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36)
특성 쌓는 김전사-236화(236/300)
236화 도깨비 나라 –1-
달이 휘영청 뜬 밤.
나는 경주 불국사 위에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저번 침입 후 경비도 당직 스님도 늘어난 느낌이지만 상관없다.
7레벨이 된 지금, 나는 은신을 굳이 안 써도 쉽게 그들을 피해 다닐 수 있으니까.
‘슬슬 들어갈까.’
골프백에서 보물 세 점을 꺼냈다.
금척, 화주, 마지막으로 옥적.
즉, 만파식적.
저번엔 다산총 세트를 썼었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고대 보물 세 점을 사용하면 도깨비 나라로 진입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낫다.
다산총 세트로 생성되는 출입구는 5군데 중 무작위로 선택되지만, 고대 보물 세 점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거든.
삘릴리. 삘리릴리.
만파식적을 불었다.
마력을 넣어 정면을 조준했다.
그러자 특이한 음파가 울리고 울린 끝에 중첩되어 허공에 구멍을 뚫었다.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지는 호루라기 소리.
빼애액!
“침입자다!”
“어디야? 어디?”
“대웅전 위야!”
“잡아!”
경비들은 확실히 민첩했다.
내가 피리를 불자마자 반응해서는 달려온다.
이미 구멍에 몸을 던진 다음이었지만.
결국 경비들은 허탕만 쳤고 내가 보는 세상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수묵화 산맥이 꿈틀대는 세상.
메에에 우는 양 구름과 털 난 땅이 공존하는 곳.
오늘도 요정 바람이 불어와 내 뺨에 입맞춘다.
여기도 몇 달 만이네.
우두커니 서서 주위를 살펴보자 팟 하고 도깨비가 나타났다.
“여! 김 서방!”
유난히 키가 작은 도깨비.
대신 어깨는 떡 벌어지고 허리는 절구통 같다.
척 보기에도 힘 꽤 쓰게 생긴 몸.
나와 씨름으로 맞붙었던 도깨비 나라 천하장사, 당고마였다.
“오랜만입니다.”
“엉! 엄청나게 오랜만이야! 색시야! 와 봐! 우리 중매해 준 김 서방이 왔어!”
“김 서방이 왔다고요?”
당고마와 180도 다른, 꺽다리에 후리후리한 여자 도깨비가 우아하게 하늘에서 내려왔다.
여전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족두리를 쓴 모습.
여자 도깨비가 웨딩드레스를 두 손으로 잡고 고상하게 절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 서방님.”
“그러게 말입니다. 잘 지내셨죠?”
다들 건강해 보인다.
특히 남자 도깨비.
예전엔 그리 꾀죄죄하더니 두루마리가 새하얗기 그지없다.
다리미질이라도 한 듯 쫙쫙 펴져 있다고.
웃으며 뭐라고 말하려던 당고마.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굳는다.
홀린 듯이 내 오른손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옆에 선 여자 도깨비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가 쌍으로 망부석이 되어서는 내 손만 쳐다본다.
나는 가만히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오른손에 만파식적을 들고 있으니까.
“기, 김 서방. 그거…….”
당고마가 바들바들 떨며 겨우 입을 뗐다.
“그거, 그거…… 그거 맞지? 그거지? 그렇지?”
웃음밖에 안 나오는 상황.
만파식적 가져온 게 그렇게 충격적이야?
옆의 신부 도깨비도 벌벌 떨고 있었다.
“김 서방님? 그거…… 옥적 아니에요? 우리 종족 3대 보물…….”
뒤이어 둘이 눈에서 불을 번쩍이기 시작한다.
야밤에 마주친 호랑이처럼.
혹은 쌍라이트 켜고 달려오는 기관차처럼.
광기까지 보이는 게 시간 끌다간 잡아먹으려고 들겠네.
나는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파식적 맞습니다. 북극에 있던 마수 뱃속에서 찾았죠.”
“만파식적!”
“옥적!”
“세상에!”
“진짜 옥적이에요!”
“만세!”
“만세! 만세에에!”
두 도깨비가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당고마는 허리에 찬 권총을, 여자 도깨비는 허벅지에 차고 있던 산탄총을 꺼내서는 하늘에 대고 갈긴다.
펑! 퍼퍼퍼펑!
