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90)
특성 쌓는 김전사-90화(90/300)
묵호검 -2-
“아버지!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
“저런 새파란 애송이한테 묵호검이라니요! 차라리 백호검을 내리십쇼! 백호검이라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얼굴을 아는, 동부군의 어느 사단장.
조용하던 집무실이 아주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군단장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더니 벼락처럼 호통을 쳤다.
“닥쳐라, 이 못난 것들아!”
기세가 폭발한다.
여전히 마력 파장을 동반하지 않는 위압감.
맹호가 앞에서 으르렁대는 듯한 감각이 덮쳐온다.
나는 여전히 정신 방어용 세트를 장착한 상태.
덕분에 겨우 견뎌냈지만 다른 초인들은 거의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어떻게든 마력을 끌어올리고 혀를 깨물어 피를 흘려가며 버텨낸다.
그걸 보고 군단장이 혀를 찼다.
“못난 놈들 같으니. 봐라. 7레벨이라는 놈들이 이 늙은이 하나 감당하지 못해서 저렇게 빌빌대고 있어.”
“천산의 천마가 오지 않는 한 군단장님을 감당할 사람은 없습니다.”
“응? 허허허. 아첨도 잘 하는구먼.”
군단장이 껄껄 웃으며 살기를 거뒀다.
초인들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눈치를 본다.
‘군단장 특성 중에 [의기상인]이 있었지······’
게임에선 조금 강한 디버프였는데 현실에서는 무시무시하네.
아까 소리 질렀던,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가 대표로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잠깐 평정을 잃었습니다.”
“쯧! 너도 일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고작 검 한 자루를 아까워하느냐? 네가 8레벨만 됐어도 묵호검은 진작 네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야! 이 미욱한 놈들. 너희 중에 8레벨이 나왔으면 나는 진작 은퇴해서 낚시나 하러 다녔을 거다. 이 늙은이가 아직도 이 자리에 앉아 있게 한 불효막심한 놈들이 뭐가 어째? 말이 안 돼? 차라리 백호검을 줘? 에라, 이 한심한 것들아!”
평소에 쌓인 게 많았나 보다.
군단장이 한참을 퍼부은 후에야 진정하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더니 USB처럼 생긴 기억칩을 꺼내 던졌다.
“인석아, 이것도 받아가라.”
“군단장님? 이건 또 뭡니까?”
“호왕검법이다.”
호왕검법!
초인들이 발작하듯 몸을 떨었지만 이번에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 차례 뜨거운 맛을 봤거니와 호왕검법은 묵호검과는 차이가 있었으니까.
동부군 군단장을 상징하는 무기, 묵호검.
마찬가지로 동부군 군단장의 대표 무공, 묵호무적검법.
호왕검법은 그 아래다.
정확히 말하면 상급 검법.
파산검법이 3, 4레벨이 쓰기에 적합하고 5레벨에 도달하기 좋은 중급 검법이라면 호왕검법은 그 위 단계 정도 된다.
제검문과 일검문의 검법보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네가 쓰는 검법, 제검문의 파산검법이 맞지?”
“예.”
“파산검법은 패(覇)를 잘 펼쳐낸 검법이지. 호왕검법도 결이 같다. 패(覇)와 쾌(快)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니 네가 쓰기에도 좋을 것이다. 생각 같아선 호왕심법도 주고 싶다만 마력 연공법은 내공심법이 아니라 유럽쪽 오러 연공법을 익힌 것 같으니 넘어가마. 나는 오러 연공법은 아는 게 없으니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나는 사양하지 않고 검과 기억칩을 받았다.
사실 속으로는 부담되서 죽겠다.
기억칩만 줬으면 좋다고 홀랑 받아먹었을 텐데 묵호검이 뭐냐, 묵호검이?
설마하니 날 후계자 삼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군단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9레벨이 되겠다고? 기쁘게 기다리고 있으마. 만약 네가 10년 안에 9레벨이, 아니 8레벨이 된다면 동부군은 네 것이다.”
“구, 군단장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줘?
자식도 많고 손자 손녀도 많잖아! 제자도 엄청나게 많고!
그중에 7레벨만 거의 10명이 다 되어 가는데, 그중 한 명한테 물려줘야지!
“너희도 마찬가지다.”
군단장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초인들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누구든 8레벨이 되는 순간 내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하지만 8레벨이 되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 일부는 국군에 주고, 일부는 보안회사로 만들고, 철원 시국을 나라에 반납해서 동부군을 내 손으로 해체하고 말겠다!”
“아, 아버지!”
“스승님!”
“그건, 그건 너무 하십니다.”
