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실리아 위드니스가 왜 지금 여기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들었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어느새 운동장 계단에 앉은 채 멀뚱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포 드실래요?”
침묵을 깨며 윤이 놓고 간 육포를 슬며시 내밀자 실리아는 어색하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새벽에 뭐 먹으면 체중관리가 힘들어서.”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손에 쥔 육포를 어쩌나 싶었다.
이걸 그냥 쥐고 있자니 이상하게 보일 것이고, 그렇다고 먹자니 기분이 더럽다.
하지만 왜 그러냐며 똘망하게 나를 바라보는 실리아의 눈길에 결국 나는 육포를 입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후.’
윤에게 꼭 복수하겠다 다짐하면서 꿀꺽 삼켜버린다.
“으음, 어쩌다 보니 앉긴 했는데. 여기서 뭐 해? 그것도 이런 야심한 시간에.”
육포 때문에 괜히 지어지는 이상한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잠깐 사이에 생각한 답을 꺼내 든다.
“그냥 잠깐 밤바람 좀 쐬려고 나왔어요. 자다 깼는데 기숙사 안에만 있기 답답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의 없는 답변이긴 했지만 이런 말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애초에 생도가 새벽에 돌아다닐 이유는 이런 거 아니면 대부분이 뒤가 구린 것들이지 않은가.
“야간에 기숙사 밖으로 돌아다니면 벌점인 거 알고 있지?”
“……그런 선배는 여기 왜 계세요?”
괜히 한번 찔러보자 실리아는 당당하게 답했다.
“이전에 신입생 환영회 할 때 기억나니?”
“아, 2학년이 1학년 기숙사로 쳐들어온 거요?”
내 대답에 실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후의 사건들을 하나씩 나열한다.
“그때 괴한들이 들어와서 반대로 2학년이 당했잖아.”
괴한은 한나와 넬슨이었다.
“그 다음엔 2학년 여자 기숙사에 투구를 쓰고 들어왔던 괴한도 있고…….”
살짝 가슴이 뜨끔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실리아가 말하는 이번 괴한은 바로 나였으니까.
당시 넬슨을 강화시키기 위한 촉매를 얻기 위해서 따로 잠입했었고, 실리아를 처음 만난 때기도 했다.
“이번에는 늑대수인이 밤늦은 시간에 습격했잖아? 단순히 경비원분들이나 교수님들만 순찰을 도실 게 아니라 선도부도 새벽에 순찰을 돌기로 했거든.”
“……설마 선배가 제안했어요?”
“으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참 대단하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기특하기도 하고 선도부라는 믿을 수 있는 생도들의 제안이니 거절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반대로 선도부 측에서는 굳이 떠맡지 않아도 되는 일을 실리아가 하나 더 추가한 셈이었다.
나 같은 경우도 기사단이라는 하나의 단체를 이끄는 단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이 실리아에게 썩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꽤나 나쁜 역할을 도맡으시네요.”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툭 나왔다.
실리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필요한 일이라고는 해도, 선도부 측에서는 굳이 할 이유가 없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엄밀히 따지자면 아카데미가 뚫리는 걸 생도들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건 엄연히 아카데미의 잘못이니까.
‘뚫은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결국 이유에 다 내가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아카데미의 모자람을 생도가 매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내가 하는 말을 금방 이해한 실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슬며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맞아. 사실 선도부 내에서도 꽤나 반발이 심했어. 내가 억지로 일을 진행시켰는데 그게 학장님 귀에까지 들어가서 발 뺄 수도 없게 됐거든.”
선도부원들이 반쯤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된 건가.
꽤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혐오해도 이상하지 않다.
‘의외인데.’
실리아가 그렇게까지 강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스타일로 보이진 않았다.
‘옳거나 필요하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밀어붙인다라.’
의도치는 않았더라도 자칫 잘못했다가는 단체 내부의 분란을 조장할 수도 있다.
