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베티,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2학년 여자 기숙사.
2층 복도에서 친구인 베티의 손목을 낚아챈 실리아.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을, 가장 친한 친구인 베티가 모를 리 없었으나….
“또 왜!”
베티는 되레 짜증을 내며 실리아의 손을 격하게 뿌리쳤다.
“너 어제 새벽에는 어디 갔던 거야?”
실리아의 말에 베티는 움찔하고 떨며 그녀를 노려본다.
“왜? 네가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지! 친구잖아!”
한숨을 내쉬며 베티를 향해 답답하다는 듯 대꾸했으나 베티는 그런 실리아의 반응에 주먹을 꽉 쥔다.
“네가 선도부장이 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해. 평생 선도부 할 생각이야?”
“베티.”
“생각 좀 하면서 살아, 실리아. 지금 3학년 선배들부터 선도부원들까지 전부 다 벼르고 있어.”
“…….”
아무리 실리아라고 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근 행동이 더욱 과감해진 면이 있었으니까.
“혼자서 올바른 척하면 좋아? 즐거워? 요 1년 동안 네 친구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욕을 들었는지 알아?”
“…….”
“제발 남한테 피해 좀 주지 마. 네가 청순한 척하고 싶은 건 이해하겠는데, 왜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주냐고.”
“베티….”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친구에게 상처를 줄 걸 알았기에.
실리아는 애써 말을 삼키며 고르고 고른 한마디 내뱉었다.
“팔레스 선배는 정말 아니야. 내가 선도부라서 알잖아. 그 선배, 소문이 좋지 않아.”
“남의 남자친구 욕하지 마!”
팍!
결국 실리아의 어깨를 양손으로 밀치는 베티.
뒷걸음질 치며 밀려난 실리아였으나 눈동자에는 여전히 근심만이 담겨 있었다.
“팔레스 선배가 뭐가 어때서? 이제 곧 3학년들 졸업하는데, 선배가 신성 기사단 종기사 후보 중 하나로 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
자그마치 신성 기사단.
왕국 최고의 기사단으로 작년에는 고작 2명의 졸업생만 들어갔을 정도로 문턱이 좁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졸업생임에도 평기사가 아니라 종기사부터 시작해야 되지만.
그럼에도 생도들은 하나같이 신성 기사단의 문턱을 넘어서고 싶어 했다.
단순히 기사로서 밟을 수 있는 성공가도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도들 중 대부분은, 300년 전 홀로 대악마에게 죽음을 선사한 라인 레이먼드를 동경하고 있었고.
신성 기사단은 명실상부 그의 후손이라 알려진 로만 레이먼드가 기사단장으로 있는 기사단이었으니까.
어린 시절 들었던 전설의 계보를 잇는 기사가 될 수 있다.
일종의 낭만이자 동경이었다.
“팔레스 선배는 다른 3학년 생도들에 비해서 훨씬 실력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했어! 가문도 훌륭하고! 왜? 내가 갑자기 그런 선배랑 사귄다니까 질투나?”
“베티, 팔레스 선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 입에 담게 하지 말아줘. 너한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선도부는 생도 상담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도들에게 있어, 벽이 느껴지는 교수보다는 또래의 선도부원들이 훨씬 말하기 편할 테니.
실리아는 이미 3학년의 팔레스 루미네스에 대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그의 여자친구라며 울면서 찾아온 사람만 해도 다섯 손가락으로 모자라니까.
하지만 연애사란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였기에 단순히 경고만 주고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까지 나오자 베티는 이제 증오 어린 눈동자로 실리아를 노려봤다.
“그만해! 부러운 거지?! 내가 팔레스 선배랑 사귄다는 게!”
“…….”
“됐어, 난 선배한테 갈 거야. 너랑 1학년 동안 친구로 지낸 시간이 아깝다.”
휙 몸을 돌려 그대로 1층으로 내려가는 베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실리아는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숨이 푹푹 나오는 실리아였다.
* * *
벨레스를 영입한 건 좋지만 실리아에 대한 의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고 지속되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실리아에 대해서 잘못 본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딱 한나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봐온 실리아 위드니스라는 소녀는 의로운 원칙주의자였다.
그 정도가 과한 때도 분명 있었겠지만 어쨌든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을 이어왔다.
그녀가 새벽에 다른 사람들에게 숨긴 채로 혼자서 돌아다니던 이유는 뭘까.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문제 있어?”
슬쩍 내게 물어오는 윤.
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면서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턱을 괸 채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사실 기사단장이라는 자리가 결국 다른 단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직책이다 보니 함부로 내 안에 있는 걸 그들에게 전부 털어 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나는 가장 역할로서 그들에게 믿음직한 기둥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은 조금 특별한 단원이었다.
원래는 나의 친우였으니까.
내가 단원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할 내용도, 윤에게는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실리아라고 알지? 어제 나랑 붙었던 2학년 수석.”
“마나감응력?”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지만 윤은 실리아를 얼굴이 아니라 감응력을 때문에 연푸른빛으로 변한 머리색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걔가 한나랑 마리 같은 과인 줄 알았거든. 그래서 스카우트 하려고 했는데 조금 잘못봤나 싶어서.”
“흐음.”
뭔가 고민하는 척하던 윤은 그대로 턱을 괴던 손을 풀며 침대에 얼굴을 박는다.
“난 사람 볼 줄 모르는데.”
“…….”
윤한테 이런 부분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사실상 검술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면 반쯤 마리아나 다름없지 않은가.
괜한 말을 했다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찰나.
다시 빼꼼 고개를 든 윤이 배시시 웃어 보인다.
“근데 너는 내가 잘 알아.”
“…….”