요란하게 폭죽이 터졌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 폭죽.
청적황백흑 다섯 가지 색깔 폭죽.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터지고, 구형으로 뭉쳤다가 터지고, 세모 네모 삐죽삐죽 각을 세웠다가 터지기를 반복한다.
“뭐야 뭐야?”
“뭔데 뭔데?”
“누가 이 야밤에 잠도 안 자고 시끄럽게 구는데?”
“김 서방이다!”
“어? 김 서방?”
“전설의 김 서방이다!”
“저번에 우리 중매해 줬던 김 서방이네!”
“와! 김 서방 왔어?”
그제야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도깨비들.
당고마가 방방 뛰며 소리쳤다.
“아, 이 게으름뱅이들. 얼른 나와, 이 작자들아! 우리 김 서방이 뭘 가져왔는지 보라고!”
“뭘 가져왔는데?”
“왜. 서울에서 기똥찬 메밀묵이라도 가져왔대?”
“걍 방망이 한 번 내리치면 되는데 메밀묵쯤이야…….”
“이 멍청한 돼지 놈들! 그딴 걸로 내가 방망이 폭죽 쏠 것 같아? 옥적을 가져왔어! 옥적을!”
“뭐어?”
“뭐라고?”
그제야 도깨비들이 튀어나온다.
한 줄기 섬광처럼.
도깨비 나라에 거주하는 2백 명 남짓한 도깨비들이 전부 달려 나와 내 앞에 집합.
내가 들고 있는 만파식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지, 진짜다!”
“옥적이야!”
“엄마야!”
“아부지!”
“만파식적이, 용신의 피리가, 천신의 보배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만세에!”
“축제다!”
“으히히히! 술판을 벌이자!”
“춤판을 벌이자!”
“씨름판을 벌이자!”
도깨비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격렬한 브레이크 댄스.
머리 휘젓고 윈드밀 돌고 팔다리 꺾고 몸을 뒤집었다가 엎었다가 아주 수라장이 벌어졌다.
퍼펑! 퍼퍼펑!
그와 함께 쏴 대는 도깨비 총.
방망이의 변형인 총이 불똥을 토할 때마다 폭죽이 아득하게 올라갔다.
양 구름이 음매 음매 비명 지르며 도망칠 지경.
분명히 깊은 밤인데도 태양이 뜬 것처럼 하늘이 밝아졌다.
안면 익힌 도깨비들이 날 잡아끌었다.
“여! 김 서방! 오랜만에 한번 뜨자고!”
“배틀 어때? 배틀?”
“아닙니다. 전 분위기나 맞춰 드리죠.”
내가 선택한 것은 만파식적.
삘릴리리. 삘리리.
적당히 아무 노래나 연주했다.
대단할 것 없는 연주지만 만파식적은 그 자체로 강력한 아티팩트.
평화의 법칙이 도깨비 나라를 감싸는 한편으로, 경쾌하고 맑은 음색이 도깨비들을 홀리고 있었다.
“얼쑤!”
“지화자!”
“절씨구!”
“좋다!”
감탄사는 토속적인데 춤은 완벽히 서구적.
그 갭에 저절로 헛웃음이 터진다.
한참 땀을 뺀 도깨비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먹어 먹어!”
“김 서방, 고생했어!”
“북극까지 다녀왔대지 뭐야?”
“뭐? 북극? 그건 뭐 하는 메밀묵이야?”
“아이고, 저 무식한 놈.”
“북극 말이야! 북극! 북쪽 땅끝!”
“아, 북해빙궁 있는 곳?”
“거기 망해서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아이고, 할배요. 정신 좀 차리소.”
오랜만에 봐서 그럴까?
도깨비들은 더욱 쾌활해진 모습이다.
어쩌면 결혼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완벽한 반쪽과의 결합이라…….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부럽다.
난 실패했었거든.
나만의 반쪽을 찾는 것에.
“맛있네요.”
도깨비들이 대접하겠다고 내민 것은 수육 한 점에 잘 익은 겉절이 한 입.
말이 필요 없었다.
고기는 부들부들했고 겉절이는 매콤하면서도 적당히 셔서 입맛을 최대한으로 돋워 주었으니까.
예전에 대접받았던 보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
당고마가 자기 코 아래를 스윽 훔쳤다.
