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29)
특성 쌓는 김전사-229화(229/300)
229화 불가해의 성 –1-
북극.
공기가 얼어붙어 있다.
구름 안을 지나자 응결된 얼음 덩어리가 사정없이 몰아친다.
[기후 결계 전개합니다.] [마법 방어막 작동합니다.] [환경 적응 마법진 구현합니다.]그러나 내 전용기는, 스카이 하피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일체 특성을 써서 마하 4로 달렸음에도 그랬다.
내 특성 전환에 대해 들은 후에는 특성 선택에 조언까지 주었다.
[다른 어떤 특성을 사용하시든 운전과 조종은 항상 선택하시는 게 낫겠습니다.]탈것을 강화하는 운전.
자기 몸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조종.
그 둘이 있어야 탈것 성능이 제대로 발현된다나.
마법 정령의 말이 맞았다.
마하 4로 몇 시간을 내달렸는데도 스카이 하피는 부품 하나에도 무리가 가지 않았다.
[마법 활주로 전개합니다.]구름을 뚫고 내려온 지상.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어지간한 비행기라면 착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마법 시야가, 탐지기가 지상 상황을 완벽히 확인해 주었다.
여기에 마법 활주로가 전개된다.
길고 완만하게 뻗어나간 활주로 위에서 비행기가 감속.
적당한 순간에 바퀴를 내려 속도를 줄였다.
그리하여 지상에, 얼어붙은 얼음 위에 비행기 바퀴가 닿은 것은 고작해야 50미터 남짓.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공터만 있으면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주인님. 여기에 목적지가 있습니까?]북극점 바로 근처.
여기서 50 킬로미터만 가면 북극점이다.
당연히 허허벌판.
탐험가들이 꽂아 놓았다는 깃발도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 맞아.”
스카이 하피에는 굉장히 수준 높은 탐지기가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그 탐지기로도 여기 있는 결계를 탐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북극 현지 세력.
이 세상에도 고대에나 존재했다는 이종 혈통을 이은 존재들.
대부분 격세 유전인, 생김새도 초능력도 이질적이고 희귀해서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자들의 도시.
불가해의 성이 이곳에 있다.
‘괴물촌이랑도 비슷한데…….’
훨씬 불리한 처지다.
돌연변이는 수라도 많지.
이종 혈통은 개체는 강력하지만 그 수가 너무 적다.
마법사들이 작정하고 사냥하기 시작하자 무력하게 당할 정도로.
모르긴 몰라도 나랑 친한 태양 마탑 지하에 이종 혈통 여럿이 잡혀 있을걸?
저벅저벅.
스카이 하피는 관리 모드로 놓고 눈에 보이는 곳을 향해 갔다.
눈보라가 유난히 거칠게 휘날리는 지점.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백야 아래, 유독 어두워 보이는 곳이 있다.
나도 귀안에 육감, 예언자의 고리, 금오안의 도움을 못 받았으면 무심히 지나쳤겠지.
휘잉!
결계와 접촉한 순간.
바람이 날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핑 도는 머리.
‘아, 할 게 있었지.’
집에 가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외출 직후, 가스레인지 밸브를 안 잠근 것 같다는 감각.
하늘배 개수도 점검해야 하고, 레드 쿠거도 고쳐야 하고, 구로동과 대림동 재개발도 확인해야 하는데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속으로 가만히 실소했다.
‘세긴 세네.’
다 알고 있는데도 이 정도야?
[금강체][결의][극기] [냉정][총명][집중]정신 방어에 좋은 특성만 장착하고 다시 전진.
슬며시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다가 말았다.
8레벨 초인이 설치한 결계도, 내 특성 전환 앞에선 한낱 모래성에 불과했던 것이다.
눈보라가 그쳤다.
폭풍의 눈에 들어온 듯 적막이 날 반겼다.
새파란 하늘 아래 서 있는 보석성.
도무지 뭘로 지었는지 이해 가지 않는, 무지갯빛 성벽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불가해의 성.
벽돌 하나하나에 방어 마법과 유지 마법이 담겨 있다고 했지?
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기온은 북극답게 지독히 차갑지만 괜찮다.
군단장이 준 묵호보의.
새로운 츄리닝이 날 보호해 주고 있으니까.
“어?”
“인간?”
성벽 위에 서 있던 이종족이 몸을 움찔했다.
한 명은 트롤.