“뭐가 너무해? 여지껏 8레벨이 못된 너희가 너무하지! 나는 말이다. 최소한 여든 전에는 은퇴할 줄 알았다. 생각해 봐라. 어, 그래. 정주 네가 군단장이 되면 여기 이놈들을 휘어잡고 마음대로 굴릴 수 있겠냐? 응? 진주랑 형주가 제대로 말을 들으려고 하겠어?”
“아버지. 큰오빠가 군단장이 되면 당연히 복종해야지요.”
“당연히 복종할 겁니다.”
“흥!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너희들이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지목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큰아들일 구정주보다 확실히 젊은 얼굴.
거의 10년 이상.
군단장이 쐐기를 박았다.
“묵호검은 이제 네 것이다. 네 녀석 패기와 가능성을 봐서 주는 거야.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할 거다. 찾았다는 길을 찾아 걷되, 9레벨은커녕 8레벨도 못 될 것 같으면 묵호검을 차라리 반납해. 내가 살아 있을 때는 이 호랑이도 못 된 승냥이 같은 놈들이 조용히 있겠지만, 10년 뒤에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10년이다.
군단장은 본인이 10년 이상 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게임에서도 그랬지.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군단장은 자연사하고, 동부군은 내전을 거쳐 자멸한다.
나는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10년, 아니 5년 안에 결과물을 가져오겠습니다.”
동부군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다.
너무 귀찮아.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두는 건 나쁘지 않다.
나도 생각이 바뀔 수가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100살 넘은 할아버지가 이렇게 호의를 보여주며 퍼주고 있는데 죄다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응? 하하하!”
군단장이 나를 보며 파안대소했다.
“어린 녀석이 패기 한 번 대단하구나! 그래! 전사는 그래야지! 남자 새끼가 고추 달고 태어났으면 그 정도 패기는 보여줘야지! 좋다. 기대하고 있으마!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야 한다!”
군단장은 그만 가보라고 손을 내저었다.
정중히 인사하고 나오자 구형원이 따라붙는다.
냉막하던 얼굴이 부럽다는 듯 내 허리춤을 훔쳐보고 있었다.
“갖고 싶으세요?”
실소하며 웃자 구형원이 정색하며 부정한다.
“그럴 리가. 군단장님께서 자네에게 묵호검을 내린 이유가 있겠지.”
“만약 사단장님께서 8레벨을 달성하시면 묵호검을 사단장님께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군단장님께서 내린 검을 자네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될 일일세.”
“대신 동부군 창고에서 묵호검에 비견되는 명검 한 자루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묵호검이 동부군에 어떤 의미인지는 저도 잘 압니다. 사단장님만 아니라, 누구든 8레벨이 되면 기꺼이 선사해드리겠습니다. 군단장님도 속으로는 그걸 원하실 겁니다.”
“뭐······ 그렇긴 하지.”
구형원이 쓰게 웃었다.
7레벨과 8레벨의 차이는 크다.
7레벨을 다른 말로 궁극지경이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뜻.
8레벨은?
초월이다.
거기서부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100살이 넘었는데도 주름살 하나 없이 탱탱하던 군단장.
군단장의 아들인데도 주름살 자글자글하던 7레벨 초인.
그 둘만 비교해도 차이는 명확했다.
“말이라도 고맙네. 자네도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는 아니었군.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야.”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정말로 9레벨이 될 자신이 있나?”
흐리게 웃으며 날 보는 구형원.
그 눈동자 깊은 곳에 음험한 빛이 살짝 스친다.
거기 떠오른 것은 시기, 그리고 질투.
아니 금수저 중의 금수저가 나한테 이러면 어떻게 해?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까진 없죠. 그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무라도 썰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도 있으니, 여기서 멈추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하긴 그렇지······ 나도 자네 때만 해도 서른 전에 8레벨 밟고 쉰 정도 되면 9레벨 될 줄 알았어.”
“구 사단장님은 대한민국의 영웅 아니십니까. 아까 뵀던 분들도 다들 기라성같은 분이지만, 구 사단장님이야말로 차기 군단장에 가장 가까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조만간에 8레벨이 되실 겁니다.”
“하하하! 고맙네, 고마워. 그럼 그때까지 묵호검을 맡겨 놓은 것으로 해도 될까?”
“당연하지요! 8레벨이 되시면 언제든 문자 한 통 보내주십쇼. 바로 묵호검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나는 답례로 줄 명검을 미리 생각해두어야겠군.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구형원이 기분 좋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8레벨 되기는 퍽이나.
