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62)
특성 쌓는 김전사-164화(162/300)
164화 구로성채 -3-
“당연한 결과입니다.”
최선수는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
“돈 좀 발라서 묵호검주님께 빚을 지울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남는 장사지요. 안 그렇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다.
“묵호검주님은 상한가를 연속으로 치고 있는 주식과 같습니다. 작전주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죠. 초우량 주식입니다. 최소한 7레벨, 8레벨까지는 올라가실 거 아닙니까. 아직도 저평가 상한가 예약 주식이니, 저 같아도 미수에 대출에 사채까지 끌어다가 영끌 매수 갈기겠습니다.”
“차라리 지분 나눠 주는 게 속 편하겠다.”
“동맹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도와줄 때 도와주시고 도움받을 때 도움받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음 날.
각 세력에서 대리인들을 보냈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묵호검주님. 저번에는 크게 실례했습니다.”
내게 허리를 90도로 꺾는 이 남자.
30대 초반인데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국군이 아닌 동부군 정복을 입고.
백마 고지에서 봤던 그 중령.
불퉁하게 나오던 그때와 다르게 대단히 깍듯했다.
“오랜만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안녕하세요. 묵호검주님! 서부군 소령 채송하예요!”
씩씩하게 경례를 붙이는 여인.
굉장히 앳되다.
20대 초반이 아니라 1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그래서 말투가 저런가 보다.
군인답지 않은, 민간인에 가까운 말투.
그래도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마력 파장으로 볼 때 5레벨.
서부군 군단장 직계 같은데 희한하게도 시선을 끌었다.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고 할까?
나는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서부군에서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군단장님께서 묵호검주님을 굉장히 궁금해하셔서요! 직접 오시겠다고 하시는 걸 부관님들께서 말리셨어요!”
“그렇습니까?”
이상해.
수상하기도 하고.
슬쩍 귀안과 육감을 장착하고 채 소령을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것이 보여야 한다.
레벨, 특성, 마력 회로 형태, 마력 흐름, 품고 있는 생각까지도.
그런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흐릿한 마력 파장뿐.
‘뭐지?’
그러거나 말거나 채 소령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향해 재미있다는 시선만 던진다.
마치 손주 녀석 재롱 보듯이.
꿈틀, 내 육감이 슬며시 경고를 보냈다.
이거 혹시…….
내 생각은 여기서 단락을 맺었다.
금오 그룹에서 파견한 대리인.
성희영 회장의 비서실장, 예전에는 김 비서라고만 불리던 남자가 악수를 청한 까닭이다.
“묵호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취임식에 참석하실 줄 알았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일이 있어서요.”
“예. 저도 사정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회장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희영 회장이?
도대체 뭔 말을 하려고?
내가 빤히 쳐다보자 비서실장이 슬그머니 웃었다.
“회장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겠답니다.”
어…….
뭐를요?
설마 그거?
살짝 소름이 끼쳤다.
아예 비서실장을 돌려보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금오 그룹 투자 건, 백지로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지경.
하지만 비서실장이 한 발짝 빨랐다.
다른 대리인들을 둘러보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저희 금오 그룹에서는 이번 구로 재개발에 4천억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4천억!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많다.
1천억은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4천억이라고?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비서실장과 맞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예. 그거면 됩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비서실장이 나를 한 번 보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저희 회장님, 너무 미워하지 마십쇼. 재벌가에서 태어나셔서 좀 일그러져서 그렇지, 원래는 착하신 분입니다.”
뭐, 나쁜 사람은 아니지.
거짓말 안 하고, 계약 안 어기고, 꼼수 안 부리는 것만 해도 이 세상 재벌가 사람으로는 인성이 상타는 친다고 봐야 한다.
날 이용하려고 한 거 아니었으면, 또 내가 인간 불신에 젖어 있지 않았으면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 거다.
거기다 4천억까지 꼽아 주며 하는 말.
나는 묵직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도 잘 압니다. 못 믿을 분이라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같이 일도 안 했지요. 미워한 적도 없습니다. 서로 안 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하하. 그거면 됩니다. 그거면.”
