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7)
특성 쌓는 김전사-17화(17/300)
1레벨 초인 -3-
“서, 성녀님?”
직원이 침을 꼴깍 삼킨다.
숨길 수 없는 동경의 빛이 두 눈 가득 뿜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녀는 직원을 보지 않는다.
오직 나만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앞에 우뚝 서자,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 사이로 술렁임이 번져갔다.
“무슨 일이지?”
“저게 누구야?”
“그냥 평범한 1레벨 초인 같은데······”
“성녀님께서 뭘 보신 거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성녀.
흑금색 신성력 어린 두 눈이, 마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듯 내 눈에 꽂히고 있었다.
실제로는 내가, 김전사가 키가 조금 큼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분이시네요.”
한참 뒤에야 성녀가 입을 열었다.
고글을 통해 보이는 눈동자가 이상하게 아련하다.
가슴이 촉촉해져서 당황하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게 된다.
성녀의 입가에 떠오른 호선 때문에.
그 치명적인 웃음.
초식동물을 앞에 둔 포식자가 지을 법한 사납고도 잔인한 미소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저, 저 말씀이십니까?”
“네. 초인님이요. 굉장히 특이한 힘을 갖고 계시네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설마, 봤나?
내가 특성 전환하는걸?
“초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런······
난 낭패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아케인 서울에서 성녀가 이름을 묻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어쩌지?’
그냥 넘어가기란 불가능하다.
성녀가 단순히 강력한 초인이라서, 거대 종교 집단의 수장이라서가 아니다.
내 입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움직였다.
“김전사입니다.”
“네, 김전사 님.”
성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강렬한 욕구가 치솟는다.
당장 무릎을 꿇고 성녀 앞에 엎드려, 내 모든 죄와 존재를 고백하고 싶다는 욕구가.
고글 위로 또렷하게 눈동자가 떠오른다.
신이 강림한 듯 신성력 가득한 흑금색 동공.
성녀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옛 아버지께서는, 흑금 옥좌의 주인께서는 언제나 그대 같은 희귀한 힘의 소유자를 욕심내십니다. 바라건대 그분께 귀의하셔서 이 지옥 같은 세상, 이 지옥 같은 지구에서 평안과 평화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콰아아아.
머리 위로부터 강대한 힘의 폭포가 떨어진다.
신성력.
옛 아버지 교단 특유의 음험하면서도 강철 같은 기운이 내 몸을 관통하여 쏟아지고 있었다.
옆의 직원이 놀랍고도 부럽다는 얼굴로 날 보았다.
“세례라니, 그것도 성녀님께 직접! 좋으시겠어요!”
직원만이 아니다.
1층 광장에 있던 사람들, 성녀를 호위하던 성기사들, 성녀 소식을 듣고 구경하러 온 초인들 모두 날 주시하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기서 이 힘을 받아들이면 나는 즉시 [세례] 특성과 [신성력] 특성을 획득한다.
교단에 정식으로 가입한 다음 사제 수업을 받으면 사제 계열 초인이 되고, 전투 수업을 받으면 전사 계열에 포함되는 성기사로 인정받겠지.
이 시점에서는 괜찮은 선택이다. 성녀에게 직접 세례받았다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서 탄탄대로를 걸을 테니.
문제는 고대신 부활 이후.
옛 아버지 교단은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고 대한민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초반에는 서울의 절반을 점령하고 대한민국 국군을 괴멸시키기까지 하지만 결국에는 패배하고 말지.
군단, 재벌, 마탑, 교단.
아케인 서울을 지배하는 주요 세력들이 비로소 참전하거든.
‘상장 폐지될 주식을 풀매수하는 멍청이도 있냐?’
유감스럽게도 난 아니다.
다만 여기서 세례를 거부하면 신열에 걸린다는 게 치명적.
신열.
아케인 서울에서도 대단히 강력한 디버프.
신열에 걸리는 순간 정상적으로 일상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고집을 꺾고 신전에 찾아가 세례받기 전까지 24시간 내내 고문당하는 거니까.
‘그래도 세례받을 수는 없어.’
신열을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엘릭서로는 불가능하지만 넥타르나 암브로시아 같은 한계 돌파 보물이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내가 아직 1레벨밖에 안 돼서 쓸 수 있는 방법도 있지.
마음을 굳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무릎 꿇고 싶어 하는 육체를 통제하여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거부합니다.”
덜컹!
힘이 흔들렸다.
공기가 확 바뀌었다.
아예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다.
도도하게 나를 관통하던 힘의 폭포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대신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물이 얼어붙은 듯 그렇게, 내 몸에서 박제된 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거지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성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히!”