“우리 각시가 직접 담근 거야! 방망이도 안 쓰고! 어때? 맛있지?”
“최곱니다. 전에 주신 것보다 훨씬 나아요.”
“그건…… 끄응! 인정! 우리 남정네들은 솔직히 말해서 요리를 잘 못 해.”
“방망이가 있는데 요리는 무슨 놈의 요리!”
“청소는 무슨 놈의 청소!”
“방망이 뚝딱 한 번이면 다 끝난다고!”
절반은 나가떨어졌지만 절반은 여전히 춤추고 있다.
고기를 받아먹으면서도 피리를 불었다.
힘껏.
신명을 담아서.
특성까지 교체한 채로.
[용울음][노래][마력혼] [심호흡][마력 폭발][훈련]직접적으로 피리 연주에 도움 되는 특성은 아니다.
하지만 특성 획득에는 도움이 되지.
숨을 한 번 길게 쉬고 피리에 불어넣었다.
마력까지 합쳐져서는 꽈르릉하고 천둥소리가 났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용울음 노래를 한숨에 담았다.
만파식적을 통해 터뜨렸다.
순간, 충격파가 터지면서 대기를 찢어발겼다.
춤추던 도깨비들이 일제히 엎어졌다.
“으헉!”
“꾸엑!”
“기, 김 서방! 네가 우리를 죽이려고…….”
“안 죽습니다. 만파식적이잖아요?”
만파식적이 생성하는 강제 평화 구역.
이 안에서는 공격도 상처 입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레벨 보스한테는 당연히 안 통하지만.
그 증거로 도깨비들이 비틀거리면서도 멀쩡히 일어서고 있었다.
“또 갑니다!”
“어헉!”
“아, 안 돼!”
“흥. 약해빠진 놈들. 김 서방아! 기차게 한번 불어 줘! 내가 대차게 한번 춰 볼게!”
“좋습니다.”
다시 용울음 노래.
아니, 피리.
또 천둥이 터진다.
도깨비들이 고막을 감싸며 괴로워했지만 딱 한 명만큼은 달랐다.
이름이 뭐였더라?
나와 처음으로 씨름했던 덩치 큰 도깨비.
맞다. 떵치라고 했지.
씨름은 못해도 춤은 잘 춘다더니, 내 압축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추는 폼이 박력 있었다.
“서방님! 저도 가요!”
신부 도깨비가 함께 춤추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에라, 모르겠다!”
“진짜로 다치는 것도 아닌데!”
“옥적아! 믿는다! 동생 아프게 하면 안 돼?”
“가자!”
군무가 벌어진다.
한 음절 한 음절에 노래 하나를 때려 박고 있어서 동작이 일치하진 않지만 그마저도 조금씩 맞추어진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연주하는 걸 따라 춤이 딱딱 맞춰 가는 모습은.
만파식적의 공능 아닐까?
평화와 풍요를 불러오는 신라의 보물.
악기에는 문외한인 나조차, 실상 전혀 어울리지 않을 용울음 노래조차 한 차원 높은 연주로 승화되고 있었다.
아닌가?
사실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거 아닐까?
만파식적은 용이 됐다는 문무왕이 준 보물이라고 하잖아.
용울음 노래랑 어울릴 수밖에 없지.
삐리리리 삐릴리.
쉬지 않고 토해 내던 용울음 노래.
묘한 가락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분명 내가 부는 건 한 음절인데 노래 전체가 재생되고 있었다.
메아리치듯이.
차곡차곡.
한 노래 두 노래 세 노래가 중첩되고 재생되면서 마치 합창하는 듯한 효과가 난다.
피리를 누르고 떼는 손가락이 가볍다.
불어넣는 숨결은 무거우면서도 장중하다.
하지만 나오는 노래는 경쾌하면서 쾌활하니…….
[연주] 특성 획득.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춤, 노래, 연주, 연기, 장식, 기원.
[소원] 특성의 재료다.그래.
바로 그 소원.
세상만사를 다 해결해 주진 못해도 아케인 서울에서 굉장히 강력한 특성 중 하나다.
만파식적을 써서인지, 도깨비 나라의 특혜를 받아서인지 빨리 만들어졌네.
특성을 땄으니 피리를 더 불 이유도 없다.
만파식적을 집어넣자 도깨비들이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헥, 헥, 힘들었다.”