비서실장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러났다.
동부군 중령이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다.
“4천억이라니…….”
아무리 4대 세력이라도 부담스러운 금액.
“동부군에서는 1천억을 투자하겠습니다. 저희는 금오 그룹처럼 현금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합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군단장님과 사단장님들께 감사 인사 전해 주세요.”
“예. 군단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역시 재벌이 돈은 가장 많다.
다른 세력들도 경쟁하듯 나섰다.
“형. 할아버지가 2천억 투자하신대요. 원래는 더 많이 투자하시려고 했는데 연구비가 많이 묶여 있어서 여유가 안 났어요.”
“어휴. 2천억이 어디냐. 정말로 고맙다. 내가 언제 직접 한번 인사드리러 갈게.”
“고마워요.”
“지분은 안 필요하시대? 나 진짜 지분 나눠 드리고 싶은데.”
“절대 안 되죠. 뭐 받아 오면 할아버지가 저 내쫓으실걸요.”
“하하하.”
태양 마탑의 대리인은 다름 아닌 김마법.
아예 내 전담 마크로 붙일 생각인 모양이다.
나한텐 좋은 일.
별로 부담스럽지도 않고 시킬 일 있으면 막 시키기도 좋으니까.
“토르 교단에서도 2천억을 투자합니다.”
“가이아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러리스트 놈들만 아니었으면 더 투자할 수 있겠습니다만 자금이 묶여 있어서 아쉽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크게 힘이 됩니다.”
사실 두 교단엔 크게 기대를 안 했다.
내가 명예 성기사라고는 하지만 뭐 기여한 게 있어야지.
유럽에 소재한 대신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대한민국 지부와는 별다른 교감도 없었고.
그런데 두 교단이 생각하기엔 다른 모양이었다.
가이아 교단 주교가 내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대주교님께서 성기사님를 매우 각별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대주교님께서요? 제가 특별히 한 일도 없습니다만…….”
“사실, 이번 일에 저희가 대처를 미진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야…….”
“크게 욕을 먹을 뻔했는데 성기사님께서 활약하셔서 저희가 그 덕을 보았습니다. 음, 그리고 이건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지금도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팔고 있다는 거네.
솔직히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써먹으려고 명예 성기사 직위 준 거 아니겠어?
나도 급하면 명예 성기사 직위 써먹는데 가이아 교단이라고, 토르 교단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 없지.
그래도 켕기기는 한 모양.
2천억을 줘 가면서 이렇게 귀띔하는 것을 보면.
난 괜찮다.
안 괜찮아도 어쩔 거야?
2천억이다. 2천억.
부모님 죽인 수준의 원한이 아니면 기꺼이 잊어 줄 수 있다.
말도 없이 이용하기만 하면 빡치겠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더 많이 써먹으세요. 아주 사골까지 우려내서 드셔도 괜찮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리고 언제 한번 강남 대신전에 놀러 오십쇼. 대주교님께서 목이 빠져라 성기사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하. 그러겠습니다.”
“성기사님. 저희 대주교님께서는 조만간 성기사님을 예방(禮訪)할 예정입니다. 굳이 저희 대신전까지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장 위대한 번개를 친견한 분께 어찌 감히 오라 가라 하겠습니까? 저희는 저어기 그리스 신전과는 다릅니다. 언제든 시간만 정해서 알려 주십시오.”
“아니, 이 무식한 노르드 곰 봐라?”
“어쩌자고. 그리스 샌님아.”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인인데 노르드 곰이니 그리스 샌님이니 하는 게 웃겼다.
그래도 웃으면 안 되지.
나는 입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어떻게든 웃음 참기에 성공.
여태 날 주시하던 서부군 채 소령이 손을 들었다.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하세요.”
“재개발에서 가장 문제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주민들 소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기 계신 분이 하나요?”
채 소령이 구석에 앉아 있던 김철권을 본다.
딱 봐도 갱단 두목처럼 생겼으니까.
그게 이 세상의 상식이었다.
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갱단을 용역처럼 써서 모조리 내쫓는 것.
죽든 말든 신경 안 쓴다.