“인재에 미쳐서, 대악마와 함께 소멸하던 벗까지 인형에 넣어 단원으로 만드는 사이코패스.”
“야.”
근데 말로 푸니까 정말로 그런 느낌이라서 살짝 겁난다.
인재에 대한 갈망과 욕심은 늘 있긴 해서 부정하긴 어렵지만.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잘 봐. 네가 마나감응력을 그렇게 봤으면 나도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할 거야.”
실리아를 믿는 게 아니라.
“네가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니까.”
결국 나를 믿어준다는 말.
머리를 북북 긁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있어서 뭐 하겠는가.
“실리아한테 가볼까.”
결국 정면돌파를 하는 게 답일 듯싶었다.
그렇게 윤을 내버려둔 채로 기숙사 1층으로 내려오자 저 끝에서 헥토르 교수가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시선이 정확하게 내게 꽂혔기에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 이안 아이넬! 손님이 오셨다!”
“손님이요?”
누구 올 사람이 있나 잠깐 고민했는데, 답은 금방 튀어 나왔다.
* * *
헥토르의 안내에 따라 향한 곳은 학장실이었다.
듣기로는 1학년 생도들 중에는 학장실에 내가 가장 많이 불려갔다고 한다.
막상 세어 보면 몇 번 온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만큼 1학년이 학장과 따로 대면할 일이 적다는 뜻이겠지.
“어이구.”
학장실 앞에는 매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교수들이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손님이 손님인지라 교수들도 꽤나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를 향한 교수들의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선을 받으며 학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여전히 나이에 걸맞지 않는 울긋불긋한 근육을 가진 학장과 신성 기사단의 단장 로만 레이먼드가 서 있었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휴가를 쓰고 온 듯싶었다.
“이안 아이넬.”
그가 방긋 웃으며 양손을 펼치며 다가온다.
상당히 반기는 모습에 나는 슬며시 손을 뻗어 접근을 막았다.
“그 정도 사이는 아닙니다.”
“…….”
옛날에 다이니한테도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 말에 뻘줌한 듯 슬며시 손을 내려 악수로 변경한 로만.
그리고 그 너머 입을 떡 벌린 채 당황하던 학장이 황급히 외쳤다.
“어허 이놈! 로만 기사단장님께 무슨 실례되는 말이냐!”
하지만 로만 쪽에서 오히려 괜찮다며 손짓해댔다.
“제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친한 척한 건 맞습니다. 오늘은 기사단장이 아니라 로만 레이먼드로 온 거니까요.”
“……단장님께서는 인내심도 참 깊으시군요.”
지겨워하는 나를 알아챘는지, 로만은 떨떠름하니 답하는 학장을 내버려둔 채 바닥에 놓아둔 가방을 내게 건넸다.
“부탁한 물건이랑 보수금이란다.”
묵직하게 손에 들리는 가방.
슬쩍 지퍼를 열어보니 안에는 상당한 양의 금화와 독특한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장죽과 호리병.
윤의 물건들이었다.
태도는 내가 억지를 부려서 가져왔으나 다른 물건들은 일단 사건이 정리된 이후 따로 전달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를 차지하며 놓여 있는 두꺼운 천에 감싸인 유리병.
내가 슬쩍 손을 뻗어 그것을 들어 올리자 로만이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영약이라고 들었다. 메이제렌의 호우만이라는 영약사가 만들었는데 원래 네 물건이라고 전해 들었다.”
레비아탄의 성물인 보옥으로 만든 영약.
확실히 당장이라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샘솟는다.
군침이 돌았지만 꾹 참으며 억지로 가방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벨이라는 저주 인형도 있었는데, 그건 녹색 마탑에서 수거해 갔다.”
“예, 그건 필요 없어요.”
테르토나가 만든 실패작 따위를 가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신성 기사단을 홀로 무너뜨리고, 메이제렌을 초토화시키고, 레이로즈 가문이 있는 레데른까지 쳐들어갔던 윤.
그런 그녀를 제압한 공로에 대한 보상.
나 혼자 윤을 상대한 건 아니었기에 적장미 기사단과 신성 기사단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보상을 받기로 했다.
3분의 1로 나뉘긴 했으나 금화 양 자체가 상당했다.
작은 기사단 하나를 반년은 운영할 수 있을 자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챙기자 로만은 그런 내 눈치를 보며 헛기침했다.
“크흠, 사실 내가 며칠 정도 휴가를 냈는데 로베르담에 머물 생각이란다.”
“아, 그러십니까?!”
사실 그가 어떻게 할 예정이든 난 크게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학장은 화색이 되어서는 끼어들었다.
“호텔은 따로 잡으셨나요? 제가 귀빈 분들을 많이 모시다 보니 로베르담에 있는 고급호텔 지배인들과는 꽤나 친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진중한 모습을 보이던 학장이 이렇게까지 눈치를 볼 정도라니.
로만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조금은 실감이 갔다.
지금까지는 그냥 내 후손인 척하는 가짜 정도로 생각했는데.
‘하긴, 윤도 로만의 검술이 나 다음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웠다고 했으니까.’
종종 그 당시 얘기를 할 때면 로만과 마리안느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지 않던 윤이었다.
“호텔은 잡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이트 아카데미의 후배들에게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요. 가능하면 이곳에 머물고 싶군요.”
“아, 아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덩치만 아니었으면 방방 뛰었을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학장.
오늘 참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본다.
학장이 로만에게 방을 내어주면서도, 생도들과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밖에 있는 교수들을 잠깐 부르러 간 사이.
슬며시 나를 바라보는 로만.
“내가 여기 머무는 건 너 때문이란다.”
“…….”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머물긴 했지만… 따로 시간을 내겠다.”
그는 각오를 굳힌 눈동자로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나와 대련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