한 명은 아수라.
자기들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들더니 서로 마주 보며 뭐라고 속닥거린다.
육감과 토끼 귀를 함께 장착.
이해, 냉정, 집중을 같이 쓰자 비로소 말소리가 들렸다.
“어쩌지? 대장님 부를까?”
“밤이잖아. 택도 없는 걸로 불렀다고 화낼 것 같은데…….”
“그래도 인간이잖아. 인간이 우리 도시 찾아온 건 10년 만이야.”
“그때는 사냥꾼 놈들이 쳐들어온 거였고.”
“어? 저놈도 사냥꾼 아냐?”
“사냥꾼이었으면 지 무리를 끌고 왔겠지.”
“정찰병일지도 몰라.”
“정찰병이면 우리 보자마자 튀었을걸.”
“아, 그래서 어쩌자고.”
분명히 영어.
억양이 괴상하고 예스럽긴 하지만 영어가 맞다.
나는 골프백을 열어 잡동사니를 꺼냈다.
적당히 긴 천에 빨간 물감으로 문구 하나를 휘갈겨 썼다.
[이종 혈통 특효 면역억제제 팝니다.]면역억제제.
내가 아는 한 불가해의 성 평판을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
여기 이종족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자가 면역 질환이다.
몸뚱이가 완전히 이종족의 것이면 괜찮다.
문제는 어설프게 인간과 이종족이 공존한다는 것.
인간 면역 세포는 이종족 세포를 공격하고.
이종족 면역 세포는 인간 세포를 공격하고.
그 때문에 생기는 질환으로 이종 혈통은 유아기에 사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초인이 되면 극복할 수 있지.
그런데 아이들은?
막 태어난 신생아들은?
자연스럽게 불가해의 성 의학이 무척 발전했지만, 이 자가 면역 질환만은 완벽히 정복하지 못했다.
‘이건 태양 마탑이 만든 거였지.’
내가 괜히 태양 마탑 지하를 의심하는 게 아니야.
에피소드 7 빙하기.
불가해의 성 진영이 등장하자마자 이 약을 내놓는 이유가 뭐겠냐고.
게임에선 골드 소모용이라고 입을 털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게 아니지.
골프백에서 연금술 마법 솥을 꺼냈다.
대주교가 사다 준 재료도 차곡차곡 쌓았다.
여기까지 날아오며 필요한 만큼은 골프백에 넣어 둔 것.
마지막으로 골프백 한쪽에 잠자고 있던 용의 피를 들어내면 준비 완료.
용의 피!
바로 쓰면 안 되고 1/100로 희석해야 한다.
비율을 안 지켰다가는 면역 억제제는커녕 혈통 폭주약이 되어 이종 혈통인을 죽게 만드는 수가 있다.
용의 피 희석액을 마법 솥에 부었다.
그 위에 5가지 약재를 법제하여 넣는다.
[장인][조제]두 특성이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 도움 될 특성을 장착한 다음 끓이기 시작.
마법 국자로 조금씩 저어주고 0레벨 마력핵 가루도 양념 치듯 넣자 약액이 선명한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기이한 냄새.
“킁킁! 이게 뭔 냄새야?”
“저 인간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어?”
“왜 그래?”
“코가 뚫렸어!”
“으응?”
“내 비염, 내 비염이 치료됐다고!”
“뭔 개소리야? 약은 먹고 있다며?”
“그 사기꾼 새끼 말은 하지도 마! 효과도 없는 걸 마법화만 처먹고 말이야!”
느긋하게 기다렸다.
어차피 경비병들은 나한테 와야 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어 주겠지.
일이 잘되어 말로 끝나든 간에,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든 간에.
마법 솥을 저어 약액을 만드는 나.
그런 나를 힐끔힐끔 지켜보는 경비병들.
시간이 휙휙 흘렀다.
백야 기간이라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하늘.
조금 더 밝아졌다 싶을 때 경비대장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저놈은 뭐야!”
“어젯밤부터 와서 저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날 깨웠어야지!”
“그게, 사냥꾼은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특별히 적의를 보이지도 않고, 거리도 저기서 더 들어오질 않아서요.”
“흠.”
경비대장이 찌르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상당히 날카로운 눈빛.
엘프라서 그럴까?
전사인데 마법적인 힘이 함께 느껴졌다.
‘얼음 정령이네.’
