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1학년과 2학년의 대련은 금방금방 지나갔다.
사실 1학년과 2학년의 수준 차이가 꽤나 있다 보니 초반부에는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그나마 우리 멤버들 쪽으로 순서가 올수록 치열한 흐름으로 흘러 시작했다.
결국 독기를 가득 품은 마리아가 하루에 두 번은 지지 않는다며 처음으로 승리를 따 오는 쾌거를 이루었다.
베런은 안타깝게도 에드원 브릴리언을 만나서 패배했고, 벨레스는 원래 2학년보다 나이도 많으니 가볍게 승리.
마지막으로 나와 실리아의 차례였다.
선도부 완장을 차고, 연푸른 머리를 흩날리며 대련장으로 나선 실리아.
“야! 지면 안 된다!”
“선도부라고 깝치고 다닐 거면 기본은 해라!”
“실리아 파이팅!”
“1학년한테 지는 건 진짜 아니다!”
원래는 ‘재미없다’, ‘무조건 이기는 승부다’라며 낄낄거리던 2학년들.
그러나 마리아와 벨레스에게 패배를 맛보고는 긴장해서 실리아를 응원했다.
“이안 파이티이이잉!”
“1학년 수서어어억!”
“보여줘! 수석 실력 보여줘!”
반대로 1학년들은 흥이 폭발하는 중이었다.
2학년 상위권 생도를 상대로는 턱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같은 학년의 동기들이 호쾌하게도 승리를 거머쥐고 왔으니까.
게다가 마지막인 나에 대한 믿음은 꽤나 큰 듯 보였다.
‘뭔가 목덜미가 간질거리네.’
평소 사이가 안 좋거나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생도들도 2학년이라는 공공의 적이 나타나자 바로 힘을 합치는 모습은 썩 나쁘지 않았다.
“부담스럽진 않아?”
양측 모두 꽤나 무거운 응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실리아가 어색하게 물어왔으나, 고개를 저었다.
뭐, 목덜미가 딱 간질거릴 정도지 크게 부담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고작 2학년과의 대련이지 않은가.
“선배는 아직도 선도부시죠?”
넌지시 묻자 실리아는 당연하다며 팔에 걸친 완장을 보여준다.
사실 아까부터 완장을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물어봤다.
“선도부는 3학년 되면 끝나요?”
“어? 아니, 그렇진 않은데. 오히려 3학년 되면 더 바빠지지. 그게 왜?”
혹시 내가 선도부에 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하는 기대감에 한 걸음 툭 다가오는 그녀였으나.
“선배가 선도부 그만두면 은빛사자 연구회로 데려가려고 했죠.”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던 내 대답에 어벙한 표정을 짓는다.
“너희 동아리로?”
“예.”
당연하다 답하자 오히려 실리아는 잠시 말똥하게 나를 바라보다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의외로 웃을 때는 표정이 풀어지는구나 싶었다.
“크흠, 그럴 일은 없어.”
웃음이 터진 게 부끄러웠는지 실리아는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자세를 잡았다.
대련을 시작한다는 안내 도중에도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진심이에요. 혹시 선도부가 짜증 나거나 싫어지면 저희 동아리로 오세요. 아마 오늘 이후면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사람들 천지일 거예요.”
“…….”
“그런데 선배는 특별히 그냥 받아드릴게요. 실력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아까부터 굉장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말투구나.”
호기로운 도발이라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머금은 실리아의 연푸른 마나가 사방으로 흘러나온다.
‘이 이상은 힘든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였지만 그만큼 얻기 힘들다.
실리아가 동급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대련 시작 소리에 맞춰 검을 들어 올렸다.
* * *
“둘이 뭔 대화를 저렇게 하는 거야?”
매점에서 팝콘을 사 와서는 오물거리는 샬롯.
그녀의 의문에 옆에서 초코 과자를 입에 문 다이니가 추측해 본다.
“쟤가 하는 말이면…….”
“찢어 죽고 싶냐 아니면 맞아 죽고 싶냐. 그런 거겠지.”
샬롯의 팝콘을 뺏어 먹던 마리아가 히죽 웃으며 다이니의 말을 가로챈다.
미간을 팍 찌푸린 샬롯이 결국 참지 못하고 마리아에게 한마디 한다.
