레벨이 된 거구나.’
여기에 옛 아버지 교단까지 합치면 악몽이 따로 없다.
성녀가 보스 몬스터임을, 빌런임을 아는 것이 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짝짝짝짝!
박수 세례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기절했던 사람들도 깨어나 열렬하게 손을 마주치고 있었다.
“감축드립니다, 성녀님!”
“드디어 8레벨이 되시다니!”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어쩌면 21세기 다섯 번째 성좌가 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아버지의 영광이 재현될 날도 멀지 않으셨습니다!”
“오오, 성녀님!”
이 세계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9레벨은 단 네 명.
천마, 리바이어던, 멀린, 지브릴이 전부.
초월경 8레벨은 수십 명이나 되지만 어쨌든 100명은 안 넘는다.
초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세상에서 100위 안에 들었다고 하면 엄청난 거지.
“고맙습니다.”
성녀가 짧게 답한 후 몸을 돌렸다.
처억!
성기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2열로 도열한다.
쿵! 쿵! 쿵!
전투 망치로 바닥을 거세게 내리찍는다.
음험하게 퍼지는 마력 파장 속에서, 저마다 총을 높이 들어 성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옛 아버지의 첫째 딸에게 영세영광 있으라!”
“옛 아버지의 첫째 딸에게 영세영광 있으라!”
성녀가 당당하게 걸어 비행선으로 돌아간다.
X자로 교차한 총구 아래를 지날 때마다 마력인지 신성력인지 모를 힘이 무겁게 폭발했다.
기이이잉.
한쪽 벽면만 열렸던 탑 천장은 아예 전체가 열렸다.
꽃봉오리 개화하는 듯한 장면.
거기에 마력 예포를 쏘아 하늘이 마력 무늬로 물들어간다.
단지 초인탑 위 하늘만이 아니라 서울 전체가.
“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8레벨 될 만하네.
전 서울적으로 불꽃 축제를 열어주고 말이야.
9레벨이라도 되면 아주 전국적으로 축제가 열리겠어.
나도 언젠가는 8레벨, 9레벨이 되겠지?
사실 9레벨로도 힘들지 모른다.
천마도, 리바이어던도, 멀린도, 지브릴도, 후반부 에피소드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까.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10레벨에 도달하여 승천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갈 길이 머네.’
시작이 반이고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인 법.
오늘은 1레벨을 인증받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특성을 교체했다.
[근력][맷집][강타]그저 무난하게.
특성 칸도 세 개를 비워두었다.
적당히 강한 전사 계열 초인으로 인증되도록.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철컥철컥 잘 걷던 성녀가 별안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본다.
“성녀님?”
“왜 그러십니까?”
성기사들이 의아해하고, 옆의 직원도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성녀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몸까지 돌렸다.
그리고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직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