적절한 융통성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서 방금까지 넬슨이 웃옷을 벗은 채로 춤을 추는 걸 그냥 방관하던 한나처럼.
한나의 성격상 다른 사람들에게 기사단의 존재가 들킬 수도 있으니 위험하다고는 판단했겠지만.
그래도 친목과 사기를 위해서 그냥 넘어간 것이었다.
“뭐, 그래서 순찰의 대부분은 내가 하고 있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거지.”
“피곤하시겠네요.”
나와의 대련에서 패배한 것도 오늘인데 바로 새벽 순찰이라니.
꽤나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실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말을 번복하면 선도부를 향한 믿음은 좀 떨어지겠지만, 일단 같은 부원들끼리 마음이 맞는 게 중요하잖아요.”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지만, 실리아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이내 그녀는 내 등을 툭 쳐주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자. 말동무 해줬으니까 벌점은 안 줄게.”
“…….”
* * *
끼이익.
다음 날 점심시간.
문이 열리며 부실 안으로 들어온 벨레스 테오도른을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를 환영한 나는, 그를 바로 자리에 앉히고 맞은편에 앉았다.
점심 먹고 오라고 하긴 했지만 늦어서 살짝 초조했는데.
어쨌든 이렇게 찾아왔으니 이미 반쯤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크흠.”
벨레스는 헛기침하며 슬쩍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이니를 바라봤다.
오독오독 과자를 먹고 있는 다이니는 벨레스와 눈이 딱 맞았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의 기 싸움을 시작했는데 얘네가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잠깐 나가 봐.”
다이니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하자 그녀는 인상을 팍 구기고는 투덜거렸다.
“부원이 부실도 마음대로 못 써?”
“어허, 누가 부장님 말씀에 토를 달아.”
근엄하게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자 다이니는 짜증 내면서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아저씨 티 좀 내지 말라니까.”
쿵.
저게 어디서 저런 말버릇만 배웠는지.
샬롯이 말 잘 들으면서도 소심한 딸내미면 다이니는 사춘기 딸내미 같다.
마리아?
걔는 굳이 따지면 집에서 키우는 성질 사나운 개라고 볼 수 있겠지.
하여간 누구든 키우는 건 쉽지 않다.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확인한 벨레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묵직하니 닫혀 있던 그의 입이 한탄을 내뱉듯 열린다.
“그래서 목적이 뭐지.”
“목적?”
“그래, 정말로 내가 이런 동아리에 들어오길 바라서 협박한 건 아닐 거 아니야.”
“협박이라니. 말 심하게 하네.”
나는 그냥 실력이 출중하니까 같은 동료로 맞이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걸 몇 분간 설명하자 벨레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이해했어?”
“나는 수인이다. 그런 나를 받아들인다고?”
“미안한데 내 동료들 중에도 수인 있어.”
“……!”
꽤나 놀랐는지 벨레스의 눈이 크게 뜨인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 대부분은 수인에게 거부감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너는 내가 아는 다른 레지스탕스처럼 과격한 부류는 아닌 것 같은데?”
당장에 아카데미에 입학한 채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말이다.
“…….”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벨레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폭력으로는 자유를 얻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흐음.”
계속 설명하라고 손짓하자 벨레스는 지금까지 담고 있었던 걸 쏟아내듯 말을 이어간다.
“무력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어 봤자, 결국 주변 국가에게 다시금 표적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와 수용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물러섬이다.”
“…….”
“나는 그걸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인간들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수인이라는 걸 숨긴 채로 기사 같은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면…….”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다?”
“바로 그렇다.”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레지스탕스는 샤카렌 같은 광신도와 메이제렌에서 나를 납치한 과격파였으니까.
오히려 그들보다 나이가 더 적을 터인 벨레스가 훨씬 진지하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럼 더 잘됐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이 서로 일치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뭐?”
“은빛 사자 기사단 알지?”
“그래, 모를 수가 없지.”