“너 오늘 내 거 몇 번을 뺏어 먹는 줄 알아?”
“쩨쩨하게. 그렇게 과자를 많이 먹으면서 그거 몇 번 못 주냐.”
“쩨쩨해? 네가 오랜만에 먹는 과자의 참 맛을 알아?!”
“아, 알았어. 나중에 사주면 되잖아. 애가 이상한 부분에서 성깔이 있네.”
보통 마리아에게 밀리던 샬롯인데 단 게 들어가서 그런지 오늘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다이니도 심드렁하니 마리아의 말에 반박한다.
“넌 그냥 이상해. 이안이 실리아 선배한테 그런 말을 하겠냐.”
“그럼 뭔 말을 하겠냐. 야, 이안 정도면 3학년 수석한테 머리부터 발끝까지 찢어발긴다고 말해도 괜찮아.”
도대체 마리아의 안에서 이안의 이미지가 어떻게 박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두 소녀는 나란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안은 그런 말 안 한다.”
마리아의 옆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무뚝뚝하니 질타하는 베런.
그러자 마리아는 답답하다며 가슴을 탕탕 후려친다.
“아오, 너희가 그걸 못 봐서 그래.”
윤과 검을 휘두르던 이안을 본 이후부터, 마리아의 안에서 이안은 괴물 중의 괴물이 되어 버렸다.
마리아의 안에 있는 강한 사람 순위에서 자그마치 장녀인 마리안느보다도 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거?”
“그게 뭔데?”
샬롯과 다이니의 흥미를 끌었는지 두 사람의 고개가 마리아에게 휙 돌아간다.
베런 역시 은근슬쩍 눈동자를 굴리며 의문을 담은 시선을 보낸다.
‘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지 말라고 이안이 신신당부했던지라
입을 꾹 다물던 마리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생도들의 눈치를 살핀다.
딱히 이쪽의 대화를 듣고 있는 생도는 없어 보인다.
음, 어차피 이것들은 이안 아이넬이랑 친하고 굳이 다른 곳에서 소문낼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 지난 새벽에 늑대수인 찾아왔다며.”
순간 세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마리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늑대수인이라는 키워드가 지금 아카데미에서 얼마나 뜨거운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기숙사 벽면에 새겨진, 그녀가 남기고 간 일종의 흉터는 못 본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여자한테… 이안이 이겼거든.”
중간에 여러 가지 과정이 있지만 그것까지 다 말하기엔 귀찮았다.
마리아가 그런 부분을 세세하게 떠드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막상 이안에 대해서 말한 것도 순전히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대단한 점을 남들도 알아주길 바란다는 의외의 욕구 때문이었음을 마리아는 알아차린다.
세 사람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
탄성은 의외의 장소에서 터져 나왔다.
“뭐?!”
은빛사자 연구회의 일원이 된 지 불과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신입부원, 벨레스 테오도른.
아카데미를 휘젓고 간 늑대수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곳저곳 수소문하다 우연찮게도 그녀가 이안을 쫓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안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한 거였는데.
그런 그녀에게 이안이 이겼다고?
잘만 하면 레지스탕스로 회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던 벨레스로서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상황이었으나….
“넌 뭔데 엿듣냐.”
팔짱을 낀 마리아가 바로 날카롭게 벨레스를 노려본다.
“아…….”
너무 노골적인 적의에 당황한 벨레스.
마리아는 삐딱하게 고개를 틀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앙?! 동아리 신입이 어딜 선배들 얘기에 끼어드냐고오!”
“선후배도 있었어?”
“이안이 알면 혼낼 거다.”
샬롯과 베런이 한마디씩 거들었음에도 마리아는 물러섬이 없었고.
“재밌어 보이는데.”
다이니는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마리아의 옆에 서서 팔짱을 낀다.
“야, 신입이면 인사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 때는 선배들한테 장기자랑 같은 거 하고 그랬는데.”
“…….”
두 소녀의 짓궂은 장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벨레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부장인 그 흐름은 이안 아이넬이 끊어주었다.
와아아아아!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실리아를 쓰러트린 이안 아이넬이 검을 집어넣고 있었다.
* * *
“흐아암.”
모의고사가 끝나고 늦은 새벽.
사실 이미 잠들어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방금까지 자고 있었지만, 윤의 손에 이끌려 운동장으로 끌려 나왔다.