넘치는 게 사람 머릿수다.
보상금이랍시고 돈 몇 푼만 줘도 자비롭다는 소리를 들었다.
“적정한 보상금을 책정해서 지급할 예정입니다. 사업자들은 3년간 영업 이익을 평균 내서 휴업 기간 동안 지급할 거고요, 주민들에겐 이주정착금, 주거 이전비, 이사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만약 지역 밖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 임시 거주 시설을 건설해 수용할 거고요.”
이주정착금, 주거 이전비, 이사비.
기준은 원래 세계 대한민국이다.
이주정착금은 집값의 30%.
주거 이전비는 주택 소유자에게는 가계지출비 2개월, 세입자에게는 가계지출비 4개월.
이사비는 말 그대로 실제 소모 비용.
다 들은 대리인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김마법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형.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뭐가?”
“무슨 자선 사업 하세요? 이주정착금이요? 주거 이전비? 그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철권이 형한테 말해서 다 쫓아내 버려요! 구로에 사는 인간들은 다 게으름뱅이에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 불법 체류자, 범죄자들이라고요! 살려 두면 형 발이나 잡을 작자들이에요! 사정 봐줄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머리를 끄덕인다.
유일하게 채 소령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게 이 세상의 보편적인 인식이겠지.
원래 세계라고 달랐겠어?
산업 혁명 초기에는 대부분 저렇게 생각했다.
복지라는 개념이 뇌에 박힌 건 원래 세계에서도 최근 일.
“마법아.”
“네?”
“내가 돈 때문에 재개발하는 것 같냐?”
“그건 아니죠. 형은 돈에 별로 관심 없잖아요.”
아닌데.
관심 많은데.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그렇지.
내 최대 관심사는 특성. 즉 강해지는 거니까.
이 세상에선 그게 정답이기도 하고.
개인이 강해지면 돈도 권력도 명성도 다 따라오는 세상이잖아.
“너도 들었지? 최 소장이 테러당해서 중환자실 입원했던 거.”
“네. 들었어요. 형이 엘릭서까지 썼다고…….”
“그래서 본때를 보여 주려고. 테러 연맹 놈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아예 발붙일 곳이 없게 만들 거야. 둥지 다 태워 버릴 거라고.”
구로성채 없애고 대림동 쓸어버리면 지들이 어쩔 거야.
게임에서 테러 연맹은 완전히 박멸되진 않는다.
숨을 곳이 워낙 많고, 막장화되는 세상에서 치안은 계속해서 안 좋아지니까.
하지만 치안 외 구역을 모두 없애 버리면?
재개발하고 삐까번쩍한 신도시를 세우면?
경찰서와 소방서, 병원을 팍팍 집어넣으면?
아무리 테러 연맹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일제가 독립군 때려잡으려고 문화 통치 하던 거랑 비슷한 작전이네요.”
무슨 비유를 해도…….
누군가 해서 보니 채 소령이었다.
10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무슨 100년 전에나 통할 비유를 하지?
뭐라 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채 소령의 진면목을 알 것 같아서.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무국적자들은 어쩌실 거예요? 구로성채는 공권력이 안 미치는 곳이라서 출생 신고 안 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대한민국 국민이 거의 없어요, 거기.”
그래서 더 내쫓는 게 선호된다.
잔인한 인간들은 다 죽여 버리기도 하고.
하지만 내 감성에는 안 맞다.
목적에도 안 맞고.
“제 이름으로 보호할 겁니다.”
“네? 뭐라고요?”
“제 이름으로, 오로지 구로동에서만 통하는 주민증을 발급하고 주민들을 보호할 생각입니다. 과거는 불문하되, 초인은 반드시 등록하게 할 거고 심각한 범죄 사실이 입증되면 보상금 없이 내쫓아야지요. 단, 제가 보호하는 이상 대한민국 법에 따라야 합니다. 거부하면 당연히 추방하고요.”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
다들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채 소령의 얼굴도 날카로워진다.
“묵호검주님.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죠?”
“예. 압니다.”
사실상 영지 선포다.
국가를 구성하는 셋이 뭐냐.