“저 불경한 자가!”
성기사들은 화를 냈다.
“멍청하긴.”
“지 복을 지가 찬 거지.”
“내기할까?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세례 해달라고 울부짖고 있을걸.”
“애송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군.”
초인들은 비웃었다.
“아니, 왜?”
“세례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
“불신자인가 보지.”
“아무리 불신자여도 그렇지. 세례잖아, 세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세례받을 수만 있으면 그 교단에 뼈를 묻어야지, 암.”
일반인들은 의아해했다.
아무도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옛 아버지 교단이 대한민국 전체와 전쟁을 벌일 거라고, 그래서 패망하고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어?
나는 다시금 의지를 모아 말했다.
“거부합니다.”
화악, 성녀가 찬 고글에서 불이 일어났다.
이제 고글 위 눈동자에 맺힌 감정은 불신과 당혹스러움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노여움이었다.
거절당한 신의 감정이 성녀를 통해 여과되지 않고 콸콸 쏟아진다.
“으윽!”
정신이 아찔해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저절로 주저앉는다.
쓰러진 나를 보면서 성녀가 냉랭한 목소리로 묻는다.
“진심이십니까?”
“예, 진심입니다.”
“아쉽네요.”
성녀가 몸을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저었다.
“어째서 고통의 바다에, 이 지옥에 괴로움을 더하시려는 겁니까? 옛 아버지의 옥좌에 스스로를 바치는 순간 그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되거늘.”
헛소리.
살아있을 때도, 죽은 지금도, 부활을 시도하는 미래에도 인신 공양받던 신이 퍽이나 그러겠다.
성녀가 숙이고 있던 몸을 폈다.
담담해진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좋습니다. 인간이 신을 섬기는 것도, 신을 거부하는 것도 모두 자유. 저희 교단은 베스트팔렌 신멸 조약을 준수합니다. 자유의지에 따라 옛 아버지를 거부하신다면, 저희도 그 자유의지를 존중해야겠지요. 하지만······”
성녀가 허리를 굽혔다.
내 귀에 체리 같은 입술을 갖다 대고는 조용히 속삭인다.
“옛 아버지께서는 이미 그대를 점지하셨다는 점을, 신성의 티끌이 그대에게 깃들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티끌조차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선택도 자유의지도 아무 의미가 없지요.”
화악!
“크윽!”
불길이 치솟는다.
내 심장에서, 허파에서, 목구멍을 타고, 입술을 넘어 전신으로 불꽃이 번진다.
까맣고 까만 불이다.
인체를 직접 손상하지는 않되 신경계를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인간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낀다는 작열통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가한다.
철컥, 철컥.
“건승하시길. 위대한 영혼이여.”
이건 성녀의 티배깅이었을까?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고는 성녀가 몸을 일으켰다.
철컥, 철컥.
쇳소리와 함께 성녀가 멀어진다.
성기사들이 줄지어 따라갔다.
몇 명은 침을 뱉고, 몇 명은 욕을 하고, 몇 명은 날 비웃었다.
“퉷!”
“하찮은 구더기 주제에 감히 세례를 거부하다니.”
“저놈 들어오면 성전사 보내서 굴립시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내주겠다고?”
“신앙도 시련이 있어야 강해지는 법 아닙니까. 어쨌든 성녀님께서 직접 점지하신 놈이니 우리가 아량을 보여줘야지요.”
“듣고 보니 옳은 말일세.”
“놈. 죽었다고 복창해라.”
나는 그걸 모두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참 괴상한 감각이다.
육체가 불타며 고통스러운데, 당장이라도 미칠 것만 같은데, 되레 정신이 또렷해지며 주위를 선명하게 지각하고 인지하게 되는 것은.
“쯧쯧.”
“그러게 얌전히 세례를 받았어야지.”
“나는 받고 싶어도 못 받았고만······”
“저거 어쩌지? 그냥 저대로 놔둬?”
“놔둬. 괜히 손댔다가 부정 탈라. 살고 싶으면 지가 알아서 옛 아버지 신전 찾아가겠지.”
주변엔 아무도 없다.
딱 한 명.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한 사람을 빼면.
“초인님······ 어떻게 해······”
나랑은 전혀 면식이 없었던, 오늘 처음 본 초인탑 직원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태아처럼 몸을 말고 신음을 삼켰다.
그러면서 속으로 되뇌였다.
‘정신 차리자.’
이대로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눈을 최대한 치켜뜨고 열린 천장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하여 성녀가 탄 비공선이 탑을 떠나고, 꽃처럼 만개했던 천장이 닫힌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행동에 나섰다.
특성 전환.