나는 귀안으로 엘프의 허리띠를 보곤 머리를 끄덕였다.
마법 허리띠에 얼음 정령이 칭칭 자기 몸을 휘감고 있었다.
엘프는 불이나 얼음 정령은 잘 안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세상에선 또 다르다.
진짜 엘프가 아니니까.
그저 격세 유전으로 이종 혈통이 발현된 것일 뿐, 그 실체는 인간.
탓!
경비대장이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어엇!”
“대장님! 같이 가요!”
“쓸모없는 것들! 혹시 모르니까 방어대랑 감시대에 연락해! 저놈 혼자 왔을 거라고 누가 장담해?”
“예! 바로 협조 요청하겠습니다!”
“1대는 나 따라오고, 2대는 성벽 기동하고, 3대는 요격포랑 요격 미사일 준비해!”
“예!”
늘어져 있던 경비병들이 급히 움직인다.
10년간의 평화가 나태와 방만을 불러왔지만, 경비대장만큼은 제정신이었던 것.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경비대장을 주시했다.
아는 얼굴이다.
게임에도 등장하거든.
단순히 NPC가 아닌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SSR급 캐릭터로.
[겨울 여왕]초대 천마와 북해빙궁의 후예라는 특이한 설정의 소유자.
다른 캐릭터와 다르게 개인 퀘스트를 먼저 완료해야 영입 가능해진다.
유료 뽑기로도 마찬가지.
뽑을 수는 있는데 비활성화된 상태로 남아 있지.
“넌 뭐냐?”
겨울 여왕, 아니 아직은 겨울 여왕이 아닌 경비대장이 툭 내뱉듯 물었다.
나는 꽂아 놓은 입간판 대용 천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약 팔러 왔다.”
“약?”
천에 쓰인 문구를 보고는 코웃음을 치는 경비대장.
“그걸 믿으라고?”
“이런 거라도 해야 들여보낼 줄 거 아냐.”
“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온 거냐?”
“당연히 알고 왔지.”
나는 대놓고 경비대장을 한 번 보았다.
전형적인 엘프 외모인 경비대장.
이어서 뒤쪽 경비병들에게 시선을 준다.
참 다양한 종족이 모여 있다.
아까 봤던 트롤, 아수라는 물론 거인, 드워프, 오크, 고블린, 천구, 나가, 수인, 사티로스, 반강시, 도깨비, 오니, 요괴 등등 전 세계 이종족은 다 모아 놓은 듯하다.
괴물촌보다 몇 배는 다채로운 광경.
경비대장이 흐흥 하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다 알고 왔다 이거지?”
“그렇다니까.”
“뭐 좋아. 법은 법이니까 경고부터 할게. 당장 이 짓거리 관두고 꺼져. 기억만 지우고 돌려보내 줄게.”
많이 유해졌네.
아니, 원래 유했던 건가?
게임에선 만나자마자 방방 뛰면서 죽이겠다고 난리를 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아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었던 모양.
나는 경비대장이 으름장을 놓거나 말거나 약액을 국자로 휘저었다.
“싫은데?”
“싫다고?”
“어.”
“그럼 나한테 맞는다? 형씨도 7레벨로 보이지만 말이야, 나한테 맞으면 좀 아플걸? 괜히 맞고 울면서 집에 가지 말고 좋게 말로 할 때 가.”
어째 말하는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나는 그만 싱겁게 웃어 버렸다.
생각해 보니 겨울 여왕에겐 정령안 특성이 있었다.
그 특성으로 내 현재 특성 세트를 읽은 모양.
그러니 말로 끝내려는 거겠지.
일반적인 4대 계열 초인이 아닌, 제작 계열 초인이라고 생각해서.
몸을 일으켰다.
뿌득뿌득 기지개 켜듯 어깨를 편다.
실시간으로 내 몸이 자라났다.
체구가 커지고 위압감과 마력 파장이 동시에 자라난다.
정령안으로 보는 이 광경은 어떨까?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다고 알려진 마력 회로.
6개나 되는 마력 회로가 실시간으로 교체되면서 전혀 다른 계통으로 바뀌고, 그 마력 회로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엮는 이 장면은.
경비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너!”
나는 허리에 찬 묵호검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묠니르와 어총은 무장집에 든 상태.
하지만 묵호검 한 자루만으로도 경비대장은, 따라온 경비병들은 압도하고도 남는다.
