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0
11.
선발투수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강판되었을 경우, 그 뒤를 이어 올라오는 투수는 대개 1이닝에서 2이닝 정도만을 소화하고 바통을 다음 투수에게 건네준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그런 상황에서 올라오는 투수가 제대로 된 준비를 한 채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는 없다는 것.
말 그대로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마운드로 올라오는 투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준비가 덜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불펜 투수는 기본적으로 1이닝 또는 2이닝만 소화하는 보직이라는 점이다.
불펜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최대 2이닝 정도 던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몸을 만들지, 3이닝을 던질 것을 염두에 두고 몸을 만들진 않는다.
때문에 이진용이 6회 말까지, 2.2이닝을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갔을 때 그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오리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 이진용 선수가 다시 마운드를 올라옵니다. 이번 7회 말까지 소화하게 되면, 오늘 3.2이닝을 던지게 됩니다.
– 이해하기는 조금 힘들군요. 불펜 투수가 3이닝 이상 던지는 경우는 없는데 말이지요. 물론 이진용 선수의 피칭이 아주 좋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를 시킬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진용이 7회 말 마운드에 올라왔다.
당연히 모두가 의문을 가졌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봉 감독이 올린 건가?”
사람들은 일단 봉준식 감독의 의중에 초점을 맞췄다.
선수기용은 오롯이 그의 몫이니까.
“글쎄, 봉준식 감독이 굳이 여기서 이진용한테 마운드에 오르라고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지는 경기잖아?”
“그렇지. 이미 불펜에서도 이진용이 2.2이닝을 소화해주는 동안 투수들이 몸도 다 풀었을 테고.”
“아니, 애초에 봉준식 감독은 이진용이 이렇게 던져줄 줄 몰랐을걸?”
“하긴, 이런 피칭을 할 줄 알았다면 이진용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올릴 일도 없었겠지.”
그러나 봉준식 감독의 스타일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봉준식 감독이라면 이 상황에서는 이진용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했겠지.”
“이진용 본인이 등판을 자처했다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초점을 봉준식 감독에서 이진용으로 바꿨다.
이진용이 등판을 자처했다면, 봉준식 감독 입장에서는 허락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대체 왜?”
물론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이미 보여줄 모든 것을 보여준 그가 굳이 마운드에 다시 올라올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진용이 얼마만큼의 탐욕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이진용을 보는 이들 중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내는 오로지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 또라이 새끼.
당연히 그 한 명은 김진호였다.
그만이 이진용이 가진 탐욕의 크기와 갈증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
“이게 다 김진호 선수가 가르쳐준 것들 아닙니까?”
– 그래, 내가 가르쳐주긴 했지.
그리고 이진용에게 탐욕과 갈증을 해결할 방법을 알려준 것 역시 김진호였다.
– 이럴 때는 뽕을 뽑으라고 가르쳐주긴 했지.
김진호의 가르침 중 하나는 특별한 날이 있다는 것이었다.
3할 타자라면 산술적으로는 매 경기에 나올 때마다 1개의 안타를 치지만, 실제로 나오는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치는 타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양키스의 위대한 타자 중 한 명인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이제까지 깨지지 않는 이유다.
즉, 3할 타자들은 매 경기 안타를 친다기보다는 쳐야 하는 날 잘 치는 경우가 많다.
2안타, 3안타 경기를 만들어낼 줄 알아야 3할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안타가 안 나오는 날에는 제아무리 대단한 타자, 리그에서 타격왕 경쟁을 하는 타자라고 해도 진짜 안 나온다.
타자에게는 그야말로 제삿날.
반대로 투수에게는 그 날은 돼지 잡는 날이다.
– 오늘 같은 날이 뽕 뽑기 딱 좋은 날이지.
이진용에게는 오늘 경기가 바로 돼지 잡는 날이었다.
오늘 이진용의 피칭 앞에서 샤크스 타자들은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굳이 점수가 더 나올 상황도 아니고.
여기에 지금 샤크스는 굳이 더 점수를 낼 상황도 아니었다.
– 대타보다는 오히려 대수비로 교체할 가능성이 더 크지. 자기네 투수가 지금 완봉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알렉스 브레디는 7이닝 무실점 10탈삼진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2이닝만 더 무실점으로 막아낸다면, 완봉승이라는 값진 기록을 얻을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과연 샤크스 감독은 5대0 점수 차에서 추가점을 내기 위해 대타 작전을 남발할까 아니면 타격은 좋지만 수비가 좋지 못한 타자들을 한두 명씩 교체하며 수비를 단단하게 할까?