[인내][맷집][활기] [상처 회복][재생]여기에 하나 더.
[죽은 척]심장 뛰는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고 몸이 차갑게 식었다.
핏기가 싹 빠지는 바람에 검은 불꽃 아래, 내 손이 퍼렇게 질려버릴 지경이다.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내가 검은 불꽃에 휩싸여 있는 탓에, 오로지 검은 불꽃만이 보이기 때문에.
“으으으.”
효과가 있었다.
외형상 검은 불꽃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로 인한 통증이 크게 경감되었다.
죽은 척은 무조건 대상 고정을 해제시키는 특성이자 기술.
신열은 대상의 격에 따라 약해지고 강해지는 디버프라서 1레벨 초인인 나는 죽은 척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인내와 맷집으로 피해를 감소시키고 활기, 상처 회복, 재생으로 조금씩이라도 회복하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자.’
그래도 고통스럽다.
인두 수백 개로 몸을 동시에 지지는 것 같다.
“끄으으윽.”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누군가 내 머리에 물을 부어주었다.
“힘내세요.”
아까 날 안내하던 직원이었다.
성수도 치유 물약도 아닌 그냥 생수.
비싼 건 아니지만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다른 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부정 탄다고 얼씬도 안 하고 있는데 혼자 날 도와주고 있으니까.
차디찬 생수가 머리를 적시고 몸통으로 흐른다.
직접적으로 검은 불꽃이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되레 차갑고 축축한 감촉과 뜨겁고 격렬한 통증이 대비되어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떠오르는 어떤 힘 하나.
내 몸에 무형의 일렁임이 번지며 검은 불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신성 저항] 특성을!“고, 고맙습니다.”
“괜찮으세요? 신전에 모셔다드릴까요?”
“아닙니다.”
순수하게 걱정과 염려에 찬 눈빛.
이 막장 세계에서는 처음 만나보는 순수한 영혼이었다.
“끄으응!”
신음과 함께 숨을 들이킨다.
새로 얻은 신성 저항까지 더하니 그래도 견딜 만했지만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죽은 척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다른 특성이 필요했다.
[인내][신성 저항][마력심] [마력 회복][심호흡][마력 흡수]처음 바꿨던 그 버티기 특성이 아니다.
되레 검은 불꽃을 부채질하는 특성이었다.
신열은, 성화는 상대가 강할수록 강해지고 특히 마력량에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화악!
“어떻게 해!”
검은 불꽃이 혀 날름거리듯 거세게 번지고 생수 붓던 직원은 완전히 울상이 된다.
종종종 뛰어가더니 생수를 몇 리터씩 사와 내게 들이부었으나 불꽃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거칠게 타올랐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다.
“거 하나도 소용없는 걸 왜 자꾸 해.”
“돈만 아깝다.”
“소린 씨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내버려 둬. 지가 사서 고생하는 걸 왜 도와주려고 해?”
“저놈 지금이라도 옛 아버지한테 기도하면 바로 멈춰. 그사이에 신전 찾아가면 돼.”
“뭔 능력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신께서 단단히 찍으셨어.”
사실은 달랐다.
직원이 부어주는 물줄기가 내게는 감로수와도 같았다.
고통과 감각의 대비 때문이다.
그 청량하면서 맑은 기운이 내게 한 가지 영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끙끙 앓으면서도 정신을 집중한다.
원래는 고통을 더 강하게 느끼라는 의미에서 강화되고 냉정해지는 정신.
덕택에 할 수 있었다.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차가운 감각에, 내 머리를 적시는 생수에 집중한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불과 물의 대비.
상상한다.
물이 번진다고.
파도가 용암을 밀어낸다고.
신성력과 마력의 대비.
불과 물의 대치.
여기에 강제로 끌어 올려진 내 집중력.
이 모든 것들이 하나되어 강력한 특성을 탄생시킨다.
[마력 방어막]방어 전사, 퓨어 탱커 지망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1티어 공용 특성.
내 심장으로부터 무형의 힘이 발산된다.
완벽한 구체.
완전히 투명한 파동.
마력 방어막이 물결처럼 달려가 검은 불꽃과 부딪혔다.
기름 부은 듯 잠깐 화악 타오른 검은 불꽃.
거기까지였다. 잠깐 반항하던 검은 불꽃이 마력 방어막에 떠밀려 스러진다.
아니, 추방된다.
내 몸 밖으로. 내 신경계를 불태우지도 고문하지도 못하는 위치로.
그리하여 떠오르는 검은 불꽃 무리.
흡사 검은 도깨비불.
어쩌면 검은 화룡처럼 보일 신성력을 휘감은 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