“하아암.”
“하품 좀 그만해라. 못 자는 사람 서러워서쓰흐아아암.”
그러면서 왜 본인은 하품을 하는 건지.
다른 기사단원들을 떠올려 보면 잠이 필요하진 않아도 아마 잘 수는 있을 텐데.
“그래서 뭐 하는 건데.”
다른 단원들까지 다 소환하게 하고서는, 이 새벽에 운동장에서 뭐 하는 건가 싶다.
“내기했잖아. 그 결과는 봐야지.”
그러면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품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서 질겅질겅 씹어대는 윤.
“맛 좀 느끼게 해줄 수 없나?”
“테르토나한테 물어볼게.”
불가능하진 않을 듯싶어서 일단 답하자 거기서 추가로 더 얹는다.
“그리고 나 귀 좀 만들어 줘. 머리 위에 뭐가 없으니까 허전해서 기분이 이상해.”
“참.”
원하는 것도 많구나 싶다가도, 윤을 테르토나에게 보여주면 얼씨구 좋다구나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인 하나 봤지?”
“아, 소?”
무슨 수인인지까지는 몰랐는데, 윤은 벨레스가 어떤 수인인지 바로 때려 맞췄다.
“어떤 것 같아?”
아무래도 나보다는 윤이 수인들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니 은근슬쩍 떠본다.
윤에 대해 벨레스가 조사하고 있기도 했으니 내일 따로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다.
먹지도 못하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크게 관심 없다는 듯 답하는 윤.
“소들은 보통 온순해서 다루기 쉬워.”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벨레스는 윤을 찾아서 나한테 접근했지만 그녀는 정말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일단 알겠다고 답하는 내 쪽으로 눈을 흘긴 윤이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속삭여왔다.
“비밀 하나 알려줄까?”
“비밀?”
“소들 중에는 누런 놈이 일을 잘해. 그놈이 누런 놈인지 확인해 봐.”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서 킥킥거리는 윤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지금!”
“빨리 하자!”
그때 미리 운동장에 나가있던 엘빈과 켈빈이 호들갑을 떨면서 달려온다.
그걸 보곤 모두의 시선이 넬슨에게로 꽂혀 들어갔다.
“하, 샬롯. 진짜.”
넬슨은 자기 후손에게 한풀이를 하며 그대로 갑옷을 벗어 던지더니 운동장 정중앙으로 달려가서는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윗옷 벗어라!”
“장난하냐!”
톰과 도로시가 외치자 넬슨은 울상이 되어서는 그대로 상의를 탈의한 채로 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어억! 미쳤다! 개잘춰어억!”
옆에서 내 어깨를 퍽퍽 쳐대면서 기분 좋다고 즐거워하는 윤.
그러더니 입에 넣었던 육포를 쏙 빼며 내게 건넨다.
“먹어.”
“네가 먹던 걸 먹으라고?”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자 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육포를 이리저리 흔든다.
“어차피 나는 인형이라서 침도 없잖아? 그냥 씹기 편하게 다듬었다고 생각해.”
“그 얘기하니까 더 못 먹겠어. 먹지도 못하면서 왜 입에 처넣은 거야?”
“인형 더럽게 차별하네.”
“도로시한테 줘.”
윤을 무시한 채로 슬쩍 단원들을 둘러본다.
다른 애들은 그렇다 쳐도 한나도 꽤나 즐기고 있는 건 의외였다.
사실 이런 저급한 내기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다 같이 노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겠지.
혹시라도 애들이 깨거나, 경비원들에게 들킬까 봐 이제 슬슬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신난 녀석들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냥 깔끔하게 역소환 해야겠다.”
울상이 된 채로 돌아오는 넬슨을 향해 손을 뻗는다.
깔깔거리며 웃어대고 있던 단원들을 차례대로 역소환하며 마지막으로 윤까지 보낸 순간.
“거기 누구야?”
“음?”
뒤에서 들려온 차분한 음색.
휙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늦은 밤에도 생도복을 입고 있는 실리아 위드니스가 서 있었다.
“이안?”
왜 실리아가 지금 여기 있는 건가 싶은 이안이었지만, 반대로 실리아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왜 네가 여기 있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으나 실리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방금 운동장에 누구 있지 않았어? 막 휘청거리던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어색하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