국민, 영토, 주권이다.
내가 말한 것도 그와 같다.
이대로 내 선포가 이뤄지고 주민들이 순응하면 정말로 구로동은 내 영지가 된다.
파주 시국이나 철원 시국처럼.
“감당할 수 있겠어요?”
칼날 같은 눈동자가 나를 꿰뚫는다.
군단장을, 마탑주를, 성녀를, 법황을 연상시키는 두 눈.
나는 먼저 최선수를 돌아보았다.
최선수가 놀라워하면서도 신뢰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김철권 역시 마찬가지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나를 향해 우직한 시선을 던지는 중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책임감.
어깨가 무겁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을, 다른 생명을 책임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기억한다.
망가진 내 건물을, 내 부하를 보면서 느꼈던 분노를.
머리끝까지 치솟던 분기를.
나는 묵호검 손잡이를 꾹 쥐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사르륵, 채 소령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표정이 아예 달라졌다.
서릿발 같은 기상을 뿜던 것에서 손주 보는 할머니처럼.
“넌 이미 왕의 심장을 가졌구나. 요즘 초인들이 맥아리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말투가 바뀌었다.
옆에 앉아 있던 동부군 중령이 깜짝 놀라 다그친다.
“채 소령! 묵호검주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야! 배분으로 따지면 우리 할아버지뻘이라고!”
할아버지?
아닐걸.
그 반대일걸.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칭찬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이렇게 왕림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어여삐 봐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군단장!
다그치던 중령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는 채 소령을, 아니 서부군 군단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서부군 군단장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제 알았니? 눈치가 빠르다?”
“처음 뵀을 때부터 의심했습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니까. 할미 엉덩이만 훔쳐보던 구 씨네 어린놈과는 다르게 말이야. 안 그러냐?”
“무, 무, 무, 무, 무슨!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중령이 사색이 되어 손을 휘저었다.
“그게 어디 구 중령 잘못이겠습니까. 다 군단장님 미모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런 거지요.”
“깔깔깔! 듣던 것과는 다르구나? 할미한테 아부도 할 줄 알고. 용돈이라도 좀 주랴?”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부군 군단장이 호쾌하게 웃으며 만년필을 꺼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온갖 희귀 재료와 마법 금속의 집합체이자 예술품.
허공에 휘리릭 뭔가를 갈긴다.
즉석 어음.
서부군 공식 마력 인장과 군단장 서명이 들어간.
[금 100,000,000,000원(금 일천억 원)]“옛다!”
정말로 용돈 주듯 천억 원을 주고는 내 등을 두드렸다.
“지금 마음을 기억해라. 어째서 뜻을 세웠는지, 네 시작이 어디였는지 절대로 잊지 마. 처음 뜻은 숭고했으되 끝에는 힘에 취해, 권력에 취해, 명성에 취해 괴물이 되어 버린 자들을 너무 많이 봤다. 너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구나. 호랑이 영감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 영감 눈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냐, 오냐. 무럭무럭 자라거라. 그래야 이 할미도 마음 편하게 쉬지. 나중에 또 보자꾸나.”
그 말만 남기고 서부군 군단장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야말로 신화경에 이른 무공과 환술의 결합.
“살펴 가십시오.”
사람들은 문 쪽을 쳐다봤지만 나는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후 뒤쪽 벽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벽에 사람 얼굴이 나타나더니 크게 미소를 짓는다.
직후 벽을 투과해서 자리를 뜨는 서부군 군단장.
경탄일지 경악일지 모를 시선이 쏟아졌다.
“이제 일 이야기를 하죠.”
폭풍이 지나갔지만 다들 여운이 남았는지 상기된 얼굴.
나 혼자 담담했다.
나 하나만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관없다.
선장만 키를 잘 잡고 있으면 배는 어떻게든 굴러가는 법이니.
며칠 후.
동부군, 금오 그룹, 태양 마탑, 토르 교단, 가이아 교단, 여기에 서부군까지.
총 여섯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과 후원에 힘입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계획서와 제안서가 통과하고.
구로성채 재개발이 전격적으로 실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