겨울 여왕은 SSR 등급이지만 경비대장은 SSR 등급이 아니니까.
“젠장! 덮쳐!”
“죽여!”
“죽이진 말고 죽기 직전까지만 패!”
일제히 돌진하는 경비병들.
서로 다른 종족이지만 그래서 더 매섭다.
작은 키를 이용, 큰 덩치를 이용, 여섯 달린 팔을 이용, 무형의 다리를 이용해서 사방팔방에서 날 덮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머리 위에서도 공격이 떨어지고 얼어붙은 땅을 통과해서도 공격이 날아온다.
특수한 초능력을 이용, 동료의 공격에 묻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분열하는 건 덤.
평범한 초인이라면 손도 못 써 보고 당했겠지.
그러나 나한텐 마르스 검투법이 있다.
전쟁신의 경험이, 백전노장의 본능이 집약된 검법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검의 주인까지.
소드마스터인 나를, 마르스 검투법으로 무장한 나를 아무리 정교한 합동 공격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있을까?
채채채챙!
검을 휘두르며 치고 나간다.
눈부신 흰색 검강이 번뜩이고 있다.
경비대장이 얼음 정령을 검에 주입해 간신히 막으며 외쳤다.
“오러 블레이드! 모두 조심해라!”
의미 없었다.
폭풍처럼 경비대장을, 경비대를 몰아쳤다.
중요한 순간마다 네피림의 검으로 변환하는 것은 덤.
확실하다 싶으면 칼라라트리를 발동했다.
꽈르릉! 꽈릉!
흑백검강이 돋고 벼락이 칠 때마다 경비대가 나가떨어졌다.
“컥!”
“켁!”
그러나 크게 다친 경비병은 없다.
트롤 경비병이 다시 일어나서 창을 찌르려고 하기에 목젖에 검을 들이대고 경고했다.
“한 번 죽었으면 그냥 누워 있지?”
춤을 꼴깍 삼키는 트롤.
내 눈치를 살피다가 스스로 풀썩 쓰러졌다.
“누, 누워 있겠습니다!”
경비대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등신아! 누우랬다고 누우면 어떻게 하냐!”
“하, 하지만 살기가 없는데요? 싸우다가 저 인간이 진심으로 화내면 어떻게 하라고요? 전 집에 임신한 아내가 있어요! 결혼 10년 만에 겨우 임신했다고요!”
“저게 진짜!”
성 쪽이 술렁거린다.
지원 요청했다는 방어대, 감시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경비대장의 얼굴도 활짝 폈다.
“테우스 대장! 다희 대장! 넌 이제 죽었다.”
“과연 그럴까?”
7레벨 초인이 추가되었지만 상관없다.
수백 명 초인이 더 달려왔어도 마찬가지다.
춤추듯 휘젓는 묵호검.
거침없이 터뜨리는 검강 앞에 세 대장이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숨을 헐떡이는 경비대장.
“허억, 허억, 허억.”
멍한 얼굴의 방어대장, 바위 거인.
아예 기절해 버린 감시대장, 구미호.
“우, 우릴 어쩔 셈이냐.”
경비대장이 이를 갈며 묻는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곱게 죽여라. 장로회에서 우리 복수를 해 줄 거다.”
“내가 왜?”
나는 묵호검을 허리에 꽂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마법 솥은 여전히 따뜻했다.
싸우는 동안 적당히 숙성된 모양.
붉었던 색깔이 사파이어처럼 파랗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씩 조심스럽게 작은 수정병에 넣는다.
이게 정량.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된다.
“그, 대장님.”
나한테 누워 있으란 소릴 들었던 트롤이 머릴 긁적였다.
“저 인간. 우리한테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이라도 들어 보시지 그러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인간을 몰라서 그래? 인간이 우리한테 한 짓을 잊었어?”
“당연히 못 잊죠. 그래도 저 인간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좋아.
너로 정했다.
새벽부터 성벽을 지키며 콧물 어쩌고 운운했던 트롤.
나한테 한 소리 들었던 그 트롤.
고이 포장된 약을 하나 던져 주었다.
트롤이 엉겁결에 약병을 받고는 날 멀뚱히 쳐다본다.
퉁퉁!
마력을 담아 입간판 천을 두드렸다.
“알레르기가 심해 보이는데, 한번 드셔 보시죠.”
권유를 빙자한 압박.
퉁방울 같은 눈이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