“새하얗게 불태웠어…….”
“으, 내 장딴지 봐.”
“내 종아리는 터졌어, 완전.”
“술이나 먹자!”
“수울!”
“막걸리!”
술판에 먹자판이 벌어졌다.
“마셔 마셔!”
도깨비가 막걸리를 꼴꼴꼴 따른다.
한 동이 가득.
하여간 도깨비들은 배도 크고 술배도 크다니까.
그러고 보니 저번엔 총잡이 유적 가느라 술을 많이 안 마셨지?
“끄어억.”
막걸이 한 동이를 비우고 길게 트림을 내뱉었다.
그러자 도깨비들이 좋다고 손뼉을 쳤다.
“역시 우리 김 서방이야!”
“우리 김 서방이 최고지!”
“이런 김 서방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힘들지. 그건.”
“김 서방아,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아니 무슨, 세상에 이런 일이 찍냐?
나는 적당히 웃어넘겼다.
도깨비들이 주는 막걸이를 몇 동이 더 받아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고 있던 만파식적에 더해 금척과 화주를 추가로 더 꺼냈다.
그러자 도깨비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슬슬 세상에 나가도록 하죠.”
“마침내!”
“드디어!”
“만세! 서울 간다! 서울!”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도깨비는 서울로 보내라고 그랬어!”
단, 시작하기 전에 확인할 게 하나 있다.
“그런데 이거 어디로 연결되는 겁니까? 엉뚱한 데 떨어지면 골치 아파요.”
게임에서도 그랬다.
서울 외곽 한 아파트 단지를 부수며 등장했지.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가 다 무너졌는데 일이 어떻게 됐겠어.
도깨비 나라 입장 퀘스트 일부가 그거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 분쟁을 해결하는 것.
어렵진 않았지.
적당히 대화 조금 나누고 소소한 퀘스트 해 주고 인벤토리 내 돈만 차감하면 끝.
“모르겠는데?”
“몰라.”
“반도 어디에 떨어지겠지.”
“그래도 백두산 이북으론 안 갈걸?”
“바다 넘어가지도 않을 거고.”
무작위라는 소리네.
“알겠습니다.”
어디 떨어지든 대처할 수 있다.
적당히 보상금 책정해서 주면 되겠지.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보다 10배를 주면 누가 싫어하겠어.
자고로 합의가 안 되는 건 다 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충분히 많은 돈은 협상의 신과 구별할 수 없는 법.
나는 도깨비 나라 세 보물을 한 곳에 겹쳤다.
“시작합니다.”
“간다, 간다, 간다!”
“가자, 가자, 가자!”
도깨비들이 나를 둘러쌌다.
마력을 주입한다.
만파식적은 초록색 빛을, 금척은 황금색 빛을, 화주는 선홍색 빛을 뿜는다.
그 빛들이 어우러진다.
무지갯빛이 전개된다.
칠채보광이 나는 물론 도깨비들을, 도깨비 나라를 감싸 안는다.
서서히 지워지는 세계.
양 구름이 녹아내리고 털 돋은 땅이 증발한다.
바람 요정도 웃음소리만 남기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세상.
어두운 밤이지만 하늘의 별이 내려온 듯한 대지.
반짝이는 마천루가 수도 없이 솟아 있는 곳.
서울.
“어?”
순간 나는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하하는 세계.
도깨비들의 아차원 세계가.
바로 그 도시를 향해.
서울을 향해 정면으로 내리꽂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외곽이 아니라 강남으로.
강남에서도 온갖 대기업들 사옥이 밀집해 있는 삼성동으로.
특히 어떤 수백 미터짜리 마천루에게.
과아앙!
범종 울리는 소리.
공간이 찌그러진다.
건물이 제멋대로 휘어지고 쪼개진다.
그나마 사람들은 기이한 법칙의 가호로 온전하게 지상에 착지하지만 건물은, 이 수천억짜리 마천루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아니, 망가졌다고 하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거다.
완벽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하루아침도 아니고 단 1초 만에.
차원을 뚫고 나타난 도깨비 나라에 짓눌려서.
“이건 대체…….”
그리고 그 중심.
한 여자가 있었다.
야심한 밤에도 정장을 빈틈없이 차려입고, 도수 없는 금테 안경을 쓰고 업무에 열중하던 여자.
성희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