과거 왕국 최고의 기사단이라고 덧붙이는 벨레스에게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지금은 연구회지만 사실은 그 기사단을 다시 재건할 계획으로 나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
“…….”
벨레스의 떨리는 동공을 보며 나는 씨익 웃어주었다.
지금 이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듯했기에.
“나를 믿어, 내 곁에만 있으면 모두가 우러러 보는 기사가 될 수 있어. 그때 가서 수인임을 밝히든 말든 마음대로 해.”
거기에 추가로 그가 나를 찾아왔던 이유까지 떡밥으로 던져준다.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늑대수인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며. 내가 말한 기사단에 소속된 수인이 바로 걔야. 이름은 윤. 네가 우리 소속이 될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 소개해 줄게.”
“그, 그 사람도 네 기사단이 된 건가?!”
“그래, 우리는 차별하지 않아.”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벨레스에게 손을 뻗는다.
그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으나.
어차피 벨레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 내 손을 잡지 않으면 언제 수인이라는 걸 들켜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후.”
결국 벨레스는 다짐한 듯 깊게 숨을 내쉬며 내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한다.”
“네 인생 올인해도 돼.”
긴장 풀라고 장난스럽게 말해주자 그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 정도는 떠올랐다.
마침 잘됐다.
“근데 너 누런 소냐, 검은 소냐?”
“……검은 편이긴 하다.”
“그건 좀 아쉽네.”
누런 놈이 일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뭐, 그거야 그냥 윤이 말해준 풍문 같은 거니까.
그렇게 벨레스와 나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으나 밖에서 들려온 노크소리.
“들어오세요.”
다른 부원인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노크하고 들어올 만한 놈이 없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온 건 선도부 완장을 차고 있는 2학년이었다.
몇 번인가 지나치면서 본 적은 있지만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는.
“벨레스 테오도른, 벌점 받은거 반성문 제출하라고 어제 말했을 텐데.”
“아, 예 알겠습니다.”
내 눈치를 보며 당황하는 그에게 선도부원은 한숨을 내쉬며 경고했다.
“아무리 기숙사가 답답해도 새벽에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어제 새벽에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고? 몇 시?”
“……3시.”
3시면 내가 실리아를 만나고 딱 한 시간 뒤였다.
‘이미 내가 잠든 이후구나.’
도망이라도 치려고 했던 건가 싶어서 벨레스 쪽을 보자 그의 시선이 급격히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선도부원 쪽을 바라본다.
“새벽에 순찰 도시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실리아 때문에 고생한다고 넌지시 말하자 선도부원은 기다렸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그래, 정말. 실리아 때문에 왜 우리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 건지.”
뭐, 나름 실리아의 고충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선도부원의 흐름에 탑승한다.
“어제 새벽에 잠깐 깨서 창문으로 바람 쐬면서 봤어요. 실리아 선배가 생도복까지 입고 순찰하고 있던데요.”
“응?”
내 말을 들은 선도부원은 투덜거리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제 순찰자 명단에는 실리아가 없었는데?”
“……네?”
“그리고 우리는 따로 생도복 입고 순찰 안 해.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안 하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으나 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 졸려서 잘못 봤나 보네요.”
그럴 리가 있나.
자그마치 나랑 만나서 대화까지 나눴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 말동무 해줬으니까 벌점은 안 줄게.’
어제 실리아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뭔가 기묘한 느낌이긴 했다.
원칙과 원리를 그렇게 지키면서.
정작 본인의 말동무 해줬다는 이유로 당연히 줘야 할 벌점을 안 줬다?
이제야 답이 나왔다.
‘못 준 거구나?’
본인 순찰 시간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실리아가 새벽에 나와 있던 이유는 뭘까.
뻔했다.
새벽에 변명을 떠올릴 때도 생각하지 않았나.
늦은 새벽, 밖을 돌아다닐 이유는 대부분이 뒤가 구린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