타자들에게 모든 집중력을 발휘해서라도 이진용에게 홈런을 뽑으라고 말할까 아니면 다들 수비에 집중하라고, 점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라고 말할까?
– 하물며 평균 타율이 2할밖에 안 되는 하위타순은 그야말로 공짜 점심이지.
결정적으로 7회 말은 5번 타자부터 시작이었다.
그게 이진용은 기꺼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걸 자처한 이유였다.
“오늘 두 자릿수 탈삼진 기록해봅시다.”
이진용, 그는 김진호의 말대로 오늘 경기에서 뽑을 수 있는 모든 뽕을 뽑을 속셈이었다.
– 두 자릿수 탈삼진이라······ 갑자기 느낌 싸하네.
그 순간 김진호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느낌이 싸해요?”
– 어, 좀 싸하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을 받은 모양.
– 진용아, 그냥 우리 들어가서 쉬지 않을래? 뭔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게 느낌이 안 좋다.
“얼마나 안 좋으신데요?”
– 등골도 오싹하고, 목덜미도 오싹하고, 소름도 돋는 거 같다.
“그렇다는 건······.”
그런 김진호의 반응에 이진용은 직감했다.
“두 자릿수 탈삼진 기록하면 대박이라는 건데······.”
– 응? 뭐?
“오늘 무조건 탈삼진 10개 잡겠습니다.”
오늘 뭔가 대박이 나올 것 같다고.
12.
그건 결코 깔끔하다고 할 수 없는 피칭이었다
7회 말,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은 위풍당당한 등장과는 다르게 선두타자로 나온 5번 타자와 6번 타자를 상대로 연속 안타를 내주었다.
– 이진용 선수가 오늘 첫 안타를 시작으로 연속 안타를 내줍니다.
– 슬슬 힘이 빠지는 모양이군요.
무사에 주자는 1,3루.
– 이진용 선수가 오늘 첫 위기를 마주합니다.
– 역시 3이닝 이상 소화하는 건 무리였던 것 같군요. 여기서 실점한다면 곧바로 강판될 겁니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상황.
그 상황 속에서도 이진용은 타협 없이, 삼진을 노리는 피칭을 거듭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결국 7번 타자와 8번 타자, 두 타자를 상대로 연속 삼진을 잡아냈다.
“저 녀석 두 자릿수 탈삼진 잡으려고 올라온 거야?”
“설마······.”
“설마가 아니지. 만약 이닝을 소화하려고 올라온 거면, 여기서 병살타를 노리고 땅볼을 유도했겠지. 1점 더 내준다고 경기가 기울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제야 그 경기를 보던 이들 중 일부는 이진용이 어떤 마음으로 7회 말의 마운드에 올라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걸 짐작한 이들은 이진용이 9번 타자와 어떤 승부를 하려는지, 그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엄청난 또라이 새끼가 등장했군.”
그렇게 마주한 9번 타자와의 승부.
안타 하나면 실점인 상황 속에서 이진용은 당연히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삼진을 잡기 위해 공을 던졌다.
이진용이 잡은 열 번째 삼진은 그런 삼진이었다.
지독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 끝에 얻은 삼진.
제 스스로 사막으로 들어가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아내 목마름을 달랜 것과 같은 삼진.
달콤함을 넘어, 황홀함마저 느껴지는 그 삼진 앞에서 이진용이 토해낸 그건 단순한 환호성이 아니었다.
“호우!”
포효!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마운드가 그 누구도 아닌 이진용, 그의 것임을 나타내는 맹수의 포효였다.
그 포효를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온 이진용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김진호도 그런 이진용을 향해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김진호는 이진용이 오늘의 이 감정을, 이 느낌을 보다 깊게 음미하도록 놔두었다.
그렇게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진용에게 투수코치가 다가와 말했다.
“수고했다.”
그 투수코치의 말에 이진용은 모자를 벗고, 땀에 흥건하게 젖은 채 열기를 뿜어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8회에도 올라갈 생각이냐?”
그 질문에 이진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 삼진을 열 개나 잡았으면 충분하지.”
말과 함께 투수코치가 이진용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4회가 아니라 1회부터다.”