게임 시작 시점에서도, 에피소드 9가 나오고 한참이 지난 시점에서도 구형원은 7레벨이다.
그래도 사단장은 사단장.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게. 자네가 군단장님 정식 제자가 된 건 아니지만, 묵호검을 받은 이상 자네도 우리 식구나 다름없어.”
“예, 사단장님.”
“어허.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아, 그리고 아까 봤지? 우리 큰삼촌. 욕심 많은 분이니 조심하게. 대놓고 자네를 어쩌진 못해도 여기저기서 시비 거는 인간이 많이 생길 거야. 쯧, 그럴 시간에 수련이나 더하시지. 군단장님이 굳이 자네한테 묵호검을 하사하신 이유가 있다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억칩은 지금 바로 사용하게. 내가 보는 앞에서.”
호왕검법 기억칩.
투명 USB처럼 생긴 칩을 또깍 부러뜨렸다.
정보가 내 뇌로 쏟아진다.
젊은 시절의 군단장.
지금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모습의 남자가 호랑이처럼 검을 찌르고 긋고 연속으로 휘두르고 멀리 날리는 장면이.
구형원이 내 눈을 확인하곤 흐리게 웃었다.
“이걸로 자네도 우리 식구가 되었군. 군단장님의 진전을 이은 걸 축하하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주게나. 사승관계를 맺지 않았다곤 하나 자네도 사실상 우리 동부군의 일원일세.”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절대 빈말 아니니 명심하게. 음, 난 바빠서 먼저 가겠네. 자네도 살펴 가게.”
“예,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구형원이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멀찍이서 보고만 있던 강 이사와 과장들이 달려온다.
아까부터 시선이 내 허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김 사냥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거 묵호검 아닙니까?”
“묵호검 맞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묵호검이요? 그 묵호검? 군단장님의 그 묵호검?”
“예. 맞아요.”
강 이사가 뜨악해서는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김 씨가 아니라 구 씨십니까? 아니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구 씨이신건······”
“둘 다 아닙니다. 군단장님께서 제가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아니, 마음에 들었다고 자기 애검을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가 되라고 하시더라고요.”
“허억!”
강 이사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제, 제자가 되신 겁니까? 그럼 동부군 장교로 임관하시겠네요!”
“거절했습니다.”
“예? 미치셨어요? 왜요?”
“저는 자립과 독립이 꿈이라서요.”
강 이사가 미쳤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럼 어떻게 해?
3대 검법을 수집하려면 어디 소속되어서는 힘들다.
백소린과는 인연이 닿았고 마르스 검투법을 각성하길 기다리고 있지만, 쟈네트와 칼리는 아직 만나지도 못했으니까.
에인헤랴르 연공법의 상위 연공법도 마찬가지.
조만간 원정을 떠나야 하는데 덜컥 군단장 제자가 되면 자유가 사라진다.
에인헤랴르 연공법 따위 집어치우고 자기 독문 신공을 익히라고 강요하겠지.
“그릇이 큰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기왕이면 그릇이 크다고 해주시죠.”
“후우, 도대체가······”
강 이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머리를 흔든다.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제자의 ‘ㅈ’ 소리가 나자마자 구배지례를 올렸을 거라고.
“협회장측 사냥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말씀드린다면서. 악랄한 몇 명만 끝장내고 나머지는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게 적당하긴 하죠.”
나라면 모조리 죽였겠지만 강 이사 입장에선 다르겠지.
애초에 사냥꾼 협회는 말 그대로 협회.
이익 단체다.
군단이나 교단처럼 강제적 결속력이 있는 집단이 아니다.
강 이사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전부 김 사냥꾼님 덕입니다. 김 사냥꾼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제가 중국 간 사이 여기 두 과장이 협회장한테 넘어갔을 거고, 이후에는 협회가 둘로 쪼개졌겠지요.”
옆에 서 있던 박 과장과 이 과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둘도 그랬을 거라 인정하는 것.
실제로도 그랬고.
아마 강 이사가 중국에서 귀환한 다음 내전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냥꾼이 죽었겠지.
결국 강 이사가 승리하긴 해도.
“원래는 적당히 마법총 몇 자루 선물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만 그래서는 안 되겠네요.”
강 이사의 시선이 묵호검에 꽂혀 있었다.
암, 당연하지.
묵호검을 받은 이상 나는 평범한 4레벨 초인이 아니다.
동부군 군단장이 주목하는 신예이자 후계자 후보라고 봐야지.
어쩌면 나중에는 내가 [묵호검주]라고 불리지 않을까?
“김 사냥꾼님.”
강 이사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협회 이사가 되실 생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