그 통보에 이진용이 놀란 표정으로 투수코치를 바라봤다. 투수코치는 그런 이진용에게 표정 대신 어깨만 가볍게 두드렸다.
– 1회부터 올라오라니, 그냥 선발로 한다는 말을 굳이 저렇게 돌려서 말해야 하나?
그 모습에 김진호가 실소를 머금었고, 그런 김진호를 뒤로한 채 이진용이 곧바로 더그아웃 밖으로 나갔다.
– 야, 어디가?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을 따라가며 물었다.
“이진용, 어디 가?”
다른 선수 한 명도 갑자기 더그아웃 밖으로 나가는 이진용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이진용이 가볍게 말했다.
“화장실 갑니다!”
“화장실?”
“예, 큰 거 하나 뽑으려고요!”
대답하는 이진용에게 더 이상 오늘 승리에 대한 기쁨 같은 건 없었다.
조만간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 만찬을 마주할 설렘만 있을 뿐.
13.
쿵!
화장실 문이 닫히는 순간, 이진용은 그대로 변기에 앉았다.
동시에 김진호가 화장실 문으로 자신의 머리만을 그대로 쑥 집어넣었다.
– 야, 여기서 돌리게?
김진호의 물음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면 똥 된다, 몰라요?”
– 아는데, 똥 싸는 곳에서 쓸 만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은 대답 대신 곧바로 포인트 5천을 소모해 실버 룰렛을 활성화했다.
그렇게 활성화된 은빛 룰렛을 바라본 이진용이 얼굴만 보이는 김진호를 향해 말했다.
“기도 한 번 해주시죠?”
그 부탁에 김진호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 안 해 새끼야.
“그럼 저주라도 부탁합니다.”
김진호가 대답 대신 자신의 오른손을 화장실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그렇게 등장한 김진호의 손은 가운데 손가락만이 꼿꼿했다.
그렇게 김진호의 기도도, 저주도 없이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이내 룰렛이 멈췄다.
대박은 없었다.
오히려 그건 쪽박이었다.
현재 이진용의 최대 구속은 129킬로미터.
130킬로미터까지는 브론즈 룰렛을 통해서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실버 룰렛을 돌려서 구속이 1상승했으니, 사실상 4천 포인트를 낭비한 셈.
– 호우!
그 사실에 김진호가 이진용을 향해 전력을 다해 힘차게 전방으로 호우를 발사했다.
그 소리에 이진용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가 푸념을 내뱉었다.
“제가 잘 되는 게 그렇게 배 아파요?”
– 응!
김진호가 당연한 걸 질문했다는 듯이 곧장 대답했다.
“그럼 뭐가 나와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예?”
이진용의 푸념 섞인 질문에 김진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 일단 새로운 스킬이 좀 그래. 완전히 사기잖아?
“스킬 빼고.”
– 구질 랭크 올려주는 알약도 좀 그렇지. 너무 날로 먹잖아?
“그것도 빼고.”
– 구속하고 체력도 빼고. 여기에 새로운 구질 습득하는 것도 빼고. 이 다섯 가지만 아니면 뭘 나와도 진심으로 축하해줄게. 오냐! 그 다섯 가지 외의 것이 나오면 내가 춤도 춰줄게!
그 말에 이진용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진호의 말대로라면 뭘 나오든 그는 축하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질문한 내가 병신이지.”
결국 이진용은 김진호와의 타협을 포기했다.
– 병신이라니, 그 정도는 아니지. 그런 좀 격한 표현보단 또라이 정도가 딱 어울려. 또라이진용, 어감도 딱 맞잖아?
이진용은 대답 대신 곧바로 골드 룰렛 이용권을 사용해 골드 룰렛을 활성화했고, 곧바로 룰렛을 돌렸다.
그리고 룰렛이 멈췄다.
멈춘 칸은 백금색의 칸.
또 한 번 대박이 나오는 순간.
“어?”
– 응?
그런데 이진용과 김진호, 그 둘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게 이제까지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었기에.
김진호의 언급한 대로 구속 증가도, 체력 증가도, 새로운 구질도, 새로운 스킬도, 구질 랭크를 올려주는 것도 아닌 것이 등장하는 순간이었기에.
“김진호 선수.”
그렇기에 이진용은 그 사실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축하해주셔야죠? 분명 춤까지 춘다고 했죠?”
그 말에 김진호가 멍한 눈으로 룰렛을 바라보며 말했다.
– 진짜 씨발 나한테 왜 이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